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기관차 같은 ‘부부의 세계’, 우리가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정체

 

어딘가 심상찮은 반응이다. JTBC 새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19금에도 불구하고 2회 만에 9.9%(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1회 시청률 6.2%로 JTBC 역대 첫방 최고 기록을 경신한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만들고 있는 것. 두 자릿수 시청률은 기정사실이고, 과연 이런 상승세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2회 만에 이런 몰입감을 만들어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건 지선우(김희애)의 완벽하다 믿었던 세계가 거짓투성이였다는 게 밝혀지며 여지없이 부서지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파괴력 덕분이다. 단 하나의 사랑을 약속했던 남편 이태오(박해준)는 끝까지 거짓말을 했고, 그의 친구들과 자신이 절친이라 믿었던 설명숙(채국희) 같은 병원 동료까지 그 거짓을 도왔다.

 

워낙 불륜 소재가 드라마에 많이 등장해서인지 그 자체로는 이제 식상하게조차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부부의 세계>는 불륜 그 자체보다 이것을 자신만 모르게 모두가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다.

 

첫 회만으로는 어째서 이태오의 동창 손제혁(김영민)이나 그의 아내 고예림(박선영), 그리고 지선우의 회사 동료이자 절친이었던 설명숙 그리고 이태오의 비서 장미연(조아라)까지 이 배신에 가담했는가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2회를 통해 이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손제혁은 이태오의 생일 파티 자리에서 아내가 있는 데도 성적 농담을 공공연히 던질 정도로 성 윤리가 없는 인물인데다 이태오에게 무슨 일인지 마음의 앙금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설명숙은 혼자 살아가며 선우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했지만 알고 보면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이태오의 불륜을 알면서도 숨기며, 스스로 완벽하게 살아간다 여기는 지선우의 삶을 비웃듯 즐기고 있었던 것.

 

<부부의 세계>는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지선우가 알게 되고 심지어 설명숙에게 “행동거지 똑바로 하라”고 엄포를 놓는 장면을 2회도 되지 않아 전개시켰다. 흔한 불륜 코드 드라마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고 또 그걸 드러내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질질 끄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 전개다. <부부의 세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설명숙을 이용해 이태오에게 불륜녀인 여다경(한소희)의 임신 소식을 전하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이제 거꾸로 이 모든 사실을 안 지선우가 자신을 속인 이들을 시험대에 올리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역전된 상황을 연출하는 것.

 

흥미로운 건 환자로 신경안정제 처방전을 얻기 위해 내원했던 민현서(심은우)와 지선우가 어떤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그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 지선우는 데이트폭력을 당하는 민현서를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처럼 여기며 선을 그었지만, 자신의 처지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는 그에게 남편의 불륜 정황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처방전을 내주겠다는 조건으로 그에게 이태오를 미행하게 하고 결국 그 불륜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지선우는 답답한 마음에 술 한 잔 하러 민현서를 찾았다가 마침 폭행을 당하고 있는 그를 구해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지선우와 민현서가 진심을 나누는 사이로 변해가는 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그건 지선우가 생각했던 익숙하고 완벽해 보이던 세계의 위선을, 민현서라는 낯선 세계의 인물과의 새로운 관계와 대비하려는 의도다.

 

시청자들은 저들의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위선으로 가득한 세상이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내는 걸 위태롭고 안쓰럽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설명숙이 속내를 숨긴 채 그 위선적 세계를 즐기듯 들여다보는 악취미에 어떤 분노를 느끼면서도, 민현서처럼 솔직하게 그 위선을 지선우에게 말하는 인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갖게 되는 것.

 

<부부의 세계>는 지선우를 둘러싼 위선과 진실이 밝혀지고, 설명숙 같은 그간 절친으로 여겼던 인물 대신 동지적 관계를 갖게 된 민현서 같은 인물과의 새로운 공조를 단 2회 만에 전개시켰다. 이런 빠르고 거침없는 전개가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만일 이 폭주기관차 같은 속도의 전개와 그 속에서 변화하는 관계들의 부딪침과 변화가 계속 이어진다면 <부부의 세계>의 상승세는 더 가파르게 치솟지 않을까 싶다.(사진:JTBC)

잠시 떠나는 건 아쉽지만... 정상화된 방송으로 돌아오길

사실 엄밀히 말해 배철수도 정은아도 방송국 소속이 아니다. 두 사람은 각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방송인이고 가수이고 아나운서다. 그러니 현재 KBS와 MBC의 노조가 결정한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흠이 될 일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업일 수도 있으니.

'배철수의 음악캠프(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들은 각각 라디오 방송 진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래서 배철수가 진행하는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와 정은아가 진행하는 KBS <함께 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는 당분간 멈춰서게 됐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음악방송으로 대체되고, <함께 하는 저녁길 정은아입니다>는 오영실 아나운서로 MC가 교체됐다. 

