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 최민식과 한석규의 브로맨스만큼 먹먹했던 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끈끈했던 관계를 브로맨스에 가깝게 그린 작품이다. 브로맨스를 넘어 로맨스에 가깝다는 관객들 반응처럼 이들이 보여주는 서로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우정과 신의 그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여성 출연자가 거의 없고 중년을 훌쩍 넘긴 남성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지지만 때론 가슴이 설레고 때론 먹먹해지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

 

관노로 태어나 하늘과 별을 보는 걸 좋아했지만 고개 드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아 땅만 보고 살았던 장영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보고 세종은 함께 누워 하늘과 별을 보자고 한다. 세종은 왕의 자리가 늘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야 하는 자리라서 올려다볼 수 있는 하늘이 좋았다고 한다. 가장 빛나는 별 북극성을 세종의 별이라고 말하며 천민으로서 자신의 별은 없다는 장영실에게 세종은 북극성 바로 옆에 있는 별을 “너의 별”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면서 세종은 하늘의 별이 백성들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의 백성을 올려다보는 애민정신이 드러나는 대사다.

 

하지만 왕이 관노인 장영실을 면천하게 해주고 나아가 관직까지 주며 총애하면서 사대부들은 반발하기 시작한다. 백성들이 모두 잘 살고 또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세종은 그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장영실 같은 인물을 필요로 한다. 중화 사대에 젖어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중국의 시간을 강요하던 시대. 조선만의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격루와 간의 같은 천문기구를 만들기를 꿈꾸고 장영실은 그 꿈을 현실화해준다.

 

세종과 장영실의 끈끈한 브로맨스가 관객들을 설레게 하고 또 먹먹하게 울리는 이유는 단지 그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 같은 관계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함께 꿈을 꾸고 실현해간다는 그 과정들이 주는 설렘과 먹먹함이 더해져 있다. 장영실은 세종이 그런 꿈을 꾸었기에 자신의 재주가 그런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하고, 세종은 장영실이 만든 그런 기구들이 있어 자신이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세상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허진호 감독은 역시 멜로의 대가답게 함께 꿈을 꾸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두 사람의 관계를 촘촘한 감정 선을 이어 그려나간다. 세종이 한 마디 그저 던진 말을 실현해내기 위해 장영실은 쉬지 않고 손을 놀리고, 세종은 그렇게 거칠어진 장영실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 그 마음이 전해진다. 비 오는 날 하늘의 별을 보고 싶다는 세종을 위해 장영실이 처소에 마련하는 ‘밤하늘(?)’은 마치 이들의 서사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그려진다.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함께 하늘과 별을 꿈꾸는 장면으로.

 

브로맨스가 이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무언가를 쉽게 꿈꾸거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제는 허망해진 현실의 판타지가 어른거린다. 꿈꾸고 노력한다고 그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 태생으로 결정된 대로 미래가 주어지는 세상. 그래서 더 이상 하늘을 보지 않게 된 우리네 청춘들이 처한 현실들이 저 세종 시절 장영실의 서사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남다른 울림을 만든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진 건, 도대체 하늘을 쳐다본 게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사진:영화'천문')

‘보좌관2’ 이정재는 과연 저 깊은 늪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의 첫 화 부제는 ‘탈피’다. 무슨 일인지 일단의 무리들에게 두드려 맞고 밑으로 굴러 떨어진 장태준(이정재)이 사력을 다해 그 둔덕을 오르면서 ‘껍질’에 대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껍질을 깨고 나와야 살 수 있고 날 수 있지만, 그렇게 나와 껍질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생명은 포식자의 먹잇감이 된다고 그 내레이션은 말한다. 꼭대기에 간신히 오르지만 그를 향해 달려드는 자동차를 보여주며.

 

이 시작이 말해주는 건 장태준이 이제 껍질을 벗고 본격적인 정치의 세계 속에 뛰어들 것이라는 예고다. 그는 자신이 따르고 존경했던 이성민(정진영) 의원이 법무부장관이 된 송희섭(김갑수)의 모략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고픈 것이 있어도 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송희섭의 도움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오랜 친구였던 고석만(임원희)기 차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되고, 그의 정치적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강선영(신민아) 의원과 소원해지지만.

