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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가 그리는 영조에서 떠올리게 되는 현재

“땅에서 일하는 자가 없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먹고 입을 것인가. 누가 누구 덕분에 살고 있는가. 그런 수탈은 없어져야 한다. 세제인 내가 언젠가 보위를 잇는다면 땅의 세금은 땅의 주인에게 매길 것이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정일우)은 양반들을 위해 열린 연회에 나가 그렇게 선포한다. 살주(주인을 죽인다) 사건에 연루되어 그들을 비호했다며 사대부들에 의해 폐위 위기에까지 몰린 연잉군이 오히려 사대부들을 공격하는 발언을 한 건, 사실상 자신을 지키려 애쓰는 경종(한승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스스로 세제 자리에서 물러나려 한 것. 하지만 이런 연잉군의 행보는 민심을 오히려 돌려놓는 반전의 이유가 된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역사적 인물인 영조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현재적 해석을 상상력으로 덧붙였다. 노론과 소론이 벌이는 당쟁 속에서 이른바 ‘탕평책’을 써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지 않으려 했던 영조는 특히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애민정책을 편 왕으로 알려져 있다. 군역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균역법을 실시했고, 차별받는 서얼들에게서 사회 진출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첩의 자손에게도 상속권을 인정해 주었다. 

<해치>는 영조의 이런 민초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의 출신성분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천민 출신이었던 무수리로 숙빈에 오른 이가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는 것. 그래서 차별받고 일찌감치 궁 바깥으로 내몰리던 인물이었기에 오히려 그들의 곤궁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잉군 이금이 부정으로 얼룩진 과거 때문에 연실 낙방하던 박문수(권율)와 호형호제하고, 다모인 여지(고아라)나 왈패 우두머리인 달문(박훈)과 친구처럼 어울린다는 드라마적 설정은 이러한 처지에 놓였던 연잉군과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마저 그 고사리 손에 칼을 들게 만든 살주 사건은 결국 양반들의 수탈에 의한 것이었다. 도무지 살 길이 없는 민초들은 심지어 아이까지 청국에 팔아넘길 수밖에 없었던 것. 이런 핍박받는 민초들의 편에 연잉군이 서자, 사대부들은 “천것의 피는 어쩔 수 없다”며 그를 몰아세운다. 노론의 실질적 우두머리인 민진헌(이경영)이 이런 연잉군의 행보를 “사대부에 등을 돌린 것”으로 치부하자, 이 대결구도는 사대부들과 민초들 사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간다. 

결국 사대부들에 의해 자신이 폐위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민초를 위한 마음을 드러낸 연잉군은 이로써 핍박받던 저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궁벽에 누군가 연잉군을 지지한다는 뜻을 적어 붙여놓은 벽서와 거기 놓여진 호패는 순식간에 도성의 민초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놓는다. 호패가 쌓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전해진 백성의 마음들이 거대한 힘이 되어 연잉군을 몰아내려던 노론까지 어쩔 수 없게 만드는 것.

이건 <해치>가 연잉군의 이야기를 가져오긴 했지만, 현재적인 해석을 덧붙인 부분이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단박에 한 인물을 떠올릴 수 있으니 말이다. 다름 아닌 고 노무현 대통령이다. 항상 격의 없이 대중들과 어우러졌던 그는 그렇게 자신을 낮췄다는 이유로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이야기마저 듣지 않았던가. 심지어 대통령이 되어서도 탄핵 정국을 맞은 바 있다. 물론 그 때나 지금이나 대중들의 그에 대한 지지는 저 연잉군을 위해 호패를 던지는 민초들처럼 여전하지만.

