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령, 유해진, 이승환의 삶 바꾼 <휴먼다큐 사랑>

 

이제 곧 5월이다. 가족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계절. MBC <휴먼다큐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벌써 10. 이 기적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10주년 특집으로 다음 달부터 방영되는 <휴먼다큐 사랑>은 지금까지 달려온 그 감동적인 10년의 세월을 한 편에 담아 미리 보여주었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2013년 방영됐던 해나의 기적에서 기도 없이 태어나 튜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던 해나. 해나의 가족은 작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인공기도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해나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하지만 그 한 줌의 재로 남은 해나는 여전히 가족의 품속에 남아있었다. 해나의 아버지는 고통스럽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늘 해나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밝게 웃던 해나의 그 미소는 아마도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작년 방영됐던 꽃보다 듬직이의 임듬직은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태어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 아무도 입양을 하지 않던 듬직이를 보듬어준 건 아동양육시설 삼혜원 202호 엄마들과 아이들이었다. 특히 당시 5살 예린이는 장애인 시설로 떠나던 듬직이를 보며 듬직이 가지마!”라고 계속 울먹였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듬직이는 결국 그렇게 다시 삼혜원으로 돌아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듬직이 바라기 모임이 생겨 틈틈이 듬직이를 챙겨주고 있는 것. 그 모임의 일원 중 한 사람은 듬직이를 보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내 가슴 한 켠에도 따뜻한 마음이 있구나하고 느끼게 된다고. 잘 자라준 듬직이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변화들이다.

 

기적은 이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연예인들에게도 일어났다. 작년 방영됐던 날아라 연지편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배우 김성령은 그게 계기가 되어 뇌종양을 앓던 연지와 연지네 엄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내가 연지를 위로해야 하는데 연지가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는 내레이션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김성령에게 연지네 엄마는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가는 날 김성령이 입금해줬다는 5백만 원에 대해 그녀는 너무 큰 돈이었다고 했다. 수치로는 도저히 가치를 매길 수 없는.

 

2013년 방영된 붕어빵 가족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배우 유해진 역시 이 아홉을 입양한 놀라운 가족과의 인연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 막내 행복이의 돌잔치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는 유해진은 불쑥 붕어빵 가족의 엄마 윤정희 누님을 찾아가 봉투를 내밀었다고 했다. 끝까지 자기 힘으로 키우겠다며 봉투를 다시 유해진의 손에 쥐어주자 그가 손을 꼭 쥐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011년 방영됐던 엄마 미안편의 희귀병을 앓던 네 살 서연이는 벌써 8살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무려 13번의 수술. 그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밝게 웃어 엄마를 울게 만들었던 네 살짜리 아이 서연이. 그녀는 아직 병원에 있었지만 훨씬 밝아진 얼굴로 살아가고 있었다. 목에 주사 맞는 게 싫다면서도 팔을 내밀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2006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던 창원씨는 영란씨를 먼저 보낸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너무 힘겨워 촬영하는 PD에게 안아줘요라고 말하던 창원씨의 모습은 지금도 뭉클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이 다큐를 보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곡을 만들었던 가수 이승환은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진실된 사랑과 가족애. 소소해보이지만 그래서 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낸 <휴먼다큐 사랑>은 그렇게 10년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놀라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5월에는 어떤 기적들이 우리들을 찾아올까. 실로 각박해진 삶이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메말라진 현실. 이 건조한 우리네 삶을 촉촉하게 적셔줄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가 이제 5월에 펼쳐진다.

 

MBC 교양국 해체에 왜 이승환은 분노했을까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가진 힘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가수 이승환에게는 각별했던 모양이다. 2006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방영된 너는 내 운명편 이야기다. 간암 말기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서영란씨와 이를 알고도 결혼한 정창원씨의 이야기를 본 이승환은 깊은 감동을 받고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곡을 써내려갔다. 그 노래가 바로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히든싱어3(사진출처:JTBC)'

아마도 이 감흥은 이승환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게다. 당시 너는 내 운명을 본 시청자들이라면 당시 죽음을 앞둔 서영란씨와 정창원씨가 보여줬던 병원에서의 결혼식이 다시금 눈앞을 가릴 것이고, 앞에서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인터뷰 도중 PD를 껴안고 울어버린 정창원씩의 모습이 여전히 아른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영란씨는 서둘러 떠나버렸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이승환의 곡은 그래서 이제 그에게만 특별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당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토록 간절하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했던 모든 이들을 위한 곡으로 남았다. 이것은 좋은 다큐멘터리 한 편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이다. 떠나버린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남겼고, 그 다큐멘터리는 노래로 탄생됐으니 말이다.

