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범잡', 어째서 범죄 이야기를 스핀오프로 가져왔을까

 

2018년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기한 잡학사전3(이하 알쓸신잡)>가 방영된 지 벌써 햇수로 3년이나 지났지만, 이 프로그램은 시즌4로 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그간 이 프로그램의 주축이라 할 수 있었던 유시민이 방송을 하기에는 여러모로 정치적 이슈들이 적지 않아 참여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 그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다른 출연자가 그 빈자리를 채워도 되지만 워낙 이 프로그램의 상징성이 큰 인물임을 부인하긴 어렵다.

 

그래서 양정우 PD는 이 프로그램의 스핀오프로서 <알쓸범잡>을 갖고 돌아왔다. 굳이 <알쓸범잡>이라 줄인 표현으로 제목을 삼은 건, '알쓸신잡'으로 불리던 본편의 연장선이면서 동시에 차별화가 있다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범죄'를 하나의 심화된 아이템으로 삼았고, '쓸데없는'을 '쓸데 있는'으로 바꾸었다. 물론 <알쓸신잡>도 제목은 '쓸데없는'으로 썼지만 그건 인문학도 재밌게 접근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알쓸범잡>은 대놓고 쓸데 있음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첫 회만 봐도 드러난다. '이것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범죄는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런 범죄가 생겨나는 이유가 저 멀리 있는 것으로 치부하는 우리의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첫 회 '부산편'을 통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34년 전 벌어졌던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은 단적인 사례였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이 사건은 도시 부랑인들을 수용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이 위탁받아 저지른 조직적인 범죄였다. 부랑인들도 그렇게 취급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이 시설에는 무려 70%의 가족이 있는 사람들조차 끌려와 노예 취급을 당했고 폭력과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겪었다. 확인된 사망자만 513명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도 형제복지원 원장은 납치와 감금에 있어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단지 횡령죄로 2년 6개월의 선고받았다고 했다. 정재민 법학박사는 당시에 박종철 서울대생 고문치사사건이 대서특필됐던 것과 비교해 무려 513명이 사망한 이 사건이 조명되지 못했던 걸 짚어내며 안타까워했고, 김상욱은 이 사건의 본질이 우리의 '무관심'이라는 걸 강조했다.

 

<범죄와의 전쟁>, <마약왕> 등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1980년대 부산의 마약 밀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당시 화이트 트라이앵글의 한 축이었던 부산은 일본에 제공되는 마약의 생산기지이기도 했었다고 한다. 김상욱은 마약이 어떻게 아편에서부터 몰핀, 헤로인으로 변화해왔는가와 코카인과 필로폰에 대한 이야기를 과학적 시각으로 소개한 건 물론이고. 이러한 마약의 등장이 20세기 들어 강도가 높아진 '노동'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마약의 이야기가 우리가 지금도 매일 겪고 있는 강도가 높아진 '노동' 같은 '우리 주변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

 

또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무고한 최인철, 장동익씨가 고문에 의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다 재심으로 무죄가 입증된 사건 역시 '무관심'과 관련 있었다. 박지선 범죄심리학자는 당시 '얼마나 아무도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는가'를 통탄해 했다. 고문으로 나오게 된 진술과 갑자기 등장한 보강증거에 의해 누군가의 삶이 살인자로 낙인찍혀 감옥까지 가게 된 그 일은 만일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또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일 수 있었다.

 

최근 들어 '범죄'라는 소재는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방송의 한 분야가 되고 있다. 범죄 스릴러들이 시청자들의 호응과 공감을 얻고 있고,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경우 범죄를 카테고리로 했던 프로파일러나 형사들의 이야기가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알쓸범잡>은 이러한 범죄에 대한 관심을 스핀오프로 끌어오면서, 그것이 남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강조함으로써 재미와 더불어 '쓸모'까지 보여주었다.

 

물론 범죄 한 분야로 카테고리화되어 있어 <알쓸신잡>이 보여주던 다양한 담론들의 묘미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그 분야에 특히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보다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귀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잡아끄는 힘이 있다. 향후 어떤 지역에서 또 어떤 사건들을 통해 그 시사점과 흥미로운 관점들을 더해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tvN)

책의 가치를 되새긴 ‘알쓸신잡3’, 합당한 예의를 갖추다 

“웬만하면 절판된 책은 안 가지고 나오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사라져서는 안된다.” tvN <알쓸신잡3> 마지막편에 출연자들이 추천 도서를 소개하는 시간에 김영하는 김은성 작가의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렇게 말했다. 40세 처음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만화가가 뭘 그릴까 생각하다 그린 그 만화는, 함경북도 북청에서 피난 와서 이제 여든 살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다. 

