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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 좋은 드라마엔 어째서 늘 오정세가 있었을까

 

자신의 엄마가 사랑하는 강태(김수현)와 이제 가족이 된 상태(오정세)의 엄마를 죽인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된 문영(서예지)은 충격에 빠져버린다. 강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영 옆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지키고, 상태는 문영이 아프다는 얘기에 순덕(김미경) 아줌마가 만들어준 죽을 싸서 문병을 온다.

 

하지만 문영은 상태를 마주 보지 못한다. 그저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라고 말할 뿐이다. 상태는 왜 문영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동생 강태와 싸웠을 거라 짐작하며 애써 문영의 입에 죽을 떠넘겨주려 한다. "용서해줘." 문영이 그렇게 말하자 상태는 선선이 "이거 먹으면 용서해줄게"라며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처럼 문영의 입에 죽을 넣어준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등장하는 이 장면이 특히 감동적인 건 자폐를 가져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 거라 여기는 상태가 오히려 문영과 강태를 애써 챙기려는 그 마음이 보여서다. 그는 "내가 형이니까"라며 강태에게 용돈을 쥐여주기도 하고 이제 가족으로 받아들인 문영 또한 형으로서, 어른으로서 챙기려 한다.

 

물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강태와 문영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 위에 서 있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도 상태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만만찮게 느껴진다. 그는 사실상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폐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폐는 아니고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이 드라마 속 그 어떤 인물보다 건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상태라는 이 쉽지 않은 캐릭터를 이토록 실감나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연기해낸 오정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기가 가능해진 건 아마도 이 배우가 진정으로 자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정세가 지적장애를 가진 팬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물해준 미담은 이 배우의 진가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진 챌리스트 배범준씨가 드라마를 보며 상태를 위로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상태의 모습 그대로 배씨와 놀이공원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이 만남을 성사하게 해준 배씨의 여동생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 오빠를 만나기 전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하시며 노력하셨는지 느껴졌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오정세가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생각해보면 최근 오정세가 출연한 작품들이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고 그 속에서 오정세는 확실한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보여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그는 옹산 군수를 꿈꾸지만 잘 나가는 홍자영(염혜란) 변호사와 찌질하지만 따뜻한 로맨스를 담은 노규태로 분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백승수(남궁민) 단장과 각을 세우는 권경민이라는 악당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한 바 있다. 이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의 상태는 물론이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모범형사>에서 오종태라는 악당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찌질하지만 인간적인 남자 역할에서부터 뒷목잡게 하는 악당과 천사가 따로 없는 자폐를 오가며 오정세는 이처럼 나날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최근 좋은 작품으로 호평을 이끌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고르는 남다른 선구안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선구안이 좋고 운이 좋아도 작품을 임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연기가 따라주지 않았다면 오정세가 이만큼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사실 오정세는 주인공으로 주목받은 배우가 아니다. 그는 늘 주인공 옆에 서 있거나 혹은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주인공인 문영에게 죽을 떠 먹여주고 강태를 형으로서 챙기는 그의 연기는 주인공 그 이상의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오정세는 마치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처럼 그런 주변인의 역할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이런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물이라면 중심에 있건 주변에 있건 빛나기 마련이다. 자폐를 가진 상태라는 인물이 이 드라마에서 오히려 가장 건강하게 보이는 것처럼, 오정세는 어쩌면 자신의 위치에서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걸 혼신을 다한 연기로 보여주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엔 오정세가 늘 있었다는 말은 거꾸로도 들린다. 오정세가 있어 좋은 드라마가 됐을 수도 있다는.(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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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8.10 22:51 su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님.드라마속 대사한마디가 책보는. 챕터속의 대사인용페이지들을 왜 하늘색에 하얀글씨로 하셨나요.
    40대에 노안온 사람들은 안보여서 읽느라 애를써져 감흥을 느끼기가 힘들어 아쉽습니다ㅠ

당당하고 소신 지키며 자기 삶에 충실한 청춘들의 등장

 

청춘들이 달라졌다. 드라마에서 청춘들은 주로 두 부류의 캐릭터로 소비되곤 했다. 그 하나는 청춘멜로의 대상.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소재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사회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한 청춘들이다. 현재의 사회 현실을 담은 드라마들이 청춘들을 등장시킬 때 그들이 실제로 겪곤 하는 취업 현실이나 만만찮은 조직의 적응기가 그것이다.

