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의 가족 시대극은 KBS의 가족극과 뭐가 다를까

폭싹 속았수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일 넷플릭스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는 <폭싹 속았수다>가 KBS에서 방영됐다면 어땠을까. 상상만으로도 시청률과 화제성이 폭발했을 결과들이 떠오른다. 물론 방송의 결과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상상으로 이런 예상을 해보는 일이 별 의미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굳이 이런 상상까지 동원해 보는 건, 그간 KBS가 유일하게 지속해온 가족드라마가 갈수록 고꾸라지고 시청층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폭싹 속았수다>를 써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기 시작한 임상춘 작가는 사실상 KBS가 낳은 작가다. MBC 단막극 <내 인생의 혹>과 SBS 단막극 <도도하라>를 쓰며 2014년에 데뷔했지만 본격 데뷔작이라 여겨지는 건 차영훈 감독과 함께했던 KBS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다. 그 후 <쌈, 마이웨이>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은 임상춘 작가는 차영훈 감독과 함께 <동백꽃 필 무렵>으로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2019년 시청률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던 그 시기에도 <동백꽃 필 무렵>은 무려 23.8%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세간에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이제 KBS가 끌어안기에는 너무 사이즈가 커진 임상춘 작가가 올해 새로 가져온 <폭싹 속았수다>는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 600억짜리 대작이고 스타 드라마 감독인 김원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캐스팅도 아이유에 박보검은 물론이고 문소리, 박해준에 나문희, 김용림, 염혜란, 정해균, 오정세, 엄지원, 백지원 등등 한 마디로 미친 존재감 아닌 연기자들이 없다. 사이즈가 커졌다는 말이 딱 실감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의 알맹이를 들여다보면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얼마나 가족 서사를 깊이있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게다가 <폭싹 속았수다>는 그 가족 서사에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시대의 흐름을 애순의 어머니 광례(염혜란), 애순(아이유, 문소리), 그리고 애순의 딸 금명(아이유)으로 이어지는 3대의 이야기로 풀었다. 시대극의 요소가 들어간 것이다. 

 

시대극과 가족드라마는 사실 과거 지상파 드라마의 대표적인 장르들이었다. 하지만 가족에서 개인 서사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시대의 변화와, 미디어의 변화, 지상파의 제작환경 변화 등과 맞물려 이들 장르들은 서서히 힘을 잃었던 게 사실이다. 여전히 KBS만 가족드라마(주말드라마)와 시대극(<오아시스>나 <오월의 청춘> 같은)을 시도하고 있지만 반향만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그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바뀐 시대에 맞는 시대극과 가족서사가 뒷받침해주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 우리 시대에 맞는 가족서사와 시대극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고, 또 그 힘 또한 강력할 수 있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중장년 구독자층의 시청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제 구독료만이 아니라 광고 수익을 목표로도 하고 있는 넷플릭스로서는 이러한 시청 세대의 폭이 늘고 있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KBS 같은 지상파가 가족서사와 시대극 같은 어찌 보면 공영방송에 어울리면서도 지금의 트렌드에 맞는 서사들을 발굴해내는 일이 OTT를 흉내내 장르물에 뛰어든다거나 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중들이 가족드라마를 점점 외면하는 건, 가족서사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져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가족서사만을 적당한 클리셰로 범벅해 보여주는 가족드라마들에 질렸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새롭고 참신하며 감동도 주는 가족서사가 가능할 수 있다는 걸 <폭싹 속았수다>의 임상춘 작가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작가와 서사를 발굴하려는 노력, 어쩌면 여기에 현 지상파들이 가진 딜레마를 풀 열쇠가 있지 않을까. (사진:넷플릭스)