하나하나 어머니가 해주는 이야기를 취재해 그린 그 만화책은 완성하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작가는 ‘어머니는 80대 10년을 당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시며 시간을 보내셨다’며 ‘지금은 내가 어머니보다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김영하 작가는 이 만화의 멋진 점으로 “철저히 함경도 사투리로 재현했다”는 걸 꼽았다. 

총 4권으로 한국의 현대사를 망라하고 있는 이 책에서 구술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만화를 그린 딸은 “우리 엄마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았나”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말에 “100번을 시켜도 내가 똑같이 얘기해준다” 말했다 한다. 소설을 많이 읽어 웬만하면 읽다 우는 일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 “감정이 흔들린다”는 김영하는 그 이유로 “진짜 이야기가 있어서”라고 했다. 김영하는 “만약 한국의 퓰리처상이 있다면 수상할 만한 책”이라며 “우리 모두 하나의 역사고 현대사라는 걸 만화로 보여준 위대한 작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놀랍고도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절판된 책이라는 것이었다. 김영하는 세상에는 사라져선 안되는 책이 있다며 이 책은 꼭 다시 누군가 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지금의 출판계가 가진 안타까운 상황을 잘 드러낸다. 좋은 책이 살아남기보다는 잘 팔리는 책이 살아남는 현실이 아닌가. 김영하가 굳이 절판된 책을 들고 온 데는 그 안타까움을 전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여겨졌다. 

마지막편에서는 출연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책 한 권씩을 가져와 추천했다. 김상욱은 과학박사답게 나탈리 엔지어의 <원더풀 사이언스>를 소개하며 그 추천이유로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담고 있는 책이어서라고 했다. 유희열은 마스마 미리의 <밤하늘 아래>라는 만화책을 소개했다. 편안하게 읽으며 잠깐 생각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했다.

유시민 작가는 나온 지 55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가져왔다. 최근에 본 플라스틱으로 배가 가득 채워진 고래를 보고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책을 추천하게 됐다고 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을 추천한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세상을 바꾼 책이라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에세이로서 하나의 모델이 될 만큼 훌륭한 책이라는 사실이었다. 김진애 박사는 케빈 켈 리가 쓴 <통제불능>이란 책을 추천했다. 영화 <매트릭스>에 영향을 준 이 책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알쓸신잡>이 시즌1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시즌3에서도 그 마무리를 책 소개로 한 뜻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교양을 예능으로 끌어안은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이 자칫 책보다 재밌는 영상을 통한 교양을 보여줌으로써 ‘책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어서다. 실제로 출판가를 들여다보면 방송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방송으로 유명해진 저자들이 대부분의 베스트셀러를 장악하고 있는 게 출판가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알쓸신잡3>만 두고 봐도 이 프로그램의 토대가 되는 건 무수히 많은 인문서적들이라는 걸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에서 이야기됐던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렇고, 유시민 작가가 스스로 소크라테스빠(?)를 자청하며 언급한 이야기들을 담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란 책도 그러하며 독일에서 다시 끄집어낸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같은 책도 그렇다. 

사실 너무 많아 하나하나 다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들이 이들의 지식 수다를 통해 소개되었다. 결국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은 이 많은 책들에 빚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마지막회에 추천도서를 통해 책의 가치를 되새기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예의처럼 보인다. 특히 김영하가 절판된 책을 추천한 점은 ‘좋은 책’은 사라지면 안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됐다고 생각된다. 팔리는 책만 살아남는 환경을 넘어서서.(사진:tvN)

‘알쓸신잡3’, 개화기 폐쇄정책이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건

“열어서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지만 닫아걸고 성공한 나라는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의 기술발전과 교통수단의 발전과 정보통신의 발전과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의존해서 상부상조 분업해서 살아가는 범위는 계속 커지는 게 빅뱅처럼 진행되어 온 거죠. 가속팽창 하는 우주에서 혼자서 고립하겠다고 하면... 결국 조선은 열어서 실패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성공할 기회조차 잡아보지도 못하고 그냥 일제 식민지로 떨어져 버린 거죠. 안타깝죠.”