 

최근 드라마 속 청춘들의 초상을 보면 현실을 벗어나 사랑이라는 판타지에 빠져 있거나, 혹은 만만찮은 현실과 사투를 벌이던 청춘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들이 발견된다. 물론 사랑과 현실 이야기가 빠지진 않지만 이걸 대하는 이들의 면면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는 역시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JTBC <이태원 클라쓰>다. ‘청춘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틀을 가져온 이 드라마에서 박새로이(박서준)는 기성사회의 부정하고 잘못된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 말하는 청춘이다. 그는 갖가지 갑질과 핍박에 시달리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간다.

 

전과자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청춘은 취업이 아닌 창업을 택한다. 그리고 조금씩 가게를 성장시켜 국내 최고의 요식업 회사를 꿈꾼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기성관념이 허황되다고 말할 때 그는 일갈한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니까.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

 

청춘들은 이제 기성 사회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참고 적응해내려 했던 <미생>의 장그래와는 많이 달라졌다. 대신 작아도 자신의 일을 추구하고, 거기서 성공과 행복을 찾으려 한다. 종영한 드라마 KBS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강하늘) 같은 청춘은 옹산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순경으로 살아가면서도 소신을 지켜가며 나름의 행복과 사랑을 실천해가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이 이 청춘에 매료됐던 건, 순박하고 소박하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 면모 때문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JTBC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임은섭(서강준) 같은 인물도 이러한 달라진 청춘의 색깔을 보여준다. 북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그마한 책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청춘이지만, 지역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통해 정을 나누고 단단한 자기만의 소신을 갖고 있다. 추운 겨울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을 그 책방처럼 따뜻하게 품어주는 인물. 서울살이에 지쳐 내려온 목해원(박민영)과 그의 사랑이야기가,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를 힐링시켜주는 건 이 청춘의 묵묵히 타인을 배려하며 소신 있게 살아가는 삶이 따뜻한 온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소신을 가진 청춘들의 등장은, 이제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누군가 세워놓은 기준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세운 소신을 갖고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확실한 나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청춘들. 그들의 당당함이 우리 사회의 어떤 희망처럼 느껴지는 이유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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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억의 여자'에 이어 '포레스트'까지 뚝뚝 떨어지는 완성도

 

지난해 KBS <동백꽃 필 무렵>이 거둔 엄청난 성과는 그간 고개 숙였던 KBS 드라마를 웃게 만들었다. KBS 드라마의 부활을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성공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섣부른 샴페인 터트리기처럼 보였던 면이 있다. 중요한 건 그 뒤를 잇는 후속작들이 그만한 성과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후속작이었던 <99억의 여자>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영화 <기생충>으로 한껏 신뢰를 얻은 배우 조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이었다. 몇 회가 지나지 않아 이 드라마는 99억이라는 돈을 두고 벌어지는 ‘핑퐁게임’에 빠져들었다. 애초 여자 주인공인 정서연(조여정)이 남편의 폭력과 더 이상 어떤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 욕망은 99억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했고, 개연성 없는 자의적 전개도 이어졌다. 연기 하나만 빼고 대본과 연출에 있어 완성도를 찾아내기가 어려운 드라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후속작인 <포레스트>는 어떨까. 이 드라마 역시 난감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 굴지의 투자회사 본부장인 강산혁(박해진)이 미령 숲 개발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굳이 119특수구조대 항공구조대원으로 미령에 내려온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과하다. 그 곳에서 미령병원으로 유배되다시피 오게 된 정영재(조보아)와 만나 이어가는 멜로도 너무 공식에 끼워맞춰 억지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결국 강산혁과 정영재가 한 지붕으로 연결된 각각의 집에 살아간다는 설정은 멜로드라마에서 흔하디흔하게 등장하는 남녀 동거 코드다. 정영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병원장의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가 만나는 다른 여자가 병원장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허탈해할 때 갑자기 등장한 강산혁이 정영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뻔한 공식적 멜로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런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온 강산혁이 갑자기 정영재를 걱정하고 다음 날 아침 호숫가에서 정영재가 뜬금없이 “우리 사귈래요”라고 묻는 대목도 그렇다. 두 사람 사이에 언제 그런 감정적인 교류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치 드라마가 억지로 두 사람을 이어 붙이려는 그런 개연성 없는 전개다.

