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돈 PD, 회생 쉽지 않은 까닭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이 폭발하는가. 그릭 요거트 문제를 다루면서 한 식음료 광고모델을 한 사실이 밝혀진 이영돈 PD에 대한 논란은 결코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도 문제지만, 이 사안을 계기로 그간 수면 아래 놓여져 있던 이영돈 PD에 대한 불편한 감정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돈 PD(사진출처:JTBC)'

그릭 요거트 문제는 이영돈 PD가 그간 해온 탐사보도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업체를 방문해 그릭 요거트 검증에 나선 이영돈 PD는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은 무가당 그릭 요거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성급히 한국에서 시판되는 요거트 중에서는 그릭 요거트라고 평가할 수 있는 제품은 없다고 단정을 내렸다.

 

실로 자극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릭 요거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해당업체들을 순식간에 망하게도 할 수 있는 단정이었다. 뒤늦게 무가당 그릭 요거트에 대한 테스트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를 하고 나섰지만 이건 이미 불에 다 타버린 집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런 일들은 이미 과거 이영돈 PD의 전력에도 흔치 않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기자 김영애씨의 황토팩 화장품을 두고 벌어진 진실공방은 대표적이다. <이영돈의 소비자고발>에서는 이 황토팩 화장품에서 쇳가루가 검출됐다는 충격적인 방송을 내보냄으로써 해당업체에 엄청난 금전적, 정신적 손실을 안긴 적이 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 정정보도나 사과 같은 것들이 최초에 했던 폭로보다 대중들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센세이셔널리즘 보도가 가진 엄청난 폐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기사에 달라붙은 댓글들을 보면 이제 이영돈 PD가 탐사의 대상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엄청나게 많은 불만사항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개똥쑥에서부터 녹차, 라면, 아이스크림, MSG 보도 등등 이영돈 PD의 탐사 고발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이들은 이번 사안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일어나 다시금 문제제기를 가하고 있다.

 

그 중에는 이번 그릭 요거트와 광고 문제와 유사한 사건이 이미 라면 고발에서도 있었다는 주장도 들어있다. 채널A 개국2주년으로 <먹거리 X파일>에서 다뤘던 라면을 말하다에서 갖가지 성분들을 들어 시중에 나오는 라면들이 모두 해롭다고 얘기하고는 뜬금없이 라면 이름 짓기 공모를 내세워 이영돈 PD의 착한 라면1등으로 뽑았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착한 라면이란 이름은 이미 채널A가 방송 6개월 전에 상표등록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팔도에서는 먹거리 X파일에서 만든 바른 라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라면을 출시했다는 것.

 

탐사보도는 공정성과 균형이 생명이다. 하지만 이번 사안으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는 이영돈 PD식 탐사보도의 논란들을 들여다보면 공정성과는 멀고도 먼 센세이셔널리즘이 느껴진다. ‘착한이라는 수식어를 달고는 있지만 거기에 걸맞지 않는 행위들은 방송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은 빗나간 방송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일까.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탐사가 이제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에 대한 탐사로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것은 이영돈 PD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영돈 PD를 영입해 교양 프로그램에 새로운 기치를 세우려던 JTBC는 오히려 그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릭 요거트를 다뤄 논란의 불씨를 만든 <이영돈 PD가 간다>는 물론이고, 그가 출연하는 <에브리바디>도 방송 중단 결정을 내렸다. JTBC측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분노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 외부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들. 그의 회생이 결코 쉽지 않은 이유다.

 

 

시대장소는 달라도 우리를 매료시키는 멘토들

요즘은 선생님, 스승이란 말 이외에 ‘멘토’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그것은 선생님이나 스승이란 말이 ‘먼저 나신 분’ 혹은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의 의미를 갖는 반면, ‘멘토’는 친구이자 선생님, 상담자, 때로는 부모 같은 포괄적인 위치를 점하면서,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지혜와 신뢰로 인생을 이끌어주는 사람’이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연장자란 의미도 아니고 학교에서 쓰이는 선생님의 의미 이상의 것이 들어 있기에 ‘멘토’는 보다 친근하며, 보다 삶에 밀착된 지혜를 가르쳐준다. 이러한 스승보다 더 가까워진 멘토는 영화나 TV 속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하고 있다.

이 시대의 멘토, 백윤식
무언가를 배우고 싶지만 그것은 금지된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게는 너무나 절실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찾아가는 멘토가 있다. 바로 백윤식이다. ‘파랑새는 있다’와 ‘서울의 달’에서 새롭게 주목받은 이 배우는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밉지 않은 사기꾼 역할을 해내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 백윤식은 ‘범죄의 재구성’으로 과거 멘토 자리를 다시 꿰어찬다. 그는 사기꾼 역할을 맡았지만 사기꾼들로 득시글대는 영화 속에서 단연 한수 위의 모습을 보여주며 묘한 멘토의 냄새를 풍겼다(호칭마저도 김 선생이다).

