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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선발대’, 힘겨운 여정에도 웃음이 가득한 건

 

시베리아 횡단열차라고 하면 막연한 판타지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버킷리스트로 꼽는 것이 이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일이다. tvN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 역시 바로 이런 막연한 판타지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어디 실제 여정이 생각한 판타지로만 굴러갈까.

 

<시베리아 선발대>가 보여준 횡단열차는 좁은 공간에 네 사람이 선반처럼 만들어진 침상에서 며칠간을 지내며 이동해야 하는 실제 여정의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1등칸이나 2등칸처럼 완전히 독립적으로 구획되어 있어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공간은 그래도 저 판타지가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 냄새 가득하고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뒤섞여진 3등칸은 뭘 먹는 일도 씻는 일도 자는 일도 결코 편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과 사람이 섞여드는 3등칸에 조금씩 적응이 되기 시작하면서 선발대는 이 곳이 주는 매력에 빠져든다. 이름도 익숙하지 않은 러시아 꼬마들과 게임을 하고, 옆 침상에 먹을 걸 나누고 언어는 달라도 얼굴 표정과 손짓 몸짓으로 소통이 가능한 그 공간은 좁아서 더더욱 친밀해진다.

 

무엇보다 <시베리아 선발대>를 자꾸만 보게 만드는 건 이 여정에 함께 하는 출연자들이다. 이선균은 맏형답게 동생들을 챙기고 진두지휘하면서도 특유의 ‘셰프(?)’로서의 능력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다. 김남길은 의외로 소탈하고 털털한 매력을 드러내며 때론 허술한 인간미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그 김남길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베리아 선발대>가 발굴해낸 인물은 지금까지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 고규필이나 김민식 같은 배우의 매력이다. 어찌 보면 피로감이 느껴질 수 있는 불편한 공간에서 계속 부대끼며 지내야 하는 여행이지만, 고규필은 모두를 웃게 만드는 귀여운 곰돌이 같은 매력을 드러낸다. 잘 하는 게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는 말을 툭툭 던질 때 이선균이 깔깔 웃으며 “입덕하게 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시청자들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먹을 것 앞에만 서면 본능이 발동하는 고규필의 모습은 이 예능 프로그램에 확실한 캐릭터 역할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고규필의 동년배 친구인 김민식은 아직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배우지만,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 여정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러시아 아이들과 게임을 하며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나, 낯선 현지인들과 부딪쳐 소통하려는 모습에서 이 배우가 가진 열정과 인간미를 발견하게 된다. 고규필이 그에게 자신이 힘겨워 배우생활을 그만하려 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며 앞으로 일이 많아질 거라고 얘기할 때 응원하게 되는 건 그 성실함이 여정을 통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불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뒤늦게 합류한 막내 이상엽은 애초 언어능력이 남다른 배우라고 소개됐지만, 실제로 보니 언어능력보다는 소통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마트에서 고기를 사며 한국말로도 소통을 해내는 그를 보면서 고규필은 “상엽이가 오니까 맘이 편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나서서 하는 인물이 여정에 함께 한다는 건 모두를 편하게 해주는 일이니까.

 

<시베리아 선발대>를 보게 만드는 힘은 그래서 여기 함께하고 있는 배우들의 인간미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봐왔던 그들이지만, 이 여정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온기를 이들은 전해준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꿈꾸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취지가 있지만, 그것보다 쉽지 않은 여정을 웃으며 즐겁게 만들어가는 이들을 본다는 것이 더더욱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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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에 가까운 ‘열혈사제’, 그럼에도 김남길에 빠져드는 건

옷자락 휘날리며 어느 컨테이너 박스의 문을 여는 김해일(김남길) 신부. 박스 안에는 그가 국정원 시절 사용하던 장비들이 있다. 사제복을 벗고 십자가 목걸이도 벗어놓은 김해일은 가죽점퍼를 입고 잘 빠진 오토바이를 타고는 황철범(고준)의 별장으로 달려간다. 이런 신부님의 멋진 모습과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황철범의 별장 앞에서 바야바 복장을 한 채 동태를 살피고 있는 구대영(김성균) 형사의 모습이다. 바야바 복장으로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 신부님의 멋진 모습과 대비되면서 더더욱 웃음을 준다. 

이처럼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그 상황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는 한 편의 시트콤 같다. 사제지만 형사보다 더 멋진 액션을 보여주는 전직 요원 출신 사제와, 형사지만 어째 쫄보 중의 쫄보인 형사의 대비만 봐도 그렇다. 함께 별장에 잠입하는 과정에서 김해일이 갖가지 첨단 기기들을 꺼내 보이자 구대영이 “전자상가에 다녀오셨나 봐요”하는 대목도 그렇고, 갑자기 강석태(김형묵), 정동자(정영주), 박경선(이하늬)과 함께 돌아온 황철범 때문에 별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김해일과 구대영의 모습도 그렇다. 

