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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이 촉발한 정치권 공방, 예나 지금이나...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치욕적인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 살아야 비로소 대의도 명분도 있다.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청의 대군에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당시 척화파였던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과 주화파였던 최명길(이병헌)이 치열하게 벌인 논쟁을 다뤘다.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청군이 오기도 전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판이었다. 청군들은 칸이 직접 오는 시기에 맞춰 남한산성을 총공격할 준비에 들어간다. 

사진출처 : 영화 <남한산성>

인조(박해일)는 김상헌의 주장도 최명길의 주장도 허투루 들을 수가 없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쉽게 무릎을 꿇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죽어가는 백성들과 군사들을 대의명분을 따지며 버티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살 수 있는 ‘말의 길’을 항상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최명길을 통해 청과의 화친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김상헌을 통해 청과 맞서 일격을 가할 기회를 엿본다. 

공교롭게도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가져온 역사의 한 대목이 지금의 북핵 위기에 놓여진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현 정치권의 여야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상황은 당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결구도를 떠올리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영화 <남한산성>을 빗대 벌인 공방은 당시나 지금이나 갈리진 여야의 대립을 고스란히 재연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은 “얼마든지 외교적 노력으로 사전에 전쟁을 예방하고 백성의 도탄을 막을 수 있었는데도 민족의 굴욕과 백성의 도륙을 초래한 자들은 역사 속의 죄인이 아닐 수 없다”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들이 잘못된 현실 판단과 무대책의 명분에 사로잡혀 임진왜란에 이어 국가적 재난을 초래한 것”이라고 영화 관람 후기를 남겼다. 

홍준표 대표는 “나라의 힘이 약하고 군주가 무능하면 고스란히 백성의 몫이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게됐다”며 “백성의 삶이 피폐해지고 전란의 참화를 겪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무능과 신하들의 명분론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원순 시장이 영화를 빗대 외교적 해법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한 반면, 홍준표 대표는 이 영화를 통해 ‘안보무능’ 프레임을 꺼내든 것. 

같은 영화, 나아가 같은 역사지만 그걸 보는 관점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너무나 다르다. 물론 영화 속에서 김상헌과 최명길은 서로 입장은 달라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예우를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은 최명길이 얘기한대로 칸 앞에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을 겪게 되지만, 그 와중에도 그는 인조에게 김상헌 같은 충신을 버리지 말아야 하며 자신은 영원히 역적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입장이지만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화 한 편을 놓고도 정치 공방을 벌이는 여야는 과연 어떨까. 영화 속 인물들처럼 저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런 서로 다른 논평들을 내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정치적 대결을 위해 영화 한 편을 두고도 ‘아전인수’의 입장을 내놓는 것일까. 

영화 속에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역사에 남은 실존인물들만이 아닌 날쇠(고수)라는 민초가 등장한다. 남한산성 마을 안에 자리한 대장간의 대장장이로 살아가는 날쇠는 이러한 외세의 침략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조정대신들의 날선 말의 대결들 속에서 결국 죽어가는 건 민초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인물이다. 

농사를 짓기 위한 낫을 만들던 그는 어쩔 수 없이 그 낫을 무기로 들게 되지만 그의 말대로 민초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둬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으면 되는 평범한 삶일 뿐이다. 그 작은 민초들의 삶조차 지켜내지 못하는 저들의 치열한 논쟁들이 바로 이 날쇠라는 인물 앞에서 너무나 허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결국 전쟁 속에서도 또 치열한 정쟁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또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가장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건 다름 아닌 민초들이다. 그 누구도 전쟁을 원치 않았고 그 누구도 대단한 삶을 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굶지 않고 추위에 얼어 죽지 않을 정도의 삶을 원했을 뿐이다. <남한산성>은 그래서 최명길과 김상헌의 팽팽한 설전만큼 날쇠라는 인물의 한 마디가 더 큰 울림으로 남는 영화다. 전쟁이니 화친이니를 주장하기 전에 날쇠 같은 보통의 서민들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는지.