그러고 보면 지금의 정국이 <해치>가 그리고 있는 시대의 당쟁 정국과 많이도 닮아있다 여겨진다. 갖가지 권력형 비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가진 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그 비리와 함께 만연해 있다. 민심은 어지러운데 저들끼리 싸우는 정치꾼들에게서 민심은 호명될 뿐 진정한 민초들을 위한 마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 대중들을 위한 바른 길을 열어가려 해도 이를 결사적으로 막는 기득권자들의 반대가 저 당쟁의 사대부들처럼 피어난다. 결국 이 혼탁한 현실 속에서 민초들 스스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다. 호패나 촛불처럼, 가녀리게 보이지만 하나하나 모인 마음만이 유일한 희망이 되어버린 현재를 <해치>는 영조의 이야기를 통해 에둘러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박사모 보이콧 <더킹>의 질문,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더킹>에는 우리네 역대 대통령들이 자료화면 그대로 등장한다.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까지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들이다. 그리고 이 대통령들은 그저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배경이 아니라 실질적인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그들의 앞길이 꽃길이 되느냐 흙길이 되느냐가 결정되고, 그래서 마치 대선은 미래를 판돈으로 내건 도박판처럼 그려진다.

 

사진출처:영화<더킹>

지금껏 시국과 시대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조폭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었다는 건 우리네 정치사에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더킹>의 주인공은 조폭이 아니라 검사다. 그것도 상위 1%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은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고 그를 오른팔 역할을 하는 양동철(배성우)은 어느 날 후배검사인 박태수(조인성)를 자신들의 라인에 끼워 넣는다. 영화는 태수라는 인물의 개인사이면서 그의 성공과 추락 과정들이 엮어진 시대사를 그린다.

 

영화에서 이 1%에 해당하는 비뚤어진 권력욕에 물든 비리 검사들은 조폭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손에 피 묻히고 오물을 만지는 일들을 직접 하는 조폭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점점 권력의 정점을 향해 올라가는 태수에게도 그런 그림자 역할을 자청하는 고향친구 두일(류준열)이 붙는다. 라인을 타고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그에게 가족과 친구는 일종의 걸림돌이 된다. 이 권력 시스템에서 가족관계나 친구관계 같은 수평적 체계는 서열화 되기 마련인 권력 체계에는 점점 맞지 않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비리검사들이 하는 일이란 지속적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마다 치러지는 대선은 권력을 바꾸게 되고 그럴 때마다 라인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추락하게 되는 게 이 권력 시스템의 룰이다. 그래서 다음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알아맞히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태수의 목소리로 그가 겪은 일들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깔린 내레이션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인물이 성공하기 위해 하는 일련의 선택들에 감정이입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어긋나기 시작하고 심지어 곤두박질치는 그 과정들을 똑같이 간접경험하게 만들고, 그 삶의 선택들을 반추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훈적 틀을 벗어나 어떤 통쾌함과 속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일종의 마당극 같은 풍자적 요소들 덕분이다. 다소 과장된 연출로 보여주는 이런 풍자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 시국에 얹혔던 체기를 시원한 사이다로 가라앉혀주는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고 마취적인 사이다에만 머무는 영화라는 건 아니다. <더킹>의 덕목은 이러한 풍자극의 사이다를 느끼게 해주면서도 동시에, 태수의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나쳐온 대통령들의 면면들과 그들이 대통령이었던 시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해주고, 당시의 부조리들이 어떻게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을 만들었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는 것.

 

흥미로운 건 영화 중간에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모습이 삽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결정이 내려지고 비통해하는 야당 의원들 모습이 비춰진 후 국회에서 박근혜 의원이 웃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 한 장면만으로 <더킹>은 기묘한 반전을 이루는 현 시국의 이야기까지를 끼워 넣는 효과를 만든다.

 

한편 박사모의 한 회원은 <더킹>을 보이콧 하자는 제안을 카페에 올렸다고 한다. 지난 <아수라> 무대 인사에서 박근혜 나와라고 외쳤던 정우성이 출연하고 있다는 이유다. 갖가지 드러나고 있는 부정들로 인해 탄핵 정국을 맞고 있는 현 정부에 대한 여전한 무비판적 추종에 대해 <더킹>이라는 영화는 진중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왕은 누구인가.