시트콤처럼 풍자적이고 과장되게 그려지기 때문에 그런 장면에서 긴장감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이 악의 무리들(?)의 행태들에 대한 분노 또한 크게 촉발되지는 않는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서는 황철범이나 부패한 구담경찰서장 남석구(정인기) 같은 악당들마저 희화화되어 있다. 그래서 갖가지 폭력과 비리들을 저지르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건 어떤 현실적인 인물보다는 하나의 캐릭터 이미지다. 이들이 악을 공모할 때도 또 어떤 응징을 받을 때도 그래서 좀 더 편안한 웃음을 수반한다. 일종의 캐릭터 플레이처럼 보이는 것.

보통 어떤 비리와 그 비리를 캐고 진실을 밝히는 형사물 같은 장르물이 주는 감정은 긴장과 공포 혹은 반전을 통한 충격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열혈사제>는 캐릭터 플레이가 주는 웃음과 통쾌함이 주된 시청 감정이다. 이미 시청자들은 이 이야기가 어떤 구조를 갖고 있고, 그 안에 선과 악은 어떻게 대립해있으며 그래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거라는 걸 다 알고 있다. 구담시를 모두 장악하고 있는 악의 세력들이 있고, 심지어 경찰과 검찰까지 거기 가담되어 있는 상황. 김해일이라는 신부 한 사람이 이들과 대적해 그 비리들을 깨쳐나가는 이야기.

너무 쉬운 구조로 되어있고, 사실상 이런 신부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도 또 그 신부가 이런 거대한 비리와 맞서 정의를 구현해간다는 사실도 현실적이라고 믿는 시청자들은 없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이 <열혈사제>에 시청자들이 빠져드는 부분이다. 시청자들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현실이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일지라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잠시 동안의 유쾌함과 통쾌함을 얻고 싶어한다. <열혈사제>가 모든 상황들을 시트콤화하고 캐릭터화해서 보여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건 뭘 말해주는 걸까. 한때 시청자들은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의구심을 제기하곤 했다. 드라마가 ‘비현실적’이라는 이야기는 그래서 시청자들이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로 작용하곤 했다. 하지만 믿기 힘든 사건들이 계속 터져 나오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이제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조차 그 참담한 현실을 애써 들여다보는 것이 힘겨운 지경에 이르렀다. 

시청자들은 이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꿰차고 있고, 그래서 어떤 사안이 터질 때마다 저건 결국 저렇게 될 거야라고 예감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김없이 예감대로 흘러가는 현실에 진저리친다. <열혈사제>는 그렇게 이미 뻔한 구도가 되어 있는 현실을 가져와 비현실적이고 과장되며 풍자적인 이야기로 현실과는 다른 통쾌함을 선사한다. 시트콤 같은 과장과 믿기 힘든 전개에도 불구하고(어쩌면 그래서 더더욱)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에, 이 멋진 사제에 점점 빠져드는 이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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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극 같은 장르물, 이건 ‘열혈사제’의 진화인가 퇴행인가

분명 장르물의 색깔을 지녔는데 어딘지 주말극 같다. 나쁜 놈들 때려잡는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 동료애 하나만큼은 분명히 갖고 있지만 두려움 때문인지 트라우마 때문인지 조폭들에게 휘둘리는 형사. 마음 한 구석에 살해당한 신부님을 외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성공하고픈 욕망 때문에 흔들리는 검사. 이들이 정치인에서부터 경찰, 검찰, 조폭들까지 결탁해 구담시를 좌지우지하는 악의 카르텔과 대적해가는 이야기.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는 분명 액션이 더해진 장르물의 구조다.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된다기보다는 캐릭터 중심으로 자잘하고 일상적인 코미디에 더 집중하는 이 드라마는 어딘지 전형적인 주말극을 닮았다. 

시청률표를 보면 금토에 SBS가 새롭게 시간대를 마련해 들어온 이 드라마가 완벽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국시청률이 16.1%(닐슨 코리아)에 이르고, 특히 타깃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는 2049시청률 또한 9.4%를 달성하고 있다는 건 실구매층으로 여겨지는 젊은 세대들 또한 이 드라마에 몰입하고 있다는 걸 말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어딘지 변종이다. 지금껏 시청자들이 OCN이나 tvN 등에서 자주 봐왔던 장르물과는 너무나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OCN에서 방영됐던 <나쁜녀석들> 같은 드라마와 <열혈사제>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사실 <나쁜녀석들>이나 <열혈사제>나 그 이야기 설정과 구조만 보면 그리 다른 장르물은 아니다. 현실을 대변하는 악의 무리들이 존재하고(이들은 대부분 권력과 결탁해 있다), 검찰이나 경찰 같은 법집행기관은 부패해 있다. 그러니 더 ‘나쁜 놈들’이 나서 그들과 싸우거나, 참다못한 열혈신부가 나서 그들과 대적해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가 아니라 비슷한 부류의 소외된 이들과 함께 팀을 이룬다. 

