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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옥표 드라마의 한계, 비약과 과장

 

<아내의 유혹>과 <천사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에게 늘 막장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다섯손가락>의 초반부는 분명 어딘지 기존 막장드라마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가 주는 느낌이 일조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섯손가락>의 피아노라는 소재는 김순옥 작가가 그리던 거친 세상과는 대조적인 감성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였을까. <다섯손가락>은 11.2%(8월18일 agb닐슨)로 시작해 일찌감치 14.1%(8월25일)로 정점을 찍었다.

 

'다섯손가락'(사진출처:SBS)

여기에 아역들이 가진 힘이 있었다. 아이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상황들에 노출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기 때문에 막장이라기보다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는 김순옥 작가의 진화라는 평가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 선전을 이끌었던 아역들이 빠지면서 11.8%(9월2일)로 뚝 떨어지더니, 10.8%(9월8일), 10.5%(9월9일)로 끊임없는 하락세를 걷게 되었다. 경쟁작인 <메이퀸>이 아역 분량을 지금껏 이어오면서 꾸준히 시청률을 끌어올린 것과는 대조적이다(<메이퀸> 역시 아역이 빠지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성인역으로 교체되면서 김순옥표 드라마의 고질적인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과 우연의 연속, 캐릭터가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에 의해 인형처럼 조종되고 있다는 인위적인 느낌, 게다가 어디서 많이 봤던 상황들의 연속까지... 문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라는 감성적인 소재와 아이라는 동정적 시선의 대상이 사라지면서 본색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껏 누누이 지적되어 왔던 김순옥표 드라마의 가장 큰 맹점은 개연성 부족과 속도 조절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작가의 성정 때문인지 모르지만,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는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속도감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논리와 개연성이 충분히 녹아나지 않게 되면 시청자들은 저 뒤에 있는데 작가 혼자 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인이 된 유지호(주지훈)와 홍다미(진세연)가 자전거를 타다 부딪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장면은 김순옥표 드라마의 논리와 개연성 결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제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그렇게 비슷한 자전거를 타고 있다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다) 자전거가 바뀌는 일이 얼마나 가능할까. 하지만 이 자전거가 바뀌는 사건은 유지호가 스승인 하윤모(전국환)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큰 사건으로 이어진다. 스승의 악보를 유지호가 소홀히 관리했다는 것. 게다가 하윤모가 그 악보가 유출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장면도 홍다미가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 카페에 그가 우연하게도 거기 있으면서 생긴 일이다.

 

사건이 개연성이 전혀 없고 우연을 반복되는 것이 김순옥표 드라마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다섯손가락>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윤모는 결국 이것이 자신의 오해라는 것을 알고 다시 유지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만, 그는 또 유지호가 자신의 악보를 훔쳤다는 오해를 갖게 되고(이것은 모두 채영랑(채시라)의 음모지만) 다시 그를 내친다. 이 과정에서 하윤모라는 캐릭터는 마치 감정조절이 안되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그토록 신뢰가 돈독하던 사제지간에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제자를 두둔하기보다는 그를 의심하는 섣부른 감정은 캐릭터를 매력 없게 만들어버린다. 이것은 작가의 스토리 전개를 위한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캐릭터 조종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김순옥 작가의 드라마가 가진 지나친 비약과 과장은, 그녀의 작품이 속도에 집착하는 것조차 시청자들에게 속도의 쾌감을 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빈약한 논리를 가리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빨리 움직임으로써 우연의 반복과 개연성의 부족을 감추려는 안간힘. 과거의 시청자라면 ‘드라마는 원래 그래’하며 넘어갔을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시청자의 드라마를 보는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벼려져 있다. 작은 개연성 부족 하나도 놓치지 않는 게 작금의 대중들이 아닌가.

 

<다섯손가락>이 개연성과 논리를 버리고 속도에 집착하면서 생겨나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그것은 애초에 이 거친 드라마조차 감성적으로 만들어주던 피아노라는 소재가 점점 하나의 소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다섯손가락>은 피아노라는 음악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피아노 회사의 경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암투와 욕망의 이야기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 정도면 소재가 아깝고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아까운 상황이다. 시청률의 추락은 당연하면서도 고무적인 일이다. 언제까지 시청률이 나온다는 이유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를 계속 방치할 것인가. 시청자들의 눈은 정확하다.

