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 이 단순한 소박함에 담긴 삶의 비의 

삼시세끼 light

이제 추자도를 떠나야 할 시간, 차승원과 유해진은 마지막 밥상을 차린다. 아침 일찍 손님으로 왔던 김남길을 마중해주고 뒤늦게 차린 아침 밥상은 소박하다. 전날 솥밥으로 먹고 남은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눌은밥과, 역시 전날 ‘피시앤칩스’에서 칩이 되지 못한 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끓인 된장찌개, 그리고 김남길이 가져온 달걀 남은 것에 양파와 파를 송송 쓸어 부쳐낸 달걀말이, 먹고 남은 열무김치다. 그리고 특별하게 된장찌개 안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투망에서 찾아낸 소라 몇 개가 들어갔다. 

 

tvN ‘삼시세끼 light’가 보여주는 끼니의 풍경은 이처럼 한결 같다. 물론 가끔은 바다에서 참치 같은 힘을 가진 부시리를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처럼 낚아와 포를 뜨고 감자까지 튀겨낸호사스런 ‘피시앤칩스’가 한 상 차려지기도 하지만, 그런 호사스러움에서 느끼할 것 같다며 열무비빔밥을 ‘반찬’으로 더해넣는 촌스러운 맛을 잃지 않는다. 대단할 것 없는 끼니들이 하루 세 끼씩 채워지고 그게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음식을 먹고 우리의 몸이 만들어지듯. 

 

그런데 그 끼니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단순한 밥상에서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야기들의 흔적들이 보인다. 눌은밥은 유해진이 낯선 오분도미로 연거푸 밥짓는데 실패한 후 추자도에서 비로소 성공시킨 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된장찌개에 들어간 감자에서는 전 날 먹은 피시 앤 칩스와 그걸 가능하게 했던 바다낚시의 짜릿한 추억들이 연달아 낚아올려지고, 달걀말이에서는 추자도 형들 만나러 오던 김남길이 손에 잔뜩 들고 있던 계란 한 판이 떠오른다. 

 

남은 걸 탈탈 털어 마지막 밥상에 올라온 열무김치는 차승원이 폭염 속에서도 오자마자 뚝딱 만들어냈던 광경과 피시앤칩스의 호사스러움이 주는 느끼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열무비빔밥이 떠오른다.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쓰인 장작불의 열을 모으기 위해 쓰인 이른바 ‘열모아’는 또 어떤가. 정선에서 김고은이 손님으로 왔을 때 유해진이 함께 쇠를 자르고 구부려 만들었던 그 광경이 떠오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열모아 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끓여지고 구워지고 했던가. 

 

‘삼시세끼’는 이처럼 하루 세 끼의 밥상의 정경을 통해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무심하게 만들어져 밥상 위에 올라온 것 같지만, 거기에는 유해진과 차승원 그리고 그 곳을 찾은 손님들이 함께 해온 생활과 시간의 흔적들이 더해져 그 느낌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그러고 보면 ‘삼시세끼’라는 제목이 참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만큼 단순하고 소박하게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것이 있던가. 

 

김훈은 에세이 ‘허송세월’에서 그가 사는 동네의 허름하고 싼 식당 이야기를 하면서 ‘밥이 아무리 싸고 남루해도 먹는다는 행위는 인간에게 경건한 것’이라고 했다. 밥과 노동의 순환을 이른바 ‘밥벌이’라는 한 단어로 묶어내 인간 삶의 비의를 꺼내놓은 이 작가는 모든 인간이 먹는 밥 한 끼에 담긴 숭고함을 읽어냈던 것일 게다. 