Posted by 더키앙

이 시대와 노무현 사이의 거리, <무현>의 슬픔과 위로

 

2000년 겨울 부산의 어느 거리. 차가운 날씨에도 거리 유세에 나선 노무현은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그 짧은 장면 하나만으로도 노무현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이지만 다가오는 시민들에게 인사를 할 때는 두 손을 꼭 빼서 정중한 마음을 담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텃밭이었던 부산. 시민들이 노무현을 반가워할 리 만무했다. 지역감정이 여전히 부추겨지는 선거 속에서 그는 마치 적진에 고립된 적장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들이 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섬겨야할 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사진출처:영화<무현>

다큐멘터리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이하 무현)>는 왜 하필 부산에서 출마했다 낙선한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그것은 이 영화가 노무현을 통해 진짜 실패가 무엇이고 진짜 성공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노무현은 당시 낙선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낙선 후 3년이 지나고 그는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것 역시 실패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젊은 세대들이 노무현이 했던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실천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현>이 담고 있는 건 노무현의 그런 정치적 행보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당시 부산 거리 유세를 하다 지친 노무현이 한 다방에 들어와 여종업원에게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꼭 유세를 해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가 그래도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 얘기를 커다란 깨달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건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작은 민의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서 오히려 커다란 뜻을 읽어내는 진짜 정치다.

 

노무현의 전속 사진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생계를 위해 계속 청와대에 남아있기로 했을 때를 회고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모두가 배신자라고 그에게 손가락질 할 때 100명 중 단 한 사람, 노무현 대통령만이 자신을 지지해줬다는 것. 그 전속 사진사는 이제는 자신을 노무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매년 기일에 맞춰 사진을 찍으러 온다고 했다. 노무현은 정치적 노선이나 당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우선 바라봤다는 걸 이 사진사 이야기에서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포장마차에서 노무현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 때를 회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 속에서 그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은 그 누가 뭘 하지도 않았는데 저마다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된다. 거기서 느껴지는 슬픔이란 감성 팔이나 신파적 슬픔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역행이 2000년 노무현의 행보와 너무나 먼 거리에 있다는데서 느껴지는 슬픔이다. 당시 노무현이 연설에 앞서 고치고 또 고친 연설문이 이토록 진중한 울림을 주고 있는 현재가 아닌가.

 

절묘한 시기에 개봉된 <무현>은 그래서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 그리고 심지어는 시대의 우울을 겪는 대중들에게는 슬픔과 동시에 깊은 위로와 위안으로 다가오는 영화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에 바보 같은 웃음을 지으며 서민들에게 다가가 농담을 건네기도 하는 아이 같은 모습의 노무현. 그는 당시에도 이미 낙선을 예감하고 있었지만 낙담하지는 않았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는 집에 가서 엄마 아빠한테 2번이 좋다고 말하라는 농담에는 당장의 실패 앞에서 우리가 그럼에도 왜 기꺼이 앞으로 나가야 하는가를 이야기해준다. 당시 낙선 후 캠프 해단식에서 노무현이 말했듯이. “역사에서는 실패가 훨씬 많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정의가 승리한다.”

Posted by 더키앙

서세원의 빨갱이발언, 그렇게 영화에 자신이 없나

 

빨갱이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안 지키면 자녀들이 큰일 난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70년대도 아니고 2014년도에 빨갱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시나리오 심포지엄에 이 영화의 제작 총감독을 맡은 서세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역시 믿지 못할 얘기다. 한 때는 그래도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개그맨이 아니었던가.

 

사진출처:채널A

서세원의 이 말은 이 날 행사에 참여한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과 애국총연합회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영화 <변호인>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되살리려 한다며 비판한 것에 대해 덧붙여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 발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심포지움이라는 행사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서세원은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똥 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고 있다.” 또 이 영화의 후원자인 서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대중들의 선택에 대한 상식 이하의 폄하가 깔려 있다.

 

대중들이 선택한 상업영화들을 같다 표현한 것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은 졸지에 나라가 망하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이를 빨갱이발언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이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은 어쩌면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을 빨갱이에 물든 대중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설마.

 

물론 서세원은 자신의 발언의 과격함을 의식했는지 이번 기회에 하나가 되고 이념 싸움을 하지 말자.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승만 나쁜 놈, <변호인> 나쁜 놈 하지 말자는 발언을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변호인> 운운한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엿보인다. 사실은 빨갱이운운해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념적인 잣대를 내세워 일종의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

 

사실 <건국 대통령 이승만><변호인>은 비교자체가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비롯되듯이 <변호인>은 굳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아도 작품 자체로 충분히 대중들을 끌만큼 자족적인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말 그대로 대놓고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영화는 제작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념적인 잣대부터 내놓는 것일 게다.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대중들의 자유의지로 선택 받기는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 상업영화를 똥 같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런 영화를 선택한 대중들을 망국의 징조로까지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영화가 30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이 잃어버린 건국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놀라운 발언이 아닌가. 영화를 얘기하면서 잃어버린 건국정신 회복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여기에 3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상업적인 수치를 덧붙이는 것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다.

