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믿고 보는 김서형과 확고한 존재감 박훈

 

좋은 어른 한 명이 좋은 세상을 만든다.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다. 좁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던 백상호(박훈)는 결국 다시 그 좁고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됐다. 그는 후회했다. 만일 자신을 저 어두운 방에서 꺼내준 자가 엇나간 연쇄살인범 서상원(강신일)이 아니라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몸부림쳐 온 차영진(김서형)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모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아무도 모른다>는 분명히 다른 두 어른들의 계보가 그려졌다. 권재천(전무송)에서 그의 숨겨진 아들이자 광신자이자 연쇄살인범인 서상원으로 이어진 악의 고리는 임희정(백현주), 백상호로 연결됐다. 반면 백상호에 의해 살해된 수정(김시은)에 대한 죄책감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될 위기에 놓인 고은호(안지호)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 차영진(김서형)은 은호의 담임선생님 이선우(류덕환)와 은호의 어머니 정소연(장영남)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다시 은호의 친구들인 동명(윤찬영), 민성(윤재용) 그리고 이선우의 제자였던 김태형(서영주)까지 변화시켰다. 나쁜 어른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나쁜 어른들이 있다면,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내는 좋은 세상이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가 독특한 결을 가진 드라마가 된 건, 연쇄살인범과 그를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펼쳐지면서 동시에 고은호라는 학생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스릴러는 제목에 담긴 것처럼 도대체 사건의 전말이 무엇인가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을 만들면서도, 그 진실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짐으로서 먹먹하고 따뜻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이질적으로 보이는 스릴러의 긴장감과 휴먼드라마적인 따뜻함을 동시에 끌어안은 김은향 작가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대본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의 대본은 뻔한 액션이나 섣부른 사이다 전개로 나가기보다는 끝까지 본래 하려고 했던 메시지에 천착하는 충실함을 담았다.

 

이런 충실함을 200% 시청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준 건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진가였다. 후반부에 잠깐 등장한 것이지만 김서형은 액션 연기에 있어서도 멋진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하지만 김서형의 액션이 더욱 좋았던 건 폼을 잡거나 과장된 면이 별로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그 액션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같은 액션은 단지 동작의 화려함이나 시원함이 아닌 그 안에 담겨진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만들어준다.

 

김서형은 또한 사건을 추적하는 냉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형사로서의 면모와 더불어 한 아이가 겪은 일을 통감하며 아파하는 감성 가득한 어른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주기도 했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주는 궁금증, 시원함, 먹먹함 같은 감정들은 온전히 김서형이 만들어낸 이 다양한 감정의 면면들에 시청자들이 몰입함으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이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배우는 박훈이다. 백상호 역할로 차영진의 대척점에서 악역 연기의 진가를 보여준 박훈은 후반부에 이르러 그 괴물이 어떻게 탄생됐는가를 공감시킴으로서 드라마가 전하려는 착한 어른에 대한 메시지를 제대로 그려냈다. 이제 드라마 연기를 한 건 몇 년 되지 않은 신인이지만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죽지 않고 찾아오는 디지털 좀비 역할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박훈은 이번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 확고한 연기자로서의 존재감을 갖게 됐다.

 

최근 들어 장르물이 많아지면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또한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죽고 죽이며 이를 추적하는 다소 기계적이고 자극에 몰두하는 스릴러들에게 <아무도 모른다>는 어째서 섬세한 감성과 확실한 메시지가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드라마가 됐다. 이런 좋은 스릴러는 또 다른 좋은 스릴러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어른이 좋은 세상을 만들 듯,(사진:SBS)

요즘 대박드라마에는 대박 여성캐릭터가 있다

 

여성 캐릭터들이 달라지니 시청률도 화제성도 펄펄 난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차영진(김서형), 종영한 SBS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 그리고 최근 신드롬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의 지선우(김희애)가 그들이다.

 

기존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들과는 다른 면모를 드러내는 이들 작품들은 시청률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최고시청률 10.5%(닐슨 코리아)를 찍었고, <하이에나>는 14.6%로 종영했으며, <부부의 세계>는 6회 만에 18.8%를 기록하며 향후 JTBC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던 <스카이 캐슬>을 넘어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이 확실히 다르다 여겨지는 건, 이들의 새로운 캐릭터가 사실상 드라마의 주제의식과 색깔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는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스릴러지만 동시에 나쁜 어른들로부터 한 학생을 지켜내려는 어른들의 고군분투를 다루는 작품이다. 여기서 차영진 형사는 범죄를 추적하는 불꽃 형사의 면면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은호(안지호)라는 아이를 지켜내려는 따뜻함을 동시에 드러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카리스마와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캐릭터의 특징은 드라마를 긴장감 넘치는 수사물이면서 동시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휴먼드라마적 느낌까지 더해준다. 차영진이라는 색다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우면서 만들어진 독특한 이 드라마만의 색깔이다.