 

‘삼시세끼’는 유해진과 차승원의 평범한 세 끼의 풍경을 담는 것이지만, 그걸 위해 밭으로, 바다로 나가 재료를 구해오고 인간의 지혜가 누적된 요리라는 노동을 통해 맛난 밥상을 차려 즐겁게 먹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사는 삶의 본질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유해진이 구해오는 식재료들이나 때론 보다 효율적으로 요리를 하기 위해 고안해 만들어내는 도구들에서도 본래 삶과 밀착되어 있던 문명의 본질 같은게 보인다. 갈수록 고도화되면서 삶과 유리되어 삶을 소외시켜가는 도구들과는 사뭇 다른 진짜 본질이. 

 

3박4일 간의 촬영이 끝나고 이제 추자도를 떠나는 시각, 영상은 괜스레 그들의 그간 생활이 묻어난 공간들을 편집해 담아놓는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나서 땀에 절은 옷을 빨아 ‘햇볕을 먹이던’ 그 빨래들을 보여주고, 함께 투탁대면서 밥을 해먹었던 평상을 비춰준다. 또 매일 설거지를 하던 수돗가와 같이 깔깔 대며 TV를 보던 방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추억의 공간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정리되어 비어가고 떠나는 차승원과 유해진을 담아낸다. 

 

왁자했지만 결국은 하루 세 끼의 밥을 챙겨먹는 하루하루의 힘겨움과 즐거움의 시간들이 채곡채곡 채워져 하나의 삶을 이루는 건 아닐까. 그렇게 시간을 한참 보내다 하나하나 정리하고 떠나고 나면 그 빈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추억의 재잘거림들이 여운처럼 떠다니는 게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삼시세끼’를 보다 보면 그 단순함에 담긴 삶의 비의가 엿보인다. (사진:tvN)

‘언니네 산지직송’, 여성 예능이 보여준 색다른 정경

언니네 산지직송

“분위기가 오늘... 갯장어 잡는가 보다.”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 나온 차태현은 예능 고수답게 정확하게 그 날 그들이 해야할 일을 꿰뚫어본다. 사실 그건 시청자들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남해의 멸치와 단호박, 영덕의 복숭아와 물가자미에 이어 고성으로 이어진 ‘언니네 산지직송’을 통해 그들이 아침에 먹는 음식에 그 날 해야할 일이 들어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갯장어 음식점에 먼저 들어온 차태현이 금세 분위기를 파악해버린 이유다. 

 

하지만 차태현이 이토록 예능 눈치가 빨라진 건 그가 꽤 많은 프로그램들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박2일’ 시즌2와 시즌3를 함께 했고 ‘용띠클럽’, ‘거기가 어딘데?’, ‘서울촌놈’, ‘어쩌다 사장’까지 차태현은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절의 예능 단골 출연자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언니네 산지직송’에 게스트로 출연하자 새삼스레 현재 변화된 예능의 풍경이 그려진다. 차태현이 맹활약해온 예능의 시대에 당연한 듯 보였던 남성 출연자들이 주축이 되던 풍경과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니네 산지직송’은 누가 뭐래도 염정아가 그 중심이고 그를 받쳐주는 박준면, 안은진과 더불어 막내 덱스가 청일점으로 고정 출연한다. 남성 출연자들로만 채워지던 ‘1박2일’이나 여성 출연자가 한두 명씩 들어가 있던 ‘패밀리가 떴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과 비교해보면 이 구도는 정반대다. 여성 출연자들이 주축이고 오히려 덱스 같은 남성 출연자가 한 명 더해진 구도이니 말이다. 

 

사실 제목부터 ‘언니네’를 붙인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애초 기획한 여성 예능의 면면을 드러낸다. ‘삼시세끼’ 산촌편에 윤세아, 박소담과 함께 출연하면서 보여줬던 염정아의 매력적인 면면이 ‘언니네 산지직송’에는 중요한 기획 포인트였다고 생각된다. 이른바 뭐든 많이 요리해내는 ‘손 큰 언니’로서의 매력이 그것이다. 이런 인물이 산지에서 바로 나온 식재료로 음식을 해먹는다면 장관(?)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제작진은 그렇게 생각했을 게다. 