Posted by 더키앙

<검은 사제들>, 밋밋한데도 이토록 몰입시킬 수 있는 건

 

영화 <검은 사제들>은 이야기가 복잡하지 않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의 틀을 갖고 있고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도 않는다. 다만 특이한 건 오컬트라 불리는 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이다.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그 중에서도 악령 같은 주로 서구의 문화적 배경에서 자리를 잡은 장르다. <오멘>이나 <엑소시스트> 같은 영화들이 그 범주에 속한다.

 


사진출처:영화<검은사제들>

우리에게도 오컬트적 소재들은 어쩌면 서구보다 훨씬 가까이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많은 무당들의 접신 이야기가 그렇다. 최근에 상영됐던 <손님>이나 <그 놈이다> 같은 작품 속에서도 이러한 무당 소재의 오컬트적 요소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이 다른 점은 악령을 퇴치하는 방식으로서 사제들의 활약을 거의 변형함이 없이 그대로 그려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한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이 있기 때문에 무당 같은 우리 식의 해석이 살짝 들어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검은 사제들>은 거의 오컬트 장르의 공식 그대로를 잘 살려내고 있다.

 

오컬트 장르의 이야기 구조는 초자연적인 사건(악령의 출연 같은)이 벌어지고 이를 추적하는 사제가 있으며 누군가의 몸속으로 들어간 악령을 우여곡절 끝에 그 사제가 끄집어내는 그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단순하다. 실제로 이 영화는 후반부의 반 정도를 한 공간에서 악령과 싸우는 사제들의 이야기로 채워 넣는다.

 

이 정도면 조금은 밋밋하게 여겨질 법도 한데 절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정반대다. 영화가 어떤 곁가지로 흐르거나 복잡한 스토리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도리어 굉장한 집중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끊임없이 관객을 불안감으로 몰아넣는 감독의 연출력은 물론이고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이 이끌어내는 놀라운 연기력 때문이다. 감독은 제대로 판을 벌렸고 그 위에서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은 제대로 놀았다.

 

김윤석과 강동원의 케미는 이미 <전우치>에서도 본 바 있지만 이 작품에서 더 폭발하는 듯하다. 이 두 사람은 브로맨스의 느낌마저 주는데 악령을 퇴치하는 전면에 나서있는 김신부(김윤석)가 영화의 어떤 추진력과 안정감을 부여한다면 그를 보조하는 최부제(강동원)는 관객들이 빙의될 수 있는 친숙함을 준다. 결국 관객은 최부제에 몰입하고 김신부라는 가이드를 통해 오컬트의 현상 속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즉 강동원이 최부제라는 캐릭터를 통해 관객에게 어떤 두려움과 공포감을 부여한다면 김윤석은 김신부를 통해 그 두려움을 헤치고 영화를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김윤석과 강동원의 연기야 이미 정평이 나 있는 것이지만 <베테랑><사도>를 거쳐 차근차근 필모그라피를 쌓아가고 있는 박소담의 신들린연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영화에서 연기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 될까. 물론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검은 사제들>의 경우에는 연기자 비중이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연기할 수 있게 연출이 판을 깔아준 덕이지만 이 영화에서 김윤석과 강동원 그리고 박소담의 지분은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해무>, 부족한 스토리도 채워 넣는 미친 연기들

 

우린 이제 한 배를 탄 거여.” 영화 <해무>에서 전진호의 갑판장 호영(김상호)은 동요하는 선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상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상징을 <해무>는 영화적 상황을 통해 재연해낸다.

