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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문제 지적만큼 중요한 솔루션 제시

밤 7시 딸의 취침준비시간. 남편 고창환은 딸 고하나의 방학생활 숙제를 도와준다. 그런데 갑자기 걸려온 시누이로부터의 전화. 고창환은 활짝 웃으며 통화하다 딸 고하나를 바꿔준다. 반갑게 고모를 부르는 하나의 목소리. “집에 오면 저랑 같이 자요.”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시누이가 집에 온다는 그 말에 아내 시즈카는 화들짝 놀란다. 

시즈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자 남편이 일종의 해명을 한다. “친구 만나러 왔다가 늦을 거 같아서, 운전하기 좀 위험해서, 자고 가도 되냐고 해서. 상관없지 않나?” 딸 하나에게 동의를 구하는 척 넘어가려는 그 말에 하나가 “괜찮아.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했어”라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시즈카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는 시즈카에게 “늦으면 자고 있다가” 일어나면 되지 않냐고 고창환은 속편한 말을 한다.

시즈카가 불편해 하자 고창환은 마치 그게 정답이나 되는 듯, “가족이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즈카는 “가족이라도 달라”라며 단호한 자신의 입장을 말한다. “여기 누구 집인데? 오빠만 살아?” 시즈카의 그 말에 남편 고창환은 “다음에는 내가 물어볼게”라며 아내의 불편한 마음을 다독이려 한다. 분위기가 싸해지자 딸 하나가 그걸 풀기 위해 하는 말이 흥미롭다. “아빠는 고모가 와도 되니까 그런거지? 그런데 엄마한테 왜 안 물어봤어?” 그러자 아빠가 답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아빠가 물어본다고 했어. 그럼 됐지?” 그런 하나가 예쁘게 느껴졌던 지 시즈카는 하나를 꼭 안아주며 웃는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가 보여준 이 장면은 굉장히 짧지만, 거기에 어쩌면 지금 이 프로그램이 처한 문제의 해법이 담겨 있다고 보인다. 방송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큼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안들은 짜증을 유발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았던 일상인지도 모르지만, 관찰카메라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투성이였다는 걸 드러내면서 나타난 반응들이다.

그 파장이 워낙 커서인지 여기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프로그램을 하차하며 그 불편한 심경을 SNS에 올렸다. 일정한 ‘콘셉트’가 있었고, 그래서 설정과 ‘연기’가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폭로’가 있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그것이 제작진의 잘못도 존재하지만 또한 온전히 편집 때문인가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들은 왜 발생한 것일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그 이상한 시댁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그것이 자극적인 반응들을 만들어 내다보니 문제의 장면들만 집중해서 보여주는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롭게 등장한 최현준-신소이 부부 이야기에서도 며느리에게 “야”라고 부르고 자기 아들인 현준을 우선적으로 챙기라는 ‘돌직구’ 시어머니가 등장했다. 그 시어머니가 “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남편을 위주로 하고!”라고 말할 때는 자막에 붉은 색으로 ‘남편을 위주’를 강조하고 불꽃까지 더해 붙였다. 일종의 강조점을 찍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그런 이상한 나라를 조명해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니 그런 문제들을 끄집어내는 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문제만이 아니라 해법 또한 필요하다는 점이다. 과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과 분노 이상의 어떤 대안이 될 수 있는 해법을 시도해 보여준 적이 있을까. 

이러한 가족 내의 갈등을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관찰카메라를 활용한 솔루션 프로그램에는 적어도 그 상황을 직접 당사자들이 보게 하고, 거기 비춰진 자신들의 모습과 상대방의 입장을 확인함으로써 어떤 해결방식을 제안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서는 그런 해결 방식이나 과정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시즈카의 가족이 보여준 짤막한 장면이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시즈카는 남편이 ‘가족’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 대목에 단호하게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곳이 자신들만의 공간이고 그래서 남편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다. 시댁 식구들까지 포함해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으로서 그 곳은 경계가 있다는 걸 시즈카는 확인시켜준 것이다. 