 

실제로 염정아는 ‘언니네 산지직송’에서도 식욕을 자극하는 요리들을 크게 크게 선보였다. 생멸치를 튀기고 구워 내놨고, 물가자미를 통째로 전을 부쳤다. 또 없는 재료로도 뚝딱 한 끼 요리를 해내는데, 계란탕 하나를 끓여도 계란 한 판을 더 쓰고, 참치비빔밥을 만들어도 캔 몇 개를 따서 넣는 손 큰 면모들을 보여줬다. 

 

염정아가 중심을 잡으니 베짱이들이지만 열심히 언니를 돕고 또 감성 충만한 면모로 색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박준면과 안은진 또한 프로그램에 점점 익숙해졌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이 처음인 안은진은 갈수록 발랄하고 당찬 모습이 두드러진다. 플러팅의 고수라는 덱스가 막내로 들어왔지만, 흔한 남성 예능들이 해왔던 멜로적 분위기 대신 티격태격하는 남매 케미를 보여준다.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민들조개를 캐러 가자는 안은진에게 덱스가 차라리 데이트가 하고 싶다고 말하라며 농담을 하자 순간 “인성 문제 있어?”라고 받아치는 안은진의 재치가 그것이다. 

 

염정아가 중심이 되어 세워진 여성 예능의 틀이어서인지 ‘언니네 산지직송’은 게스트들의 면모도 남다르다. 직접 일을 해서 식재료를 얻는 콘셉트를 갖고 있어서 그런 면도 하지만, 게스트들은 모두 일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건 일터에서도 그렇지만 함께 지내는 숙소에서도 마찬가지다. 황정민도 박해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깔끔하게 청소를 하거나 요리를 하는 모습으로 염정아가 엄지척을 하게 만든다. 집안 일도 잘하는 남성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남성예능에서 출연자들이 베짱이 콘셉트로 주로 웃음을 주려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사실 ‘언니네 산지직송’이 굉장히 색다른 소재나 시도를 하고 있는 에능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리가 늘상 봐왔던 여행 예능에 노동과 쿡방, 먹방이 더해져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평이해보이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풀어가는 여성예능의 풍경이다. 염정아라서 열리게 된 색다른 정경이 아닐 수 없다. (사진:tvN)

‘더 에이트 쇼’, 블랙코미디와 잔혹극 속에 담긴 현대사회의 자화상

더 에이트 쇼

“편의점 알바 시간당 9860원. 유통기한 지난 김밥으로 끼니를 공짜로 해결한다 쳐도 하루 일당 78,000원. 매일 늘어나는 9억 사채 빚의 이자의 이자도 안된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는 어쩌다 선배라는 작자의 사기에 속아 돈을 끌어다 쓰고 사채 빚에 허덕이는 진수(류준열)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그는 이렇게 해서는 평생 빚쟁이들에게 쫓겨다닐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하고는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그 순간 문자 하나가 날아온다. ‘당신이 포기한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습니다.’ 결국 진수는 이 기막힌 쇼에 참가하게 된다. 

 

진수가 사채 빚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결국 죽으려다 쇼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짧게 담은 ‘더 에이트 쇼’의 오프닝에 가까운 장면들에는 현재 한국 사회가 처한 성장의 사다리가 끊긴 현실이 담겨있다. 진수에게 사기를 친 선배는 쥐꼬리만한 월급 모아봤자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다며 “우리 세대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돈은 투자로 버는 것이고 인생은 한방이라고. 이 대목을 그저 대사로 치부할 수 없는 건, 실제로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몰두하는 현실이 여기에 담겨 있어서다. 