 

'사진출처: 영화 <해무>'

IMF라는 시대적 설정과 전진호는 그래서 당대의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감척사업 대상이 되어 배를 잃게 될 선장과 선원들. 그래서 고기로 채워져야 할 배가 조선족 밀항자들로 채워지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심성보 감독의 세세하고도 다이내믹한 연출이 돋보인다. 전진호 선장과 선원들의 노동과 일상을 카메라는 거칠고 녹이 슬어버린 갑판의 풍경과 그것을 그대로 닮아버린 인물들을 훑어나가며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힘겨워도 훈훈한 그 정경 속에는 바다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밀항자들을 태우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배에서 이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 하나씩을 끄집어낸다. 선장인 철주(김윤석)는 배에 집착하고, 늘 선장을 따르던 갑판장 호영은 철주의 명령에 집착하며, 쫓기는 신세로 전진호에 숨어 지내는 기관장 완호(문성근)는 사람의 목숨에, 롤러수인 경구(유승목)는 돈에, 그리고 선원 창욱(이희준)은 여자에 집착한다. 그리고 막내 선원인 동식(박유천) 역시 사랑에 집착한다.

 

이 집착적인 욕망은 그러나 전진호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하나씩 파국을 맞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그들에게 엄습해오는 해무(바다안개)처럼 그 가려진 시야 속에서 숨겨져 있던 끔찍한 욕망의 흔적들이 스멀스멀 갑판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 욕망은 그들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로 돌변한다.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영화는 바다를 향해 나가면서도 전진호라는 폐쇄적 공간을 좀체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이야기는 그래서 마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연극적인 요소들은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갑자기 서서히 고조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갑자기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급작스러움은 그래서 이 영화의 흠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시종일관 긴장되게 바라보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전진호 위에서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연기를 선보인 연기자들이다. 김윤석은 그 묵직한 존재감으로 전진호의 중심을 끝까지 잡아가고, 김상호, 이희준, 문성근, 유승목은 진짜 선원들이라 여겨질 정도로 영화의 미친 몰입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건 박유천과 한예리의 결코 약하지 않은 연기의 존재감이다. 박유천은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온전히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될 것 같다. 또한 조선족 처녀 역할을 놀랍도록 연기해낸 한예리 역시 이 베테랑들의 호연 속에서도 결코 퇴색함이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2001년에 있었던 제7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원작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어서인지 <해무>는 훨씬 더 불편한 느낌을 선사한다. 선원들을 극한으로 내모는 현실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 돈 몇 푼을 위해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바다 한 가운데 던져버리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래서 <해무>라는 제목처럼 안개에 가려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과 그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무>는 지나친 상징과 의미화에 집착함으로써 조금은 허무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보여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은 무게감을 갖는 영화로 현실을 반추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나름대로의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특히 연기자들의 미친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요소다. 박유천의 연기를 재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Posted by 더키앙

<도둑들>, 한국형 오락영화의 가능성

 

<도둑들>이 1천만 관객을 넘어섰다. 파죽지세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같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도 훌쩍 넘어섰다. 사실 관객수가 영화의 질적 완성도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름방학 블록버스터 시즌에 우리네 <도둑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넘어섰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자료 : 도둑들

<도둑들>은 전형적인 오락영화다. 이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통해 수없이 봐왔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형적인 장르를 취했다. 김윤석, 이정재, 김혜수, 전지현, 김해숙, 임달화, 오달수, 김수현 같은 화려한 캐스팅에,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친다는 미션, 그리고 이어지는 배신의 연속... 이 영화는 이 전형적인 이야기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기대한 만큼의 스토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인지 스토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영화는 사뭇 단순한 편이다. 하지만 <도둑들>은 단순한 스토리 위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세워놓고 블록버스터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에 매진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스토리는 오히려 영화의 오락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연기자들은 저마다 대사 몇 개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한껏 드러낸다. 영화의 특성상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그 과장은 오락영화로서는 당연하게 여겨진다.

 

스펙터클을 자극하는 두 연기자는 전지현과 김윤석이다. 건물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하는 전지현이 이 영화에서 주목받는 것은 다른 연기자들과 비교해 액션이 많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유의 우월한 외모로 우아하게 줄을 타면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물론 기존 이미지를 깨는 거친 대사들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매력적이고 한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이 영화만의 액션은 김윤석에게서 나온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아파트 외벽에서 그 벽면을 타고 움직이며 벌이는 추격전은 실로 어느 해외의 블록버스터에서도 보지 못한 압권 중의 압권이다.