 

<포레스트>는 그 기획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결국 도시의 치열한 삶에 지친 남녀가 숲에서 만나 서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숲을 개발하려는 이들과 숲을 지키려는 이들의 대결구도 또한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런 기획의 틀을 제대로 전해주기 위한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엇박자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연성을 찾기 어려운 대본도 문제지만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tvN <삼시세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못 연출해내는 연출은 더 큰 문제다. 그나마 조보아는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박해진의 로봇 같은 연기는 그다지 몰입감을 주지 못한다. 어쩌다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를 내놓게 됐을까.

 

<99억의 여자>나 <포레스트>가 연달아 보여주는 완성도 부족은 <동백꽃 필 무렵>으로 KBS 드라마의 부활까지 이야기하던 것들이 너무 섣부른 일이었다는 걸 드러내준다. 지금의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생각해보면 KBS 드라마는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두 작품의 성공이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더더욱.(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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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억의 여자’, 조여정과 ‘동백꽃’ 후광만 남은 드라마 되어간다는 건

 

점점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 99억이라는 돈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돈 가방이 정서연(조여정)의 손에서 이재훈(이지훈)에게로 또 윤희주(오나라)에게 가더니 다시 김도학(양현민)으로 갔다가 레온(임태경)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결국에는 홍인표(정웅인)에게 가게 됐다. 사실 이야기가 너무 들쑥날쑥 이고 돈 가방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마치 예능 프로그램 게임하듯 돌아가다 보니 이젠 어디로 가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어쩌다 KBS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는 이 지경이 된 걸까.

 

돈 가방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처음에는 주먹질을 하던 액션이 이제는 버젓이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장르물들도 이제 심심찮게 총을 쓰는 경우들이 적지 않지만, <99억의 여자>에서 갑자기 총이 등장해 서로 쏘고 맞고 피하는 장면들은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연관된 조폭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총질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차량 사고에 불까지 붙어 전소되는 상황에서도 그 흔한 경찰차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개연성이 떨어지고 자의적으로 굴러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억지로 이야기를 끼워 맞추다 보니 연기 잘하는 연기자들도 때론 난감하게 보일 때가 많다. 돈 가방을 찾아 차를 타고 추격하던 정서연이 엉뚱하게 총에 맞아 피 흘리고 있는 레온을 발견하고 그를 외면하지 못한 채 병원에 데려가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총에 맞은 레온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말을 믿는 정서연이나 그렇게 피 흘리면서도 난감하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 레온도 생뚱맞기 이를 데 없다. 그건 향후 레온이 자신을 구해준 이가 다름 아닌 자신이 죽인 백승재(정성일)의 이복동생이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한 작가의 무리한 설정이다.

 

아마도 작가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전이 어떤 놀라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주려면 그만한 촘촘한 개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연성 없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틀기 시작하면 반전이 아니라 그저 급한 전개가 되어버린다. 시청자들은 전혀 몰입하고 있지 않은데 작가만 저 앞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막장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다. <99억의 여자>는 어째서 그 길을 따라가게 됐을까.