 

그런데 진수가 참여한 쇼는 바로 그 현실의 축소판처럼 펼쳐진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누적되는 돈을 보고 좋아했지만, 8층으로 구획된 공간에 자신을 포함한 8명의 참가자가 있고 그 층에 따라 누적되는 돈의 액수 역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는 걸 알게 된다. 1층이 만원씩 누적되지만 2층은 2만원, 3층은 3만원, 4층은 5만원, 5층은 8만원, 6층은 13만원, 7층은 21만원, 8층은 무려 34만원이 누적된다. 즉 아래층 두 개를 합한만큼 위층의 시간당 누적 금액이 되는 셈이다. 처음 쇼에 들어올 때 선택한 숫자에 의해 층이 나뉘었지만 그것으로 이들이 얻는 돈이 달라졌다. 그리고 돈은 이 조그마한 8명의 사회에서도 권력이 될 수밖에 없다. 

 

이건 우리가 현실에서 시급이니 몸값이니 연봉이니 표현하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노력해서 더 높은 몸값을 받을 수 있었던 성장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대신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교육이 달라지고 또 미래가 달라지는 현실은, 이 쇼가 보여주는 복불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 1을 선택한 자는 똑같은 시간에도 가장 적은 돈을 벌 수 있는 처지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결국 시간이 돈인 이 쇼에서 그 정해진 시간은 계속 줄어들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어떻게든 그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에이트 쇼’라는 제목에서 우리가 이미 어느 정도 예감한 것처럼, 쇼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건 ‘재미’다. 재미 있는 쇼는 시간을 늘려서라도 계속 보고 싶어하지만, 그렇지 못한 쇼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8명은 시간을 늘리기 위한 갖가지 쇼를 선보인다. 처음에는 다소 평이한 쇼로 시작하지만 그건 점점 자극적으로 바뀌게 되고, 누적된 돈에 의해 위계가 생겨난 이 8명의 소사회에서는 이른바 부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로 나뉘어 노동의 착취와 억압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단지 8명이 모여 저마다 늘어나는 상금을 최대한 많이 얻기 위해 벌이는 쇼지만, ‘더 에이트 쇼’는 여기에 엄청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자본주의 사회가 갖고 있는 시간, 계급, 노동의 이야기가 담기고 그 착취와 전복의 서사가 그려진다. 나아가 재미에 경도된 사회, 갈수록 자극적인 영상에 중독된 사회를 꼬집고, 1층에서 8층이라는 수직적 공간에 담긴 권력을 그려내며 나아가 가진 자들의 욕망과 배설이 못 가진 자들에게 피해로 누적되는 자본화된 세상의 불평등한 환경 차별도 은유한다. 일종의 서바이벌 형식을 가진 가상쇼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 풍자와 은유들은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을 만든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서사들과, 갈수록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쇼가 만들어내는 서바이벌 특유의 말초적인 재미들이 펼쳐지지만, 그걸 곱씹다보면 거기 담긴 현실 은유가 주는 블랙코미디와 풍자들이 키득키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물론 이 블랙코미디가 주는 웃음은 잔혹극으로 변해가는 일련의 충격 앞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되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8회를 쉴 틈없이 몰입감 있게 볼 수 있는 재미와 더불어, 끊임없이 의미들을 찾게 되는 작품. 넷플릭스가 야심을 가질만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사진:넷플릭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추앙한 제주의 삼춘들