 

<도둑들>과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두 블록버스터가 보여주는 양상이 과거의 한국영화와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뒤집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둑들>은 한국영화가(그것도 여름 블록버스터를 겨냥하는 영화가) 늘 벗어나지 못했던 의미에 대한 집착을 훌쩍 벗어던진 느낌이다. 그저 재미를 위해 달려가는 이 영화는 그래서 한 때 우리가 봐왔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블록버스터면서도 의미가 볼거리보다 강한 영화다.

 

<도둑들>은 한없이 가볍고,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한없이 무겁다. 어찌 보면 이 상반된 흐름이 <도둑들>과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흥행쌍곡선을 그린 이유라고 보여진다. 이제 우리네 관객들도 온전한 오락영화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진지함이나 메시지 측면에서 보면 어딘지 씁쓸한 현실처럼 다가오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보면 한국형 오락영화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도둑들>의 성공은 그 철저한 오락영화의 면면을 잘 그려냈다는 점과, 이제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에 대한 우리네 대중들의 욕구가 만났던 지점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Posted by 더키앙

스타들은 많아도 연기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 연기자들은 많아도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연기자들은 많지 않죠. 또 아무리 다양한 연기변신이 가능한 전천후 연기자라 해도 우리의 정서를 대변하는 듯한 연기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거북이 달린다'의 김윤석은 그 몇 되지 않는 연기자에 속하는 배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다채로운 연기변신을 끊임없이 해오면서도 그 속에 우리 식의 정서가 늘 배어 있으니 말입니다.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대중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해가 2006년도 일 것입니다. 그 해 그는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를 통해 먼저 그 얼굴을 알렸습니다. 주말이면 리모콘 쥐고 방바닥 뒹구는 전형적인 뺀질남이지만 속내는 아내를 사랑하는 그가 연기한 강윤호라는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꽤나 울게 만들어버렸죠.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해 그의 존재감을 알린 '타짜'의 아귀라는 변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김윤석이 가진 연기의 폭을 실감하게 됐죠. '그 뺀질남이 저 살벌한 인간?'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김윤석은 폭발적인 연기로 주인공 못지 않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수더분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은 우리네 가장의 역할과 너무나 잘 어울렸죠. 그래서 '즐거운 인생'에서는 밴드의 꿈을 잊고 택배와 대리운전으로 살아가는 한 아버지의 역할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서글서글한 인상이 또 '추격자'에 와서는 강인한 카리스마로 바뀌었죠. '추격자'의 엄중호는 꽤 건들대는 건달이면서도 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입니다.

김윤석이 그려낸 엄중호라는 캐릭터는 실로 복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귀차니스트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에 노회한 그저그런 삼류인생처럼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끈기와 분노의 힘을 내면에 숨기고 있는 그런 인물이었죠. 그 이미지가 깨나 서민적으로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이윤석이라는 배우가 가진 그간의 아우라가 작용한 탓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늘 서민의 아버지 역할을 해오곤 했으니까요.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은 그런 면에서 보면 엄중호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그의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캐릭터라 할 수 있습니다. 엄중호의 어딘지 힘껏 들어가 있는 듯한 긴장감과 힘은, 조필성에 와서는 거의 풀어져 있고 심지어 연기하지 않는 듯한 편안함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충청도 사투리가 가진 적당히 느리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또 적당히 웃기면서도 나름 깊은 의미를 가지는 그 특성은, 조필성이란 캐릭터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조필성은 (충청도의 겉 이미지가 그렇듯)허술해보이지만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입장이 부각되면서 엄청난 의지력(충청도의 힘!)을 가진 인물로 연기되죠.

'거북이 달린다'를 통해서 우리는 김윤석이라는 우리 식의 영웅을 제 옷처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이 지극히 서민적이면서, 그 서민들 속에 숨겨져 보이지 않던 잠재력을 끄집어 낸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김윤석이 해나갈 연기의 세계에 많은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또한 이것은 이런 배우를 갖게 된 우리 영화의 큰 수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토끼처럼 늘씬하진 않아도, 토끼보다 더 멋진 거북이 같은 배우가 바로 김윤석입니다.