최근 들어 성 평등 문화에서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이른바 ‘경계 존중 교육’이 절실하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내 몸이 있고, 내 공간이 있고, 나만의 삶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올 때는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통한 허락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 경계는 누구에게나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우리네 문화에서 경계는 ‘가족주의’라는 틀 속에서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가 남이냐”라는 말은 가족의 틀을 벗어나 사회에서조차 친분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고, 그것은 경계를 훌쩍 넘어 마구 침범하는 문화를 당연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댁이 이상한 나라가 되는 건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결혼을 했으니 ‘우리 가족’이라는 명분하에 마구 선을 넘는 행동과 말이 그렇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가 의미 있게 다가온 건 딸 하나가 보이는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훅 들어오는 행위들은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들이 성장해서도 같은 행동을 하게 만든다. 시즈카의 단호한 대처는 그래서 딸 하나에 대한 살아있는 훈육처럼 보인다. 딸이 아빠에게 “엄마에게 왜 안 물어봤어?”하고 묻는 대목은 그 역시 가족의 경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니 말이다.

시즈카가 스스로 보여준 것처럼,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잘못된 풍경을 끄집어내고 지적하는 차원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나아가 거기서 어떤 해법들을 찾을 것인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불편하고 자극적인 상황의 나열로 인해 ‘분노’만을 일으키고, 결국은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현실만을 그려낼 위험성이 있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초심 잃은 <아빠를 부탁해>, 무엇이 문제일까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이경규는 딸 예림이를 데리고 한편의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다. 한 시골의 소 축사로 간 그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소똥 치우기로 하루를 보낸다. 이경규가 딸을 데리고 축사로 간 명분은 자신이 한 때 목축업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딸에게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분과 달리 이들이 하루 종일 축사에서 한 것은 소똥 치우는 일을 하는 상황이 주는 웃음 만들기에 가까웠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노동 없이 말장난으로 하는 웃음보다야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때는 날방의 일인자(?)’라고도 불리던 이경규가 아닌가. 그의 노동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그의 예능에 대한 자세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몸소 힘겨운 노동을 하는 것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왜 하느냐다. 시골에서 딸과 소똥을 치우는 일이 <아빠를 부탁해>가 지향하고 있는 아빠들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결코 보통의 아빠들이 딸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방송의 한 미션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예능의 자연스러움은 깨져버린다. 힘겨운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다지 효과가 없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은 서천으로 조재현과 딸 혜정이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로 드러난다. 즉 아빠와 딸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야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행이 너무 자주 등장했다. 이경규와 예림이 추억여행을 다녀오고 조재현과 혜정이 서천 여행을 떠나고... 이런 식으로 여행은 출연자들에게 돌아가며 로테이션 되는 것 같다.

 

물론 여행이 주는 일상탈출과 그 속에서 아빠와 딸이 조금은 가까워지는 시간들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너무 단조롭다. 서천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그 축제에서 맨손으로 전어를 잡는 건 사실 너무 흔한 장면이다. 그러니 이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평상시 아빠가 자주 쓰는 말을 하게 만드는 미션 설정 같은 조미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딸의 관계가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설정된 미션과 게임들은 <아빠를 부탁해>의 기획의도 자체를 흐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이경규나 조재현은 초기부터 출연해 꽤 오래도록 딸들과 교감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어색했던 관계가 상당히 풀어져 있어 이런 미션 같은 조미료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새롭게 투입된 이덕화 부녀와 박세리 부녀는 어떨까. 먼저 이덕화와 딸 지현은 너무 게스트에 의존하는 느낌이 짙다. 둘만 있는 자리가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박지우가 출연해 춤을 가르치고, 이동욱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빠와 딸의 관계에 집중시키기보다는 게스트에 시선을 빼앗기게 만든다. 본말이 어긋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박세리와 아빠 박준철이 <아빠를 부탁해>의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별한 일을 한다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일상적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먹고 산행을 하고 집에서 다이어트 비디오를 보며 춤을 추고 운동을 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류의 방송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하다못해 관상과 손금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빠를 부탁해>에 걸맞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게 이들 부녀다.

