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만의 차별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시청률 23%. 그 전후에서 '동이'는 멈춰서 있다. 사극으로 보면 높은 시청률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낮은 시청률도 아니다. 그저 틀어놓고 시청하면 꽤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기대를 조금 갖고 보게 되면 조금 시시한 느낌도 든다. 주인공 동이(한효주)가 인현왕후(박하선)와 장희빈(이소연) 사이에서 사지로 내몰리며 그 누구도 풀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을 마치 '별순검'의 한 장면처럼(물론 아주 소프트하게) 풀어내는 과정은 꽤 긴박감이 넘친다.

그런데 하나의 미션이 끝나고 나면 어딘지 허전하다. 미션과 미션 해결 그리고 국면전환은 꽤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뒤통수를 치는 기발함 같은 것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23%에 멈춰서 있는 '동이'의 시청률은 이해가 된다. '동이'는 지금 미션 사극의 전형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다. 과거라면 이 전형은 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줬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금의 시청자들은 사극을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지만 '동이'가 그걸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 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까.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사극으로 만들어졌다. 장희빈의 그 독한 눈빛과 그런 독한 장희빈에 의해 당하는 인현왕후. 그리고 결국 밝혀지는 진실. 사약을 받고도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모습, 그리고 그런 그녀의 입을 억지로 벌려 사약을 들이붓는 장면은 이제 장희빈이라는 콘텐츠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만큼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는 사극의 소재로서 강하다. '동이'가 새로운 사극이 되려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결국 '동이'는 장희빈과 인현왕후가 벌이는 왕실암투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미 미션이라는 틀이나, 여성의 성장, 그리고 추리 형식은 이른바 퓨전 사극의 기본기가 되고 있는 상황, 따라서 동이가 매번 미션을 부여받고 그 미션을 해결함으로서 조금씩 성장하며 감찰궁녀로서 사건을 추리하는 모습은 그다지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대장금'이 특별했던 것은 여성 성장 미션 사극의 출발점이고 추리적인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기본기를 요리와 의술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어떤 요리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 의학지식 등을 통해 해결되는 과정은 '대장금'만의 차별점을 만들었다.

'이산'에서는 정조의 궁에서 살아남기라는 독특한 시선이 존재했고, 무엇보다 도화서의 이야기가 이 사극의 기본기와 잘 엮어져 차별점을 만들었다. '동이'에도 초반부에는 이런 차별점이 있었다. 이른바 '음변(音變)사건'이 그것이다. 사건을 음으로 엮었고 그 음이 왜 변했는가를 찾아가는 동이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동이'만의 차별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로 동이가 감찰궁녀가 된 후로 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버렸다.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은 바로 이 장악원이라는 이 사극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인물이지만, 지금은 장악원과는 상관없이 그저 '자나 깨나 동이 걱정'하고 사극의 상황을 쉽게 설명해주는 코믹한 연사 역할에 머물러 있다.

사극의 미션 속에 들어있기 마련인 추리적인 요소는 드라마라는 특성상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워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보게 되는 시청자나 집중해서 보지 않는 시청자들은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사극의 추리는 그 복잡함에서 재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특별한 시각이나 소재에서 찾아야 한다. '대장금'의 추리에 음식이 있었고, '이산'에는 그림이 있었다면, '동이'는 음악이 그 추리 요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초반부 음변사건 이후로 '동이'만의 새로운 추리 요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확실한 차별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동이'는 블랙홀 같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로 회귀하는 느낌을 준다. 동이만의 매력이나 특징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동이'만이 차별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과 동이의 로맨스다. 분명 사극은 멜로만의 힘으로는 움직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깨방정 숙종과 동이의 로맨스는 권위의 해체라는 점에서 멜로의 틀 이상의 현재적 의미를 확보한다. 하지만 '동이'가 현재적 의미에 천착하는 사극이라는 특징을 확보하려면 다른 에피소드들도 좀 더 현재성을 강조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찰부의 에피소드들은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를 좀 더 깊게 다뤘다면 꽤 현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서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면 오히려 현재에서 그것을 찾는 방법도 방법일 수 있다.