 

애초 <99억의 여자>는 꽤 기대감을 만들어준 게 사실이다. 처음 2회 정도까지는 그랬다. 적어도 정서연이라는 여자가 처한 상황에 공감 가는 바가 있었고 그 연기를 다름 아닌 최근 ‘기생충’으로 뜨거워진 조여정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시간대 전작이었던 <동백꽃 필 무렵> 만들어낸 후광효과도 적지 않았다. KBS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조여정이라고 해도 또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을 입고 있다고 해도 작품이 따라주지 않으면 졸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99억의 여자>는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정서연의 캐릭터가 흔들리는 건 치명적이다. 남편 홍인표의 상습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게 정서연이 집을 나선 이유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돈 쟁탈전이 본격화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였고 어쩌다 보니 정서연과 홍인표가 나란히 앉아 함께 돈 가방을 뺏기 위해 공조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돈에 대한 욕망이 인물을 그렇게까지 변화시킨 것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주인공이 그렇게 휘둘리거나 흔들리면 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대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99억의 여자>는 조여정과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만 남은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연기자들은 그나마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대본과 연출은 대략난감이다.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어떤 명 연기자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는 증명해주고 있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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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

 

결국은 작품인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드라마의 규모는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로 꼽히기 시작했다. 몇 백 억이 들어간 드라마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역시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화려한 외형이나 규모가 아니라.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동백(공효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동백꽃 필 무렵>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로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추리극과 스릴러 장르를 껴안았고 그를 잡기 위한 반전의 반전 스토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어린 시절 동백을 버리고 떠났다 다시 찾아온 엄마 정숙(이정은)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가족드라마를 보여줬고, 동백과 그 엄마를 챙기고 지키려는 옹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휴먼드라마의 면면을 더해줬다.

 

사실 장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이처럼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달한 멜로와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소름끼치는 스릴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가 적절히 섞였고,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동백꽃 필 무렵>이 한 이야기는 사회적 잣대에 의해 편견어린 시선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들도 모두 저마다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왔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동백과 그 엄마 정숙이 행복하게 다시 살 수 있기를 시청자들을 바랐고 옹산 사람들도 바랐다.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곳에서 이 드라마의 커다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고, 눈 돌아가게 모든 걸 갖춘 멋들어진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아닌 시골 마을의 촌스러운 캐릭터와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했듯이 그저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 그 기적은 잘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겹쳐져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그 기적의 중심점에 있는 인물은 단연 이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다. 이미 <쌈, 마이웨이>에서부터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이 작가는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확고한 자기 세계를 드러냈다. 소외되어 시선조차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어느 들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동백꽃을 피워내는 볕 같았다.

 

그렇게 볕을 받아 연기자들의 연기가 피어났다. 동백 역할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공효진과 ‘촌므파탈’이란 신조어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 강하늘, 엄마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이정은과 고두심, ‘옹벤져스’라 불린 옹산 아주머니 역할을 맛깔나게 연기해낸 김선영, 김미화, 이선희, 백현주, 찌질한 남편과 걸크러시 아내 케미로 사랑받은 오정세, 염혜란, 인생캐릭터 만난 손담비에 시골 파출소장으로 큰 웃음을 줬던 전배수, 미워할 수 없는 아빠 역할의 김지석과 관종 역할의 지이수 그리고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미친 존재감 필구 역할의 김강훈과 마지막 부분에 빛을 발했던 까불이 이규성과 그 아버지 신문성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내려 쬐는 공평한 볕처럼 작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옹산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 까불이를 잡고 동백의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작가를 위시해 연출자, 연기자와 스텝들까지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드라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사실 KBS 드라마는 그간 너무 깊은 부진을 겪었고 그래서 좀 더 강한 대작들의 지지를 받아야 회생할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백을 지킨 건 동백 자신이었던 것처럼, KBS 드라마는 KBS적인(작가도 연출자도 또 스토리까지도) 힘으로 자신을 지켜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기적은 결국 화려한 외형이나 외부의 힘이나 규모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은 보여줬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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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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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이 담는 이별의 대물림과 연대하는 이웃들의 가치

