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흥행코드를 조합한 드라마의 문제, ‘아부해’

‘아가씨를 부탁해(이하 아부해)’는 어디서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장면들이 연달아 등장한다. 제작 초기부터 얘기가 나왔던 ‘꽃보다 남자’의 아류작이란 이야기는 거의 실제상황이다. 대저택과 하인들, 여자 구준표라 할 만큼 캐릭터가 유사한 거만한 아가씨 강혜나(윤은혜), 겉으로는 재수없게 굴지만 속으로는 나름의 아픔이 있는 그녀. 스포츠카, 귀족 자제들의 모임, 그리고 이들과 대비되는 서민 서동찬(윤상현). 서로 다른 계층에 속하는 이 두 사람의 부딪침. ‘아부해’는 단지 배경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기본 줄기까지도 ‘꽃보다 남자’의 그것을 차용했다.

이미 결말까지 거의 확실히 예측되는 스토리 설정이기 때문에 이런 드라마는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본다기보다는, 예측되는 스토리가 주는 판타지를 확인하고 싶어 보게 된다. ‘꽃보다 남자’에서 그 힘을 볼 수 있었던 이른바 ‘판타지 트렌디’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드라마의 궁극적인 목표가 판타지에 있고, 이야기도 거의 결정되어 있는 상황인데다, 다만 트렌드에 따른 약간씩의 스타일 변화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토리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식상할 수 있지만, 그저 드라마가 주는 효과만을 기대하는 시청자에게는 꽤 강한 유혹이다.

스토리의 재미보다 중요한 것(그렇다고 스토리가 재미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새로움이 없을 뿐이다.)은 판타지를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볼거리들이다. 거대한 궁전을 방불케 하는 주거공간과, 패션지를 보는 듯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의상들, 그리고 그 의상을 입고 워킹하듯 걷는 조각 같은 주인공들이 있다면, 판타지는 더 강력해진다. 여기서 캐릭터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은 연기자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다. 마치 게임하듯, 기존 이미지가 이 똑같은 스토리에 들어와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관건이 된다.

‘내조의 여왕’에서 30대 구준표로 판타지를 자극했던 윤상현이 남자 주인공으로, ‘궁’과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를 모두 자극했던 윤은혜가 여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것은 모두 이런 이유가 있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돌아온 일지매’를 통해 이모팬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정일우와, 역시 ‘바람의 화원’을 통해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한 문채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과속스캔들’에서 발견한 왕석현 역시 우리가 기대하는 썩소를 날려주니,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연기자에게서 기대하는 판타지를 뽑아내 보여주려는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시작과 함께 17%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면서 수목의 정상을 차지한 것. 하지만 역시 문제는 바로 그 트렌디한 스토리에서 비롯된다.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호평이 적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윤은혜의 연기력 논란까지 나오는 것은, 그녀가 연기하는 강혜나라는 캐릭터가 그다지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같은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연기자가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여야 연기력 논란이 나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윤은혜는 보통의 트렌디한 왕싸가지 공주님 캐릭터를 재연해보였다. 이것은 윤은혜를 통해 어떤 새로운 판타지를 구하고자 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적잖은 저항감으로 작용한다.

물론 이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나, 연기력에 대한 논란들이 나와도 이 드라마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대적할만한 강력한 드라마가 수목에 없는데다가 판타지 자체가 주는 즐거움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성공이 그다지 바람직해보이지는 않는다. 기존 성공흥행코드를 가져다가 적당하게 포장해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면 드라마는 이제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남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 초반에 모든 것을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언가 이 작품만의 강력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기를 기대한다.

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꽃남’, 그 광고 같은 세상의 마력

‘꽃보다 남자’는 극단적인 빈부 격차를 바탕으로 드라마가 구성되어 있다. 초부유층인 구준표(이민호)는 하녀와 집사까지 있는 궁전 같은 집에서 살지만, 서민층 금잔디(구혜선)는 자그마한 아파트에서 옥탑방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집 없이 거리를 떠도는 처지로 살아간다. 구준표는 스포츠카에 전용비행기까지 있어 원하면 전용 섬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여가의 삶을 즐기지만, 금잔디는 자전거를 끌고 새벽 우유 신문 배달에, 아르바이트에 대부분의 시간을 생계로 써야한다. 하지만 이 비교체험 극과 극 같은 구준표와 금잔디에게도 똑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같은 기종의 핸드폰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구준표와 금잔디의 핸드폰이 말해주는 것
물론 이것은 PPL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광고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초부유층이나 서민층이나 완전히 다른 물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핸드폰만은 같다는 이 사실, 즉 핸드폰에 주어진 특권적인 평등의식(?)은 이 드라마 출연자들을 두고 왜 핸드폰 업체들 간의 각축전이 벌어졌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아무리 가난해도 구준표폰을 쓸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드라마가 끝나거나 시작되기 직전에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광고가 어째서 드라마와 그렇게 잘 어울리는가를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판타지로서의 초부유층과 현실로서의 서민층의 접점에 등장하는 핸드폰이 주는 뉘앙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힘의 원천을 살짝 드러내준다. 그것은 광고의 세계가 그렇듯이 판타지로 그려지는 물질적 욕망의 세계를 (드라마를 통해) 누구나 얻을 수 있다는 유혹이다.