 

영화가 영화로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애국주의와 연결되며 허상을 만들었던 경험을 우리는 이미 심형래의 <디 워>논쟁에서 겪은 바 있다. 이번 빨갱이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지핀 서세원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영화 제작 심포지엄에서 <디 워>의 망령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종교행사 같은 분위기에 국가를 운운하며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심포지엄. 제 아무리 이념도 장사가 된다지만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설마 종교적인 믿음이나 애국주의까지 들먹여야 겨우 볼 수 있는 영화라 스스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영화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일까.

Posted by 더키앙

송강호, 그가 있어 가능했던 '변호인' 천 만

 

<변호인>이 천 만 관객을 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는 것 때문에 개봉 전부터 근거 없는 비아냥과 평점 테러까지 받았던 영화. 그런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넘겼다는 것은 반전 중의 반전이다.

 

사진출처:영화'변호인'

무수한 분석이 나온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이념과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내 편 없는 세상에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준 서민들의 대변인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송강호, 김영애, 곽도원 심지어 임시완까지 보여준 놀라운 호연까지.

 

하지만 이 모든 분석들 중에서도 단연 설득력을 갖는 건 송강호라는 배우다. 그가 연기 잘한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지만 이번 <변호인>을 통해 발견한 것은 그가 연기력 그 이상을 가진 배우라는 점이었다.

 

그는 늘 서민들의 옆 자리에 서 있던, 마치 피곤한 일상에 영화라는 잠시 간의 여행을 떠난 관객의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이드 같은 배우였다. <넘버3>미친 존재감이라는 서민들의 가치를 끄집어냈고,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소외된 서민들로서는 이상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이상한 놈으로서 어딘지 악당 같은 삐딱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배우.

 

그가 <변호인>에서 연기한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에서는 그래서 영화 <밀양>의 종찬처럼 비극에 빠진 여주인공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비춰주던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가 보이고,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처럼 잘못된 시스템의 옆구리에 폭탄을 터트림으로써 관성화 된 정신을 깨우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송강호의 가장 큰 장점은 그 거창할 수 있는 일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일로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변호인>의 송우석이 만약 시대적 소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천만 관객의 발길이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될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내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것은 지금껏 송강호가 해왔던 특별한 연기의 세계다. 똑같은 역할이라도 그가 하면 다르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우아한 세계>에서 조폭의 상스러움과 가장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었고, <괴물>에서 바보스러움과 가슴 찡함을 동시에 선사했으며, <박쥐>에서도 기괴함에 해학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즉 그는 역할의 균형을 잘 맞추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과장된 캐릭터라도 그 속에서 정 반대의 모습을 끄집어낼 줄 안다. 이것은 마치 관객이 그런 거짓말이 어딨어?’하고 물을 때 화답하듯 슬쩍 속내를 꺼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과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속물적인 속내를 슬쩍 끄집어냄으로써 관객을 안심시키는 그런 배우.

 

흥미로운 건 올 한 해 단 6개월 만에 무려 3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괴물 같은 배우가 서 있는 위치다. 그는 이상하게도 주연으로 서 있으면서도 늘 우리 주변에 있는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꼭대기가 아니라 늘 아래 서 있고,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물러 있는, 그렇지만 그 곳에서 늘 따뜻한 볕을 보내주는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 이것은 송강호의 진정한 힘이면서,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이 시대의 서민들이 바라는 인물상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변호인>이 끄집어낸 30년 세월 무색한 색깔론

 

도시가 울긋불긋한 색으로 물들었던 크리스마스에 <변호인>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신드롬을 만들었다. 들뜨기 마련인 크리스마스지만 이처럼 진지한 영화에 관객들이 몰려들었다는 건 지금의 대중들에게 크리스마스보다 더 갈급한 정서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빨갱이라는 말로 붉은 색에 대한 심리적인 벽이 세워져 있던 시절에는 산타클로스의 붉은 색 옷마저 심지어 불온한 어떤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30여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붉은 악마가 거리를 활보하는 시기를 거치기도 했지만 과연 이 색깔론의 트라우마는 극복된 것일까.