Posted by 더키앙

<슈퍼피쉬>,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맛

 

새롭게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이 동시에 시작했던 지난 8월18일,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통상적으로 주말극의 동시출격으로 시선이 가기 마련이지만, 이 날 이 두 드라마는 <슈퍼피쉬>라는 다큐멘터리에 무릎을 꿇었다. 시청률 13.8%. 같은 시간대의 <메이퀸>과 <다섯손가락>은 11%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물론 그 후에는 자극으로 무장한 주말극이 이 다큐멘터리의 시청률을 앞질렀지만, 그래도 12%대의 고른 시청률을 유지한 <슈퍼피쉬>의 저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슈퍼피쉬'(사진출처:KBS)

<슈퍼피쉬>의 그 놀라운 저력은 그림 같은 압도적인 영상과 그 속에 담겨진 흥미로운 내용이 잘 어우러진 결과다. 거친 목탄으로 그려진 그림에서 시작해 서서히 영상으로 바뀌는 오프닝은 <슈퍼피쉬>의 영상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준다. 사람 키를 훌쩍 넘긴 크기의 참치가 펄떡 펄떡 뛰고, 고대 로마시절부터 전해져온 참치 잡이 방식인 마탄차(학살이란 뜻이다)는 바다를 피와 희뿌연 정액으로 물들인다. 말리의 안토고 호수에서는 1년에 딱 한 번 허락된 고기잡이를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호수로 뛰어드는 장관을 연출한다.

 

라오스 곤파펭에서는 당장이라도 삼켜버릴 듯한 급류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 물고기 잡이가 벌어지고, 중국에서는 삼키지 못하게 목줄을 감은 가마우지를 이용한 물고기 잡이를 보여준다. 이 모든 장면들은 고속 카메라에 담겨 펄떡임 하나, 튀는 물방울 하나까지 세세하게 담겨진다. 육안으로라면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다큐 안에 그득 채워지는 것은 고속 카메라, 헬리 캠 같은 인간의 시각을 넘어서는 카메라 영상 기술 덕분이다.

 

하지만 <슈퍼피쉬>에 빠져들게 한 것은 이런 시각적인 스펙터클 때문만이 아니다. 물고기의 생태가 아닌 물고기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시간적으로는 태곳적부터 현재까지, 공간적으로는 전 지구 곳곳까지 파고 들어가 살펴보는 이 다큐의 지적인 호기심은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든다.

 

이 다큐는 사냥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물고기를 잡아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 있었던 것이 어떻게 문명의 발달과 관계를 맺는지를 보여주고, 쉬 상하기 마련인 물고기를 오래도록 저장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며, 물고기가 종교와 만나 어떻게 세계사를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준다. 실로 지구와 인간의 역사는 물고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 다큐의 증언이다.

 

<슈퍼피쉬>가 특히 주목되는 것은 그 시선이다. 지중해에서 북유럽, 아프리카, 중국, 라오스, 호주 등등 거의 지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이 다큐는 지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물고기와 인간의 공존을 마치 옆 동네 일처럼 담담히 펼쳐 보여준다. 바로 이런 시선은 굳이 지구촌 운운하지 않아도 우리 인류가 국가와 민족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의 삶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동질성을 드러내준다. 물고기를 주제로 하지만 거기서 보편적인 인류사의 중요한 자산인 쌀, 소금, 종교 같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얼마 만에 맛보는 다큐의 맛인가. KBS의 <차마고도>, <누들로드>나 MBC의 <남극의 눈물> 같은 눈물 시리즈 다큐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다큐의 전율이다. 주말 저녁 비슷비슷한 자극적인 설정으로 치닫는 주말극에 지친 이들에게 그래서 <슈퍼피쉬>는 편안하고도 놀라운 지적인 여행을 떠나게 해주었다. 일상화된 영상의 시대, 일상적인 다큐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그럴수록 제대로 된 다큐에 대한 갈증도 커지고 있다. <슈퍼피쉬>는 오랜 만에 그 다큐의 갈증을 풀어주었다.

Posted by 더키앙

은정 하차가 연기자들의 처우문제인가

 

티아라 사태는 좀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왕따설에서 시작되어 화영의 퇴출로 인해 빚어진 논란들은 이제 그런 사태 이후에도 강행된 티아라의 활동으로까지 번졌다. <다섯손가락>에서 하차하게 된 함은정 양을 두고 제작진과 티아라 소속사 사이에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이하 한연노)과 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까지 가담하면서 연기자들의 처우 문제가 공론화됨으로써 사태는 일파만파 커져만 가는 상황이다.

 

'다섯손가락'(사진출처:SBS)

그런데 연기자들의 처우문제까지 들고 나와 함은정 양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 상황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사실 연기자의 처우문제는 그 안건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제작사와 방송사들이 대중들에 의해 두드려 맞을 수밖에 없는 단골 소재였다. 하지만 이번 안건에서는 그렇지만은 않은 반응들이 나온다. 이번 드라마에서 하차하게 된 함은정 양에 대해 연기자의 권익 찾기라는 논리로 두둔하고 있는 몇몇 기사들에 달리는 댓글들은 정반대의 대중정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나아가 이제 한연노와 연매협까지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왜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을까.