 

국회의원이 되어 드디어 어느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장태준은 껍질을 깨고 나와 조금씩 송희섭의 주변을 정리하며 이빨을 드러낸다. 그래서 2회의 부제는 ‘독니’다. 이빨을 드러내고 물기 시작하자 능구렁이 같은 송희섭은 금세 눈치를 채고 뱀 새끼에서 이무기가 된 장태준을 제거하려 한다. 이빨을 드러내자 저편에서도 이빨을 드러낸다. 송희섭은 자신을 지원하는 이창진(유성주) 주진화학 대표를 이용하고 최경철(정만식)을 자신의 이빨로 지검장에 임명해 장태준을 조사하게 만든다.

 

장태준은 이미 꺼낸 이빨을 거둘 수가 없다. 뭐라도 물어야 하고 상대방이 무너질 때까지 싸워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송희섭은 만만찮다. 이창진과 합세하고 최경철을 통해 압박해오며 장태준을 점점 늪 속으로 빠뜨린다. 3화의 부제는 ‘늪’이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늪. 그래서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늪이 바로 장태준이 처한 현실이다.

 

이창진에 의해 그의 지역구에서 무단으로 강행되는 철거로 그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에 처하고, 과거 이성민 의원의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장태준이 불법적인 선거자금에 연루되어 있다는 걸 조사하는 최경철의 압박에 처한다. 여기에 장태준의 아버지가 선거 당시 돈을 받았다는 루머를 송희섭을 보좌하는 오원식(정웅인)이 퍼트리면서 그는 사면초가에 처한다. 점점 빠져들어가는 늪이다.

 

<보좌관2>가 흥미로워지는 건 만만찮은 정치 현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올바른 뜻을 펼치면 세상이 따라준다는 식의 순진함이 이 세계에는 없다. 대신 어떤 꿈을 펼치기 위해서는 위험천만하지만 껍질을 깨야 하고 때론 그 꿈을 방해하는 적폐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야 하며 저들이 밀어 넣은 늪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 이전투구의 리얼한 상황들이 시청자들을 빨아들인다.

 

그것이 너무나 힘겨운 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과연 장태준은 저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들의 현실과 싸우다 어쩌면 장태준조차 저런 괴물을 닮아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긴장감이 수시로 만들어진다. 장태준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강선영 의원의 보좌관 이지은(박효주)이 그렇고 한도경(김동준) 비서가 그렇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엘리베이터에서 슬쩍 강선영 의원의 손을 잡아주는 장태준에게서 어떤 일말의 믿음을 갖게 된다.

 

<보좌관2>는 그래서 장태준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 정치에서 어떤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정치 세계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다가 들어가고 나서 망가지는 걸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도했던가. 그래서 정치는 다 그래 하며 혐오하고 때론 무관심했던 시선들에 <보좌관2>는 말하고 있다. 그 망가져가면서까지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그 과정들을 통해 그래도 조금씩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는 거라고.(사진:JTBC)

‘땐뽀걸즈’, 혹독한 현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최고 시청률은 고작 3.5%(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이 2%대지만 시청률 하나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올해 KBS 드라마들을 통틀어 봐도 이 작품만큼 예쁘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땐뽀걸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실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이 동아리를 이끈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점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실제 사실을 이기는 허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 이규호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가 보듬은 댄스스포츠 동아리의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드라마가 그대로 재연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 <땐뽀걸즈>는 그 소재를 드라마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왜 거제여상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 같은 별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히 빠져 들었는가를 질문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대학을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이 아이들은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당연한 삶처럼 받아들인다. 