이 '사극의 현재성'이라는 문제는 동이라는 캐릭터에서도 그다지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 동이는 한 번 물면 놓지 않는다는 '풍산'이라는 캐릭터를 얻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그저 착한 캐릭터다. 물론 착한 캐릭터는 대중들에게 '우리 편'이라는 의식을 만들지만 그것이 현재의 시청자들의 감성에 부합하는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요원) 그 이상으로 주목받은 캐릭터가 미실(고현정)이었고, 이 미실이 욕망에 충실한 현대적 캐릭터라는 점은 '동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좀더 앞으로 쭉쭉 뻗지 못하는 '동이'의 지지부진은 아직까지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대결구도 그 이상을 뛰어넘는 차별성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의 기획의도에 들어있던 음악이라는 요소를 극의 추리적인 요소에 녹여내고,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좀더 현재적인 관점을 담아내며, 동이라는 캐릭터의 성장 속에 단지 착하기만 한 캐릭터가 어떤 목적의식이나 욕망을 갖게 된다면 '동이'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전개양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드라마 속 캐릭터들, 행복을 꿈꾸기 시작하다

'대장금'의 장금이(이영애)는 남다른 욕망을 갖고 있는 캐릭터였다. 수많은 모함과 함정을 벗어나면서 최고의 수라간 상궁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결국 그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그 모습은 당시 많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많은 이들이 '동이'의 동이(한효주)가 장금이를 닮았다고 한다.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닮은 구석이 많아도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동이가 장금이처럼 최고 상궁이 되기 위한 강력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이는 물론 천비 출신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하긴 하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을 긍정하며 밝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무엇이 되기 위한 욕망보다는 현재의 행복 또 앞으로의 행복을 꿈꾸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캐릭터들의 욕망은 과거 시대극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사랑과 야망'이 대표적이고, 가깝게는 '에덴의 동쪽'이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과거 욕망의 시대의 '사랑과 야망'은 성공적이었지만 다시 리메이크된 '사랑과 야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에덴의 동쪽'도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최근에 방영되었던 이른바 남성드라마들도 이 계보에 속한다. '로비스트'나 '태양을 삼켜라' 같은 작품들. 성공의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캐릭터들을 내세운 이 드라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것은 어쩌면 성공을 추구하던 시대가 가고, 행복을 추구하는 시대가 도래한 탓인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현재 방영되는 수목드라마들 속의 캐릭터들은 모두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신데렐라 언니'의 은조(문근영)는 물론 능력이 있고 대성도가를 크게 키우는 인물이지만, 그녀는 성공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녀의 관심은 오로지 행복이다. 늘 욕망에 휘둘리며 속물근성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엄마 송강숙(이미숙)의 그늘 아래서 그녀는 가족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을 꿈꾼다. 그래서일까. 성공을 향한 욕망에 휘둘리는 엄마와 대결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성공이라는 과거적 가치에 포획되어 있는 엄마의 삶에서 벗어나 행복을 향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검사 프린세스'의 마혜리(김소연)는 경제적이나 사회적인 위치로 봤을 때 부족한 것이 없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미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못하다. 그녀는 공주로 남아 있고 싶어 하지만, 그런 삶은 그녀의 사회적인 삶과 부딪친다. 검사로서의 삶은 공주로서는 해보지 못했던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즉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녀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삶으로서의 여성적인 행복을 쥐고 있으면서도, 검사라는 사회적 직무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검사 프린세스'는 모든 걸 다 가져도 결국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하는 드라마고, 그 행복이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개인의 취향'은 아예 이 성공이라는 가치 기준을 살짝 옆으로 밀어놓고 시작한다. 동성애로 오인된 전진호(이민호)와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박개인(손예진)이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이 드라마는, 결국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해가는 로맨틱 코미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다루는 취향의 문제다. 동성애자라는 오인에도 불구하고 그 취향을 인정하고 나자, 박개인은 전진호가 가장 편안한 남자친구로 다가온다. 전진호는 남자로서 박개인에게 연애비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결국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는 이 이야기 역시 그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행복이다.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행복.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도 가족드라마들이 늘 다루기 마련인 혼사장애 속 신데렐라 이야기는 빠져있다. 이 집의 막내인 양초롱(남규리)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돈 자랑을 해대는 남자친구를 한심하게 바라보며, "같이 있어주는 것"조차 싫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쩌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가치를 가장 잘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동성애도 그 연장선으로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신분상승이니 성공이니 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현실 속에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넘쳐나는 것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그 지긋지긋한 성공을 향한 욕망의 질주에 좀 지친 듯하다. 혹 어쩌면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에는 성공이 따르기도 하지만, 성공이 행복을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미션사극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덕여왕’

“생(生)을 고르면 살고 사(死)를 고르면 모두 죽는다.” 금지시킨 차 교역을 한 죄로 끌려온 덕만(남지현)은, 자신과 일행들의 목숨을 건 제후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미 어느 돌이든 모두 사(死)임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 수수께끼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위기의 순간, 덕만이 자신이 선택한 돌을 꿀꺽 삼켜버리고 제후의 나머지 돌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으로 미션을 해결한다. 그러자 긴장이 풀리면서 어떤 문제를 풀었을 때 갖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고, 이로써 덕만의 레벨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이것은 기본적인 '선덕여왕'의 '미션제시-해결'의 이야기 구조. 이 미션사극을 움직이는 강력한 주동력이다.