<나쁜녀석들>과 <열혈사제>는 이야기 구조는 비슷해도 장르물의 색깔은 완전히 다르다. <나쁜녀석들>은 긴장감 넘치는 대결구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또 언제 어떤 반전이 생겨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에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반면 <열혈사제>는 정반대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 전직 요원 출신의 신부와 지금은 악의 무리들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형사와 검사가 이 구담시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선량한 이들과 힘을 합쳐 결국은 정의를 세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이야기 전개도 전혀 빠르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동어반복적인 같은 상황이 빙빙 도는 듯한 느낌마저 준다. 이 드라마의 전제가 되는 이영준 신부(정동환) 살해사건은 일찌감치 벌어졌지만 아직 그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대신 악의 세력들과 결탁한 불량급식업체의 비리를 캐나가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이야기가 몇 회에 걸쳐 이어진다. 대신 이 드라마는 느린 전개 속에 자잘한 캐릭터 코미디를 채워 넣는다. 마치 만화에서나 가능할 법한 우스꽝스런 장면들이 연출되고, 실제로 태국인 출신 노동자인 쏭삭(안창환)이나 배부르게 먹으면 놀라운 청력을 발휘하는 요한(고규필)이 보여주는 코믹한 캐릭터 플레이는 의외의 정감과 재미를 더해 넣는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시간 순삭(순간삭제)’을 경험한다. 뭐 별 이야기도 아직 진행된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험. 하지만 그건 긴장감 넘치는 전개 때문에 생겨나는 ‘시간 순삭’과는 사뭇 다르다. 이야기는 실제로 별로 전개되지 않지만 대신 깨알 같은 캐릭터들의 유머 코드들이 채워져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되는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 순삭’이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까. 장르물이 지상파 주말극이라는 시간대를 공략하기 위해 시도된 새로운 의미의 진화일까. 아니면 본래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로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장르물의 퇴행일까.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지점에 서 있는 <열혈사제>지만 그 느린 전개에도 남다른 몰입감을 느끼며 젊은 시청자들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건 이런 장르의 변종이 그 안에 들어 있어서다. 

장르물은 이제 드라마의 중요한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그 플랫폼이 지금껏 유지해온 색깔과 시청층들(신구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을 겨냥해 본격 장르물보다는 변종들을 시도해왔다. 멜로에 가족까지 더한 이른바 ‘복합장르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열혈사제>는 또 하나의 변종 장르물이라 여겨진다. 장르물이지만 주말극 같은 느슨함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어내고 있는.(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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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 첫 회부터 이런 좋은 성과를 냈다는 건

SBS가 <열혈사제>로 재개한 금요일밤 드라마 공략이 첫 회부터 성공적인 신호를 보냈다. 첫 회 시청률이 13.9%(닐슨 코리아). 최근 방영됐던 그 어떤 SBS 드라마들보다 좋은 첫 회 성적표다. 


<열혈사제>가 첫 회부터 이런 좋은 성과를 낸 건 과감한 편성과 트렌드를 반영한 드라마 덕분이다. 사실 SBS는 예전에도 금요일밤에 두 편을 연속해서 공격적인 드라마 편성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드라마의 색깔은 장르물보다는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에 더 가까웠다. 시청률은 나와도 화제성이 별로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금요일과 토요일밤으로 편성된 <열혈사제>는 지금 트렌드에 맞는 장르물을 가져왔다. 지상파에서 금요일은 휴일의 시작으로 보편적 시청층이 빠져나간다 여겨졌던 시간대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를 보다 적극적으로 선택해 보는 시청자들이 점점 늘면서 금요일밤은 오히려 뜨거워졌다. 이들 이른바 선택적 시청층들은 드라마를 보는 눈높이 자체가 상대적으로 높다. 해외의 장르물들에도 익숙하다. 그러니 이들을 공략해 금요일 밤에 들어온 장르물 <열혈사제>는 거기 딱 맞는 기획이었던 셈이다. 

