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신드롬에 담긴 대중들의 다양한 갈증들

 

때 아닌 <전원일기> 열풍이다.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금 <전원일기>를 방영하고 있고, OTT에서는 인기드라마 순위 톱10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에 종영한 <전원일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은 대중들의 어떤 갈증들을 담고 있는 걸까. 

전원일기

<전원일기>를 소환시킨 매체 환경 변화

최근 MBC <다큐플렉스>는 MBC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 2021’ 4부작을 내놨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3년 간 방영됐던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이 드라마를 재조명한 ‘전원일기 2021’은 19년 전 종영하며 각자의 길로 돌아간 <전원일기> 가족들이 다시 하나둘 얼굴을 보이며 만남을 갖는 시간을 선보였다. 드라마의 중심축이었던 최불암, 김혜자를 위시해 고두심, 박순천, 김용건, 유인촌, 김수미, 김혜정, 박은수 같은 반가운 인물들이 당시의 <전원일기>를 회고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MBC 60주년 특집으로 <전원일기>를 현재로 소환해낸 걸까. 이것은 최근 이 19년 전 종영한 드라마에 대한 의외의 관심과 반응들이 일종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어서다. <전원일기>는 MBC ON, 엣지티비, 채널 유, KTV 등 7개 채널에서 내보내고 있는 인기 드라마이고,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와 네이버 시리즈온 등에서는 인기드라마 톱10에 오를 정도로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건 최근의 달라진 방송 시청 환경의 영향이 적지 않다. 즉 과거 ‘TV 시대’의 시청이란 방영시간대에 맞춰 ‘본방’을 보는 방식이었지만, ‘OTT 시대’의 시청은 원하는 방송을 원하는 시간에 선택해 보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본방 시간대에 올라가는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만이 아니라, 과거에 방영됐던 명작 드라마들을 ‘취향별’로 골라보는 시청자들이 늘어난 것이다. 

 

특히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은 <전원일기> 같은 향수와 추억이 묻어나는 드라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OTT를 통해 해외에서 들어오는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우리네 드라마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장르물들은 과거의 드라마들처럼, ‘콩나물 다듬으며’ 편안하게 보기에는 쉽지 않다. 더 큰 몰입을 요구하는 이들 장르물들은 연령대가 높은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데다, 드라마의 이야기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찌감치 이들 시청자들은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지나간 옛 드라마들을 보기 시작했다. <전원일기>만이 아니라 <야인시대>, <태조 왕건> 같은 드라마들을 연달아 방영해주는 케이블 채널의 소비층으로 부상한 것. 여기에 OTT처럼 아무 때나 다양한 옛 드라마들을 선택해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시청은 더 편리해졌다. <전원일기>가 2021년에 다시 현재로 소환된 배경에는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그로 인해 생겨난 새로운 시청 패턴이 깔려 있다. 

 

<전원일기>, 젊은 세대들까지 끌어들인 마력

그런데 놀라운 건 <전원일기>에 대한 열광이 기성세대만이 아닌 젊은 세대들에게도 생겨났다는 점이다. ‘부모와 함께 보다가 빠져 들었다’는 이들 젊은 세대들은 <전원일기>의 무엇에 매료된 걸까. 여기서 주목되는 건 <전원일기>가 가진 ‘뉴트로적 매력’이다. 

 

레트로는 기성세대들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에 대한 추억이나 회고지만, 뉴트로는 그 과거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세대들이 그 옛 경험을 ‘힙하게(새롭게)’ 느끼는 것이다. 즉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전원일기>의 다소 거칠고 때론 희미하게까지 보이는 영상들은 ‘빈티지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의 가치’가 얹어진 것으로 재해석되는 것.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전원일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런 외형적인 면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금은 없는 ‘농촌드라마’라는 장르가 가진 유니크함이 있고, 그 안에 담겨진 김회장(최불암)댁 가족들이나 일용이네 가족들이 겪는 서사의 특별함이 있어서다. 이미 농촌조차 ‘전원도시’가 되고 있고, 많은 이들이 도시로 떠나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에서 ‘농촌의 이야기’는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자체가 새롭고 특별할 수 있다. 

