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입니다', 어째서 김지석 같은 완벽한 인물이 필요했을까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그저 평범해 보였던 김상식(정진영), 이진숙(원미경) 가족의 숨겨진 비밀들이 연달아 터져 나오며 매회 충격을 안기고 있다. 김상식과 졸혼을 하자고 했던 이진숙만이 알고 있던 비밀은 첫 딸 은주(추자현)가 상식의 친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둘만 알고 묻어버리려 했던 그 비밀이 드러나게 된 건 김상식이 야간산행을 하다 사고를 당해 22살 청년으로 기억이 되돌아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대학생 때 은주를 갖게 된 이진숙은 아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짝사랑해온 김상식과 가정을 꾸렸던 것. 하지만 이 가족의 비밀은 이것만이 아니다. 은주는 남편이 성 소수자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고, 기억이 모두 돌아온 김상식은 자신의 혼외자식을 집으로 데리고 와 가족들에게 소개함으로써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은주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와 동생 은희(한예리)는 서로 다른 입장 차를 드러내며 갈등을 빚기도 했다. 엄마의 입장을 대변하며 아빠가 자신을 엄마의 약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은주와, 아빠의 입장을 대변하며 엄마와 언니를 아빠가 사랑했다 말하는 은희는 말다툼을 벌였고, 그 와중에 은희는 언니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적어도 너처럼 고개 빳빳하게 들고 사느라 자기 발밑조차 못 보는 것보다 낫다고."

 

그 말은 남편이 성 소수자라는 것도 모른 채 살아온 은주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말이었다. 가족이기 때문에 그 급소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은희의 그 말 한 마디에 은주는 무너져 내렸다. 뒤늦게 자신이 한 짓을 알게 된 은희는 뛰쳐나가 거리에서 오열하고 있는 은주를 애써 껴안았다.

 

이처럼 <가족입니다>는 우리가 알고 있다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던 거라는 걸 매회 충격적인 비밀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가족도 아니지만 도드라져 보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은희의 남사친으로 등장하는 박찬혁(김지석)이다. 그는 은희와 오랜 친구처럼 지내고 있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마음을 서로 숨기고 있다. 그래서 은희가 임건주(신동욱) 같은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대해 애써 조언을 해주지만, 때론 그가 걱정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이것은 은희도 마찬가지다. 그는 형부가 성 소수자라는 걸 눈치 채고는 소록도를 찾아가는 길에 찬혁의 동행을 요구한다. 운전을 할 줄도 모르는 찬혁을 굳이 데려가겠다고 하는 그 마음속에는 그에 대한 은희의 의지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 그는 건주와 함께 있는 걸 찬혁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자신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찬혁이 은희와의 남사친을 가장한 멜로의 주인공처럼 등장해 있지만, 이 작품에서 그가 맡고 있는 더 중요한 역할은 가족보다도 더 은희네 가족을 잘 알고 옆에서 바라봐주고 때론 조언과 위로를 더해주는 역할이다. 그는 은희가 가족문제로 힘겨워하는 걸 듣고는 가족이라고 해도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어찌 보면 박찬혁이라는 인물은 작가가 담으려는 이상적인 인물처럼 보인다. 그는 속으로 좋아하는 은희 앞에서도 그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드러내놓고 뭐라 하기보다는 오히려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그 가족사에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은주를 위로해주기도 하고 지우(신재하)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어떻게 박찬혁은 가족도 아니면서 이들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이것은 거꾸로 우리가 가까이 있어 가족에 대해 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인물이 에둘러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매회 충격적인 사건들이 터져 나오면서 드라마가 어떤 안정감을 갖는 데는 박찬혁이라는 이상적인 인물이 있어서라고 느껴진다. 진짜 잘 알기 위해서는 한 걸음 떨어져 봐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는 듯한 인물. 물론 가족은 그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사진:tvN)

'가족입니다', 갈수록 시청자 반응 뜨거워지는 이유

 

그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드라마인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tvN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조금씩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의외로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있다.