Posted by 더키앙

축구에는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과장되게 넘어지거나 쓰러져 반칙을 유도하려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말은 때론 진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엑스맨 탄생-울버린'의 주먹을 뚫고 나오는 칼날이나, 아무리 해도 죽지 않는 그래서 심지어는 공포의 존재가 되어버린 '터미네이터'의 로봇들을 보다보면 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스피드와 장쾌한 액션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 허무감에 빠질 때가 많죠.

그런 면에서 볼 때, '거북이 달린다'는 이 할리우드 액션이 갖는 약점을 정곡으로 찌르는 우리식 토속 액션영화로 보입니다. '거북이 달린다'에는 '스타트랙 - 더 비기닝'같은 우주적 공간도 없고, '터미네이터-미래전쟁의 시작' 같은 어마어마한 전쟁도 없습니다. 당연히 화려한 CG같은 것도 있을 리 없고 엄청난 능력이나 힘을 가진 주인공도 없습니다. 그저 소싸움 대회 정도에도 들썩거리는 충청도 한 마을과 그 마을에서 말 그대로 찌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시골형사 조필성(김윤석)이 동네로 들어온 탈주범과의 쫓고 쫓기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거북이처럼 별볼일 없을 것 같은 영화가 저 토끼들 같은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이 주지 못하는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 건 왜일까요. 그것은 지독하게도 토속적인 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엮어나가는 역시 토속적인 이야기가 갖는 리얼함 때문일 것입니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할리우드 액션 스타들이 주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마누라의 빵구난 팬티 하나가 짠하게 가슴에 남아 죽도록 싸우는 우리네 액션 스타 조필성 같은 캐릭터가 주는 공감일 것입니다.

우주적 공간이 아닌 충청도라는 공간은 이 영화의 토속적인 맛을 우려내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충청도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특유의 지역 정서는 형사물이라는 조금은 긴박한 상황과 대비되면서 충분한 웃음을 끌어냅니다. 그리고 이 웃음은 주인공들이 억지로 끌어낸 것이 아니라 지역 정서 자체가 주는 웃음이라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진지할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느린 듯 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충청도 사투리 특유의 정서는 이 영화의 액션 속에서도 대사 속에서도 묻어나면서 보는 이를 웃기면서도 찡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충청도가 주는 중심에서 밀려난 듯한 외곽의 정서는 이 독특한 형사물에 서민적인 정서를 결합시킵니다. 혼자서 여럿을 때려잡은 탈주범을 두고 반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놈을 우리가 어떻게 잡냐?"고 말할 때, 우리는 빵 터지면서도 그 리얼함에 서민적 동지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거북이를 닮아잇는 충청도 정서와 충청도식 사투리와 그걸 모두 체화한 듯 비틀대며 찌질하게 살아가면서 그래도 가족 앞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체면을 지키려하는 조필성은 서민적 정서의 표징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조필성이라는 거북이 정서에 우리가 공감하는 순간, 별 것 아닌 것 같은 액션과 추격전이 주는 쾌감은 극대화됩니다. 마치 '추격자'에서 헛다리만 짚는 형사들을 대신해 연쇄살인범을 쫓는 김윤석을 관객이 애타게 응원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이 한편으로는 불쌍하고 한편으로는 우리의 얼굴이 되어 있는 거북이 조필성이 잘난 척하는 권력있는 도시의 형사들을 앞질러 그 지긋지긋한 탈주범을 잡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분명 할리우드 액션이 갖는 과장됨은 그 자체가 대중들을 사로잡는 힘일 것입니다. 하지만 '거북이 달린다'에는 그런 할리우드 액션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죠. 이 할리우드 액션과는 정반대 같은 충청도식(?) 액션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말입니다. 그건 아마도 이 영화가 정말 우리 얘기를 우리 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참을 웃고, 마지막에 가서는 찡한 이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며 어딘지 찜찜하거나 허무한 느낌을 주었던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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