우리들의 블루스

옴니버스 구성으로 여러 인물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유독 노동하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로 나가는 해녀들이 계속 해서 물밑으로 뛰어들고, 새벽부터 열리는 경매장에는 생선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붐빈다. 어시장에는 억척스럽게 생선 대가리를 치는 이와 배고픈 이들의 시장을 달래주는 순댓국을 끓이는 이, 생선에 뿌려줄 얼음을 나르는 이, 한편에서 야채 등을 파는 이와 커피를 파는 이들이 뒤엉켜 소란하다. 어시장 바깥에는 좌판을 늘어놓고 작업복 같은 옷들을 파는 이가 지나는 이들을 유혹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겉보기엔 없어보여도 알짜배기 시장 상인들의 돈을 유치하려 일일이 인사를 다니는 은행장의 모습도 보인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래서 제주에서 온 몸으로 부딪쳐 살아가는 이들의 땀 냄새가 물씬 풍겨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양복을 차려 입고 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하는 은행 지점장 한수(차승원)는 속 빈 강정이다. 제주에서 하루하루 노동하며 살아가는 친구들이 보기엔 서울 가서 성공해 금의환향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골프 유학을 보낸 딸과 아내 때문에 등골이 휘고 돈을 빌리러 다니는 처지다. 그가 생선 대가리 쳐서 건물 올린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한 은희(이정은)의 마음을 등쳐 돈을 빌려보려 한다. 도시 삶의 절박함이 우정, 첫사랑까지 이용해먹게 만든 한수는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하면서도 선뜻 은희가 부친 돈을 다시 되돌려준다. 그리고 무엇이 진짜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가난했지만 억척스럽게 제 길을 열어온 은희를 보며 자신도 새 출발에 용기를 얻는다. 

 

어려서 동석(이병헌)이 좋아했지만 뭍으로 돌아가 결혼해 아이까지 가진 선아(신민아)는 오랜 우울증 때문에 이혼도 당하고 아이까지 빼앗긴다. 절망감에 제주 바다로 뛰어들지만 해녀들이 그를 구해내고, 자꾸만 우울의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그에게 동석은 작은 빛을 열어준다. 그런데 그 우울증으로부터 선아를 구원해낸 힘은 놀랍게도 동석이 트럭을 몰고 제주 구석구석 물건을 팔러 다닐 때 녹음해 틀어놓곤 하는 소리다. “프라이판 프라이판 뺀찌 망치 도라이바 윗도리 아랫도리-” 노동의 소리가 우울의 늪으로부터 선아를 삶의 일상으로 끌어올려준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둘도 없는 절친이었지만 공주 대접을 받는 미란(엄정화)과 무수리 취급을 받아도 내색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온 은희의 에피소드에도 노동에 대한 헌사가 깃들어 있다. 우연히 은희의 일기장에 자신을 나쁘고 이기적이며 이중인격자라고 쓴 걸 보게 된 미란이 절교선언까지 하게 됐던 갈등은, 은희가 미란이 일하는 마사지샵을 찾아와 마사지를 받으면서 풀린다. 돌처럼 굳어버린 은희의 등짝에서 미란은 그가 살아낸 삶의 무게를 느끼고, 역시 야무진 미란의 손길에서 은희는 그 역시 공주처럼 살아오지만은 않았다는 걸 느낀다. 그 어떤 말보다 서로의 노동의 흔적이 묻어난 등짝과 손길이 그 자체로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켰던 것이다. 

 

고등학생 신분에 아이를 덜컥 갖게 되어 부모가 된 영주(노윤서)와 현(배현성) 때문에 갈등이 폭발한 그들의 부모 호식(최영준)과 인권(박지환)의 이야기에서도 자식 하나보며 자신을 희생해온 이들의 노동이 겹쳐지며 화해의 물꼬를 트고, 도시에서 온 깍쟁이에 헤픈 여자라는 소문과 물질에서 과한 욕심을 부리는 것 때문에 해녀들로부터 배척당하던 영옥(한지민)은 그 욕심이 다운증후군을 가진 언니를 부양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해녀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우리들의 블루스>는 노동하는 이들이 가진 삶의 경륜이나 생명력 같은 것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힘으로 제시된다. 아마도 제주를 굳이 그 배경으로 삼은 뜻 역시 그 척박한 섬의 만만찮은 삶을 살아낸 이들이 치열한 노동을 통해 갖게 된 강인한 생명력을 추앙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량도 별로 없지만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옥동(김혜자)이나 춘희(고두심) 같은 삼춘들이 마치 이 모든 인물들을 넉넉히 품고 있는 제주할망 같은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글:PD저널,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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