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늘과 길, 골방에도 볕들 날은 있다

왜 하필 안방도 아니고 사랑방도 아닌 골방일까. 하지만 무언가 주류라든가 1인자라는 이미지와는 걸맞지 않은 이하늘과 길에게 골방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월화의 밤, ‘놀러와’의 골방에서 그들은 외모와는 걸맞지 않게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차려입고 나와 얼토당토않은 상황극을 선보인다.

이들의 조화는 실로 절묘하다. 먼저 외모적으로 보면 길은 ‘수호지’에나 나올 것 같은 장대한 몸을 가진 반면, 이하늘은 그야말로 대꼬챙이 같은 외소한 몸을 가졌다. 슈퍼맨 복장은 그 몸의 대비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하지만 실제 관계를 들여다보면 이하늘이 길의 선배. DJ DOC의 악동으로서 만만찮은 성깔이 있을 것 같은 이하늘이 거꾸로 덩치 큰 길을 압도할 것만 같다.

이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는 골방 브라더스가 갖는 웃음의 기본 코드가 된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함께 서서 관계를 배반하며 힘과 외모로 압도해오는 길을 통해 웃음을 주거나, 거꾸로 힘과 외모를 배반하며, 관계와 성깔로 압도하는 이하늘을 통해 웃음을 줄 수 있다. 물론 같이 망가질 때는 그들은 모두 똑같은 빡빡 민 머리로 하나의 색깔을 만든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주는 정신 또한 이들에게는 모두 귀여운 반항적인 이미지를 부가시킨다.

이러한 골방이라는 공간에서 외모와 관계의 부조화로 구축한 새로운 이미지에 힘입어 이들은 지금 타 프로그램들 속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명랑히어로’ 같은 각종 토크쇼에서 특유의 독한 이미지를 과시했던 이하늘은 이제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그는 ‘이빨 빠진 사자’의 캐릭터로 여전히 강한 카리스마와 그 카리스마를 무너뜨림으로써 나올 수 있는 웃음 사이를 오가며 쇼의 핵심적인 재미를 구축하고 있다.

욕설과 잦은 지각으로 벌점을 잔뜩 먹은 이하늘이 벌칙으로 최루가스실에 들어가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늘은 그 속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며 ‘천하무적 야구단’의 야생적인 리얼리티를 끄집어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생인 마르코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등, 인간적인 면모 또한 부각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형식 속에 자신만의 캐릭터로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냈다.

한편 길은 ‘무한도전’의 조커로 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무한도전’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고정된 캐릭터들로 인해 조금은 느슨한 면이 생겼고, 길은 바로 그 지점에서 그것을 조이기 위해 채워 넣은 캐릭터가 되었다. 실제로 길의 투입은 ‘무한도전’ 전체에 조금은 긴장감을 조성해냄으로써 프로그램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물론 그가 현재 ‘무한도전’에 서 있는 자리는 기존 멤버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종종 함께 과제를 풀어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기존 멤버들에게 과제를 제시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무한도전’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무한도전’은 모두 그 도전자의 관점에 맞춰진 형식이었지만, 길의 등장으로 인해 과제 제시자의 관점이 부가되었다. 이것은 과제 해결 과정에 있어서 길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만큼 리얼의 요소는 강화되는 것이며 이로써 길의 입지 또한 확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물론 이하늘이나 길, 둘 다 아직까지 확고하게 예능에 자리를 잡은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어느 정도는 정체되어 있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새로운 캐릭터의 가능성으로 제시되고 있다. 각자의 세계에서 강하기만 했던, 그래서 좀 더 폭넓은 지지자를 얻지 못했던 이들이 현재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저 골방이라는 공간이 제공한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은 그 공간에서 서로의 강한 이미지를 상쇄시켰고, 각자의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골방 브라더스라는 지칭이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이처럼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예능에도 좋지 않다

컴백한 비와 김종국이 예능을 장악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채널을 돌리다 걸리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는 이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월드스타 비는 해외활동 때문에 국내에 그간 보이지 못한 얼굴을 한껏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김종국 역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느라 그간 뜸했던 방송에 새 앨범과 함께 컴백하면서, 특히 집중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공략하고 있다.

비는 ‘무릎팍 도사’, ‘예능선수촌’, ‘상상플러스’에 이어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할 예정이고, 김종국은 ‘패밀리가 떴다’, ‘놀러와’에 이어 ‘상상플러스’에도 출연했다. 물론 그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방송출연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연거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나 예능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나 또 비와 김종국 당사자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비가 출연해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무릎팍 도사’는 한 청년의 세계를 향한 도전과 좌절, 그럼에도 그걸 딛고 일어선 비의 불굴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비가 강조한 오기와 독기는 혼자 세계와 대항하는 듯한 그의 이미지를 세워주면서 동시에 힘겨운 젊은이들에게 어떤 힘을 불어 넣어주기까지 했다. 한편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그 이야기를 ‘예능선수촌’과 ‘상상플러스’에서 반복해서 하자 그 의미는 상당부분 사라져버렸다. 그 진술은 반복되면서부터 진솔함의 토로에서 홍보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김종국도 마찬가지다. 김종국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대체로 그대로 반복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상 김종국을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하기 위해 온 패밀리가 김종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는 ‘놀러와’와 ‘상상플러스’에 연거푸 출연하고 앞으로도 ‘패밀리가 떴다’에 게스트의 입장으로 계속 출연할 예정이다.

하긴 그들의 출연목적은 본래부터가 홍보이기는 했다. 가수가 음반을 내고 홍보를 하기 위해 예전 같으면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예능 출연이 더 효과적인 세상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능 선택은 다다익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과거와 지금의 예능 사정은 달라졌다. 예능의 리얼리티화는 홍보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예능 프로그램에 던진 시청자들의 외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아무리 홍보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매번 비슷한 식단을 들고 예능에 등장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도 그다지 유익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홍보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면서 결국에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예 고정MC로 출연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아예 고정이라면 프로그램 속에 어떤 캐릭터로서 기여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입장이 되지만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스트라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그 자체로 흐트러뜨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탈신비주의도 좋고 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는 취지도 좋다. 하지만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예능 프로그램의 자력은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비와 김종국, 그 반가운 얼굴이 자칫 식상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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