이중으로 겹쳐져 있는 위기의 미션
일종의 미션을 제시하는 것이 '선덕여왕'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미션 속에 제시되는 주인공의 위기는 여타의 사극보다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는 특징을 가진다. 사막까지 쫓아온 자객을 피해 달아나는 미션에서도, 또 우여곡절 끝에 만난 덕만과 천명(신세경)이 설지(정호근)와 그 무리들에게 붙잡혀 팔려갈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미션에서도, 또 겨우 도망쳐 나와 절벽에서 천명의 손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다가 살아나오는 미션에서도 이러한 위기는 또 다른 위기와 겹쳐진다.

발을 잘못 디뎌 유사(모래수렁)에 빠져버린 양어머니 소화(서영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덕만은 마침 나타난 자객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비를 내려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설지의 마을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게 될 즈음, 미실이 파견한 토벌군에게 쫓기게 된다. 절벽에서 덕만과 천명이 서로의 생명줄을 잡고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도 토벌군의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늘 해법은 제시된다. 때 아닌 모래폭풍이 덮치고, 안오던 비가 내리고, 늘 도움만 받아왔던 천명이 오히려 덕만을 구해낸다.

해결책은 의외로 싱겁지만, 그것은 하늘의 기운을 타고난 이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위기가 이중삼중으로 겹쳐 있다는 것, 그것이 사극의 힘을 만드는 진짜 힘이 된다. 이것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미션사극의 핵심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 사극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 결말이 뻔한 사극에 빠져드느냐고?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결과에 이르는가, 그것이 미션사극이 제시하는 가장 큰 재미요소라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이 성공하기 위해 가져야할 기본 전제
'선덕여왕'의 초반부를 끌어가는 힘을 미실(고현정)이라는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악역에 둔 것 역시 이 사극의 다분히 의도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미션사극은 도달해야할 지점이 현재 주인공이 있는 지점에서 멀면 멀수록 더 힘을 발하기 마련이다. 도달해야할 지점인 권력의 정점에 미실을 세워두고 신라도 아닌 중국 이역 땅에 덕만을 배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먼 곳에서부터 점점 중심으로 다가가는 덕만이 해나가는 미션들은 그 거리만큼 더 폭발력을 갖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덕만이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미션들이 가진 단순함이다. 미션사극은 우리식 사극에 저 미드가 가진 스토리 전개를 접목한 것. 하지만 50부작에 이르는 우리네 사극이 저 미드만큼 꽉 짜여진 미션들을 갖고 있다면 이처럼 대중적인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덕여왕'의 미션들은 물론 뒤따르는 미션과의 연결고리를 갖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만큼 얼개를 느슨하게 가져감으로써 시청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것. '돌 뽑기 미션'이나 '사막 추격 탈출 미션'은 연결점 없이 각각의 것으로 존재하지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 미션들을 해결함으로써 어떤 성장의 과정을 그려내는 덕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따라서 좀 더 편안하게 각각의 미션을 즐기는 것으로 사극에 몰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것은 '대장금'에서도 익숙하게 보아왔던 김영현 작가표 사극의 파괴력이다.

‘선덕여왕’, 미션사극의 새로운 정점
미션사극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이병훈 PD의 필모그래피에서 미션사극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조망해볼 수 있다. 99년도에 방영되었던 ‘허준’과 2001년도 방영된 ‘상도’는 미션사극이 가진 가능성을 촉발시켰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최완규 작가일 것이다. 최완규 작가가 이병훈 PD와 함께 ‘허준’, ‘상도’를 통해 우리식 사극에 미드 식 전개를 붙여 미션사극의 바탕을 만들었다면, ‘대장금’에 이르러 그 바톤을 이어받은 후배 작가 김영현은 여기에 여성적인 색채를 가미하면서 사극의 시청층 자체를 넓혀놓았다.

‘선덕여왕’은 김영현 작가에게는 가장 익숙하고 능수능란한 여성이 주인공인 미션사극이다. 따라서 현재 미션사극의 정점으로서 ‘선덕여왕’이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디 사극의 성공에 작가의 공만이 있을까. 미션 사극에 있어서는 그것을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양 극점에 선 인물들이다. 미션을 제시하는 자와 그 미션을 수행하는 자가 균형 잡힌 대립각을 이룰 때, 미션사극의 힘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다. ‘선덕여왕’에서 미실을 연기하는 고현정과 덕만을 연기해온 남지현의 호연은 바로 그 대본이 가진 힘을 배가시켰다.

