‘수상한 파트너’, 그들은 기억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까

끔찍한 사건이 만들어낸 기억의 트라우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꾸는 걸까.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주인공인 노지욱(지창욱)과 은봉희(남지현)가 어린 시절 부모들로부터 얽힌 사건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노지욱의 부모가 은봉희의 아버지의 보복 방화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는 것이 당시 공식 보도된 내용이었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서로 사랑을 확인하게 된 노지욱과 은봉희는 이 과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별을 선택했다. 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그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떨쳐낼 수는 없었던 것. 하지만 노지욱은 차츰 자신의 기억이 당시 조사관이었던 장무영(김홍파)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기 시작한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가 범인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해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다. 결국 장무영이 은봉희의 부친을 범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어린 노지욱은 그렇게 믿고 증언하게 됐고, 결국 부친이 방화범으로 체포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은봉희의 부친과 은봉희는 똑같이 누명을 쓰는 운명을 반복했다. 그녀의 부친이 그러했던 것처럼 은봉희 역시 장무영의 아들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던 것. 하지만 그 누명을 풀어준 것이 바로 노지욱이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노지욱 자신은 검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변호사로 살아가게 되지만. 

<수상한 파트너>는 지금껏 여러 사건들을 에피소드로 다뤄왔고 그러면서 노지욱과 은봉희 사이에 생겨난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지만, 궁극적으로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 과거에 얽힌 악연을 어떻게 두 사람이 극복해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기억의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그러고 보면 드라마 전편에 걸쳐 연쇄살인범으로 등장해 쫄깃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는 정현수(동하) 역시 그 살인의 저변에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도망치다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게 된 그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걸 알게 된 그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졸업앨범을 통해 첫 사랑을 보며 기억을 되찾은 그는 눈물을 쏟아낸다. 그 역시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는 과거가 모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에 대한 기억이다. 그 기억이 만일 행복이 아닌 불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것은 행복해지려는 현재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트라우마는 그래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왜곡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분노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든 그 고통스런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그래서 과거를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수상한 파트너>가 굳이 기억의 문제를 가져온 건 그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지금 처한 많은 현실들의 문제의 연원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이 많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니 말이다. 누군가는 전쟁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개발독재시절 국가가 저지른 폭력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며, 누군가는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 사고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직접 겪지 않았어도 늘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어떤 기억의 트라우마가 있을 지도 모른다. 

<수상한 파트너>가 건드리고 있는 기억이라는 지옥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노지욱과 은봉희도 넘어서야 하는 것이고, 연쇄살인범인 정현수도 극복해야할 문제다. 또한 아들을 잃고 폭주하는 장무영 검찰총장 역시 자신이 과거 누군가에게 저질렀던 사법적 폭력을 인정함으로써 그 기억의 문제들을 넘어서야 한다.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로 덧씌워져 있지만 <수상한 파트너>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 우리 사회에 공기처럼 스며있는 기억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시카고’, 시청률 아쉬웠어도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인 이유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가 종영했다. 물론 시청률은 만족스러울만한 수치가 아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때 1%대 시청률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평균적으로 2% 시청률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를 두고 볼 때 <시카고 타자기>는 최근 방영된 어떤 작품보다 높은 수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타자기에 깃든 유령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그 유령이 작가 한세주(유아인)와 함께 써나가는 소설, ‘시카고 타자기’. 그리고 그들 사이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지와 사랑으로서 운명처럼 들어와 있는 전설(임수정). 일제강점기라는 전생의 이야기가 2017년 현생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어떻게 역사와 기억이 조응하는가를 ‘소설’이라는 틀로 보여준 진수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 게다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이 상상의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라는 배우들의 아우라까지. <시카고 타자기>는 한 마디로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 집필기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을 보면 놀랍게도 일제강점기에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청춘들에 보내는 헌사를 담고 있다. 그 소설이 사실은 전생에 독립투사들이었던 자신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던 것. 당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했던 그들은 통일된 조국의 후생을 기약했고, 그렇게 환생한 이들이 잊혀져 가는 당시 청춘들을 기억해나간다는 설정은 지금 현재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역사적 시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들의 아프고 찬란했던 사랑 이야기까지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 설정의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재미적 요소만큼 의미 또한 남달랐던 작품도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시카고 타자기>의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진 건, 이 판타지가 그저 재미를 위한 인위적 설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아가 문학적 상징으로까지 이해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안에 전생을 기억해나가고, 유령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상상력을 상징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었다. 즉 이 작품 전체가 한세주라는 작가가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을 상상하며 받은 영감으로 쓴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소설을 끝내고 그 소설 속에 유진오를 영원히 봉인시킨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마치 실제 인물처럼 몰입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설가 같은 창작자들에게는 마치 신비 체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었던 것처럼,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을 동시에 묶어냈다. 즉 전생의 삶들은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은 현생의 삶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인 해피엔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의 종영은 그 느낌이 독특하다.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이 겹쳐져 어딘지 쓸쓸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듯한 행복감 또한 그 안에 담겨진다.

되돌아보면 현생과 전생을 넘나드는 청춘 멜로에 소설과 현실을 뛰어넘고, 판타지와 실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굵직한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의 탄생은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생과 현생의 인물들을 넘나들며 사실상 1인2역을 해낸 연기자들의 공적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은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 평가받는 건 더욱 아쉬운 작품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였다.