 

사고로 기억이 20대 때로 돌아가버린 김상식(정진영)은 고압적이고 심지어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가부장적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사랑꾼'이 되었다. 거의 죽은 듯이 살아왔지만 이제 졸혼을 요구하고 혼자 살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 잠을 설치던 아내 이진숙(원미경)은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달달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더욱 충격을 받은 건 김상식 본인이다.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과일 하나도 맘대로 사먹지 못하게 했고 그것 때문에 심지어 주먹으로 유리를 깨는 폭력까지 저질렀던 기억의 단편을 마주했다. 그는 자신이 그런 짓까지 저질렀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마치 사죄하듯 아내 이진숙이 원하는 졸혼을 하자고 말한다.

 

<가족입니다>는 김상식의 기억의 뒤틀림이라는 장치(?)를 통해 가부장적인 아버지들이 자신조차 잘 몰랐던 실체를 마주하게 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토록 살갑고 다정했던 사랑꾼이 어느 새 집안의 무자비한 폭군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기억이 돌아왔다고 거짓말을 한 상식이 여전히 살가운 말투를 대하자 낯설게 바라보는 아내 진숙 앞에서 이제는 가부장적인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상식의 상황은 그래서 더더욱 비극적이다.

 

큰 딸 김은주(추자현)는 부부로 함께 살아왔던 남편 윤태형(김태훈)이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동생 김은희(한예리)가 윤태형이 일부러 놓고 간 노트북을 열어보는 바람에 숨겨졌던 성 정체성이 드러난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은주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을 하기 위해 홀로 그 고통스런 시술을 받아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윤태형은 더 이상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길 수 없어 그걸 일부러 노트북을 놓고 감으로써 알게 한 것이었다. 은희는 어딘지 윤태형이 카페 바리스타 안효석(이종원)과 함께 소록도에 갔을 거라는 감에 그 곳에 내려갔다가 결국 그들이 함께 있는 걸 발견한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연인일 거라는 짐작은 오해였다. 안효석의 연인을 윤태형이 가로챘던 것. 그래서 안효석은 윤태형에게 겁을 주려 근처 카페에서 알바를 하게 됐고 그러다 그 곳을 자주 찾는 은주와 친해지면서 모든 게 뒤틀어졌던 것이었다.

 

은주는 남편이 성소수자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그럼에도 그들이 어떻게 결혼까지 하게 됐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은주는 깨닫는다. 과거 자신이 가족을 지긋지긋해 했다는 것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곳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건 남편 윤태형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정체성을 알고 찾아온 은주 앞에서도 병원 걱정을 먼저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은 그가 어떻게 아들을 대해왔는가를 미루어 짐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은주와 윤태형은 결혼을 해 가족이 되었지만 애초부터 엇나간 관계였다. 가족이 지긋지긋하다며 아이에 집착하는 은주를 윤태형은 끔찍하고 위선적으로 바라봤고, 그들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남편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은주의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드러내려는 가족이지만 말하지 않으면 그 속을 알 수 없다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미국 본사에서 온 출판사 부대표 임건주(신동욱)가 사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던 '엉겅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은희는 그 만남이 갑자기 이뤄진 가벼운 사랑이 아니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연애 감정이 생겨나는 즈음에 불쑥 친구로만 생각해왔던 박찬혁(김지석)이 마음에 담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상황을 찬혁이가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 것. 그건 은희가 사실은 찬혁을 마음에 두고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말해준다.