청춘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이 가려서 일견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스스로 접게 된 나름의 아픔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박세완)이 그렇고 모델이 꿈인 양나영(주해은), 한 때는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핑계로 꿈을 접은 이예지(신도현) 또 본래 춤에 관심이 있고 소질도 있지만 아버지 권동석(장현성)에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권승찬(장동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아내지만, 이규호 선생님(김갑수)은 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물론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유인책이지만 댄스스포츠 같은 전혀 현실에는 무익하다 싶은 일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그 순간 아픈 현실을 잠시 잊고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대회에 나가 노력을 인정받으면서 그것이 잠시 간의 판타지였을 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땐뽀걸즈>는 애초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이 대학 면접에서 왜 영화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어서요. 영화는 가짜잖아요. 현실은 진짜고. 전 사람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환상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뭐 그 환상이 가짜고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 그거를 보는 사람들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 영화만큼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순간 만큼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시은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현실에 치여 꿈꾸지 않던 자신들을 댄스스포츠라는 환상(?)을 통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규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익한 환상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행복들이 있어 그 어려운 현실들을 버텨내고 통과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작은 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낮은 시청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던 그 순간들만큼은 충분히 행복감을 주었던 드라마가 바로 <땐뽀걸즈>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현실에 꿈이 있어 비로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사진:KBS)

이엘·배두나에게 버림받은 차태현 통해 '최고의 이혼'이 하고픈 이야기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 첫사랑 진유영(이엘)이 갑자기 내뱉은 이 말에 조석무(차태현)는 충격에 빠진다. 조석무는 진유영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목격한 후, 그 찜찜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진유영을 찾아가 생각해준답시고 그 사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진유영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우리가 흔히 이혼이나 헤어짐에서 상상하는 그런 극적인 이유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계기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고 끔찍한 사건들을 그 헤어짐의 이유로 제시하듯이. 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그 사유가 자잘한 일상의 누적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혹은 하필이면 상대방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기막힌 타이밍’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첫 회 만에 이혼을 하게 된 조석무와 강휘루(배두나)의 이혼 전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어지자”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강휘루의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아주 자잘한 일상 속에 담겨진 무수한 상처들이 느껴진다. 강휘루의 앞에서 습관처럼 나오는 조석무의 한숨이나,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걸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해대며 치우고 또 치우는 조석무의 행동은 강휘루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물론 조석무는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출동해야 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고객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힘겨워한다. 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요구처럼 보이지만 조석무는 그걸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래서 조석무는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비관주의자가 됐다. 젊은 날에는 꿈도 있어 기타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고양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산골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에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즐기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강휘루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한다. 

그런 일상들이 오래도록 겹치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해가 깊어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동화작가가 꿈인 강휘루는 자신이 쓴 원고를 조석무가 한번쯤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식탁 위에 흩어 놓지만, 실수로 물을 흘려 젖은 원고를 조석무는 정리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잡동사니 정도로 여긴다. 결국 폭풍우가 치던 날, 문을 두드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 때문에 두려워 조석무에게 빨리 와 달라 보낸 문자의 답변으로, 문밖에 있는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문자를 받게 된 강휘루는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조석무가 첫 사랑인 진유영과 헤어지게 된 이유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는가의 이유는 진유영의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였던 아버지에 그토록 의지했던 이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도 음악의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유영이 작곡한 곡을 조석무는 그가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표절”이니 “쓰레기”니 하는 지독한 표현으로 폄하해버린다. 물론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지만, 그 말은 아마도 진유영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상처로 남았을 게다. 그리고 심지어 밴드부에서 진유영이 만든 곡에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싸구려 꽃무늬 변기 커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보면서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사람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러니 조석무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 진유영의 마음이 이해될 밖에.

물론 여기에는 일본 원작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일본인들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정서가 깔려 이런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석무가 충격을 받는 건, 그가 무심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몰라서다. 알고 보면 조석무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린 반려견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린 일 때문에 지금껏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경험은 조석무에게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깔끔한 것에 대한 집착, 부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이혼>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본래 비극이 가진 가장 큰 기능은 위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그들이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 관계의 비틀어짐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갖게 되는 ‘연민’의 감정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가 아니라 한 치 눈앞의 비극적 상황들을 모른 채 그 속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의 소소함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 

<최고의 이혼>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선택들이 굉장한 사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뒤늦게 그 이유들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알아가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은 그래서 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결혼’의 반대말처럼 다가온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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