 

그것은 당연하게도 대중정서가 티아라와 그 소속사에 대해 여전히 깊은 불신과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함은정이 <다섯손가락>에서 하차하게 된 그 빌미는 바로 이런 대중정서를 만들어낸 티아라 당사자들이 만든 것들이다. 아무런 사태와 논란이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왜 굳이 제작사와 방송사가 멀쩡한 연기자를 하차시키겠는가. 한연노와 연매협은 이것이 연기자들과 제작사, 방송사 사이에 놓여진 불공정한 계약관계의 문제(물론 계약 관행의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라고 하지만, 이것은 논점이 빗나간 것이다. 계약관계 이전에 티아라 사태로 인해 반감을 갖게 된 대중정서가 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제작사나 방송사 또 소속사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하차는 벌이지도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왜 한연노나 연매협이 지금껏 수많은 다른 연기자들의 권익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이제 와서 함은정의 하차를 두고 이토록 전면에 나섰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상 함은정은 몇몇 단역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본업이 연기자는 아니었다. 가수였고 아이돌이 드라마에 진출하는 최근의 트렌드에 따라 주연을 꿰찬 행운아이기도 하다. 본래 연기를 지망하고 있지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무명 연기자들에게 이런 아이돌들의 연기 진출은 그 자체로 힘겨운 현실이기도 하다.

 

사실 연기자들의 처우문제는 주연급들보다는 단역들의 문제에서 주로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거꾸로 연기자가 슈퍼 갑이 되어 제작진을 휘두르는 상황도 생기곤 한다. 또 어떤 주연급 연기자들은 엄청난 개런티를 요구함으로써 드라마 제작에 있어 불균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 피해는 다른 동료(연기자, 제작진)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따라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작금의 대중들은 주연급 연기자들이 “드라마 제작현실”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히려 씁쓸해 하곤 한다. 그 제작현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그 가공할 격차를 느끼게 하는 출연료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함은정이 <다섯손가락>에서 하차하게 된 것에 대해 대중정서가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그 첫째는 아직도 티아라 사태에 대한 소속사나 티아라 당사자들의 확실한 태도를 보지 못함으로 해서(입장을 밝혔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오히려 점점 커져가고 있는 대중의 반감이다. 둘째는 함은정이 연기자의 권익을 대표할만한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의구심이다. 그리고 셋째는 권익을 주장하는 것도 힘 있는 주연급들이나 할 수 있다는 현실상황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대에서 생겨난다.

 

물론 함은정 개인에게 생긴 이런 불상사는 힘겨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기 마련인 연예인으로서 대중들이 지금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은 한연노나 연매협 같은 연예인과 연기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협회에서도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연예인과 연기자들의 존재기반은 바로 대중정서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명품 아역 연기에 남는 씁쓸한 뒤끝

 

이건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다. 주말극 <다섯손가락>과 <메이퀸>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 얘기다. 이 두 주말극은 모두 성공에 대한 욕망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전략을 가진 드라마다. <제빵왕 김탁구>의 성공 이후에 전가의 보도처럼 다뤄지던 출생의 비밀과 대결, 그리고 성장드라마의 요소를 이 두 드라마에서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초반부에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이 어른들 못지않은 대결의 날을 세우고 있는 건 이러한 유사한 전략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다.

 

'메이퀸(좌)'과 '다섯손가락(우)'(사진출처:MBC,SBS)

<다섯손가락>에서 인하(김지훈)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데려온 배다른 형 지호(강이석)를 사사건건 무시하고, 밀어내기 위해 거짓말도 일삼는다. 피아노 대결에서 지호를 이기기 위해 다치지도 않은 손에 깁스를 하고 동정표를 얻어 1등을 차지하는가 하면, 대결 당일 지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지호의 친 엄마를 봤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인하는 어린 아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 보여주는데,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아빠인 유만세(조민기)다. 유만세는 어린 아이들 앞에서 후계 운운 하면서 경쟁 구도를 노골화하는 혹독함을 보여준다.

 

<메이퀸>에서 해주(김유정)는 어린 시절 버려져 천홍철(안내상)의 집에서 자라난다. 천홍철이 바깥에서 데려온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그의 아내 조달순(금보라)은 그런 해주를 구박하고 못살게 군다. 이 드라마에서 해주는 마치 옛 드라마의 억척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낸다. 동생을 챙기고, 가족의 밥을 챙기고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다. 또 이 드라마의 창희(박건태)는 천지그룹의 오너인 장도현(이덕화)의 집에 얹혀사는 아버지 때문에 늘 그의 아들인 일문(서영주)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런데 이 일문은 창희의 아버지인 박기출(김규철)을 창희 앞에서도 하인 부리듯 하는 패악을 저지른다. 역시 아이로서는 보기 힘든 지나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두 드라마가 아역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이들이 주목받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라는 얘기는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이 그 나이에 맞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역할을 연기하는 아역들이 어른 못지않은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섯손가락>의 인하와 지호를 각각 연기하는 김지훈과 강이석이 그렇고, <메이퀸>의 김유정이나 박지빈, 박건태가 그렇다. 특히 김유정은 아역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 이어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아역의 선을 넘어서버린 느낌이 있다.