<열혈사제>는 여기에 장르물 중에서도 보다 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액션 스릴러와 코미디를 엮었다. 드라마 시작부터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제 김해일(김남길)이 사기 굿을 하는 일당들을 맨손으로 척척 때려눕히는 통쾌한 액션을 보여주면서, 이 김해일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가진 코미디 코드를 잡아낸다. “하나님이 너 때리래”라는 대사는 이 드라마의 액션과 코미디가 어떻게 이 김해일이라는 사제 캐릭터에 녹아나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결국 이 일이 문제가 되어 김해일은 도망치듯 구담시로 오게 되고, 드라마는 구담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폭들과 정치인 사이의 커넥션들을 보여줌으로써 향후 김해일과 이들이 어떻게 부딪치게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 과정에서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인물이 소개됐다. 한 명은 조폭들에게 두드려 맞고 홀딱 벗겨진 채 길거리에 내던져진 바보 형사 구대영(김성균)이고, 다른 한 명은 출세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욕망의 불꽃을 드러내는 검사 박경선(이하늬)이다. 

이들은 향후 열혈사제 김해일과 얽혀 구담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해결해나갈 인물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 구대영과 박경선 두 인물이 모두 저마다의 단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구대영은 형사에 걸맞지 않게 쫄보라는 것이고, 박경선은 욕망에 충실하다 못해 권력의 충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한 건 이 두 사람이 김해일이라는 사제를 만나게 되면서 변화할 거라는 점이다. 이 변화과정 또한 이 드라마가 보여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첫 회가 방영된 것뿐이지만 칭찬해주고 싶은 건 김남길과 이하늬의 물오른 코미디 연기다. 김성균이야 본래부터 이런 코미디 연기가 자연스러웠던 배우다. 하지만 김남길과 이하늬는 최근 들어 코미디 연기가 점점 눈에 띈다. <명불허전>부터 영화 <기묘한 가족>까지 코미디 연기를 제대로 보이던 김남길은 과거 <선덕여왕>의 비담 역할에서 보였던 액션까지 엮어 <열혈사제>의 김해일이라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이하늬는 <극한직업>에서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놀라운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더니, 이번 <열혈사제>에서는 이제 능청스럽기까지 보이는 자연스러운 코미디 연기를 해내고 있다. 김남길, 김성균과 함께 합을 이룰 이하늬의 연기 도약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들의 호연에 힘입어 첫 회부터 확실하게 잡힌 캐릭터들은 향후 이 드라마가 만들어낼 심상찮은 성과를 예감하게 하고 있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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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타임리프라도 ‘명불허전’은 달랐던 까닭

마지막에 즈음해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왜 굳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사용했는가 하는 그 진심이 보인다. 조선 최고의 침구술 실력을 가진 허임(김남길)이 4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로 떨어지는 그 설정이 처음에는 어딘지 그 이질적 시간에 놓은 인물이 겪는 흥미를 위한 것이 아닐까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조선의 의원이 현재에서 느끼는 황당함이 주는 코믹함이 있었고 침 하나로 위급한 생명을 살려내는 상황이 주는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하지만 만일 이 드라마가 이러한 타임리프의 재미만을 추구했다면 그 메시지는 앙상해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과 현재를 허임과 최연경(김아중)이 함께 오가며 겪는 파란만장한 상황들이 주는 흥미로움을 빼놓을 수 없고, 그러면서 두 사람이 차츰 가까워지고 서로 진가를 알아보며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재미도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명불허전>은 거기 머물지 않고 왜 이 드라마가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했는가 하는 이유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서 타임리프는 결국 각자 자신의 위치에 서서 소임을 다하는 것이 그 사람이 가장 빛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저 마음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허임이 죽어야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조선에 두고 온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의원이라는 설정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인물을 그대로 표상한다. 

즉 이 드라마의 타임리프는 그저 재미를 위해 설정된 것이 아니라, 그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설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장치를 통해 조선이든 현재든 그리 다르지 않는 서민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그래서 의원이든 의사든 진정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주기도 했다. 

천출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으로 그 허탈함을 채워보려고도 했던 허임이지만, 그가 차츰 진정한 의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과정도 이 타임리프를 통해서였다. 시간을 뛰어넘는 과정에서 어느 곳에서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픈 생명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고, 그들을 위해 침을 들었을 때 결국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즈음해서 이 타임리프라는 장치는 그 소임이 사적인 사랑의 차원까지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활용된다. 결국 허임은 조선으로 돌아가 왜란으로 피 흘리는 민초들을 위해 침을 든다. 침술은 값비싼 약재를 쓰지 않고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더더욱 좋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그 많은 민초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건 작가가 이 장치를 그저 흥미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함의를 읽어내려 했다는 뜻이다. 시간대는 달라도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고, 그 각자의 시간대에서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소임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그 존재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 <명불허전>의 타임리프는 그 판타지 안에 꽤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같은 장치라도 얼마나 더 깊게 궁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확인시켜 줬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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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의 타임슬립, 의외로 다양한 묘미가 있다