 

그래서 젊은 세대들은 <전원일기>의 굉장하지는 않아도 소박하면서 훈훈한 이야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힐링을 느낀다고 말한다. 마치 ‘불멍’, ‘물멍’ 같은 편안함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23년 간 방영된 이야기는 그 세월만큼 거기 등장한 가족들에 대한 유대감을 만들어주기 마련이다. 물론 <전원일기>를 보며 자라온 세대라면 그 드라마 속 가족들이 실제로 나이 들어가는 그 과정까지 공유함으로써 더 큰 세대적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따뜻한 가족애가 주는 편안함은 요즘처럼 핵가족화되고 나아가 나홀로 가구들이 급증하고 있는 세태에 오히려 더욱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한다. 

 

대중들이 농촌, 자연에 갈증을 느낀다는 증거

<전원일기>가 2002년 종영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미 바뀌고 있는 현실 때문이었다. 도시화로 인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는 이들이 급증했고, 농촌조차 전원도시로 변모했다. 당연히 라이프스타일도 바뀌었다. 도시의 세련된 삶이 대중들이 보고픈 것들이었고, 그래서 당대에 드라마들은 이런 삶을 담은 이른바 ‘트렌디 드라마’를 경쟁적으로 선보였다. 이 때 등장했던 트렌디 드라마들은 지금의 한류 드라마가 뻗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가치관도 바뀌기 시작했다. 가부장적 사고관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전원일기>의 가족 이야기들은, 물론 당대의 농촌의 삶을 리얼하게 담았던 것뿐이지만, 점점 개인이 중요해지는 도시적 삶의 방식 앞에 어딘지 구시대적인 느낌을 만들었다. 물론 <전원일기>도 이런 변해가는 세태를 반영해 변화를 추구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농촌 가옥의 세트는 전원도시의 개량된 가옥으로 바뀌었고,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도 소재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런 변화가 <전원일기> 특유의 정서를 계속 이어가게 해주지는 못했다. 너무 오래도록 출연했던 배우들마저 이제는 하차를 원하게 되자 결국 <전원일기>는 종영했다. 

 

그렇다면 종영 후 19년이 지난 현재는 어떨까. 그런 시대의 변화 때문에 종영을 선택했지만 지금 다시 <전원일기>가 주목받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은 최근 몇 년 간 고도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과, 급격한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오히려 거꾸로 자연과 농촌에 대한 갈증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현 대중들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전원일기> 종영 이후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로 그 명맥을 이었지만 이마저 종영된 후 농촌드라마(전원드라마에 가까웠다)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드라마가 농촌을 떠나버린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농촌과 자연을 찾아 떠났고 지금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박2일>부터 시작해 <삼시세끼> 같은 나영석표 예능 프로그램이 시골과 자연을 찾아 떠났고,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은 종편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도시화될수록 대중들의 농촌과 자연에 대한 갈증은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이다. 

 

<전원일기>가 지금 대중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게 된 건, 갈증은 커졌지만 이를 채워줄 농촌드라마가 부재한 현실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만든다고 해서 그 갈증이 채워질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이미 달라진 농촌의 현실이 더 이상 저 <전원일기> 속 농촌 풍경이 주던 편안함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전원일기>는 그렇게 더 이상 우리가 볼 수 없는 ‘사라진 농촌’을 담은 작품으로서 더더욱 아우라를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됐다. 

 