 

이렇게 연기력이 어른 못지않은 아역들이 투입되면서 자칫 막장으로 흘러갈 수 있을 정도로 자극이 강한 이 두 드라마는 확실한 두 가지 이점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들이 당해도 참혹할 정도의 상황을 아이들이 겪게 됨으로써 그 자극을 더 높여주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막장의 느낌을 상당히 상쇄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아역 분량이 드라마에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연기력으로 무장한 아역들이 많아지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드라마로서의 이점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장점이 분명하다고 해도 이를 통해 아이들 같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점점 버젓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드라마의 설정이 점점 막장에 가까운 자극으로 흘러가고, 그 속에 아이들이 배치된 상황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현실을 표징하고 있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막장 같은 세상에 아이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듯한 느낌. <다섯손가락>과 <메이퀸>의 아역들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아이들 같지 않게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가 감탄하면서도, 씁쓸한 뒤끝이 남는 건 그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티아라를 위해서도 시간은 필요하다

 

티아라의 은정은 결국 드라마 <다섯손가락>에서 하차하게 됐다. 항간에는 제작진의 이 결정에 대해 일방적으로 통보된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겨진 논리가 애매하다. 티아라 사태로 인해 은정이 출연하게 된 <다섯손가락>이 오히려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며, 그래서 이제 PPL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은정을 퇴출시키는 것은 마치 토사구팽을 연상케 한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다섯손가락'(사진출처:SBS)

먼저 티아라 사태가 <다섯손가락>에 득(得)을 주었다는 시각은 이해될 수 없다. 물론 관심을 집중시켰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긍정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실(失)로 작용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티아라 사태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은정이 출연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안보겠다는 시청자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또 PPL이 은정 출연 때문에 어려워진다는 얘기 자체가 대중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다섯손가락> 제작진은 티아라 사태로 인해 거꾸로 피해를 본 셈이다. 마치 CF를 찍은 연예인이 사회적인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해당 기업에게 그 피해가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경우에 해당 기업은 그 연예인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도 하지 않는가.

 

물론 <다섯손가락>에서 은정의 하차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즉 애초에 티아라 사태가 터졌을 때, 아예 선을 그었다면 훨씬 자연스런 조치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제작진들은 티아라 사태의 중대성을 잘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결국 뒤늦게 그 중대성을 깨닫고 하차 결정을 한 것이 잡음이 남게 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제작진의 이런 둔감한 반응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건 티아라 소속사의 행보다. 티아라 사태는 그 본질과 상관없이 소속사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대중들에게는 왕따의 이미지로 굳어버린 게 사실이다. 즉 퇴출된 화영과 남게 된 멤버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그 자체로 당한 이가 퇴출되고, 가한 이가 버젓이 남아있는 상황으로 인식되게 된 것.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티아라 멤버들이 버젓이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것이 어떤 이미지를 만들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티아라 소속사는 멤버들의 드라마 출연을 강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은 어찌 보면 대중정서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무시한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대중들을 상대하는 연예 기획사가 대중정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까. 게다가 같은 연예계 종사자로서 드라마 출연 강행이 드라마 제작진들이나 방송사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런 끝없는 구설수 속에서 정작 더 힘들어지는 건 티아라 멤버 당사자들이다. 심지어 티아라 왕따 놀이가 등장할 정도로 사회문제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멤버들은 그 어떤 방송 출연도 득보다는 실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특히 티아라 사태에서는 멤버들의 방송활동 자체가 이들의 왕따 이미지를 더 공고하게 굳혀버리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티아라 사태의 진짜 본질이 실제 왕따인지 아니면 그저 왕따설일 뿐인지는 아직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멤버 당사자들이나 소속사 대표 그 누구도 명쾌한 해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신뢰의 금이 간 상황에서는 그 어떤 해명도 믿음을 주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이 무엇인가만큼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일 게다.

 

대중정서를 감안해본다면 티아라에게 현재 필요한 건 방송 강행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태가 진정될 수 있을 때까지의 시간이다. 이 대중정서가 가라앉지 않는 한, 어떤 방송 강행도 티아라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는 어렵다. 소속사가 티아라를 위한다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현재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대중문화 종사자로서의 사회적인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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