 

연쇄살인범 까불이는 잡혔지만, 동백(공효진)은 용식(강하늘)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한다. 이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 용식이 까불이를 그렇게 잡으려 했던 이유가 동백이 떠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또 필구(김강훈)의 안전을 걱정해 친부인 강종렬(김지석)에게 아이를 떠나보낸 동백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는 더더욱 빨리 까불이를 잡아 필구를 동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용식이었다. 그런데 이별이라니.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보여주는 절절한 이별의 대물림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든다. 동백이 “이제 그만 헤어지고 싶다”고 하는 말에는 그간 그가 겪어온 삶의 고통이 묻어난다. 어려서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엄마와의 이별, 사랑했지만 점점 멀어져간 강종렬과의 이별, 편견 속에서 떠돌아 다녔던 자신처럼 여겨 보듬었던 향미(손담비)와의 이별 그리고 엄마의 혹이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를 위해 떠나려 했던 아들 필구와의 이별.

 

이 이별이 대물림처럼 여겨지는 건, 그 근원이 가난으로부터 빚어졌기 때문이다. 너무 가난해 아이라도 살리고자 까무러칠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며 아이를 버렸던 동백의 엄마 정숙(이정은)에서 시작된 이 이별의 대물림은 고스란히 동백으로 또 필구로 이어진다. 동백은 정숙이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지만, 자신 역시 필구를 위해 이별을 선택했다는 걸 알기에 그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위해 이별을 선택한다. 정작 자신은 그 이별의 후유증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지만.

 

어린 필구조차 그런 엄마를 닮아버린다. 그래서 동백의 눈치를 보고 용식을 만나는 엄마에게 자신이 혹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를 떠난다. 하지만 끝내 아이는 그 속내를 숨기지 못한다. “엄마가 무슨 이제 결혼을 해. 엄마가 결혼하는 애는 나뿐이 없어. 엄마는 결혼이라도 하지. 나는 초딩이라 결혼도 못하고 군대도 못 가. 나도 사는 게 짜증나.”

 

결국 동백은 필구를 위해 용식에게 이별을 고한다. “연애고 나발이고 필구가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용식에게 “여자로 말고 엄마로 행복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 이 이별의 연쇄작용은 용식에게로 공이 넘어간다. 그는 너무나 동백을 사랑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 이별선언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다. 그저 같이 눈물 흘리며 이별을 받아들일 뿐.

 

<동백꽃 필 무렵>은 누군가를 위해 이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러면서 까불이 같은 살벌한 연쇄살인범의 존재만큼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건 가난이고, 거기서 비롯된 편견들이다. 그건 어쩌면 죽음보다 더 무섭고 아픈 고통일 수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 드라마는 이런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버텨내며 살아가는가에 희망을 담는다. 그 힘겨운 상황들 속에서도 남아있는 인간으로서의 따뜻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때론 지지고 볶으며 그 편견어린 시선에 나도 모르게 이끌리지만 그럼에도 같은 처지를 동감하며 지지하고 도와주려는 인간적인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동백이 겪는 고통과 그 주변사람들의 온기를 통해 전해준다.

 

“엄마 죽지 마. 콩팥인지 쓸갠지 내꺼 떼 주면 되잖아. 나 이제 헤어지는 것 좀 그만하고 싶어.” 엄마를 그대로 닮아가는 듯 보이는 동백이 쓸쓸해 보이는 엄마의 등을 쓸며 하는 이 말은 그래서 동백이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자신이 자신을 보듬으면서 애써 버텨내려는 그 안간힘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타인을 자신처럼 여기는 마음은 아마도 동백이 지금껏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을 게다.