타임슬립은 이제 지겹다? 적어도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인 것 같다. 조선과 현재를 오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쓰고 있지만, 그 양상이 다채롭고 드라마의 극적 재미를 더 고조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처음 타임슬립은 조선시대에서 왕을 시술하려다 실패한 허임(김남길)이 쫓기다 활에 맞아 다리 밑으로 떨어지며 벌어졌다. 그래서 조선시대에서 갑자기 현재로 온 허임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과 거기서 적응해가는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외과의사 최연경(김아중)을 만나고 탁월한 침술로 위급한 환자를 고치는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기대감을 갖게 만든 것.

하지만 이 드라마의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었다. 허임과 최연경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서 함께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은 것. 그러자 이제는 조선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최연경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졌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들어가면서 겪는 그 난감함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게 해준 것.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임진왜란이 막 터진 조선 사회에서 죽어나가는 백성들의 처지와 현재 우리네 서민들이 살아가는 그 현실이 비교되었다. 이른바 ‘두 개의 헬조선’이 시간을 뛰어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시대는 달라도 눈앞에서 죽어가는 생명들을 위해 이 두 의사들이 해야 할 소임들이 조금씩 부각되었다. 

그리고 어째서 타임슬립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걸 알아차린(사즉생, 즉 죽어야 산다는 장치) 두 사람은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하자 오히려 함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시간을 뛰어넘어 살 수 있는 길을 연다. 거대한 트럭이 돌진해오자 허임이 최연경을 안고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조선으로 시간을 뛰어넘는 것. 

여기에 <명불허전>은 역사 속 실존인물을 만난다는 또 다른 흥밋거리를 더했다. 허준(엄효섭)이 그렇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허임 역시 실존인물로서 조선시대 침술의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드라마는 허준 역시 타임슬립으로 현재를 왔다 간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허임을 현재를 오가게 한 숨은 뜻이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허임과 최연경이 임진왜란 속에서 구해준 사야가(타케다 히로미츠)가 훗날 조선으로 귀화한 실존인물인 일본인 김충선이라는 설정도 눈에 띈다. 이처럼 상상과 실제의 과감한 결합이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명불허전>은 또 다른 타임슬립의 묘미를 만들었다. 조선시대에서 다시 죽을 위기에 처한 허임과 최연경이 죽음으로써 현재로 돌아오려 하지만 결국 각각 칼에 맞으며 허임만 홀로 현재로 돌아오는 상황이 벌어진 것. 같이 타임슬립을 하던 설정에서 이런 두 사람이 조선과 현재로 갈라지는 방식으로 변주하는 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궁금증을 만들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 하나가 이토록 다채로운 극적 사건들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그 방식들을 다양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그저 재미를 위한 장치로만 흘렀다면 너무 가벼워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장치를 통해 의사라는 업이 가진 실존적인 질문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헬조선’의 현실 같은 무게감 있는 메시지들이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에 타임슬립의 변주는 더 흥미진진해진다. 같은 걸 해도 어떻게 변주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명불허전>은 입증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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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 헬조선을 넘나드는 타임리프가 보여주는 것

드디어 tvN 주말드라마 <명불허전>이 그 본색을 드러냈다. 지금껏 조선과 현재를 뛰어넘는 타임리프가 주로 보여줬던 건 그 다른 환경을 마주한 인물들의 멘붕 코미디에 가까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한의학과 현대의학이 서로 공존하는 그 장면들이 주는 흥미로움 또한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명불허전>이 하려는 이야기의 진짜 알맹이는 아니었다. 

'명불허전(사진출처:tvN)'

그 진짜 메시지가 드러난 대목은 허임(김남길)이 두칠(오대환)의 형을 치료해주지만 결국 주인 양반에 의해 맞아 죽게 되는 그 에피소드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갖고 있어 다 죽어가는 생명을 구해놓아도 천출들은 양반의 명 하나로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 비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 과거 허임은 이미 그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바 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치료해주지만 그녀 역시 노비라는 이유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던 것. 

이러한 신분의 벽은 허임에게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보다 신분과 상관없이 생명은 귀하다 여겨온 의원이 그였다. 밤마다 아픈 노비들을 몰래 치료해왔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자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는 세상이다. 우리가 자주 거론하는 ‘헬조선’이라는 그 표현이 이 곳은 표현이 아닌 진짜 현실이 되는 세상이니. 