 

이승환이 MBC 교양국 해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그래서다. 그 기적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했던 그 PD들이 제작과는 무관한 부서로 보내진다는 사실이 어찌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일일까. 교양국이 해체되어 PD들은 예능국으로 보내지거나 아니면 그간 해왔던 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보내지게 되었다. 당시 <휴먼다큐 사랑>은 물론이고 <아마존의 눈물> 같은 대작을 기획했던 윤미현 PD는 지금 어느 부서로 가있는지 조차 모르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감동을 선사하고 시청자들을 위해 올바른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외압과 싸워온 분들이 좌천되고 사라져가고 있는 건 슬픈 일이다. 그런 점에서 MBC 교양국의 해체는 말 그대로 교양 없는’ MBC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보인다. 이승환의 곡을 빌려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그래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또 누구보다 자기 일에 소신을 갖고 일해 온 사람들이 눈앞에서 밀려나는 세상에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 지난 정권부터 계속되어온 MBC의 추락은 그래서 단순한 시청률 몇 프로의 수치만으로는 더 이상 회복될래야 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5주년 맞은 '휴먼다큐 사랑'의 끝나지 않은 사랑이야기

아이를 낳고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소윤이 엄마. 곧 떠날 몸이지만 소윤이의 돌잔치를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의학적으로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는 그 몸으로 소윤의 첫 생일날 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힘겹게 '곰 세 마리'를 불러주고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소봉씨가 소윤이에게 해준 처음이자 마지막 생일 축하가 되었다.

'휴먼다큐 사랑 - 엄마의 약속'편을 통해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소봉씨. 그렇게 엄마가 떠나고 이제 5살이 된 소봉씨를 빼닮은 소윤이는 '곰 세 마리'를 불러주면 싫어할 정도로 그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소봉씨를 보내고 소봉씨가 쓰던 두건을 쓴 채 유방암 투병을 하고 있는 소봉씨의 엄마는 그 병조차 "몸소 체험하라고" 소봉씨가 '동지의식'으로 내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소봉씨를 추억할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 건강을 찾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소봉씨의 사랑은 소봉씨 가족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심한 장애를 갖고 태어나 그 누구도 입양해가지 않던 '로봇다리 세진이'. 유난히 그를 사랑하는 독종엄마(?)의 아들이 된 세진이는 그 장애를 이기고 세계 수영대회에서 여러 번 메달을 딴 차세대 수영 기대주가 되었다. 재수 없다며 더럽다며 다른데 가서 수영하라는 편견을 이겨내며 수영을 배운 세진이는 물 속에만 들어가면 하늘을 날고 있는 자유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울면서 "일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하던 그 세진이는 이제 중학교에 입학에 작은 영웅으로 불리고 있다. '휴먼다큐 사랑'을 통해 알려진 세진이의 삶은 이제 그가 엄마와 함께 하는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편견을 앓는 세상의 장애를 일깨워주고 있다. 공평한 세상. 자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이겨낸 세진이는 이제 그 공평한 세상을 위해 매일 혹독한 연습을 이겨내고 대회에 나가고 강연을 다닌다. 장애와 아픈 아이들을 위해, 입양을 못간 아이들을 위해 뛰는 세진이의 사랑은 그렇게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을 좀체 느껴보지 못했던 창원씨.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나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영란씨는 말기암 투병 속에서도 밝게 웃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영란씨에게 "아직은 안된다"며 힘내라고 말하는 창원씨 역시 강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그녀가 잠이 들면 비로소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영란씨는 창원씨가 있기 때문에 살아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없으면 죽을 거 같아서 한 번도 마음 편히 가라고 얘기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이 "너무 못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갈라놓는 이유가 죽음이 된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어 예쁘게 사진찍자고 영란씨에게 웨딩드레스를 입힌 창원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너무 예뻐서 못 잊을 거 같다"고 말했다. 그 웨딩드레스가 창원씨가 영란에게 해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꽤 세월이 흘렀지만, 창원씨의 시간은 그 때 그 시간에 멈춰 있었다. 영란이 선물해준 시계는 이제 가지 않는다. 시계를 뒤로 돌려 "2555일만 가면 우리는 막 웃고 있을 것"이라는 창원씨의 마음 속에 영란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모든 기억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시간"을 찾기 위해 그는 지금도 기억 가장 먼 곳으로 떠나 고행하듯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가정의 달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시청자들을 감동하게 했던 '휴먼다큐 사랑'. 2006년 방영되어 5주년을 맞았지만, 그 때 보았던 그 사랑은 여전히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여기며 그 소중함을 알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가치는, 그들의 힘겨운 시간들 속에서 한 순간조차 아름다운 삶의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휴먼다큐 사랑'은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떠나갈 몸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이고, 그 사랑은 우리 생이 다해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휴먼다큐 사랑'은 우리에게 넌지시 전해주었다.