 

<동백꽃 필 무렵>은 가난으로부터 비롯된 이별의 대물림을 보여주지만, 그 아팠던 이별이 자신을 위한 누군가의 더 아픈 선택이었다는 걸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런 만남과 이별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거기 담겨진 인간적인 이유라는 걸 보여준다. 또한 같은 사람으로서 그 아픔을 공감하고 그래서 타인이지만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말한다. 소소하고 작아 보이지만 이만큼 사람의 희망을 말하는 드라마도 없을 듯싶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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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퉁명스러워도 우린 남이 아니라는 건

 

“야 노규태 나 여기 있을 거야. 내가 밖에 있으니까 수틀리면 바로 나와. 뒤는 니 변호사가 책임질 거니까.”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향미의 살해 용의자로 지목되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는 노규태(오정세)에게 홍자영(염혜란)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는 변호사로서 노규태와 함께 온 것이지만, 그 퉁명스러움 속에는 전 남편이었던 노규태에 대한 숨겨진 애정 같은 게 느껴진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리며 당 떨어진다고 사탕을 꺼낼 정도로.

 

찌질한 노규태는 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대한 두려움보다 아내 홍자영이 떠나간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래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막판 세 개의 질문을 자신이 정하게 해달라 요청하고 그걸 물어볼 때 변호사도 참관하게 해달라는 것. 최향미와 애인 사이였냐는 질문과, 최향미의 모텔방에 들어간 적 있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답한 노규태는 “당신은 아내를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 후 속내를 털어놓는다. “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홍자영은 기막혀 하면서도 내심 안도한다. 먹으려 꺼냈던 사탕을 버릴 정도로.

 

이 짧은 시퀀스에는 <동백꽃 필 무렵>이 건네는 사랑과 정의 방식이 담겨진다. 어딘지 퉁명스럽지만 그래서 더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들의 표현 방식. 애초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 응한다고 했을 때부터 노규태는 이런 고백이 목적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왜 이런 조사에 응하냐며 화를 내는 홍자영에게서도 노규태는 담담히 말했다. “자영아. 죄 지었으면 벌 받겠지. 그냥 나 한 번 믿어봐.” 하지만 홍자영은 노규태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마냥 믿지 못하고 걱정한다. 막상 조사에 들어가면 어리버리할 것이 분명하다며. 노규태는 말한다. “당신 그래서 나 좋아했잖아. 당신 나 모성애로 좋아했지? 지금도 사고 친 자식 모른 척 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이지? 미안해 당신 엄마 만들어서. 당신도 여자 하고 싶었을 텐데. 맨날 엄마 노릇하게 해서.”

 

퉁퉁대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은근한 마음의 표현은 <동백꽃 필 무렵>이 더 깊게 시청자들을 울리는 이유다. 이런 표현방식은 노규태와 홍자영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도처에서 활용된다. 동백이 박찬숙(김선영)에게 필구(김강훈)를 잠시 봐달라는 말을 힘겹게 말할 때 퉁명스럽게 쏘아대며 그 남다른 정을 전하는 박찬숙의 대사에서도 이런 방식이 보여진다. “얘. 너 너무 이렇게 예의차려도 정이 안가. 필구랑 준기랑 죽고 못사는 거 이 동네가 다 아는데 어떻게 이제야 처음으로 나한테 애 맡아달라는 소릴 햐? 그 소리를 뭘 그렇게 애를 쓰고 하고 자빠졌어?”

 

향미의 죽음을 알게 된 옹산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동백의 신변을 보호하려 나서는 모습들도 그렇다. 이 ‘소리 없이 봉기한 옹산의 장부들’을 담는 과장된 연출은 시청자들을 흐뭇하게 만들고 동백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번영회 핑계로 까멜리아를 가득 채운 옹산의 여자들의 모습에서 동백은 결국 훌쩍대며 고마운 마음을 꺼내놓는다. “그래서 저 지금 지켜주시는 거예요? 저요 옹산에서 백 살까지 살래요.”