그래서 그 곳을 뛰어넘어 현재로 넘어온 허임은 과연 좋은 세상에서 마음껏 생명을 살리는 의원이 될 수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양반과 노비로 나뉘는 신분제는 없어졌지만 이 곳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허임은 한방병원에서 VIP들의 병을 고치며 잠시 쾌재를 부르지만 또한 가난해 길거리로 내몰리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노숙자들을 또한 보게 된다. 거대한 한방병원의 VIP들과 길거리 노숙자들이 다른 생명으로 비교되는 현실. 헬조선과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명불허전>이 과거로 회귀하는 그 시점이 하필이면 임진왜란이 터지는 그 때라는 건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지점을 명확히 한다. 선량한 백성들은 선조가 도망친 줄도 모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최연경(김아중)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다. 책임을 가져야할 권력자들의 도주가 결국은 백성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암담한 현실이라니.

<명불허전>이 담고 있는 두 개의 헬조선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이 타임리프 설정을 그저 트렌드가 아닌 중요한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치로 바라보게 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지만 그것이 어째 다른 풍경이 아니라는 것. 굳이 두 개의 헬조선에서 허임과 최연경이 각각 의원과 의사라는 생명을 살리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사실 또한 예사롭지 않은 설정으로 다가온다. 생명에 어디 신분이 있고 빈부가 있으며 계급이 있겠는가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두 개의 헬조선을 오가며 허임과 최연경이 보는 그 암담한 현실과 그래서 그들이 각성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명불허전>의 본색이다. 좌절하거나 분노하고 한탄하는 것을 뛰어넘어 어떤 스스로의 결단을 통해 이 헬조선을 극복할 수 있는 그 길은 과연 이들에 의해 제시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이 완전한 해결방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과정의 노력들이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 주는 위안과 위로는 그 자체로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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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5 19:26 명불허전 블루레이 추진팀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tvN 드라마 명불허전 감독판 Blu-ray/DVD 추진팀입니다.

    드라마 명불허전에 관해 써주신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연락드린 것은 저희가 명불허전 감독님, 작가님, 배우분들께 드릴 리뷰북을 현재 제작 중인데블로거님의 리뷰가 너무 좋아서 리뷰북에 실어도 되는지 여쭤보고자 연락드렸습니다.

    만약 허락해주신다면 저희로서는 리뷰북 제작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블로거님의 포스팅에서 사진과 글은 원본과 원글 그대로 실을 예정이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문의해주시면 언제든지 회신 드리겠습니다.

    저희 감독판 추진팀의 공식 카페는 http://cafe.daum.net/drheodvd 입니다.

    이 카페를 비롯하여 저희 sns 계정(인스타,페북,트위터: @drheodvd)이나 drtheo2017@naver.com 추진팀 공식 메일 등

    어느 채널이든 저희와 연락이 가능하니 꼭 긍정적인 회신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과 사진으로 멋진 블로그 채워나가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판도라>,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건 서민들 뿐

 

영화 <판도라>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재난영화다. 여기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의미 속에는 이 영화가 신파적 코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그것은 이 재난상황을 다룬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리네 현실을 담아내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 스러져간 많은 이름 모를 희생자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다.

 

사진출처:영화<판도라>

<판도라>는 영화 시작 전에 자막으로 이 영화가 드러내고 있는 것들이 허구일 뿐 특정한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걸 고지한다. 하지만 그 고지는 오히려 거꾸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허구를 통해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네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최악의 원전사고를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최근 경주 인근에서 벌어진 지진 때문에 오히려 더 실감 있는 허구가 되었고, 콘트롤타워의 무능함으로 국민들을 위험 속에 몰아넣는 영화 속 이야기 역시 최근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탄핵안이 의결되고 세월호 참사의 미스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진짜 같은 허구로 다가온다.

 

영화는 재난영화들이 흔히 만들어가는 그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진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냉각장치가 정지되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결국 원자로의 노심까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의 지경에 이르게 되는 그 숨 가쁜 과정들 속에서 영화는 청와대의 상황과 사고 현장의 상황을 병치하며 콘트롤타워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일으키는가를 보여준다. 세월호 7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청와대에서의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는 보고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입니다로 바뀌는 장면은 마치 전쟁이 터진 듯 처참하게 변해가고 있는 현장과 대비되며 관객들을 분노와 허탈감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판도라>는 이 통제 불능의 원전사고를 해결하는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그리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놀라운 통제력을 발휘하는 대통령이 나서거나 하다못해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며 영웅이 되겠지만, <판도라>는 결코 이런 모습을 그려내지 못한다. 지금껏 무수한 재난을 겪어온 우리네 대중들에게 그런 이야기는 허황된 거짓말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판도라>가 그리는 건 통제 불능의 그 상황 속에서 그나마 스러져 가는 생명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려는 평범한 서민들이다. 원전에서 일하던 재혁(김남길)은 그 무너진 원전 속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라는 점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결국 몇몇을 구해내지만 그 스스로도 피폭되어 쓰러져버리는 평범한 서민들.