‘너는 내 운명’종영에 생각해봐야 할 것들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막장드라마라고까지 불렸던 ‘너는 내 운명’이 종영했다. 종영에 즈음에 이 막장드라마의 성공방정식을 분석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욕을 먹었어도 성공은 성공이라는 생각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저에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불황에 즈음한 관대함(?) 같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는 ‘너는 내 운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TV의 시청률 지상주의는 늘 있어왔던 것이지만, 이처럼 노골적으로 시청률만을 겨냥한 막장드라마들이 창궐한 적은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설정과 캐릭터들을 극단적인 감정대립으로 몰고 가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중독시키는 이 막장드라마들은 이제 창피해하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니는 실정이다. 이유는? 40%에 육박하는 시청률 때문이다. 시청률에서 성공했으니 욕을 먹어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연실 TV는 불황을 외친다. 불황이니까 이런 극단적인 상업적인 선택을 이해하라는 듯이.

그런데 과연 시청률이 되기에 욕먹어도 그만이고, 또 불황이어서 이 선택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까. 시청률이란 양적인 잣대로서 TV가 시청자를 호명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다. 즉 시청률에는 대중들 개개인의 성향이나 그 프로그램을 보는 각각의 이유 같은 질적인 판단기준은 빠져있고 그저 뭉뚱그린 수치만이 존재한다. 시청률 40%라고 얘기할 때 그것은 실로 애매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많이 봤다”는 그 수치의 의미는 “어떻게 봤다”는 의미 따위는 상쇄되어 있다.

그러니 가치판단이 빠진 이 시청률의 세계에 들어가면 욕을 먹든, 중독적이든, 자극적이든, 상관이 없다. 수치만 높으면 그만인 것이다. 수치를 높이는 방법은 간단할 수도 있고 꽤 어려울 수도 있다. 만일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가 프로그램의 질을 생각하면서 수치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오로지 양적인 수치만 높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면 그것은 의외로 쉽다. 욕먹는 것까지 감수한다면 사실 못할 게 없어진다.

드라마는 꽤 오랜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장르다. 따라서 과거 시청률에 영향을 미쳤던 공식적인 설정들을 그저 끌어오는 것만으로 일단 기본을 만들 수 있다. 그 기본 위에 좀더 극단적인 인물들 간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면 시청률은 더 치솟아 오른다. 막장드라마의 기본 구조가 가족극에 복수극을 끼워 넣는 것은 이것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가족극 만큼 오랜 노하우를 갖고 있는 분야는 없다. 이미 신파극에서부터 우리는 그 가족극의 성공 코드들을 갖고 있었고, 이것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가족극의 ‘기본’을 만들어준다.

가족극에 붙여지는 복수극은 가족극의 상황을 극단으로 만들어내는 장치가 된다. 유치하게 보일지 몰라도 권선징악의 이야기 속에는 늘 가족과 복수가 근간을 이룬다. 가족극의 틀 속에서 남녀 간의 사랑과 배신 혹은 가족 간의 대립구도가 점차 발전해나가서 끝장까지 이르게 되면 복수극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 가족극과 복수극을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핏줄의식이다. 따라서 이 극단적인 대립이 보여주는 것은 결국 가족 이기주의의 극단에 불과하다. 주제의식 같은 것은 애초에 없고, 오로지 시청률을 끌어 모으기 위한 클리셰들의 반복만이 거기에는 존재한다.

그런데 왜 보냐구? 그게 거기 있으니까 보는 것이다. TV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한 구석에서 틀어져 보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매체가 되었다. 그러니 왜 보냐고 묻지 말고, 왜 그게 거기 있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왜 꼭 그렇게 노골적이고 막장으로 가는 드라마가 거기 자리하고 있어 무심코 바라보던 시청자의 눈을 중독시키는가를 물어봐야 하는 것이다.

막장드라마가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욕하면서도 본다는 기사가 나올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그 시청률이라는 잣대가 자꾸만 아무 상관없는 시청자들까지 호명하기 때문이다. 시청률 40%를 내세워 마치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것을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순간, 그 시청률에 포함되는 시청자들이라는 익명의 덩어리들 속에 자신까지 갑자기 불려지는 그 불쾌한 기분. 불황이라는 말을 마치 주문처럼 읊어대며 막장을 정당화시키려는 그 당당하지 못한 태도는 막장드라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는 장차 미래의 TV를 책임질 많은 이들을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불황이니까 막장드라마도 된다고? 아니다. 막장드라마가 가진 당장의 달콤함은 계속 되어질 더 큰 불황을 가져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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