‘꽃보다 남자’는 광고식 표현으로 얘기한다면 “생각대로 하면 되는” ‘비비디바비디부’ 세상이다. 그 세상의 주인은 F4로 불리는 네 명의 미소년들이고, 그들은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입시경쟁제로의 신화그룹 재단 학교를 다닌다. 이 생각대로 뭐든 되는 이들을 보통사람들은 선망하며 숭배한다. 이것은 흔히 TV를 볼 때 광고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와 유사하다. 판타지의 세계가 있고 그 판타지는 상품들과 연결되어 있다. 광고가 말하는 것은 손을 뻗어 그 상품을 구매하는 순간, 당신도 그 판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이다.

그러니 그 광고 같은 세상 속으로 들어간 서민 금잔디는, 광고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대변자가 되어 그 판타지 세상을 대리 경험해준다. 광고 속에서 익히 보아왔던 뉴칼레도니아 같은 섬으로 광고 속 미소년들의 분신인 F4와 함께 여행하는 짜릿한 경험을 제공하고, 궁전 같은 집에서 하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받고, 미소년의 품에서 잠이 든다. 백화점을 통째로 빌려 쇼핑을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녀-주인님 놀이를 한다.

이 광고 같은 세상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금잔디 앞에 중간 중간 도래하는 잔인한 현실들이다. 신화고등학교 학생들의 집단 왕따나, 구준표와의 관계 사이에 끼여드는 반대자들(강회장이나 하재경 같은)은 금잔디의 판타지를 깨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 뿐, 광고 같은 세상에서 날아온 백마 탄 미소년들은 금잔디를 다시 그 세상으로 데려감으로써 판타지는 계속된다.

‘꽃남’이 연출한 광고 속 상품의 마력
판타지는 어찌 보면 드라마의 기본 전제일 수 있다. 따라서 판타지 자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드라마는 현실에서 풀어지지 않는 욕망들을 자신의 세계를 통해 때론 판타지로 잊게 해주고, 때론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현실을 사는 이들에게 어떤 자각을 주기도 한다. ‘꽃보다 남자’가 보여주는 판타지와 거기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 역시 그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불온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지나친 상품의 냄새다.

이 드라마의 시퀀스들을 보면 스토리의 진행보다도 광고적인 장면들의 나열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가는 설명적인 대사들이 나온 후에는 여지없이 멋진 장면들, 예를 들면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웃고 떠들며 음식을 즐기는 장면 같은 것들이 대사 없이 보여지고 그 위로 OST가 흘러나온다. 만일 이 한 장면에 특정 상품 하나를 올려놓기만 해도 이것은 하나의 광고가 될 수 있을 정도다(물론 영상은 그다지 뛰어나진 않지만). 요는 이 드라마가 이야기의 구성보다는 광고 같은 팬시한 장면들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여기 등장하는 캐릭터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숨겨진 착한 구석’이라는 통상적인 매력이 있지만, 구준표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대부분은 물질적인 것들이다. 보는 이들의 갖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팬시한 물질의 세계는 엄청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구준표는 그 돈을 쥐고 있는 캐릭터다. 그는 그 돈을 스스로 번 것도 아니고 그저 태생적으로 얻은 것이므로, 그의 캐릭터는 생산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데서 나온다. 물론 이 팬시한 캐릭터를 더욱 팬시하게 하는 것은 이민호의 수려한 외모다. 이민호가 이 드라마를 통해 벼락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구준표라는 캐릭터가 내면적인 매력(마음, 연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보다는 외면적인 매력(외모, 돈, 캐릭터 자체로부터 얻어지는 것)에 편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준표를 비롯한 F4 같은 물질적 세계 속에 살아가는 광고적(상품적) 존재들은 금잔디라는 한 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한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대본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출이 대단한 것도 아닌 ‘꽃보다 남자’가 가진 불가사의한 힘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저 광고가 가진 상품 판타지의 힘과 유사하다. 갖고 싶은 것들이 즐비한 그 세계 속에서 뭐든 그걸 이뤄주는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판타지. 그 ‘비비디바비디부’의 세계가 우리를 사로잡았던 실체가 아닐까. 중독적으로 빠져들었던 드라마의 끝에서, 볼 때는 그 욕망에 끌려 바라보다가 끝나고 나면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순간적인 허전함에 빠지는 광고가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세월이 가도 사라지지 않는 멜로 드라마의 전통