 

종영한 드라마 <하이에나>는 이른바 ‘정금자의 방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의 힘이 중심이 됐던 드라마였다. 가진 건 없지만 그래서 물불 가리지 않고 승소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는 정금자는, 일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는 유쾌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거대 로펌과 중소 로펌, 갑과 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를 역전시키는 이 정금자라는 여성 캐릭터의 통쾌한 반전극은, 남녀관계에 있어서도 윤희재(주지훈)와 기존의 성 역할 구분을 무화시키는 반전을 보여준 바 있다.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이처럼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를 오히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설정은 성 역할 구분이 이제 구시대의 산물이 됐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부부의 세계>는 폭력적인 남성들의 세계와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이를 감수하기보다는 대적하는 이야기 구도를 갖고 있다. 남편의 불륜을 알고는 그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이혼하는 지선우(김희애)라는 여성 캐릭터는 그래서 이 이야기 구도의 중심에 서 있다. 그간 무수히 많은 불륜 소재 드라마들이 나왔지만 <부부의 세계>가 그것들과 다른 느낌을 주는 건 바로 이 지선우라는 색다른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혼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그래서 결국 남편과 내연녀 그리고 그 내연녀의 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저들에게 치명타를 입히고, 남편의 폭력을 유도하는 고육지책까지 써서 이혼과 동시에 아들의 양육권까지 얻는다.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이 여성 캐릭터의 반격에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다.

 

스릴러에 따뜻함을 더해주고, 일과 사랑 모두에서 성 역할 구분을 뛰어넘는 모습을 보여주며, 피해자로 감수하기보다는 가해자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는 여성 캐릭터의 변화. 시청자들은 그 반가운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요즘의 대박드라마에는 대박 여성 캐릭터들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사진:SBS)

‘아무도 모른다’, 선명해진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의 대결구도

 

아무도 모를 것 같던 사건의 진상이 이제 거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차영진(김서형)이 형사의 길을 걷게 만들었던 성흔연쇄살인은 서상원(강신일)과 백상호(박훈)가 함께 저지른 사건이었다. 고은호(안지호)가 밀레니엄 호텔 옥상에서 추락한 일 역시 그 연쇄살인의 증거를 목격하고 백상호의 무리들로부터 도망치다 벌어진 일이었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가 오리무중이었던 그 사건의 실타래들을 하나하나 묶어내 그 진실에 다가가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모든 진실의 실마리는 고은호라는 아이로부터 겨우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길에 쓰러진 장기호(권해효)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구해줬기 때문에, 그래서 장기호가 백상호 무리들의 치부가 담긴 성경책을 고은호에게 줬기 때문에, 그 책을 찾기 위해 백상호 무리들이 사건을 저지르게 되고 끝까지 도망치다 살기 위해 완강기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고은호의 용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게 다시 의식을 되찾아 기억을 해낸 고은호 때문에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가 붙잡힐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른다>는 어째서 성흔연쇄살인과 고은호의 추락사건이라는 다소 이질적인 사건을 연결하는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을까. 그것은 고은호라는 순수한 아이를 마치 리트머스 종이처럼 세워두고 그에 의해 밝혀지는 좋은 어른과 나쁜 어른의 실체를 이 스릴러 속에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고은호를 끝까지 지켜내려 한 차영진과, 처음에는 거리를 두려 했다가 점점 차영진과 함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선우(류덕환) 또 아이를 방치하듯 내버려뒀다가 자신이 엄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변화하는 정소연(장영남) 같은 인물들은 착한 어른들이었다. 하지만 고은호나 주동명(윤찬영) 같은 아이들마저 그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이용하려는 백상호와 그 무리들은 나쁜 어른들이었다.

 

이제 선명해진 대결 구도 속에서 과연 차영진이 어떻게 성흔연쇄살인 사건의 공범이자 고은호 추락사건의 주범인 백상호와 그 무리들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고, 고은호를 지켜낼 것인지가 궁금해진다. 결코 만만찮은 백상호의 무리들의 반격은 고은호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으로 이끌어가지 않을까.