 

<가족입니다>의 이야기는 이처럼 우리가 익숙하다 여겼던 관계가 우리의 착각이었다는 걸 끄집어낸다. 이들의 관계는 사고를 통해 20대 사랑꾼으로 돌아간 상식이나, 남편이 성소수자였다는 걸 알게 된 은주, 그리고 친구 관계로만 생각했던 찬혁에 마음이 가는 은희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는 과연 가족이나 친구, 연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느냐고 질문한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평탄해 보였던 한 가정의 실체가 드러나며 파국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담아냈듯이 <가족입니다>는 별 일 없이 평범해 보였던 가족과 주변인들의 관계의 실체가 드러나며 그려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만 <가족입니다>가 <부부의 세계>와 다른 점은 파국보다는 그 실체를 제대로 마주한 연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라는 틀로 끌어안는 점이 아닐까. 가족이지만 아는 건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래도 가족이라는 이야기. 가족 해체 시대에 가족을 뻔한 판타지로 그려내는 그런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수작이 나왔다.(사진:tvN)

'가족입니다', 가족 해체 시대에 공감 가는 현실 가족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tvN 새 월화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이하 가족입니다)>는 가족이 바로 그렇다고 말한다. 평생 살림만 하며 살았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나 그만 하고 싶다"며 남편에게 졸혼을 요구한다. 한 평생 성실하게 가족을 위해 일해 왔던 남편을 잘 알고 있는 엄마지만 너무 싫단다.

 

"집안에 앉아있으면 너무 싫어. 숨을 못 쉬겠어. 걸어 다니는 것도 싫고 몸에 좋은 약 꾸역꾸역 혼자 챙겨먹는 것도 싫고 저질스러운 말 하면서 통화하는 것도 싫고 훌렁훌렁 벗고 부항 뜨는 것도 싫고 부항 자국 보는 것도 싫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이런 모습은 낯설다. 이토록 싫은데 어떻게 버티고 그 세월을 살았을까.

 

<가족입니다>는 너무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가족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 오해로 빚어졌던 관계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드라마다. 엄마 이진숙(원미경)과 아빠 김상식(정진영)이 황혼기에 맞이해 그간 누르고 눌러왔던 '싫은 감정'을 드디어 꺼내놓는 것으로 시작하는 건, 우리가 알고 있다 치부했던 가족이 실상은 잘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걸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 가족이야기에서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작은 딸 김은희(한예리)다. 출판사 팀장인 그는 저자인 명상원에서 명상 체험을 하면서 자신이 몰라서 저질렀던 후회스런 순간들과 마주한다. 일찍이 엄마는 아빠와의 이혼을 준비 중이었고, 9년 간이나 사귀었던 남자친구 종민(최웅)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와 함께 지냈던 오랜 친구 찬혁(김지석)에게 하지 말아야 할 절교 선언을 했다. 위로받기 위해 찾아간 언니조차 냉정하게 대하자 김은희는 다신 안 본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 때 언니는 유산을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명상을 하며 다시금 떠올린 그 날의 일들을 되새기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김은희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의사 남편과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산 이후 사실은 남처럼 데면데면 살아가고 있는 큰 딸 김은주(추자현) 역시 그렇다. 그는 가족에게조차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지만 의외로 카페에서 알바하는 청년과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이지만 타인 같고, 타인이지만 가족 같은 이 관계의 아이러니라니.

 

아내의 졸혼 요구로 크게 흔들리던 김상식이 야간산행을 갔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은 그것이 이 타인 같은 가족에게 어떤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졸혼을 선언한 부모, 유산을 겪은 이후로 타인처럼 살아가는 맏딸 부부, 바람피워 헤어진 옛 남친을 다시 만나 헷갈리기 시작하는 작은 딸... 마치 김은희가 명상을 통해 들여다봤던 것처럼, 그저 평범하게 보였던 이들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서 어느 순간 그 진면목을 보게 되고 자신이 오해했던 걸 후회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가족입니다>는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려 한다.