첫 눈 내리는 날 강화도로 간 tvN <알쓸신잡3>에서 유시민은 개화기에 그 곳에서 벌어졌던 병인양요, 신미양요 같은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와 미국의 함대가 연달아 강화도를 침범했던 사건들. 김상욱 교수는 신미양요 때 광성보에서 있었던 미군과의 전투에서 안타깝게도 군대 규모나 총기에 있어 절대적인 열세에 있던 조선 수비군 300여명이 전멸했고, 그 때 미군들이 질렸다고 말했다. ‘이 사람들은 왜 저렇게까지 저항하는 걸까’ 했다는 것. 이 광경은 우리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그 참혹함을 목도한 바 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은 거예요. 그냥 지키고 산다 우리 것을. 그리고 당시 조선의 집권세력들이 새로운 것이 들어오는 것을 다 억누르는 식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백성들도 그걸 따라간 거죠. 그 외에는 다른 가치관이 없으니까. 나라를 위해서 또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해서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이렇게 한 건데 거기서 병사들이나 군인들이나 백성들이 죽어나간 건 너무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지만 조선은 눈 가리고 있었던 거예요.” 유시민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우리가 사는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새로움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대로의 삶과 가치관만을 지키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일 수 있는가를 설파했다. 

유시민의 이 이야기는 우리가 과거와 현재를 또 지켜지고 있는 안의 것들과 새롭게 들어오는 외부의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들여다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강화도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데 최적지가 아닐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꽤 많은 외부의 힘들이 들어와 내부에 영향을 미친 공간이 강화도이기 때문이다. 몽골 항쟁 때 39년 왕조가 들어와 지냈던 그 시기에 강화도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 때부터 벌인 간척사업은 섬의 3분의 1을 육지로 만들었고, 10만이나 되는 인구가 유입되었다고 했다. 현재 인구가 6만8천 정도인 걸 생각해보면 그 변화의 진폭을 실감할 수 있다. 왕조가 들어오면서 거기 살던 백성들의 피곤함을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농사는 농사대로 지어야 돼, 간척해야 돼, 산성 쌓아야 돼, 돈대 만들어야 돼. 죽어났을 것 같아요. 여기 양민들이.” 

강화도는 왕가의 유배지로 주로 활용되기도 했고, 교동도 같은 경우에는 6.25 전쟁 이후 38선이 나뉘며 북측에서 들어왔다 가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사는 곳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개화기에는 프랑스, 미국이 ‘이상하게 생긴 배’를 끌고 들어와 처참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했고 이어 일본도 들어와 그 유명한 ‘강화 불평등 조약’이 맺어졌던 곳이기도 했다.

외부의 힘들에 의해 독특한 삶의 방식들이 만들어진 곳. 결국 유시민이 말하듯 이 강화도가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건 그 이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우리 것을 지켜나가는가 하는 점일 게다. 폐쇄정책으로 일관하며 무조건 배척하는 건 고립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이고,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가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성공회 성당이나 온수리 성당이 보여주듯 외국의 문물이 우리의 전통과 접목되어 독특한 문화로 피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바실리카 구조의 예배당을 만들기 위해 겉모습은 그대로 한옥으로 만들었지만 들어가는 입구를 측면으로 바꿔놓은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면서 독특한 두 문화의 접목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구 고택으로 알려진 대명헌에서 김영하가 발견한 마루가 헤링본의 형태로 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또 이런 새로움과 전통의 조화는 신구의 조화로도 피어날 수 있었다. 강화에서 발견한 폐 공장을 카페로 만든 이른바 ‘뉴트로 카페(뉴+레트로)’가 그 사례였다. 한 때는 방적공장이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그 곳을 다시 카페로 만들어 독특한 기억과 시간이 공존하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는 것. 

결국 문화란 소통하고 영향을 주면서 또 다른 새로움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는 걸 이번 <알쓸신잡3>가 간 강화도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현재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해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개화기에 시사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과 언어와 인종의 모든 차원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그 외부의 것들을 끌어안아 우리 것과 조화를 시킬 것이며, 또 과거의 것을 현재와 접목시키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엮어낼 것인가. 그저 닫아놓고 관성대로 지킬 것이 아니라, 열어두고 소통함으로써 생겨날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사진:tvN)

'알쓸3' 과학자 선입견 깬 김상욱, 로맨티스트가 따로 없다

“우주는 원래 심심해요. 어떤 뜻에서는 우주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거나 무엇이 거기 뜻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좀 인간의 편견이지. 그냥 계속 돌뿐이고 끊임없이 부딪치고 떨어지고 이런 것에 불과하니까 반복되는 심심함 밖에 없어요.” 유희열이 혼자 바다에서 너무 심심했다는 이야기에 김상욱 교수가 ‘심오한 이야기’라며 그렇게 말하자, 유시민은 농담을 섞어 “김상욱 샘이 결혼을 어떻게 하셨을까”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러자 김상욱은 그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며 이렇게 말한다.