이들이 프리랜서이면서도 이처럼 총파업에 동참하게 된 건 동료와 후배들을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은아는 “후배들이 결의를 해서 그렇게 하는 상황에 빈 책상을 보며 들어가 일하는 게 마음이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밝혔고, “힘내시고 잘 되셨으면 좋겠다”고 후배들의 행보에 힘을 얹어주었다. 

배철수는 중단 선언 마지막 방송에서 엔딩 곡으로 브라질 작곡가 유미르 데오다토의 연주곡 ‘아베 마리아’를 선곡하고 “종교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란다. 청취자들을 빨리 만날 수 있기를”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파업에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참여하지 않고 정상 방송을 내보내 아쉬운 목소리들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총파업에는 MBC 라디오 PD 40명은 물론이고 작가 70명도 참여해 성명서를 냈다. 그 명단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인 배순탁, 김경옥도 들어 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진행자, 출연자 섭외 등 제작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가 있었다”며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자율성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물론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프로그램의 위상이나 특성상 이런 부당함에 대한 체감은 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철수가 이 파업에 동참하게 된 건 동료와 후배들이 겪는 힘겨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열렬히 프로그램을 청취하던 팬들로서는 배철수나 정은아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질 수 있고, 그만큼 아쉬움도 클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잠시 방송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지지’를 표하고 있다. 방송사가 정상화되어 돌아오는 날까지 “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것. 

때론 ‘빈자리’가 더 많은 이야기와 울림을 남긴다. 늘 우리 옆에 있던 목소리의 소중함은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더 큰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대로 할 수 없는 방송 앞에서 이들이 선택한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다.

배철수는 “다시 만나도 좋은 방송, MBC 문화방송.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한때는 MBC 시그널 송으로 귀에 콕 박혀 있는 그 문구가 어쩌다 무색해진 작금의 방송사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배철수의 기원대로 이번 기회에 방송사가 예전 ‘만나면 좋은 친구’로 되돌아올 수 있기를.

‘한끼줍쇼’, 훈훈한 밥 한 끼가 주는 온기의 놀라운 힘

어둑해져가는 골목길.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저마다의 밥 냄새가 그 길로 스며든다. 어린 시절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그 밥 냄새와 함께 들려오는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아쉬운 놀이를 파장내고 집으로 달려가기도 했었다. 하루의 고단함을 어깨 가득 짊어진 채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들이나 학생들 역시 그 밥 냄새가 주는 알 수 없는 푸근함에 이끌릴 것이다. JTBC 예능 <한끼줍쇼>가 굳이 숟가락 하나씩 들고 다시금 골목을 전전하게 된 까닭이다. 

'한끼줍쇼(사진출처:JTBC)'

사실 첫 회가 방영되고 <한끼줍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거라는 이야기들이 공공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같은 세상에 그 누가 선뜻 낯선 이들, 그것도 카메라를 들고 들어오는 이들을 반갑게 맞아줄 것이며, 나아가 밥 한 끼를 챙겨주는 수고를 감수할 것인가. 그건 자칫 민폐가 되는 일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잘 알려지지 않던 초반부만 해도 <한끼줍쇼>의 제작진과 출연진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영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래 걷다 보면 길이 생긴다고 했다. <한끼줍쇼>는 계속해서 그 길을 걸음으로써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그 낯선 느낌을 상쇄시켰고, 무엇보다 그 좋은 취지를 공감하게 했다. 상도동의 골목길을 걸으며 만나는 주민들은 이경규와 강호동이 얼굴만 내밀어도 대충은 그것이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이라는 걸 알아챘고, 같이 저녁 한 끼를 먹는다는 콘셉트도 미리 알고 있어 먼저 밥을 먹은 어떤 주민은 너무나 안타까워하며 한 끼를 더 먹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성훈과 광희 같은 게스트와 함께 하는 콘셉트로 바뀐 <한끼줍쇼>는 과거 초창기에 강호동과 이경규 둘이 덜렁 동네 한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던 그 그림에 그나마 함께 기댈 동료가 있다는 안정감을 줬고,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흐를 위험성을 게스트의 변화를 통해 넘어설 수 있게 해줬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로 국민아빠로 불리는 추성훈이 겨우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었던 집에서 낯을 가린다는 아이와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한때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광희가 방문한 집에서 살림의 팁을 알려주는 모습은 그래서 <한끼줍쇼>가 단순한 형식이면서도 어째서 늘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줬다. 