 

사실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는 시대에 가족드라마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장르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 편견이자 선입견일 수 있다. 혼자 살아가는 가구가 많아도 결국 가족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달라진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 공감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하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가족입니다>는 진짜 우리 시대의 가족드라마를 기대하게 하는 면이 있다. 같이 살아도 잘 알지 못하는 가족과 타인이지만 더 가족처럼 소통하는 이들이 우리가 겪는 현실 가족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다. 물론 그 겉면을 넘어서 실체에 다가갈 때 우리는 깨닫게 될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아는 건 별로 없어도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었다는 것을.(사진:tvN)

‘동백꽃’이 담는 이별의 대물림과 연대하는 이웃들의 가치

 

연쇄살인범 까불이는 잡혔지만, 동백(공효진)은 용식(강하늘)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한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용식이 까불이를 그렇게 잡으려 했던 이유가 동백이 떠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또 필구(김강훈)의 안전을 걱정해 친부인 강종렬(김지석)에게 아이를 떠나보낸 동백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더더욱 빨리 까불이를 잡아 필구를 동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용식이었다. 그런데 이별이라니.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보여주는 절절한 이별의 대물림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동백이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말에는 그간 그가 겪어온 삶의 고통이 묻어난다.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와의 이별, 사랑했지만 점점 멀어져간 강종렬과의 이별, 편견 속에서 떠돌아 다녔던 자신처럼 여겨 보듬었던 향미(손담비)와의 이별 그리고 엄마의 혹이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를 위해 떠나려 했던 아들 필구와의 이별.

 

이 이별이 대물림처럼 여겨지는 건, 그 근원이 가난으로부터 빚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가난해 아이라도 살리고자 까무러칠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며 아이를 버렸던 동백의 엄마 정숙(이정은)에서 시작된 이 이별의 대물림은 고스란히 동백으로 또 필구로 이어진다. 동백은 정숙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자신 역시 필구를 위해 이별을 선택했다는 걸 알기에 그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위해 이별을 선택한다. 정작 자신은 그 이별의 후유증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어린 필구조차 그런 엄마를 닮아버린다. 그래서 동백의 눈치를 보고 용식을 만나는 엄마에게 자신이 혹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를 떠난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그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엄마가 무슨 이제 결혼을 해. 엄마가 결혼하는 애는 나뿐이 없어. 엄마는 결혼이라도 하지. 나는 초딩이라 결혼도 못하고 군대도 못 가. 나도 사는 게 짜증나.”

 

결국 동백은 필구를 위해 용식에게 이별을 고한다. “연애고 나발이고 필구가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용식에게 “여자로 말고 엄마로 행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이 이별의 연쇄작용은 용식에게로 공이 넘어간다. 그는 너무나 동백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 이별선언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다. 그저 같이 눈물 흘리며 이별을 받아들일 뿐.

 

<동백꽃 필 무렵>은 누군가를 위해 이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면서 까불이 같은 살벌한 연쇄살인범의 존재만큼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건 가난이고, 거기서 비롯된 편견들이다. 그건 어쩌면 죽음보다 더 무섭고 아픈 고통일 수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드라마는 이런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버텨내며 살아가는가에 희망을 담는다. 그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따뜻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때론 지지고 볶으며 그 편견어린 시선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지만 그럼에도 같은 처지를 동감하며 지지하고 도와주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동백이 겪는 고통과 그 주변사람들의 온기를 통해 전해준다.

 

“엄마 죽지 마. 콩팥인지 쓸갠지 내꺼 떼 주면 되잖아. 나 이제 헤어지는 것 좀 그만하고 싶어.”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듯 보이는 동백이 쓸쓸해 보이는 엄마의 등을 쓸며 하는 이 말은 그래서 동백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자신이 자신을 보듬으면서 애써 버텨내려는 그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타인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은 아마도 동백이 지금껏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게다.

 

<동백꽃 필 무렵>은 가난으로부터 비롯된 이별의 대물림을 보여주지만, 그 아팠던 이별이 자신을 위한 누군가의 더 아픈 선택이었다는 걸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거기 담겨진 인간적인 이유라는 걸 보여준다. 또한 같은 사람으로서 그 아픔을 공감하고 그래서 타인이지만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소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이만큼 사람의 희망을 말하는 드라마도 없을 듯싶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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