 

사진출처:영화 <변호인>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지목되어 무단 감금, 고문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빨갱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럽게까지 느껴질 지도 모른다. 사람에 색깔을 덧붙여 특정 세력으로 지칭하는 것이 어찌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을까. 파랭이. 노랭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색깔론은 분단 이후 우리네 사회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대중들의 판단을 흐트러뜨리는 괴물로 자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심지어 2013년 현재까지도 그러하다. 무언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세우는 태도는 빨갱이라는 괴물을 또 다시 소환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변호인>에 대한 남다른 대중들의 열광은 이 지긋지긋한 색깔론에 대해 대중들이 얼마나 염증을 갖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변호인>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건 역시 그 주인공인 송우석(송강호)이라는 인물이다. 그가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가 사건보다 인물의 변화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부림사건(부산의 학림사건)’이 이 영화의 진짜 소재지만 <변호인>은 그 사건을 정공법으로 다루기 전에 우선 송우석이라는 속물 변호사가 어떻게 인권 변호사로 거듭나게 되는가 하는 그 과정에 더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국밥집 아주머니인 순애(김영애)와 이 사건에 피해자가 된 그녀의 아들인 진우(임시완)가 소개되고 송우석은 사건을 맡기 전부터 이들과 가족 같은 유대관계를 맺는다. 이 부분은 이 영화가 단순히 사건의 재현에 머물지 않게 만든 중요한 성과로 보인다. 송우석은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라 자신이 조카처럼 생각하는 젊은이가 부당하게 고문을 당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인간적으로 분기하는 것이다. 정치적 사안들에 불감해진 대중들에게는 송우석의 지극히 인간적인 변화과정은(정치적인 선택이 아닌) 그래서 설득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물에서 잠시 시선을 거둬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결국은 빨갱이 논란으로 귀결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송우석 변호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에피소드이기도 한, E.H. 카가 소련의 빨갱이가 아니라 영국의 외교관이었다는 사실을 문서로 증명해낸다. 영국 측에서 보내온 서한에는 E.H. 카가 대단히 저명한 역사학자이고 그의 책이 더 많은 한국인들에게 읽히기를 바란다는 이야기까지 들어 있었다.

 

게다가 당시 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어느 대학에서나 사서 읽을 수 있던 책이었다. 송우석 변호사는 따라서 이 책이 버젓이 비치되어 있는 서울대를 나온 검사나 판사를 지목하며 당신네들의 학교는 그러면 빨갱이 학교라며 질타한다. 또 알리와 포먼이 경기할 때 김일성이 알리를 응원했다고 해서 피고인이 알리를 응원하면 이적행위냐고 일갈한다. 다소 논리가 우습게까지 여겨지지만 이런 실제 에피소드들을 영화화한 장면을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당시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가다. 심지어 검사가 이에 대해 법정에서 김일성을 고무 찬양하는 행위를 삼가 달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래서 실소마저 자아내게 만든다.

 

빨갱이를 두둔하는 것 역시 빨갱이라는 무서운 논리는 그래서 대중들이 비상식적인 일들을 목도하고도 선뜻 나서지 못하게 되는 기제로 작용했다. 송우석 변호사의 용기는 그래서 이러한 암묵적인 억압을 넘어서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거창한 정치적인 견해나 입장이 아니라 존엄성을 인정받아야 할 인간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시선과 고통 받는 그 누군가가 타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다.