“저는 우주에 있는 하나의 작은 물질의 집합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말씀하신대로 작은 호모 사피엔스 하나. 저도 제가 가진 어떤 감정,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죠. 당연히 제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을 때 아무 의미 없는 이 우주에서 거대한 의미가 생겼죠.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내가 너를 만나기 위해서 단세포생물로부터 지금까지 진화해 왔어. 너를 만나기 위해서 공룡이 다 멸종했어.”

<알쓸신잡3>가 부산의 어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진행된 지식수다의 향연 속에서 김상욱 교수가 한 말은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던 과학자에 대한 선입견을 깨주었다. 어딘가 예술이나 감성과는 거리가 있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세계라고만 여기던 그 분야가 어쩌면 그래서 더 예술과 감성과 어울릴 수 있다는 걸 김상욱 교수는 연애를 통해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심하고 ‘무의미한’ 것이 우주가 본질이기 때문에 어쩌면 우리에게 더더욱 필요한 것이 ‘의미’라는 역설.

흥미로운 건 김상욱 교수를 포함해 10명의 과학자가 모여 만들었다는 ‘엔트로피 사랑’이라는 노래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남녀의 만남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그 곡에서 천체물리학자는 ‘아주 오랜 옛날 빅뱅 초신성 폭발’로 빛났던 너로 표현했고, 천문학자는 ‘138억 년 지나’ 지구라는 작은 곳에서 우리가 이제 만났다고 표현했다. ‘이 넓은 우주 속에 우리 함께 있어 (가속팽창 하더라도) 서로 멀어지지 않아’ 같은 가사는 이들 과학자들이 그 과학적 세계 속에서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갖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김상욱 교수는 이 곡에서 “세상 모든 것이 그저 정보라 해도 이 세상 모든 것이 있고 동시에 없고”라고 노래한다. 각자 자신들이 연구하는 과학영역을 통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을숙도에 위치한 부산현대미술관을 다녀온 김상욱 교수는 “세상을 보는 전혀 다른 관점을 미술이 저한테는 준다”고 말했다.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과학과 미술이 그렇게 만나고 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건 부산현대미술관 외벽을 가득 덮은 식물은 패트릭 블랑의 ‘수직정원’이라는 작품이었다. 실제로 건물 외벽에 계속 식물이 자랄 수 있게 장치되어 있는 그 작품을 설명하며 김상욱 교수는 현대미술은 “아이디어만큼이나 이를 구현할 과학적 기술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 곳에서 김상욱 교수는 두 개의 작품을 인상적으로 봤다며 소개해줬다. 하나는 신문지를 쌓아 거대한 벽을 만들고 그 저편으로 신문 찢는 소리가 들려오게 한, 장 페이리의 ‘임시 개방된 명승지’라는 작품이었다. 김상욱 교수는 “예술에 정답은 없지만” 그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언론이 장벽을 만든다”는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작가는 실제로 이 작품을 통해 “소통에 대한 욕구”를 담으려 했다고 한다.

김상욱 교수가 인상적으로 본 또 하나의 작품은 스마다 드레이푸스의 ‘어머니의 날’이라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니 완전히 깜깜해진 공간에 들어가게 됐는데, 두려움 속에서 나가야된다 생각할 때 확성기로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와서 그 작품설명을 보니 그 소리를 낸 정체가 어머니와 아들이었다고 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분쟁지역인 골란고원에서 어머니의 날이 되면 이른바 ‘외침의 언덕’이 만들어지는데, 서로 다른 영토로 분리되어 만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식이 그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는 것. 바로 그 소리라고 했다. 

“저는 타라 엘 무스타파예요. 어머니 축복합니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보고 싶어요. 어머니가 너무나도 그리워요.” “타라야, 좋은 아침이구나. 거기 모두들, 좋은 아침이에요!” “어머니,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요.” “오래 오래 살아 나를 묻어야지. 야 움미 매해 좋은 일만 있기를.. 내 생명. 우리 건강하게 볼 수 있기를.” 어머니와 자식이 나누는 그 대화였다는 걸 알고 나서 김상욱 교수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게 너무 좋아요.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게. 과학이 할 수 없는, 어떤 예술의 창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분단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김상욱 교수는 예술의 새삼스런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무의미해 보이는 세계, 심지어 누군가 선을 그어 냉혹하게 갈라놓아 버린 곳에서조차 서로에게 외침으로 들려주는 존재의 의미들. 어쩌면 심심한 세계이기에 더더욱 소중해지는 사람들... 김상욱 교수의 과학이 따뜻한 온기로 느껴지는 이유였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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