자극적인 19금 콘텐츠의 시대, <전원일기>의 가치

“딴 드라마들은 그 갈등의 잔해들이 있잖아. 욕하고 막 미워하고 이런 걸 아주 자세히 보여줘요. 그럼 사람들이 재밌어가지고 어머나 이렇게 욕하면서 봐요. 근데 이 드라마는요, 엄마, 아버지 그 다음에 또 험한 말하는 일용엄마까지요. 그 (갈등의) 잔해들을 주워요.” ‘전원일기 2021’에 출연한 김혜자는 인터뷰에서 <전원일기>가 왜 다른 드라마들과는 다른가를 ‘갈등의 잔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이런 설명은 그가 <전원일기>를 ‘농촌드라마’가 아닌 ‘휴먼드라마’라고 강변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애써 화해하는 모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이 작품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드라마의 이런 ‘휴머니즘’은 심지어 배우들의 삶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전원일기 2021’에서 최불암은 드라마 속에서 금동이를 입양하는 김회장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그 후로 지금껏 어린이재단을 후원하는 일을 하게 됐다고 했다. 즉 그건 드라마 속 김회장의 이야기였을 뿐이지만, 자신을 칭찬하는 시청자들 때문에 실제로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작품이 가진 휴머니즘이 시청자들을 움직였고, 그 시청자들의 반응이 배우들을 움직여 현실의 온도를 조금은 높여주는 선순환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이 같은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깔고 있는 <전원일기>는 그래서 현재 점점 자극적으로 치닫고 있는 드라마들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든다. OTT가 열리면서 해외의 자극적인 19금 드라마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우리네 드라마도 이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중이다. 물론 19금 드라마가 그 자극의 수위로 문제가 있다 말할 수는 없지만, 주제의식과 상관없이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닫는 이른바 ‘막장드라마’들은 <전원일기>와는 확실한 비교점을 만든다.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예사로 일어나는 이들 막장드라마들 속에서, ‘갈등의 잔해를 줍는’ <전원일기>가 가진 가치가 새롭게 드러난다. 자극의 끝단을 담는 드라마들 속에서 <전원일기>가 오히려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다. 

 

농촌마저 도시화를 꿈꾸는 요즘, 우리에게 원형적인 따뜻함으로 기억되어 있던 ‘고향’의 풍경들은 갈수록 소외되고 사라져간다. 그래서 그 사라져가는 정경에 대한 갈증이 커지듯이 <전원일기>는 2021년에 새로운 가치로 우리에게 재조명되고 있다. 세상은 변화하고 그 삶의 방식 또한 변해가지만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건(않아야 한다 여기는 건) 바로 우리네 인간이다. 그래서 <전원일기>를 통해 우리가 애써 찾고 있는 건 ‘인간의 온기’가 아닐까 싶다. (글:시사저널, 사진:MBC)

‘풀뜯소’, 한태웅이 가르쳐주는 생산의 기쁨

도대체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시골이라는 공간이 주는 푸근함 때문일까. 아니면 한태웅이라는 어리지만 당찬 중딩농부의 넉넉한 마음 때문일까. tvN <풀 뜯어먹는 소리>가 ‘가을편’으로 돌아왔다. 

‘봄편’에서도 그랬지만 ‘가을편’ 첫 방송도 아주 특별한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새 멤버로 박나래와 황찬성이 합류했고, 그렇게 도착한 그들은 오자마자 봄에 모내기를 했던 논을 가득 채운 벼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곧바로 고추밭으로가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고는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이 별것도 아닌 일들은 하지만 묘한 편안함을 주었다. 고추를 따는 농사 일은 단순해 보여도 도시에서 살던 이들에게는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고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먹는 점심은 꿀맛이었다. 똑같은 한 끼도 완전히 다르게 다가오는 건 거기 ‘건강한 노동’이 있어서다.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노동 후의 한 끼가 주는 행복감.

도시 살이가 소비의 삶이라면 한태웅이 소개하는 농촌의 삶은 생산하는 삶이다. 봄에 심었던 벼들이 올여름 폭염과 갑자기 들이닥친 태풍을 다행히도 피해내고 초가을 풍성하게 자라있는 모습은 생산하는 삶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아닐까.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다 빻아서 만든 고춧가루가 맛있는 음식으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알기에 느껴지는 포만감. 이것은 <풀 뜯어먹는 소리>가 특별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주는 정신적인 포만감이다. 

이제 열여섯의 중딩 농부 한태웅이 주는 흐뭇함은 바로 이런 농촌에서의 생산하는 삶이 온 몸에 묻어나면서 생겨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잠들 때까지 무언가를 일궈내기 위해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그 모습은 도시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를 드러낸다. 

