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억의 여자'에 이어 '포레스트'까지 뚝뚝 떨어지는 완성도

 

지난해 KBS <동백꽃 필 무렵>이 거둔 엄청난 성과는 그간 고개 숙였던 KBS 드라마를 웃게 만들었다. KBS 드라마의 부활을 운운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단 한 편의 성공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섣부른 샴페인 터트리기처럼 보였던 면이 있다. 중요한 건 그 뒤를 잇는 후속작들이 그만한 성과를 보여줄 것인가였다.

 

후속작이었던 <99억의 여자>의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영화 <기생충>으로 한껏 신뢰를 얻은 배우 조여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착시현상이었다. 몇 회가 지나지 않아 이 드라마는 99억이라는 돈을 두고 벌어지는 ‘핑퐁게임’에 빠져들었다. 애초 여자 주인공인 정서연(조여정)이 남편의 폭력과 더 이상 어떤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 욕망은 99억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면서 시청자들의 기대를 배반했고, 개연성 없는 자의적 전개도 이어졌다. 연기 하나만 빼고 대본과 연출에 있어 완성도를 찾아내기가 어려운 드라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후속작인 <포레스트>는 어떨까. 이 드라마 역시 난감한 개연성을 갖고 있다. 굴지의 투자회사 본부장인 강산혁(박해진)이 미령 숲 개발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굳이 119특수구조대 항공구조대원으로 미령에 내려온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과하다. 그 곳에서 미령병원으로 유배되다시피 오게 된 정영재(조보아)와 만나 이어가는 멜로도 너무 공식에 끼워맞춰 억지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결국 강산혁과 정영재가 한 지붕으로 연결된 각각의 집에 살아간다는 설정은 멜로드라마에서 흔하디흔하게 등장하는 남녀 동거 코드다. 정영재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병원장의 출판기념회에 갔다가 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가 만나는 다른 여자가 병원장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허탈해할 때 갑자기 등장한 강산혁이 정영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너무나 뻔한 공식적 멜로의 그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런 일을 겪고 집으로 돌아온 강산혁이 갑자기 정영재를 걱정하고 다음 날 아침 호숫가에서 정영재가 뜬금없이 “우리 사귈래요”라고 묻는 대목도 그렇다. 두 사람 사이에 언제 그런 감정적인 교류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치 드라마가 억지로 두 사람을 이어 붙이려는 그런 개연성 없는 전개다.

 

<포레스트>는 그 기획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결국 도시의 치열한 삶에 지친 남녀가 숲에서 만나 서로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숲을 개발하려는 이들과 숲을 지키려는 이들의 대결구도 또한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런 기획의 틀을 제대로 전해주기 위한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엇박자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연성을 찾기 어려운 대본도 문제지만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tvN <삼시세끼> 같은 예능 프로그램보다도 못 연출해내는 연출은 더 큰 문제다. 그나마 조보아는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박해진의 로봇 같은 연기는 그다지 몰입감을 주지 못한다. 어쩌다 이렇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를 내놓게 됐을까.

 

<99억의 여자>나 <포레스트>가 연달아 보여주는 완성도 부족은 <동백꽃 필 무렵>으로 KBS 드라마의 부활까지 이야기하던 것들이 너무 섣부른 일이었다는 걸 드러내준다. 지금의 높아진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생각해보면 KBS 드라마는 좀 더 완성도를 높이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두 작품의 성공이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더더욱.(사진:KBS)

‘99억의 여자’, 조여정과 ‘동백꽃’ 후광만 남은 드라마 되어간다는 건

 

점점 드라마가 산으로 간다. 99억이라는 돈을 두고 벌어지는 쟁탈전이 가히 점입가경이다. 돈 가방이 정서연(조여정)의 손에서 이재훈(이지훈)에게로 또 윤희주(오나라)에게 가더니 다시 김도학(양현민)으로 갔다가 레온(임태경)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결국에는 홍인표(정웅인)에게 가게 됐다. 사실 이야기가 너무 들쑥날쑥 이고 돈 가방을 두고 벌이는 쟁탈전이 마치 예능 프로그램 게임하듯 돌아가다 보니 이젠 어디로 가도 그다지 감흥이 없다. 어쩌다 KBS 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는 이 지경이 된 걸까.

 

돈 가방이 왔다 갔다 하는 와중에 사람들은 죽어가고 처음에는 주먹질을 하던 액션이 이제는 버젓이 총질을 하기 시작했다. 국내 장르물들도 이제 심심찮게 총을 쓰는 경우들이 적지 않지만, <99억의 여자>에서 갑자기 총이 등장해 서로 쏘고 맞고 피하는 장면들은 어딘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불법 도박사이트가 연관된 조폭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총질을 아무렇게나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차량 사고에 불까지 붙어 전소되는 상황에서도 그 흔한 경찰차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개연성이 떨어지고 자의적으로 굴러가고 있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억지로 이야기를 끼워 맞추다 보니 연기 잘하는 연기자들도 때론 난감하게 보일 때가 많다. 돈 가방을 찾아 차를 타고 추격하던 정서연이 엉뚱하게 총에 맞아 피 흘리고 있는 레온을 발견하고 그를 외면하지 못한 채 병원에 데려가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총에 맞은 레온이 뺑소니를 당했다는 말을 믿는 정서연이나 그렇게 피 흘리면서도 난감하게 “이름이 뭐냐”고 묻는 레온도 생뚱맞기 이를 데 없다. 그건 향후 레온이 자신을 구해준 이가 다름 아닌 자신이 죽인 백승재(정성일)의 이복동생이라는 걸 알게 하기 위한 작가의 무리한 설정이다.

