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가진 자들의 위선 고발하는 서민 자매들

최도경(박시후)이 “자꾸 신경 쓰인다”고 말할 때 서지안(신혜선)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다. 얘기를 들어주는 그 얼굴에 감정은 1도 섞여있지 않다. 최도경은 내놓고 자신의 호의와 마음을 드러내는 중이지만, 서지안은 안다. 그가 입만 열면 말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것도 또 이런 호의도 사실은 위선적이라는 걸. 최도경은 입만 열면 자신은 해성그룹의 오너가 되도록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해진 혼사도 사업 계약하듯 당연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결국 가진 자의 위선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서지안은 알고 있다. 

호의라면 상대방이 그 배려를 받아야 호의라고 할 수 있지만, 최도경이 내미는 호의는 자신을 위한 일이다. 재력을 가졌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까지 실천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기애가 그 호의의 실체라는 것. 진짜 호의를 베풀 것이라면 먼저 서지안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최도경은 ‘젠틀맨’이라는 자신의 허상에만 붙잡혀 있다. 서지안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이유다. 서지안은 그 허상뿐인 가진 자들이 호의라며 내미는 화려한 식탁과 옷과 돈과 차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세계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것.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에서 서지안의 가족들은 출생의 비밀이 터지면서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안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건 가진 자들의 위선을 고발하고 나선 서지안과 서지수(서은수)라는 자매에 대한 새삼스런 발견이다. 서지안이 최도경을 밀어내며 그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면, 서지수는 해성그룹의 재벌가의 딸로 들어가 뼛속까지 가진 자의 허위로 똘똘 뭉쳐 있는 노명희(나영희)와 그 세계를 공격하는 중이다. 

밥 먹을 때는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고, 마치 그들은 먹는 것조차 다른 걸 먹는다는 식으로 훈계를 하려 드는 노명희에게 서지수는 “왜 그래야 하는데요?”라고 되묻는다. 서지수를 해성그룹의 딸로 바꾸기 위해 그의 물건들을 허락도 없이 방에서 치워버리자 굳이 쓰레기차까지 쫓아가 그걸 가져와서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면서 이렇게 “함부로 남의 물건을 버리는 건 예의냐”고 따진다.

자신이 엄마라고 강변하는 노명희에게 “낳기만 하면 엄마냐”고 되묻고 그럴 거면 나가라는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나갈 테니 방 하나 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한 게 아무 것도 노명희에게 그 정도는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자신을 길러준 부모들을 단죄하려 했었다는 걸 들은 서지수는 대노하며 “그럴 자격이 없다”고 선을 긋는다. 화를 낼 자격은 “자신 뿐”이라는 것.

<황금빛 내 인생>이 흥미로운 건 이 서지안과 서지수라는 평범했던 서민층 자매가 사건을 겪으면서 좀 더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지안은 늘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자신 안에 존재했던 ‘속물근성’을 발견하고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 자신에 대한 부정은 이제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정으로까지 이어진다. 가족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는 새삼 깨닫는다. 결국 가족이라고 해도 자신은 자신 스스로 서야 한다는 걸 그는 알게 된 것.

서지수는 늘 순응하며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잘 적응해 밝게 살아왔지만 이 일을 겪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의외로 당당한 면모들을 발견하고 있는 중이다. 늘 언니의 그늘 아래서 커왔지만 이제 스스로 서야한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그래서 갑자기 부모가 둘이 생긴 상황 속에서 결국 중요해진 건 자신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서지안과 서지수는 이 아픈 성장통을 통해 자신의 일을 찾아가고 있다. 서지안은 그토록 희구했던 대기업 입사가 허구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목공일 같은 본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는 걸 발견해가고 있다. 서지수는 예전부터 그랬지만 환경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서 자신이 하려 했던 제빵의 길을 접지 않는다. 아니 어떤 면에서 보면 그 일을 할 때만이 자신이 행복하다는 걸 알고 있다. 

<황금빛 내 인생>은 그래서 ‘황금빛’의 허구에 한때 눈이 멀었던 이들이 그 실체를 파악하고 저마다 ‘내 인생’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황금빛’ 인생일 것이니.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어 금수저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현실이지만, 그 금수저가 가진 위선을 이토록 신랄하게 건드리는 드라마도 없을 게다. 그 어떤 사회극보다 신랄해진 주말드라마라니. 서지안과 서지수의 일침이 은근 통쾌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KBS)

728x90

'명가', 착한 메시지의 힘, 계몽적인 시선의 한계

'명가'에서 주인공 최국선(차인표)에게 그 부친인 최동량(최일화)은 "내가 너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청빈(淸貧)'의 길만이 가장 중요한 삶의 덕목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국선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청부(淸富)'의 길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 이 최동량의 대사는 이 드라마의 주제를 압축해 설명해준다.

'명가'는 '함께 잘 사는 길'을 고민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사극이다. 병자호란으로 피난 온 사람들에게 곶간을 열어 구휼죽을 베풀면서 가세가 기울어 버린 집에서, 가난을 타개해 보고자 최국선은 집을 나서 저자거리로 간다. 거기서 그는 장길택(정동환)을 만나 그 상단에 들어가 돈을 벌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던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반계수록'의 저자인 유형원(이기영)이 준 깨달음 덕분이다. 그는 밥상 위에 여러 반찬을 올려놓고 그것을 이리 저리 옮겨 놓은 후, "이것이 바로 장사"라고 말한다. 즉 장사란 물건을 이쪽 저쪽으로 옮겨서 이문을 남기는 것일 뿐이라는 것. 즉 밥상 자체를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장사가 아니라 농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의 멘토이자 할아버지인 최진립(장영철)이 유언을 대신해 남긴 '쌀되'는 국선의 뜻을 더욱 공고하게 한다. '쌀되'는 바로 '농사의 길'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함께 사는 길'을 상징하는 오브제다. 세금으로 이자로 민초들의 식량을 수탈해가는데 사용되는 그 '쌀되'는 국선의 손으로 오자, 흉년에 구휼죽을 나눠주는 도구로 바뀐다.

'명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 최국선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분명 착한 것들이다. 이 메시지가 승자독식의 사회, 흔히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 말하는 현재에 던지는 무게감은 적지 않다. 그런데 왜 '명가'는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까. 이야기가 너무 착해서였을까.

문제는 이 착한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었는가에서 생겨난다. '명가'가 '청부의 길'을 제시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지나치게 도식적이다. 최국선에게 부친인 최동량이 깨달음을 말하는 장면은 물론 흐뭇한 설정이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설명적이다. 최국선은 물론 조선 후기에 농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실제 인물로 현재에도 큰 의미를 던져주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정작 이 꿈을 함께 일궈나가는 민초들을 자세히 조명하지 않는다. 민초들은 늘 가난함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 심지어 죄까지 저지르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그런 그들을 긍휼히 생각하고 품에 안는 최국선의 모습은 뭉클한 것이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민초들은 지나치게 수동적인 존재들로 그려진다.

이 착한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가, 그 선함을 의심받게 되는 이유는 능동적이고 선구적인 일인과 대다수의 수동적인 민초들이 대비되며 나타나는 그 계몽적인 시선 때문일 것이다. 즉 우매한 민초들은 선견지명을 가진 한 인물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는 그 시선이 주는 뉘앙스가 현재의 능동적인 대중들에게는 어떤 거부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결국은 부의 축적을 전제로 한다는 것,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부의 명분으로서 세워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 시대의 대중들은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착한 사극 '명가'의 실패는 드라마 속의 최국선이 그러하듯이 현재의 대중들을 계도하고 가르치려는 그 태도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