이 어린 생산하는 자의 당찬 포부는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강원도까지 찾아가 보통 송아지 가격의 두 배나 되는 칡소를 사오며, 앞으로 그 소를 키워 안성에 있는 자신의 축사 가득 채우겠다는 포부는, 도시에서 살아가며 더 성공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경쟁하는 삶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마치 호랑이 문양이 들어간 듯한 특이한 외양을 가진 칡소는 우리나라에 꽤 많이 존재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약 150만 마리가 수탈되면서 점점 자취를 감추다 현재는 멸종 위기에까지 처했다고 한다. 현재는 전국에 3천 마리 정도 밖에 없다는 칡소. 그걸 복원해 안성에 칡소가 유명하게 만들고 싶다는 한태웅의 포부. 도시에서 온 출연자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인 건 그 남다른 포부가 주는 기특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풀 뜯어먹는 소리>는 그 ‘생산적인 일들’ 덕분에 굉장한 일을 벌이지 않아도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무언가를 키워내고 살려내는 일을 한다는 것. 그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도시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기쁨이 적지 않다. 그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한태웅을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드는 건 그래서일 게다.(사진:tvN)

‘풀뜯소’ 16살 농부 한태웅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건

농촌은 꽤 오래 전부터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소재였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방영됐던 SBS <서세원의 좋은 세상만들기>는 시골에 내려가 그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벌이는 즐거운 한 때를 보여준 바 있고, MBC <무한도전>은 농사를 도전미션으로 삼아 1년 간의 장기프로젝트를 선보인 바 있다. 또 KBS <청춘불패>는 예능 사상 처음으로 농촌 정착형 예능을 보여줬고, 최근에는 tvN <삼시세끼>가 농촌생활의 일부를 소재로 삼은 바 있다. 

그래서 tvN이 새로 선보인 <풀 뜯어먹는 소리>가 농촌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 그리 특별하게 다가올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어딘가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한태웅이라는 이제 16살 농부가 그 프로그램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미 농사경력 8년차인 한태웅은 경기도 안성에서 실제로 농사를 짓는 ‘마음대농’으로 이 프로그램이 그저 일회적인 농촌체험이나 농촌을 소재로 하는 웃음 정도에 머물지 않게 만든다. 한태웅이 매일 겪는 농촌생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니 말이다.

농부의 길이라는 남다른 선택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한태웅은 그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이 여느 또래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느릿느릿 툭툭 던지는 말에서는 심지어 ‘연륜’마저 느껴진다. 행복에 대해 묻는 송하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이라는 한태웅의 말은 그것이 진심이고 또 그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듣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이제 겨우 16살이지만 그 적어보이는 나이 속에 꽉 채워 넣은 농촌살이의 진정성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농사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앙기가 있어 천 평 넘는 논에 모를 심는 일도 하루에 뚝딱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국 농사일은 사람 손이 닿아야 하는 일이다. 이앙기가 닿지 않는 곳에 직접 손으로 모를 심어본 출연자들은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일일이 손으로 모를 심었을까를 생각한다. 태웅이네 가족이 정성껏 준비해온 새참을 먹으며 친척 할아버지는 힘든 농사일에 막걸리 한 잔이 진통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높은 게 농사일이라는 것.

하지만 진짜 힘든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모내기를 끝낸 논에 예쁘게도 심어져 있는 모를 보며 한태웅은 농사의 진짜 어려움을 말한다. 그가 짓는 논의 크기는 여섯 마지기. 약 1천2백평인데, 인건비, 비료값, 모판값 등을 따지면 1년 동안 천 평이 넘어도 5,60만원 밖에 안 남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쌀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래서 한태웅은 농사를 짓는단다. 

“그러면 점점 우리나라 쌀이 없어지고 나중에는 우리나라 농민들이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 돈을 떠나서 농사를 안지어서 풀밭도 되고 공장 같은 것도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고 저는 그게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것 때문에 저는 땅 한 평이라도 더 짓고 가축 한 마리라도 더 키우려는 거예요.”