 

차영진은 어쩌면 그 위태로운 순간에 고은호와 예전 둘도 없이 친했던 친구 수정이(김시은)를 겹쳐 보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때 전화를 받지 못해 친구가 살해됐다는 그 자책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차영진은 고은호를 구하는 일이 이제 자신을 구하는 일이 되었다.

 

드라마는 시작부분에 ‘나도수정초’라는 부생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기생, 부생, 공생에 대한 화두를 던져 놓았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하는 부생식물은 대신 동물의 배설물이나 사체 등을 양분 삼아 자라난다. 드라마가 지금껏 그려냈던 건 어쩌면 기생, 부생, 공생이라는 이 세 가지 삷의 방식에 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백상호처럼 누군가의 양분을 빼앗아 먹고 자라는 기생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차영진처럼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삶을 살 것인가. 버려진 것들에서조차 양분을 얻어 꽃을 피워내는 고은호가 그려내는 부생의 삶 앞에서.(사진:SBS)

‘아무도 모른다’, 어른이 어른다워야 아이도 아이다워진다

 

은호(안지호) 같은 착한 아이가 있을까. 버려졌다는 자기 연민에 빠져 자식 돌보는 일도 내팽개쳤던 엄마 정소연(장영남)을 마치 보호자처럼 챙긴 것도 은호였고, 윗층 사는 차영진(김서형)의 사막 같은 삶에 들어와 화초를 놓고 물을 줘 피어나게 했던 것도 은호였다. 길을 가다 쓰러진 장기호(권해효)를 외면하지 않고 살려낸 것도 은호였고, 시험지 답안을 유출해온 친구 민성(윤재용)에게 사실을 밝히라 했던 것도, 또 엇나가는 동명(윤찬영)을 친구로서 다정하게 손을 내밀어준 것도 은호였다.

 

SBS 월화드라마 <아무도 모른다>는 사건을 추적해가는 스릴러 장르를 갖고 왔지만, 그 추적의 과정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은호 같은 착한 아이와 대비되는 추악하거나 미성숙한 어른들의 현실이다. 그런 착한 은호가 어느 날 호텔 옥상에서 추락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 그 진실에 대한 추적은 은호를 둘러싼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면면들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어른들도 변화한다. 정소연은 자신보다 더 은호를 챙기는 차영진(김서형)이 그 어떤 것도 엄마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에 변화한다.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윤희섭 이사장(조한철)이 은호의 숨겨진 아버지일 거라는 증거가 등장하면서, 정소연이 은호를 방치했던 것이 사실상 자포자기였다는 게 드러났다. 뒤늦게 정소연은 자신이 은호라는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아차리고 변화한다. 은호의 담임인 선우(류덕환)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영진과 사건을 함께 수사하는 과정을 통해 아이들과 거리를 뒀던 자신을 후회한다.

 

하지만 백상호(박훈)는 아이들까지 선물 등으로 꿰어 이용하려 하는 나쁜 어른이다. 그와 일당들에 의해 은호는 쫓기다 완강기 끝에 매달려 스스로 뛰어내리게 되었다. 그는 ‘신생명의 복음’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그 안에 무언가 숨겨야할 비밀이 존재하는 것.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가 어린 시절 서상원(강신일)으로부터 그 ‘신생명의 복음’을 학대받으며 외웠다는 사실은 그 역시 나쁜 어른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서상원이 살인을 ‘구원’이라 말하며 자신이 저지른 악행들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라 믿는 것처럼, 그 나쁜 어른에 의해 백상호 또한 아이들의 약한 면을 파고들어 이용해 먹는다. 나쁜 어른이 만드는 또 다른 나쁜 어른이다. 하지만 은호는 부모에게 방치되다시피 자란 불우한 현실 속에서도 누구보다 속 깊은 착한 아이로 클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차영진이라는 착한 어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무도 모른다>는 ‘신생명의 복음’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백상호의 범죄와 과거 성흔연쇄살인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건 은호라는 아이를 통해 투영된 우리네 어른들의 상반된 면면이다. 착한 어른이 있는 반면, 나쁜 어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착한 어른과 나쁜 어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차영진을 착한 어른으로 만든 건 성흔연쇄살인사건으로 사망하게 된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파고 든다. 그래서 은호 같은 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결국 <아무도 모른다>가 이런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상 속에서 그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건 ‘관심’과 ‘배려’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 치부하며 지나치는 게 아니라 내 일처럼 들여다보려는 관심과 배려. 그런 어른들이어야 아이들도 아이다워지고, 그 아이들 역시 남다른 관심과 배려를 가진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을까.(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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