 

그 와중에 원전을 지켜내려는 업주측은 가까이 있는 바닷물을 길어 끓어오르고 있는 원자로에 붓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원전을 폐기해야 하기 때문. 현장을 뛰어다니며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소장(정진영)은 울분을 터트린다. 하지만 콘트롤 타워인 대통령은 노련한 총리(이경영)에 의해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결국 원전은 2차 폭발의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판도라>가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물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이 표면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재난 상황 속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콘트롤타워의 위험성에 관한 것이다. <판도라> 속 등장하는 총리의 모습에서 우리네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는 일이 너무나 쉽다는 것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마치 진짜 일처럼 몰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현실이 <판도라>라는 영화를 더더욱 실감나게 만드는 비극이라니.

 

결국 영화는 마지막 순간 위대한 한 서민의 희생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 마지막에 남겨져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는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이라기보다는 서민들이 현실에 던지는 일종의 경고이고 갖가지 사건 사고 속에서 스러져간 희생자들이 영화의 입을 통해 전하는 외침이다. 죽음을 앞둔 재혁이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장면은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지우려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이를 위해 나서는 건 결국 서민들뿐이다. 위기 상황 때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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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뢰한>, 표현을 안 해 더 절박해진 사랑이라니

 

<무뢰한>은 독특한 멜로다. 사실 멜로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이게 실제로는 멜로의 실체라는 생각도 든다. 어딘지 달달하기만 한 멜로는 너무 관습적이기도 하고 그것이 실제 현실을 담아낸 듯한 느낌은 거의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본래 그렇게 비현실적인 거라고? 맞는 얘기지만 그 비현실이 달달함으로만 구성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비현실적인 결정들을 내리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사랑은 그 진면목을 드러내는 법이니 말이다.

 

사진출처: 영화 <무뢰한>

강력계 형사와 범죄자의 여자. 이 둘의 조합은 너무 뻔한 장르물의 한 틀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뻔해서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단순하다. 형사가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 범죄자의 여자에게 감정을 느끼는 것. 하지만 이런 단순한 한 줄의 해설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기묘한 감정과 정서들을 전혀 담아낼 수 없다. 그것은 영화 속에 한 번 푹 담가져야 이해할 수 있는 감정들이다.

 

사람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감정은 때로는 그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엉뚱한 표현이기도 하다. <무뢰한>이 그렇다. 여기 등장하는 형사 재곤(김남길)과 범죄자의 여자 혜경(전도연)은 마치 마음의 문을 누군가 들어올까 무섭다는 듯 꼭꼭 닫아 잠근 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의 삶은 그래서 사적인 감정들은 사라지고 오로지 직업적인 모습들로만 표현되는 삶이다. 재곤은 그 지긋지긋해보이는 형사질로서만 자신을 드러내고, 혜경은 범죄자의 여자로서 때론 퇴폐적이고 때론 아련해 보이는 단란주점 마담으로서만 존재를 보인다.

 

그런데 이런 남녀가 만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적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짜 속내는 저 밑으로 꾹꾹 눌러놓고 괜스레 주변만 빙빙 돌며 서성대는 재곤은 그래서 그것이 사랑의 설렘 때문인지 아니면 형사로서 그녀를 예의주시하는 직업적 태도 때문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사도 거의 없거나 몇 마디 툭툭 던지는 것으로 끝내는 이 인물은 그래서 영화의 끝까지 진심을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이것은 혜경도 마찬가지다. 고통 속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내면화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인물이 바로 그녀다. 그녀에게는 심지어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낯설다. 그런 그녀에게 재곤이 불쑥 들어온다. 그런데 그것이 사랑인지 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랑처럼 보였던 것이 금세 그걸 뒤집어버리는 재곤의 허허로운 거짓말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녀 역시 드러냈던 진실을 숨겨버리고 본래 가면의 그녀로 돌아가버린다.