장르가 무엇이건, 스타일이 어떻건 우리네 드라마는 늘 그 중심에 멜로가 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실상 모든 드라마는 멜로 드라마이며, 그 변용이 여러 장르로 변주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트렌디 멜로 드라마에 대한 염증으로 ‘하얀거탑’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같은 장르 드라마들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어느 새부터인지 그 장르드라마들 속에 떡 하니 들어앉아 있는 건 다름 아닌 멜로가 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우리네 모든 드라마들은 멜로와 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월화드라마로 새롭게 시작한 ‘내조의 여왕’에서는 내조하는 여성들의 권력 대결구도가 전면에 나오고 있지만 그 후방을 지원하는 구도는 역시 멜로적 설정이다. 고교시절 잘나가던 퀸카 천지애(김남주)와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던 폭탄 양봉순(이혜영)은 그 시절 천지애의 남자친구였으나 지금은 양봉순의 남편이 된 한준혁(최철호)과 묘한 삼각관계를 구성한다. 한준혁은 여전히 천지애를 잊지 못하고 있고, 천지애는 남편을 취직시키려고 하는 퀸즈그룹의 사장인 허태준(윤상현)과 얽히는 중이다. 한편 천지애의 남편인 온달수(오지호) 역시 허태준의 아내인 은소현(선우선)과 대학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다. 이 복잡한 멜로 구도는 내조를 둘러싼 권력 대결의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중심 모티브라 할 수 있다.

이런 사정은 월화의 타 방송사 드라마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꽃보다 남자’는 구준표(이민호)와 금잔디(구혜선) 사이에 하재경(이민정)이 끼여들면서 본격적인 멜로 갈등을 만들어가고 있고, ‘자명고’는 낙랑공주(박민영)와 자명공주(정려원) 그리고 호동왕자(정경호)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가 운명적인 국가 간 대결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수목드라마에서 ‘카인과 아벨’은 기억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이초인(소지섭)과 오강호의 양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한 남자와 그를 둘러싼 두 여자, 즉 김서연(채정안)과 오영지(한지민) 사이의 멜로가 바닥에 깔려있다. 이초인의 기억으로는 김서연과의 멜로가 이어지고, 오강호의 기억으로는 오영지와의 멜로가 이어진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50대의 멜로가 중심에 서 있다. 명진그룹 회장인 한명인(최명길)과 그녀의 남편인 이정훈(박상원) 그리고 그의 내연녀로 살아온 국민배우 은혜정(전인화)이 50대가 되어서야 드러나게 된 관계로 인해 극단의 대결구도로 치닫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춘시절 겪었던 그 사랑의 열병이 ‘미워도’, 그 열병 속으로 ‘다시 한번’ 뛰어드는 50대들의 치정 멜로를 다루고 있다. 한편 ‘돌아온 일지매’ 역시 멜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일지매(정일우)의 행보는 사실상 거의 월희(혹은 달이)와의 멜로 구도에서 비롯되는 것들이 많고 사실상 드라마도 한 영웅의 공적 행동을 그리기보다는 인간 일지매의 사적 삶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구자명(김민종)과 백매(정혜영)의 멜로는 이 사극의 또 한 축을 이룬다.

이처럼 최근 모든 드라마들은 그 스타일과 장르를 떠나서 멜로를 그 중심 축으로 세워두고 있는 이유는 우리네 드라마사를 관통하고 있는 멜로적 전통이 드라마 자체를 멜로드라마로 보는 경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거의 유일한 멜로 없는 드라마로서 ‘하얀거탑’은 호평은 받았지만 시청률은 저조했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익숙한 드라마로 여겨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드가 가진 멜로 없는 아드레날린 드라마들에 대한 열광에서 비롯된 장르 드라마에 대한 요구는, 우리네 정서와 맞닥뜨리면서 어떤 타협점을 찾게 됐는데 그것은 어떤 장르를 표방하더라고 그 속에 멜로적 상황을 세워두는 것이었다.

우리네 드라마 속에 늘 존재하는 멜로의 전통은 그 장르의 낯설음을 친숙한 사랑이야기로 중화시켜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멜로적 전통에 익숙한 드라마가 장르라는 새로운 옷을 입으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드라마 문법의 잔재로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네 드라마 세상은 미드 같은 스펙타클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멜로를 빼고는 대중성을 확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