‘터널’이 연쇄살인범 잡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

“범인 잡았으니까 이제 다 끝났네요.” “아직 안 끝났다. 우리가 범인을 왜 잡았는데. 우리가 결국 사람은 못 구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얘기는 해줘야지. 범인 잡았다고. 우리가 안 잊고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터널(사진출처:OCN)'

OCN <터널>의 마지막 회에서 범인 목진우(김민상)가 검거되고 범행 사실을 자백했지만 박광호(최진혁)는 아직 자신들이 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가족을 찾아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일일이 형사들이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주자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는 아픔과 회한이 뒤섞여진 감정 같은 것들이 엿보였다. 형사는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범인을 잡았다는 것에 죄송하다고 말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고마움 또한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잊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잊지 않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마도 <터널>이 여타의 범죄 스릴러 장르물과 확연히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물들이라면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살해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포획하고 그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추격전이 이어지다 결국 범인을 잡는 그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터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30년의 세월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게 됐던 분들을 잊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그것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명가라고 불리는 OCN이 <터널>을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터널>은 스릴러가 그저 단순히 범인 잡는 형사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자극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담을 수 있는 스릴러 장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여타의 드라마들과 달리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타임슬립이란 메시지를 담기 위한 도구일 뿐, 재미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걸 <터널>은 보여줬다. 어째서 터널을 통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것이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시도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개연성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을 담는 상징이다. 피해자 가족이라면 30년 세월 또한 어제 일처럼 잊을 수 없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니.

또한 <터널>이 높은 완성도에 대중적인 열광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가 건드리는 우리네 대중들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통해 무수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가해자를 잡거나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별로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기억조차 흐릿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터널>은 우리 안의 그 기억들을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었다.

‘시카고 타자기’, 전생과 현생으로 그려낸 역사의 기억, 기록

과연 일제강점기 경성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 이야기의 관심은 온통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단체의 수장 휘영(유아인)과 그의 절친 신율(고경표) 그리고 그 신율에 의해 저격수로 키워진 수현(임수정)은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로 묶여져 있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수현은 휘영을 그리고 신율은 수현을 사랑했지만 무슨 일인지 수현이 휘영과 신율 중 누군가에 총을 쏘았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이 전생의 인연은 현생으로 이어져 수현은 전설(임수정)이 되어 베스트셀러 작가 세주(유아인)와 다시 사랑으로 얽히고 갑자기 유령이 되어 나타난 신율(현생에서는 유진오, 고경표)은 세주와 함께 그 전생의 기억들을 소설로 써나간다. 한세주와 유진오가 소설로 과거를 기억하고 기록한다면, 전설은 그 소설을 읽으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사실 전생과 현생을 잇는 사랑이야기를 할 것이었다면 <시카고 타자기>가 굳이 일제강점기까지 시간을 되돌려 그 때를 전생의 시점으로 삼을 이유는 별로 없었을 게다. 그리고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비극적인 어떤 사건을 겪었다는 것을 드라마의 중요한 모티브로 삼을 이유도 없지 않았을까. 어떤 식으로든 <시카고 타자기>의 이야기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시점과 당대의 역사적 사건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시간의 장벽 같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간헐적으로 전생의 부분들이 떠오르지만 그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유령인 유진오 역시 그들 인연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과 기억이 만들어내는 장벽. 그래서 이들은 그 기억을 되찾아가는 여행을 소설이라는 방법의 틀을 통해 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카고 타자기>의 초반 이야기들은 베스트셀러 작가 한세주를 중심으로 그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가족인 줄 알았던 백태민(곽시양) 가족으로부터의 배신 같은 개인사 그리고 무엇보다 유령이 깃든 시카고 타자기와 그가 얽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과 연관된 현생의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전개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것이 이 본격적인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시카고 타자기>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전생과 현생, 그것도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지점을 끌어온 것일까. 이런 질문을 통해 떠오르는 건, 이 드라마가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기억되고 기록되는가를 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전생처럼 지워져버린 일제강점기의 기억들. 그래서 사료들이 남아 있다고 해도 교과서에 박제된 것이거나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된 것들로 채워져 있는 기록들. <시카고 타자기>는 그것을 소설 혹은 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생생한 살아있는 역사로 담아내려는 노력 자체를 이야기의 모티브로 쓰고 있다. 

그것은 한세주와 전설 그리고 유진오가 얽혀진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우리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기억을 유예시킨 역사적 사건이기도 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역사적인 시간들이었으면 전생처럼 지워버린 기억으로나 남게 되었을까. 게다가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당대의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는 아픈 현실은 당대의 역사가 우리 손으로 왜곡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전설처럼 전생을 기억하는 그녀의 어머니는 20년 만에 그녀 앞에 나타나 세주와 엮여 전생의 비극을 반복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자 전설은 자신은 “어머니처럼 전생이 두려워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것을 직시하고 극복하겠다는 뜻이다. 세주와 유진오가 기억을 되새겨 다시 쓰는 일제강점기의 기록과 그것을 읽으며 전생의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전설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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