 

그래서 이들의 만남과 사랑은 전혀 지금까지 우리가 멜로에서 봐왔던 그런 장면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무뢰한>이 한 편의 하드 보일드한 스릴러나 형사물처럼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처럼 형사물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건 저 두 남녀가 사랑에 대해 취하고 있는 태도 때문이다. 그들은 그렇게 표현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삶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은 <무뢰한>이란 영화가 식상한 멜로로 흐르지 않고 어떤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결국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들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처한 극한 상황이 아닐 뿐, 우리 역시 철저히 일을 위한 가면을 쓴 채 일터로 나간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일터란 칼과 주먹만 안 들었을 뿐 저 <무뢰한>들의 세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곳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곳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어쩌면 그래서 <무뢰한>은 더 이 시대에 현실적인 사랑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허공으로 몇 센티씩 붕붕 떠오르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저 밑으로 자꾸만 내동댕이처지는 바닥의 사랑이다. 그들이 감정을 잔뜩 숨긴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통을 참아내려는 얼굴들이 못내 마음을 쿡쿡 찌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어떤 공감과 각성이 생겨난다. 우리 역시 <무뢰한>들의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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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3 10:56 신고 BlogIcon 유머조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볼까 말까 했었는데 보러가야겠어요~~~

  2. 2015.06.03 20:09 신고 BlogIcon singenv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곳... 영화에서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영화를 더욱 값지게 합니다^^

막장드라마들 속 <참 좋은 시절>의 가치

 

착한 여잔 나쁜 남잘 좋아해 왜. 나쁜 남잔 나쁜 여잘 좋아해 왜. 그래서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해. 근데 너는 이런 내 맘을 몰라 왜.’ 최근 발표된 2NE1착한 여자라는 곡이다. 노래가 말해주듯이 요즘 착하다는 것은 어딘지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느낌을 준다. 차라리 나쁘다는 것이 쿨하고 세련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한때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줄곧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가치로 세워지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드라마 속에서도 착한 남자보다는 나쁜 남자에 대한 열광이 더 두드러진다. <학교 2013>에서 이종석만큼 주목을 끈 김우빈은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매력을 보여주었다. 반항아의 이미지를 가진 그는 무언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세상에 대한 속 시원한 울분 같은 걸 보여준다. 김우빈의 나쁜 남자 이미지는 <상속자들>을 통해서 그 매력을 폭발시켰다. 최근 <사남일녀> 같은 가족 버라이어티에 출연하고 있는 김우빈은 오히려 이 나쁜 남자 이미지로 고정되는 자신을 부담으로까지 느끼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 나쁜 남자라고 표현되지만 이들이 진짜 악역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나쁘게 행동하고는 있지만 속내는 상처받은 착한 영혼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나쁘다는 건 캐릭터의 능력과도 연관되어 있다. <파스타>의 이선균이나 <나쁜 남자>의 김남길처럼 재력이든 능력이든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심지어 나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쁘게 행동해도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 즉 나쁘다는 건 성공한 자, 혹은 가진 자의 자신감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그 실체가 무엇이든 선의 가치가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착한 드라마들은 독하디 독한 막장드라마들의 홍수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든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KBS의 새 주말극 <참 좋은 시절>에 대해 낯설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거꾸로 지금껏 우리가 얼마나 독한 드라마들에 중독되어 왔는가를 말해준다. 이전 동시간대 드라마였던 <왕가네 식구들>은 그 자극적인 설정과 전개 때문에 막장 논란이 쏟아져 나오면서도 꽤 높은 시청률을 가져갔다. <왕가네 식구들>의 자극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래서 <참 좋은 시절>의 이 착함이 너무 밋밋하다고 여겨질 지도 모를 일이다.

 

남편의 세컨드와 함께 가족을 이뤄 생활하면서도 싸우기는커녕 서로를 챙겨주기 바쁜 며느리와, 권위라고는 손톱만큼 발견하기 어려운 자애롭다 못해 연민마저 느껴지는 시아버지, 자신처럼 살지 말라며 이 집에 맡긴 아들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사는 여인이나, 어찌해 갖게 된 아이들을 제 자식이라 못하고 동생이라 부르며 사는 그 여인의 아들 또한 그 밑바탕에는 따뜻한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오로라 공주>처럼 툭하면 작가의 손에 의해 인물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와는 정반대다. <참 좋은 시절>에는 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작품을 쓴 이경희 작가의 전작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였다. 이미 <고맙습니다>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이경희 작가는 선의 가치를 믿게 만드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는 마치 세상에 매력적인 착한 남자는 없다는 세태와의 정면대결을 벌이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참 좋은 시절> 역시 마찬가지다. 주말극이고 일일극이고 할 것 없이 막장이 창궐하며 선의 가치보다는 악의 가치를 세련됨의 상징이나 되듯이 보여주는 요즘의 세태에 이 드라마는 어딘지 투박해보여도 정감이 가는 참 좋음의 가치를 새삼 드러내준다. 선하다는 건 진정 한물 간 가치가 아니다. 다만 난무하는 자극이 우리를 둔감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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