올해 사극이 새롭게 꺼낸 ‘여걸’이라는 카드에도 불구하고, ‘천추태후’나 ‘자명고’가 거둔 성과가 미미한 반면, ‘선덕여왕’이 단 몇 회만에 폭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미션사극이라는 흥미로운 대본의 공이 크다. 이제 막 초반을 달리고 있는 ‘선덕여왕’은 아직도 그 파괴력의 끝을 알기가 어렵다. ‘주몽’은 한때 월화의 밤을 장악한 이래, 한동안 동시간대 타방송사의 드라마들이 맥을 추지 못하게 했다. 탄력을 받은 사극을 현대극으로 맞받아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이산’이 등장했을 때 SBS는 ‘왕과 나’로 맞불을 놓았었다. 하지만 ‘자명고’가 사극으로서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선덕여왕’의 독주는 막을 수 없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선덕여왕’의 폭발력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사극, 왜 경합에 빠질까

‘바람의 화원’에는 그림 경합이 매번 등장한다. 신윤복(문근영)이 화원 승급을 두고 ‘단오풍정’을 그릴 때도 경합이 등장하고, 청국에 보낼 그림을 두고 ‘군선도’를 그릴 때도 김홍도(박신양)와 장벽수(김응수)의 경합코드가 등장한다. 또 동제각화의 명을 받고 김홍도와 신윤복이 주막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며 이것은 어진화사 경합을 통해서도 이어진다.

어진화사 경합의 풍경을 보면 하나의 스포츠가 연상된다. 화제를 내린 왕이 있고, 그 시험을 진행하는 예조판서가 있으며, 감독관으로 홍국영이 있다. 그리고 선수들로 김홍도-신윤복팀과 이명기(임호)-장효원(박진우)팀이 있다. 예조판서가 등장해 “이번 경합은-”하고 말하는 장면은 마치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스포츠의 그것과 같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회의 관객들은 경합장은 물론이고, 김조년(류승용)을 위시한 장사치들의 도박내기가 있으며, 소박하지만 서민들의 내기판이 있다. 물론 경기 결과에 따라 입지가 달라지는 선수(?) 주변 사람들까지 거기에는 존재한다.

이 완벽한 스포츠의 구성요소들은 이미 예전 ‘대장금’에서도 등장했었다. 장금(이영애)과 금영(홍리나)이 선수로 등장하는 이 요리 스포츠에는 스승들(한상궁과 최상궁)이 존재하고, 그 판관으로서 중종(임호)의 말 한 마디가 경기를 결정한다. 이것은 ‘이산’으로 이어지면서 이병훈 PD 사극의 색깔을 구축한다. ‘이산’에서는 특이하게도 그 선수가 정조 이산(이서진)이었을 뿐, 거기에는 판관으로서의 영조(이순재)가 있었고 상대편 선수로 노론 벽파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닮아가는 사극과 스포츠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스포츠가 말 그대로 ‘각본 없는 드라마’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반면, 사극은 대체로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바람의 화원’에서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실어주는 인물은 바로 정조(배수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뛰어난 예술가였던 정조가 그림을 놓고 하는 감동(평가)은 마치 촌철살인의 해설자가 풀어낸 경기 해설을 듣는 것만큼 묘미가 있다. 이 해설자이자 판관이 어느 한 팀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형국이 대체로 사극이 가진 스포츠와 다른 점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는 김홍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대장금’에서 중종은 결국에는 장금의 손을 들어주며, ‘이산’에서 영조는 정조를 알게 모르게 밀어준다. 주인공은 늘 이 경쟁상황 속에 들어가서 어려움에 직면하지만 결국에는 이기게 된다. 이렇게 뻔한 결론을 대중들을 다 알면서 왜 이 경합에 빠져들까. 이것은 아마도 이 살벌한 경쟁사회 속에서 대중들이 갖게되는 환타지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 경제 상황, 그 속에서 더욱 더 경쟁 속에 뛰어들어야 하는 대중들에게 환타지 속에서나마 이 안전한(?) 게임에 빠져들고픈 욕구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사극이 점점 스포츠를 닮아 가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이 살벌한 경쟁사회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스포츠와 다른 점, 즉 예측되는 경합 결과에 대한 기대는 역시 그 경쟁하는 사회를 그대로 드라마 속에서조차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는 반영일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