 

이런 화법들이 전하는 진심은 그래서 더 뜨겁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건 <동백꽃 필 무렵>이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은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그래도 우린 남이 아니고 그래서 살만하다고 이 드라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슬쩍 꺼내놓고 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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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과 캐릭터가 끌어내는 배우와의 시너지

 

좋은 작품과 캐릭터는 어쩌면 배우의 연기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그간 그리 주목받지 못했지만 작품 속 캐릭터와 만나 반짝반짝 빛나는 배우들이 있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에서 시즌1에 이어 단단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신민아,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인생캐릭터를 만난 손담비 그리고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에서 꽤 괜찮은 몰입을 보여주고 있는 김설현이 그들이다.

 

<보좌관2>에서 신민아의 연기가 새삼 돋보이는 건, 지금껏 그가 해왔던 캐릭터들과는 사뭇 다른 강선영이라는 초선의원을 만나면서다. 그간 로맨틱 코미디의 상큼발랄한 캐릭터만을 입어왔던 신민아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랑보다 일에 더 몰두하는 여성 정치인의 캐릭터를 만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장태준(이정재)과 연인이면서 정치적 동지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소신을 밀고 나가는 당찬 여성 정치인 강선영은 지금껏 봐왔던 신민아의 고정된 이미지를 깨주기에 충분했다. 좋은 작품이 좋은 연기를 끄집어낸 단적인 사례다.

 

<동백꽃 필 무렵>의 손담비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장본인으로 꼽히는 손담비는 향미라는 역할을 통해 인생 캐릭터를 만났고 인생 연기를 선보였다. 다소 맹한 얼굴로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그 대사들은 때론 섬뜩하게도 느껴지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이 슬쩍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돌아갈 곳이 없던 그 부평초 같은 삶이 겨우 겨우 찾아든 동백(공효진)의 까멜리아에서 맞은 최후의 순간들은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향미 역할에 손담비를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 작품 속 캐릭터와 손담비는 맞춤옷처럼 잘 맞았다. 그리고 그 존재감 없이 자존감 없는 삶의 이야기는 마치 그토록 오래도록 연기를 시도해왔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손담비 자신의 이야기처럼 다가오는 면도 있었다. 이러니 인생 캐릭터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연기와는 사뭇 동떨어져 보였던 김설현 역시 JTBC <나의 나라>를 만나면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인 단적인 사례다. 서휘(양세종)와의 절절한 멜로는 물론이고 이화루라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만만찮은 카리스마를 가진 한희재라는 인물을 통해 김설현은 연기자의 기본이랄 수 있는 몰입의 경험을 하게 됐다. 아직 무르익었다 보긴 어렵지만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며 캐릭터와 자신이 겉돌던 연기가 일체되는 그 경험은 아마도 김설현에게는 향후 연기자로서의 행보에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배우도 작품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면 빛을 발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정반대로 아직 연기가 조금 서툴다 해도 그 연기를 200% 끄집어내주는 작품과 캐릭터가 있다. 그런 작품과 캐릭터를 만났을 때 비로소 그 연기자는 어떤 가능성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중요한 건 그 이후다. 다음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을 때 그 가능성은 비로소 확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니.(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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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한 송이가 피어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나를 잊지 말아요’ 라는 꽃말 하나를 남기고 향미(손담비)는 떠났다. 박복한 삶에도 그 마지막 순간까지 새 삶을 꿈꿨던 그지만, 연쇄살인범 까불이에 의해 속절없이 그 삶은 꺾였다. 하지만 그 꺾인 삶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다. 동백(공효진)은 까불이가 남긴 쪽지를 통해 향미가 자기 대신 죽음을 맞이했다는 걸 알고는 돌변했다. 참지 않겠다는 것. 용식(강하늘)은 호수에서 떠오른 사체 앞에서 넋을 잃었다. 향미에게 협박을 받아왔던 노규태(오정세), 또 죽여 버리겠다고 향미에게 차를 몰았던 제시카(지이수)마저 자신이 그를 죽인 건 아닌가 죄책감에 빠졌다. 한 사람의 삶은 그렇게 쉽게 잊히는 게 아니었다. 물망초의 기원처럼 향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이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은 바로 이 향미를 바라보는 방식 그대로다. 어느 마을 이름도 잘 모를 법한 부평초 같은 삶을 살다 간 누군가를 깊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았던 향미의 존재감이 그 누구보다 빛나게 된 건 바로 이런 시선 때문이다.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왔던 동백과, 동백의 삶을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던 엄마 정숙(이정은)을 드라마는 누가 잘 했고 못 했고를 떠나 똑같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드라마가 이런 따뜻하고도 공평한 시선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주는 건, 우리 모두가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동백은 혼자 버려져 세상을 버텨왔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보이지 않는 엄마의 시선이 늘 닿는 위치에 있었다. 까불이에게 죽을 위기에 몰렸을 때 기적 같은 우연 때문에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 따위 던져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가 있었다.