한태웅의 이 진심은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농촌을 소재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특별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물론 한낮 뜨거운 땡볕을 피해 정자에서 아이스크림 내기 게임을 하는 출연자들의 한가로운 모습은 도시인들에게는 부러워지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뻐꾸기 소리와 전면에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푸른 산이 주는 편안함은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험들이다. 

하지만 그런 풍경들보다 더 우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건 한태웅이라는 한 젊은 농부의 남다른 삶의 방식이다. 심지어 007빵 게임도 모르고 한 때는 친구들과 친해지려 PC방에 가서 게임을 해보기도 했지만 어지러워서 포기했다는 이 농부가 느끼게 만드는 농촌살이의 각별함. 도시생활의 각박함과는 너무나 다른 그것이 <풀 뜯어먹는 소리>의 농촌을 너무나 다르게 다가오게 만든다.(사진:tvN)

여성, 정착, 일반인... 알고 보면 ‘청춘불패’ 안에 다 있었다

KBS <1박2일>이 폐지됐던 <청춘불패>의 추억을 되살렸다. 지난 2009년 시작해 1년 넘게 시즌1이 방영됐고 2011년에 시즌2가 방영되다 결국 폐지됐던 <청춘불패>다. 사실 시즌2에 와서는 본래의 색깔이 많이 사라져 아쉬움을 주었지만, 강원도 홍천 유치리에서 정착해 농촌의 삶을 사계에 걸쳐 보여줬던 시즌1은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1박2일> 당시 <청춘불패>에 출연했던 김신영, 나르샤, 구하라 등을 출연시켜 그 때의 추억이 남아있는 유치리를 방문했다. 

'1박2일(사진출처:KBS)'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는 비닐하우스에는 그 때 마을 잔치도 벌이고 게임도 했던 기억들이 사진들 속에 담겨 있었고, 출연자들이 머물며 찍었던 빈농가에는 직접 그들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들이 여전했다. 그리고 <청춘불패>에서 스타가 됐던 마을 어르신 로드 리(이기욱)는 이들을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처럼 반겨주었다. 로드 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막걸리 한 잔으로 발그레진 얼굴로 출연자들을 기분 좋게 맞아주는 모습이었다. 

<1박2일>이 1회성으로 방문한 <청춘불패>의 유치리지만,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한 시청자들은 반색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박2일> 멤버들과 짝을 이루고 게임을 하는 모습 속에서 <1박2일> 멤버들을 쥐락펴락하는 김신영이나 나르샤, 구하라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시청자들에이 <청춘불패>를 다시 되살릴 순 없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실 프로그램이 가진 기획적인 면들을 두고 보면 <청춘불패>는 여러모로 앞서갔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만 해도 여행 버라이어티가 유행했던 시절에 <청춘불패>는 정착형 예능을 시도했다.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정착해 그 곳의 삶에 그대로 녹아드는 걸 택했던 것. 그런데 알다시피 요즘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여행만큼 정착해서 보여주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된 건 일시적으로 이벤트적인 여행보다는 훨씬 더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정착의 풍경이 리얼리티 예능으로서 시청자들이 더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별다른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지만 소소함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요즘의 시청자들이 더 원하는 것이 됐다. 물론 <청춘불패>가 방영되던 당시만 해도 이건 너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게다가 <청춘불패>에는 역시 요즘 예능들에 빠질 수 없는 일반인들의 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었다. 로드 리는 이렇게 프로그램에 들어오면서 스타가 됐던 일반인이었다. 그 이외에도 그의 친구인 유치리의 전 이장 왕구 아저씨(이왕구)도 있었고 그 분들의 부인들이나 동네 어르신들도 <청춘불패>의 출연자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했다. 

무엇보다 <청춘불패>가 가치 있게 여겨진 대목은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여성 출연자들이 중심이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는 점이다. 너무 남성 출연자 중심으로 흘러가는 요즘의 편향된 예능 프로그램의 추세 속에서 <청춘불패> 같은 프로그램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1박2일>로 인해 다시금 재조명된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청춘불패>는 지금의 예능 트렌드에 오히려 더 잘 어울렸던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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