 

<아빠를 부탁해>는 나이든 아빠들과 소원했던 딸이 조금씩 그 관계를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하는 건 아빠들이다. 늘 굳건히 가족의 중심에서 묵묵히 서 있어 오히려 그 존재를 깜박 잊고 있었던 아빠들을 재발견하는 데서 공감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비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과한 미션을 부여하면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이제 그 소원했던 관계가 풀어져 아빠와 딸이 어느 정도 소통하는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면 더 이상 방송으로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기 마련이다. 애초에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는 편이 낫다. 또 다른 문제나 상황을 갖고 있는 아빠들을 통해 폭넓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그것이 <아빠를 부탁해>가 처음 그대로의 좋은 기획의도를 살리면서도 지속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Posted by 더키앙

연예인, 그들만의 세상에 무슨 공감대가 있으랴

 

<아빠를 부탁해>는 지금 최대의 위기다. 시청률이 쭉 빠져 일요일 예능 대결에서 계속해서 꼴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더 안 좋은 건 이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여기 출연하는 아빠들의 삶이 마치 우리네 삶처럼 다가왔었고, 그래서 그 아빠를 바라보는 딸들이 그토록 예쁠 수가 없었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하지만 이런 공감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라져버렸다. 프로그램 초기만 해도 아빠와 딸이 그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빠에게도 하나의 도전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이미 어느 정도 소통을 하게 된 아빠와 딸들의 관계 속에서 이들이 함께 하는 시간은 소통이라기보다는 그저 놀러 다니는 것처럼 비춰지게 되었다.

 

딸 다은이와 함께 남이섬을 찾은 것에 대해 강석우는 과거 <겨울 나그네>의 추억이 깃든 곳이라 다시 한 번 찾아보고 싶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강석우와 다은이의 방송분 어디에서도 그 추억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강석우와 다은이가 짚와이어를 타는 장면과 번지점프를 하려다 포기하고 내려오는 장면만 있었다.

 

물론 이것은 여러모로 지난 리마인드 웨딩을 했던 강석우네 가족의 이야기에 쏟아진 비판을 의식한 면이 있다. 시청자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고 싶은 너무 사적인 일에 방송을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들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겠다 작정한 듯한 느낌이 있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남이섬까지 갔던 그 본래의 의도를 모두 지워버리는 건 이 프로그램이 가진 자의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면면을 드러낸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조재현의 딸 조혜정이 연기연습을 위해 오빠에게 가발을 씌우고 미용 실습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조혜정이 드라마에 미용사 역할로 캐스팅되어 그 준비를 하는 장면이다. 물론 조재현은 그러한 딸의 연기연습이 연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말했지만, 사실 이런 내용이 <아빠를 부탁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다. 거기에서 과연 우리네 보통 50대 아빠들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공감이 사라진 지점에는 저들만의 세상이 보여주는 이질적인 삶을 왜 시청자들이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만 남을 뿐이다. 50대 아빠들의 공감대를 목적으로 했던 이 프로그램이 자꾸만 딸 연예인 시키려는 방송이라고 오인 받게 되는 건 그래서다. <아빠를 부탁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심, 즉 우리네 보통의 50대 아빠들이 갖는 삶의 여러 측면들을 프로그램이 공감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삶이 아닌 저들만의 세상으로 자꾸만 미끄러져 나갈 때 시청자들의 이탈도 동시에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예인들의 실제 삶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는 그래서 쉬워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즉 어쨌든 카메라는 그들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닮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잘 사는 집이 비춰질 때면 시청자들로서는 부러움을 갖게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화감을 느끼게도 된다. 이 차이는 전적으로 프로그램이 본래 갖고 있던 기획의도를 잘 지켜내고 있는가 아닌가에서 결정된다.

 

이것은 현재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나마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지키고 있지만 이 역시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여러 차례 시청자들에게 위화감을 준 적이 있다. 갖가지 PPL의 전시장이 되거나 똑같은 육아라고 해도 저들만의 화려한 삶의 일단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시청자들은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제 아무리 위장막이 되어 있다고 해도 그들의 삶이 우리네 보통의 삶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가려져 있던 것들이 차츰 오래 반복되면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고, 그랬을 때 조금씩 시청자들에게는 그것이 이질감으로 다가오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연예인들이 잘 사는 것이야 그것만으로 무에 잘못된 것이 있을까. 중요한 건 그 잘사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지고 방송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기획의도를 벗어나는 순간 서민들의 눈에는 그것이 놀면서 돈 버는 듯한 인상으로 다가오게 된다. 힘들다는 얘기가 실제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아빠를 부탁해><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연예인 가족 관찰카메라에 대한 공감이 갈수록 사라지는 건 그래서다. 보편적인 육아나 가족관계의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할 때 그것은 저들만의 세상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거기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서민들의 공감대는 있을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미세스캅', 아줌마의 촉과 오지랖 어떻게 볼 것인가