결국 <한끼줍쇼>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머무는 가장 큰 이유는 ‘온기’다. 골목길에서, 그것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에서 집집을 전전하는 그들을 통해 느껴지는 어떤 한기나 쓸쓸함 같은 것들이 문을 열어준 주민의 집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마치 스르르 녹아 사라지게 만드는 듯한 그 ‘온기’. 그들이 나누는 것은 그저 밥 한 끼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다. 그저 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실 저녁 시간의 집밥이 주는 그 아련한 그리움과 따뜻함, 포만감 같은 것들은 그 날의 반찬이 주는 풍성함 때문은 아닐 게다. 그것보다는 한 데서 하루를 고생하고 돌아오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는 ‘허기’가 그저 집에서의 한 끼에 대한 따뜻함을 더욱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망할 거라던 <한끼줍쇼>가 이렇게 살아난 건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꼭꼭 문을 닫고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만큼 이웃과의 온기를 나누고픈 욕망 역시 커지고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닐까. 강호동과 추성훈에게 문을 열어준 집의 젊은 새댁과 이경규와 광희에게 문을 열어준 집의 아주머니가 강호동과 이경규의 주선으로 서로 통화를 하며 나누는 대화는 그래서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동네목욕탕에서 만나요.” “제가 음료수 한 잔 사줄게요.” 어느새 <한끼줍쇼>의 강호동과 이경규가 걷는 그 길 위에는 주민들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하늘을 걷는 남자>, 이 위대한 범법에 기꺼이 공모하고픈 까닭

 

줄타기가 삶에 대한 은유라는 건 무수한 예술이 말해준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살판과 죽을 판 사이에서 장생(감우성)이 오르던 줄이 그 탄성으로 그를 하늘로 날게도 해주지만 그만한 중력으로 맨바닥에 곤두박질치게 하는 것처럼, 줄타기란 삶이 가진 비상과 추락을 모두 담아내는 소재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줄타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아름다운 곳에 줄을 걸어 그 위를 걷고 싶었던 남자 필리프(조셉 고든 레빗)의 줄타기는 우리네 삶에서 예술적 행위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아낸다.

 


사진출처: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이야기는 단순하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라는 제목 속에 다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화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맨 온 와이어>라는 영화는 이미 2010년에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물론 흥행은 저조했지만 어쩌면 <하늘을 걷는 남자>의 흥행으로 다시 관객들의 주목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재 다시 개봉되어 상영되고 있다.

 

그러니 <하늘을 걷는 남자>의 이야기는 스포일러랄 것이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뉴욕의 쌍둥이 빌딩 세계무역센터의 기사를 본 필리프는 그 두 건물 사이에 와이어를 연결하고 줄타기를 하겠다는 꿈을 갖고 그 불가능할 것 같은 도전을 하나하나 실행해 옮긴다. 그리고 결국 그는 하늘을 걷게 된다. 그런데 이 제목만 봐도 딱 아는 이야기가 왜 이토록 감동적으로 다가올까.

 

물론 영화가 주는 스펙터클의 힘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무려 지상에서 4백 미터가 넘는 높이의 쌍둥이 빌딩 사이를 줄 하나에 의지해 건너고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3D 아이맥스의 시대에 영화의 체험은 고스란히 관객이 그 줄을 밟고 있는 것만 같은 아찔함을 선사한다. 그 아찔함은 그리고 자유로움과 뒤섞이며 시각적 스펙터클이 단지 자극이 아닌 감동은 물론이고 나아가 어떤 깨달음에까지 나아가게 한다.

 

그 감동의 실체는 다름 아닌 예술적 행위의 숭고함에서 나온다. 그저 땅바닥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가녀린 존재인 인간이 그토록 높은 곳에 줄을 세우고 그 위에 선다는 그 행위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일이면서 돈을 벌어주는 일도 아니며 심지어 뉴욕시에서는 하지 말아야할 범법행위다. 하지만 그가 그런 범법 행위를 하려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모한다. 그들은 그 공모의 이유에 대해 스스로도 알 수 없지만 모두 같은 말을 한다. 그건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필리프는 거기에 그런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다만 줄을 세울 아름다운 곳이 있었고 그래서 거기에 줄을 세운 후 걸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그런 예술적 행위를 함으로써 달라진 것이 있다. 뉴요커들도 싫어했던 그저 높기만 한 세계무역센터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필리프의 줄타기로서 그 건물은 어떤 상징이 되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비상하려는 욕망의 상징.

 

알다시피 그 건물은 911 테러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던 상징은 테러와 깊은 상처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물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무역센터 건물이 지어졌지만 그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아마도 그 공간에 남아있는 이 트라우마를 저 과거에 있었던 필리프의 예술적 행위를 통해 넘어서려 했을 것이다. 그것은 비극 앞에 예술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될 테니 말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라고 그 줄 위에 있던 필리프의 행위에만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기까지 그를 뒤에서 도운 수많은 공모자들. 그들 역시 이 예술의 동참자가 되었다. 아니 그 날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그의 줄타기를 바라보며 회사도 까무룩 잊어버린 채 서서 박수를 쳤던 많은 행인들까지도 그 예술의 동참자가 된다. 예술의 완성은 결국 예술적 행위를 누군가 기억에 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세계무역센터에서 있었던 놀라운 인간의 예술적 행위에 감탄하고 있는 우리들 역시 그 예술을 완성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그들이 했던 위대한 범법 행위에 기꺼이 마음으로나마 공모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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