 

빨갱이라는 우리식의 주홍글씨는 지금도 여전히 당대를 경험한 이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하지만 송우석이라는 변호사가 주저하다가도 결국은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하고 말하며 변호함으로써 그 트라우마를 이겨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송우석의 변화를 통해 작금의 대중들 속에 남겨진 상식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갈증과 몰상식에 대한 분노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는 지점에서 법정에 선 송우석 뒤에 끝없이 호명되는 그의 변호인들의 대열에 대중들을 함께 서게 만든다. 빨갱이로 대변되는 국가의 억압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Posted by 더키앙

‘상처’ 강조한 박, ‘서민’ 강조한 문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광고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던져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대선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광고는 욕 먹으며 밥 먹는 장면을 통해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팍팍한 서민들의 귀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사진출처:새누리당, 민주통합당

광고는 물론 실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것이 광고가 가진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밥집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였음이 밝혀지기도 했고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 광고의 메이킹 필름을 통해 그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인가를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선 광고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짧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압축적이고 더 이미지적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의 파괴력을 가진 대선 광고는 그만큼 조심스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첫 선을 보인 광고 안에는 어떤 이미지 전략이 들어있을까.

 

왜 박근혜는 ‘상처’를 끄집어냈을까

박근혜 후보는 첫 광고에서 ‘상처’를 끄집어냈다. 2006년 신촌 피습 사건 장면이 스틸 컷으로 들어가고 뺨 부위에 테이프를 붙인 박 후보의 옆얼굴과 그로 인해 남게 된 상처의 흔적을 클로즈업하면서 그 위에 ‘그날의 상처’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 후보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촛불집회 장면이 삽입되고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하고 자신의 출마 근거를 제시한 후 마지막에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입니다.”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캐치 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 광고가 끄집어내는 건 박근혜 후보가 가진 ‘상처’의 이미지다. 물론 독재 정권이 가진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어찌됐든 그녀의 부모가 모두 총탄을 맞고 사라진 사실에 대한 보수층의 동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이것은 정치와는 무관해보이지만 박근혜 후보가 가진 이미지적인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정책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과거 독재정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 동정적인 이미지는 더 커진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독 대선 토론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정책적인 약점이 있다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낸 박근혜 후보의 첫 대선광고는 바로 그 정책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부가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희생’ 같은 이미지다.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라는 말은 그래서 다양한 뉘앙스로 읽힌다. 그것은 자신을 살려낸 국민들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국민들을 살려낼 차례라는 뜻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개발시대의 향수를 가진 보수층들에게는 그녀의 부모를 잇는 희생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민’을 끄집어낸 문재인이 주장한 세 가지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문소리가 부르는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 바탕으로 깔리고 문재인 후보의 자택 일상이 광고에 담긴다. 이것은 여러모로 박근혜 후보가 갖고 있는 귀족적인 이미지와의 차별화를 위한 포석이다. 가사가 전하는 ‘하늘’과 ‘그대 얼굴’은 기묘하게도 대통령과 서민의 이미지로 전화된다. 일상적인 장면 속에는 문재인 후보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지만 그 깔리는 목소리기 무수한 연설 속에서 그가 했던 목소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즉 일상과 정치가 하나로 엮여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수평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다. 한 편에서는 열심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일상이 깔려 있고 서민이 스며있다는 것. 문재인 후보는 광고를 통해 국민여러분에게 묻는다.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마도 서민들이 지금의 정부에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일 것이다. 나라는 세계 몇 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연일 대서특필되지만 정작 더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 문재인 후보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그런 서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세 마디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을 잡아낸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정의로운 결과가 바로 문재인 후보가 국정 운영을 통해 세우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라는 것. 그럼으로써 마지막 슬로건이 제시하듯 ‘사람이 먼저’인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 이 광고의 주 메시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첫 광고 이미지 전략은 이처럼 서로 판이하다. 박근혜 후보의 광고가 정책적인 내용이 쏙 빠져버린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정적인 이미지가 가진 힘을 한껏 강조함으로써 박근혜 후보가 가진 장단점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한편, 문재인 후보의 광고는 서민적인 이미지와 함께 자신의 핵심적인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광고의 이미지적인 힘으로만 보자면 문재인 후보의 첫 번째 광고는 이미지와 정책 기조가 결합됨으로써 박근혜 후보의 광고에 비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정책 기조가 현실로 다가오는 서민들에게는 어쩌면 그의 광고가 훨씬 더 실제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첫 포문을 연 두 후보들의 이미지 전쟁. 향후의 전략적 행보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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