 

아줌마들 특유의 촉과 오지랖은 일에 있어서 장점일까 단점일까. <미세스캅>의 최형사(김희애)라는 캐릭터는 제목에 걸맞게 아줌마들의 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장착한 인물이다. 첫 회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자의 집에서 시루떡을 보고는 그것이 '이사 떡'을 빙자한 침입이었다는 걸 간파하는 장면은 이 최형사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들어있듯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진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내 가족의 건강과 재산을 위해서라면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가족의 수호자'인데다, '남자의 직감보다 20배 이상' 뛰어난 아줌마의 '수사적 직감'이 그것이다. 기획의도에 따르면 아줌마의 촉이란 '예컨대, 남편 자동차 조수석 의자가 기울어진 각도만 보고서도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잡아낸다거나, 셔츠에 묻은 낯선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국과수 따위의 감정결과 없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추정하는 능력, 심지어 짙은 스킨과 향수로 도배를 해도 낯선 여자의 향취를 맡아내는 경이로운 능력'을 말한다.

 

기획의도이니 다소간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여성들의 직감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건 인정할만한 이야기다. 게다가 아줌마들의 오지랖을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장점으로 부각시킨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형사가 연쇄살인범이 투항의지를 밝힘에도 참지 못하고 총을 쏜 후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거짓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밝힘으로써 파출소장으로 강등되는 이야기나, 그랬던 그녀가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으로 자칫 자살사건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연예지망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이야기는 모두 이 '미세스캅'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최형사의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모습이 우리가 지금까지 형사물에서 봐왔던 형사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살벌한 범죄 현장에서 최형사 같은 인물이 과연 있을까 싶은 의구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설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드라마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고개가 갸웃 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본래 판타지를 그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불편한 느낌을 줄까. 그것은 혹시 지금껏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져 왔던 형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 아줌마의 이야기가 주는 이물감은 아닐까. 조직의 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사실 '조직의 생리가 다 그렇지' 하며 생겨난 일종의 포기상태에 갑작스레 그것이 잘못됐다 얘기하며 나서는 아줌마 형사의 오지랖이 불편함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드는 건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그 대결구도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미세스캅 최형사는 여동생과 딸, 이렇게 세 여자가 한 가족을 이뤄 살아가고,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하는 이들은 모두가 여성들이며, 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나 사건을 애써 덮으려는 그룹 회장과 2, 그리고 비리 경찰까지 모두 남성들이다. 그러니 마치 최형사 특유의 아줌마 오지랖이 깨나가는 건 단지 잘못된 수사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으로 굳어져 있는 남성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즉 최형사의 도발은 어쩌면 상명하복의 구악으로 남아있는 폭력적이고 나아가 범죄적인 남성들의 시스템을 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남성들의 시스템 앞에 한때는 저항했지만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견고함에 포기하고 심지어 순응했던 남성들에게 최형사의 도발은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잘못된 것과의 대결이 주는 통쾌함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불편함이다.

 

<미세스캅>이라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캐릭터나 캐릭터가 해나가는 성취 또한 현실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도 던지지 않는 그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미세스캅>의 최형사는 물론 비현실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계가 말하는 비현실성이란 오히려 그 세계의 비상식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시청률의 제왕’이 꼬집은 <최고다 이순신>, 그 실상

 

‘이 드라마는... 달리기에 지쳐있는 우리 사회에 위로와 희망,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기획되었다.’ 이 문구는 <최고다 이순신> 기획의도의 한 부분이다. 이 기획의도에는 행복이란 ‘더 많이 가진다고 더 높이 올라간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며’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건 ‘곁에 있는 사람의 소박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고다 이순신>의 기획의도는 이처럼 순수하고 심지어 소박하다.