 

동백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아빠 없는 아이로 손가락질 받으면서도 엄마를 생각해 꿋꿋이 버텼다. 하지만 뒤늦게 필구가 자기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친부 강종렬(김지석)은 그의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옹산으로 달려와 있는 강종렬은 필구 주변을 빙빙 돌며 그를 챙기려 한다. 아마도 동백의 엄마 정숙도 그런 마음이었을 게다.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그 곳에 있는.

 

늘 속없이 웃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용식의 뒤에는 억척스럽게 일하며 그를 뒤에서 보살펴온 엄마 곽덕순(고두심)이 있었다. 앞에서는 등짝 스매싱을 날리지만 혹여나 몸 상할까 늘 걱정하며 냉장고에 보약을 챙겨 넣어주고, 며칠을 고아 삶은 오리탕을 먹인다. 또 수사에 도움이 될 CCTV 자료를 얻기 위해 영심이네서 밭일까지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거기 전화해 당장 갖다 주라며 엄포를 놓기도 한다. 늘 자기가 잘 나서 일이 잘 된 것처럼 여기며 티 없이 살아가는 용식이지만 그런 삶의 뒤에는 곽덕순이 있었다.

 

심지어 그 누구보다 찌질하지만 마을에서 그나마 명망(?)을 유지하며 살아온 노규태에게도 그가 그렇게 살 수 있게 된 보이지 않는 보살핌이 있었다. 바로 이혼한 전 부인 홍자영(염혜란)이다. 향미가 사체로 호수에서 떠오르고 유력 용의자가 되어 임의 동행되어 갈 처지가 된 노규태에게 나타난 홍자영은 변호사의 카리스마로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강종렬의 자식이 있다는 소문을 추적하며 기사화하려는 기자들에게 든든한 보호막을 쳐주는 옹산 어벤져스 아주머니들 역시 보이지 않는 보살핌들이다. 그 아주머니들은 동백을 겉으로는 백안시하기도 했지만 “김치는 있냐”고 물으며 속으로는 챙겨주는 이들이었다. 동백을 든든히 챙겨주는 용식이와 엄마 정숙, 용식을 챙겨주는 덕순, 향미를 챙겨줬던 동백, 필구를 챙기려는 강종렬, 노규태를 보살피는 홍자영... 이런 따뜻한 보살핌들이 있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끝까지 기억해주고, 또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쓴다는 건 어떤 기적들을 만들어내는 걸까. 아마도 <동백꽃 필 무렵>이 그려내려 한 것이 그것이고, 시청자들이 이 작고 촌스러운 시골 마을의 이야기에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게 된 이유가 그것일 게다. 동백꽃 하나가 핀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 꽃이 피어나기 위해 무수히 많은 보이지 않는 따뜻한 볕들이 어디선가 비춰주고 있었다는 것. 모두가 홀로 외롭게 버텨내고 있는 삶이지만, 지금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동백꽃 필 무렵>은 얘기하고 있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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