 

아마도 작가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전이 어떤 놀라움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주려면 그만한 촘촘한 개연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연성 없이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틀기 시작하면 반전이 아니라 그저 급한 전개가 되어버린다. 시청자들은 전혀 몰입하고 있지 않은데 작가만 저 앞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막장드라마에서 많이 봐왔다. <99억의 여자>는 어째서 그 길을 따라가게 됐을까.

 

애초 <99억의 여자>는 꽤 기대감을 만들어준 게 사실이다. 처음 2회 정도까지는 그랬다. 적어도 정서연이라는 여자가 처한 상황에 공감 가는 바가 있었고 그 연기를 다름 아닌 최근 ‘기생충’으로 뜨거워진 조여정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시간대 전작이었던 <동백꽃 필 무렵> 만들어낸 후광효과도 적지 않았다. KBS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조여정이라고 해도 또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을 입고 있다고 해도 작품이 따라주지 않으면 졸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99억의 여자>는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정서연의 캐릭터가 흔들리는 건 치명적이다. 남편 홍인표의 상습적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게 정서연이 집을 나선 이유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돈 쟁탈전이 본격화되면서 이야기가 복잡하게 꼬였고 어쩌다 보니 정서연과 홍인표가 나란히 앉아 함께 돈 가방을 뺏기 위해 공조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돈에 대한 욕망이 인물을 그렇게까지 변화시킨 것이라 말하고 싶겠지만 주인공이 그렇게 휘둘리거나 흔들리면 그에 대한 연민이나 공감대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99억의 여자>는 조여정과 <동백꽃 필 무렵>의 후광만 남은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연기자들은 그나마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만, 대본과 연출은 대략난감이다.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어떤 명 연기자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안타깝게도 이 드라마는 증명해주고 있다.(사진:KBS)

‘동백꽃’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

 

결국은 작품인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드라마의 규모는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로 꼽히기 시작했다. 몇 백 억이 들어간 드라마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역시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화려한 외형이나 규모가 아니라.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동백(공효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동백꽃 필 무렵>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로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추리극과 스릴러 장르를 껴안았고 그를 잡기 위한 반전의 반전 스토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어린 시절 동백을 버리고 떠났다 다시 찾아온 엄마 정숙(이정은)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가족드라마를 보여줬고, 동백과 그 엄마를 챙기고 지키려는 옹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휴먼드라마의 면면을 더해줬다.

 

사실 장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이처럼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달한 멜로와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소름끼치는 스릴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가 적절히 섞였고,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동백꽃 필 무렵>이 한 이야기는 사회적 잣대에 의해 편견어린 시선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들도 모두 저마다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왔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동백과 그 엄마 정숙이 행복하게 다시 살 수 있기를 시청자들을 바랐고 옹산 사람들도 바랐다.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곳에서 이 드라마의 커다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고, 눈 돌아가게 모든 걸 갖춘 멋들어진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아닌 시골 마을의 촌스러운 캐릭터와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했듯이 그저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 그 기적은 잘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겹쳐져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그 기적의 중심점에 있는 인물은 단연 이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다. 이미 <쌈, 마이웨이>에서부터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이 작가는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확고한 자기 세계를 드러냈다. 소외되어 시선조차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어느 들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동백꽃을 피워내는 볕 같았다.

 

그렇게 볕을 받아 연기자들의 연기가 피어났다. 동백 역할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공효진과 ‘촌므파탈’이란 신조어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 강하늘, 엄마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이정은과 고두심, ‘옹벤져스’라 불린 옹산 아주머니 역할을 맛깔나게 연기해낸 김선영, 김미화, 이선희, 백현주, 찌질한 남편과 걸크러시 아내 케미로 사랑받은 오정세, 염혜란, 인생캐릭터 만난 손담비에 시골 파출소장으로 큰 웃음을 줬던 전배수, 미워할 수 없는 아빠 역할의 김지석과 관종 역할의 지이수 그리고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미친 존재감 필구 역할의 김강훈과 마지막 부분에 빛을 발했던 까불이 이규성과 그 아버지 신문성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내려 쬐는 공평한 볕처럼 작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옹산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 까불이를 잡고 동백의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작가를 위시해 연출자, 연기자와 스텝들까지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드라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사실 KBS 드라마는 그간 너무 깊은 부진을 겪었고 그래서 좀 더 강한 대작들의 지지를 받아야 회생할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백을 지킨 건 동백 자신이었던 것처럼, KBS 드라마는 KBS적인(작가도 연출자도 또 스토리까지도) 힘으로 자신을 지켜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기적은 결국 화려한 외형이나 외부의 힘이나 규모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은 보여줬다.(사진:KBS)

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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