 

'최고다 이순신(사진출처:KBS)'

아마도 이것은 진짜 <최고다 이순신>이 애초에 그리려했던 것들일 게다. 하지만 25일 종영에 즈음해 이 드라마를 되돌아보면 기획의도가 무색해질 정도로 방향이 엇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라마가 애초 다루려던 것은 위로와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였을지 모르겠지만, 실상 드라마가 계속 보여줬던 것은 막장에 가까운 엄마들의 부모로서 해서는 안될 패악이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애초에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 전체의 동력을 삼은 시점부터 어쩔 수 없는 엇나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순신(아이유)의 아버지가 그녀의 친모인 송미령을 구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아니 이순신의 친모가 그녀를 키워준 김정애(고두심)가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야기된 것이었다. 친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이순신은 그래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처음에는 김정애가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다음은 둘째 언니인 이유신(유인나)가 노골적으로 그녀를 구박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드라마의 상반기가 지나가고 중반에 이르게 되면 이제 친모인 송미령의 패악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친모인 줄 모르고 이순신을 배신하고, 후에 친모임을 알게 된 후에는 딸의 입장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놀라운 일이지만 이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전체 내용이나 다름없다. 중간에 이유신과 박찬우(고주원)의 반대를 이겨낸 전형적인 결혼이야기가 들어있고, 이혼한 이혜신(손태영)의 전남편과의 갈등과 새 남자 서진욱(정우)과의 어디서 많이 보았던 로맨스가 들어있을 뿐이다. 이렇게 새로운 내용이나 메시지 없이 달려온 50부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어떤 가치나 의미를 창출해내지 못하는 드라마가 결국 가지려는 의도는 시청률로 귀결된다. 적당한 가족 드라마적 요소와 신데렐라 스토리를 섞고 그 안에 이른바 시청률을 위한 공식적인 설정들을 집어넣으면 괜찮은 시청률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안이한 선택. 이런 선택이 가능한 것은 이 편성 시간대가 사실상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KBS 주말 저녁 시간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최고다 이순신>의 안이한 선택은 그만한 보상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그간의 드라마들과 비교해 보면 이 드라마의 시청률은 현저히 떨어졌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드라마를 쓰고 연출하고픈 작가나 연출자는 없을 테지만 이 드라마는 애초에 특별한 아이디어나 메시지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아이유와 조정석을 캐스팅함으로써 그 힘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이야기가 받쳐주지 않는 드라마는 이들의 존재감마저 그다지 키워놓지 못했다. 아이유는 늘 구박의 중심에 서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쳐도, 조정석 같은 연기파 배우를 캐스팅하고도 이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한 데는 대본의 결함이 심각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흥미로운 건 같은 KBS의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이라는 코너에서 <최고다 이순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냈다는 점이다. 드라마 제작자인 박성광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걸 보면서 대뜸 이렇게 말한다. “주말드라마답지 못하게 이게 뭐야? 이래서 어머니들이 좋아하겠어? 어머니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 넣어서 한 번 가보자! 악녀!” 이 개그코너는 드라마에서 이순신을 선배라는 입장을 이용해 교묘하게 괴롭히는 최연아(김윤서)를 패러디하면서 심지어 “어어 재수 없어!”하고 감탄사를 내뱉는 박성광을 보여준다.

 

뜬금없이 대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나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게 해주겠다며 보여주는 ‘엇갈림 삼종 세트’ 역시 그저 개그의 하나로 웃어넘길 수 없는 건, 그것이 실제로 <최고다 이순신>이 해왔던 시청률을 위한 장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틀에 박힌 자극적인 공식들을 사용해 시청률이 올라가는 걸 보며 제작자인 박성광이 “아이고 재밌어. 아이고 재밌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래서 웃음 뒤에 씁쓸함을 남긴다. 뭐가 재밌다는 말인가. 공식에 낚인 시청자들이?

 

종영에 즈음해 <최고다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드라마는 어떤 면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던 걸까. 물론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고 최고가 되는 건 아니라는 주제를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틀에 박힌 공식만 반복하면서 이 드라마는 엇나가버렸다. 설마 ‘시청률의 제왕’이 보여주는 것처럼 시청률만 높으면 심지어 “재밌다” 생각하는 것일까. 이런 식이 계속된다면 주말극의 왕좌라는 자리조차 위태로워질 건 빤한 일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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