그 후 그는 ‘싸움의 기술’에서 병태에게 싸움을 가르쳐주는 은둔 고수로 등장한다. 제목에서 보면 그가 단지 싸움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은둔 고수는 병태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사실 병태가 더욱 이 고수에게 빠져드는 건 사실 부재하기까지 한 아버지의 존재를 거기서 찾아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백윤식은 또 한번 멘토 기질을 제대로 발휘한 셈이다. 그 후 그는 이제 자연스럽게 이 시대 멘토 자리를 차지한다. 영화가 있고, 멘토가 등장한다면 바로 백윤식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백윤식은 씨름감독으로 등장하지만 실상 씨름은 별로 가르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전지시가 화장실에서 이루어질 정도로 이 엉뚱한 씨름감독은 마돈나가 되기 위해 천하장사대회에 나가려는 오동구의 든든한 멘토 역할을 해준다.

아무래도 그가 맡은 가장 빛나는 멘토 역할은 ‘타짜’의 평경장 역할일 것이다. 그는 우스꽝스럽고 장난끼 많은 도박꾼처럼 보이나 사실 그는 도박이란 중독적 세계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깨달은 현인에 가깝다. 우리네 삶의 축소판이 도박판이라는 지점에서 공감을 불러낸 이 영화 속에서 평경장은 바로 그 도박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멘토이다. 그가 고니에게 가르친 것은 단지 도박의 기술만이 아니다. 그는 살아가는 법과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 백윤식은 확실히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호감을 살만하다. 그 가르침이 단지 기술이 아닌 인생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황진이를 키워낸 멘토, 백무
드라마 ‘황진이’는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는 우회적 방법으로 이 시대의 멘토를 보여준다. 그 시대의 운명의 틀 속에서 금지된 것을 넘어서는 방법을 인물들이 하나씩 황진이에게 가르쳐줌으로써 현대여성들의 마음 속에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 인물들은 황진이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가 하나씩 사랑과 상처를 남기고 감으로써 황진이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인간의 길’에 진한 깨달음을 남긴다.

그 첫 번째 멘토는 바로 죽은 은호이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지내왔지만 도무지 현실적으로는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을 깨닫게 해준 은호는 황진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 인물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은호의 자리를 차지할 새로운 인물들이 준비하고 있다. 김정한(김재원 분)이 지금은 그 자리에 앉아 있으나 이것은 또 어떤 인물로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황진이의 진짜 멘토는 바로 백무(김영애 분)이다.

백무는 황진이를 예인으로 키워내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경쟁자인 매향의 수제자로 보내는 것도 마다치 않는다. 때론 자신을 적으로 세우고 자신을 넘어보라며 황진이를 도발하는 백무의 모습은 어찌 보면 더 강한 자식을 키워내기 위해 벼랑 아래로 새끼를 밀어내는 사자의 그것과 닮았다. 그녀는 때론 악의 구렁텅이에 황진이를 몰아넣는 악마처럼도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마치 부모 같은 안타까운 마음과 자애로움이 숨겨져 있다.

헐리우드에서 찾아낸 워킹우먼들의 멘토
악마처럼 보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지혜 같은 걸 깨닫게 해주는 인물을 우리는 저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도 발견한다. 바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메릴 스트립분)가 그 멘토이다. 촌닭 같은 앤드리아에게 자신이 하는 이 패션 일이 우스꽝스럽고 의미 없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미란다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넌 니가 꽤나 유식한 줄 알겠지만, 실상은 니가 뭘 입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어.” 미란다는 앤드리아가 입고 있는 옷의 색이 수많은 브랜드와 상점을 거쳐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단 한 번의 멘트로 그녀의 사고방식을 뒤집어놓는 것이다.

미란다는 앤드리아에게는 악마 같은 존재지만 그걸 통해 앤드리아는 일과 성취에 대한 값진 교훈을 얻는다. 미란다는 앤드리아의 양면성(욕망과 함께 지켜내고 싶은 순수)을 거침없이 공격한다. 자신의 성공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지기까지도 버리는 그녀에게서 앤드리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되지만 거기에 대해 미란다는 이렇게 말한다. “웃기지마. 누구나 다 이런 삶을 원해.” 이 말은 앤드리아뿐만 아니라 여기 이 땅의 워킹우먼들에게도 꽂히는 말이었을 것이다.

백윤식 같은 금지된 것의 멘토이든,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현재를 말해주는 백무같은 멘토이든, 저 바다 건너온 미란다 같은 멘토이든, 그들은 모두 이 시대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멘토들이다. 그들이 우리의 마음을 잡아끄는 이유는 과거적 의미의 스승들보다 친근하고, 보다 솔직하며, 핵심을 찌르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질문을 해대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알게 해주는 이 시대의 멘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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