임상춘 작가의 고단한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대한 국내외 반응이 뜨겁다. 또한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쌈마이웨이>부터 <동백꽃 필 무렵>을 거쳐 <폭싹 속았수다>로 이어지는 임상춘의 세계는 일관되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폭싹 속았수다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아이유)은 제주 해녀의 딸로 자라났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셨고 엄마는 새아버지와 살면서 애순을 시댁에서 살게 했다. 그나마 그 집이 먹고 살기 때문이었는데, 그 곳에 얹혀 살던 애순은 어린 나이에도 사실상 식모 역할을 했다. 그 사실을 알고는 엄마가 애순을 다시 데려가지만 그 엄마도 스물 아홉의 나이에 생을 등졌다. 결국 열 살 먹은 애순은 새아버지의 아이들을 돌보며 소처럼 밭을 일궈 양배추를 팔아 생계를 이었다. 본래 지긋지긋한 섬을 떠나 육지로 가서 대학도 가고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지만 고단한 삶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고단한 삶을 계속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늘 애순 옆에 딱 달라붙어 그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관식(박보검) 같은 따뜻한 인물이 있어서다. 섬놈에게는 절대 시집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애순은 관식과 결혼하고 드디어 행복을 느낀다. 시인이 되는 꿈은 접었지만 너무나 예쁜 아이들을 보며 애순은 후회하지 않는다. 관식 또한 마찬가지다. 운동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 무쇠 같은 몸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물론 아이가 사고로 죽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서로를 의지해가며 살아간다. 

 

<폭싹 속았수다>는 바로 이런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흙수저 인생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애순과 관식 같은 인물은 사실상 6,70년대를 살았던 부모 세대들의 쉽지만은 않았던 삶을 대변한다. 물론 제주라는 환경이 다르지만, 그 격동의 세월에 어떻게든 가난을 벗어나 살아보겠다고 했던 그 세대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진 것 없어 살 집 하나 얻는 것조차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야 가능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지켜봐주는 가족이 있어 그 난관들을 뚫고 나왔던 그들의 삶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지나고 나서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고 나아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재가 그들의 고군분투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을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대단한 입지전적인 인물의 성공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범한 이들의 출세담도 아닌 평범한 흙수저 인생들의 고군분투가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너무나 드라마틱한 인생 모험담으로 그려진다. 때론 쨍쨍 내리쬐는 햇볕처럼 아팠지만 때론 따뜻한 봄날의 행복도 겹쳐져 있던 인생 모험담. 

 

소외된 이들을 바라보는 임상춘 작가의 따뜻한 시선

<폭싹 속았수다>에서 애순과 관식이라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위대하게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임상춘 작가의 일관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단초다. <쌈마이웨이>에서 그 시선은 스펙이 없어 변방으로 밀려난 채 살아가는 흙수저 청춘들을 들여다 봤다. 아버지가 흙수저면 그 삶이 대물림되는 청춘들이 마주한 세상의 벽은 결코 넘기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 변방에서 이들은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태권도 국가대표를 꿈꾸던 고동만(박서준)은 격투기 선수로 나서고, 뉴스데스크 앵커를 꿈꾸지만 현실은 백화점 인포 데스크에서 일하는 최애라(김지원)는 방송국 대신 지방행사를 뛰고 격투기 전문 아나운서가 된다. 즉 <쌈마이웨이>는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쌈마이’ 취급 하는 세상 속에서 이 건강한 청춘들이 서로를 의지해가며 ‘마이웨이’를 걸어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외된 이들이 살아내고 버텨내는 생활 생존서사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늘 중심이 아닌 변방이 배경이다. <쌈마이웨이>가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을 그렸다면,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그 곳에 어린 아들과 함께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공효진)의 삶을 그렸다. 외지인인데다, 예쁜 얼굴에 술집 운영을 하는 미혼모라는 동백의 배경은 편견을 만들고 마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 촌므파탈 용식(강하늘)의 동백에 대한 순애보는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마을 사람들도 차츰 동백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용식과의 달달한 로맨스가 이어진다. 연쇄살인범 까불이의 등장으로 동네는 흉흉해지지만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의 연대는 이 위기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가장 힘겨운 시기를 거쳐야 비로소 꽃이 피어난다고 하던가. <동백꽃 필 무렵>은 동백 같은 편견으로 고통받은 모든 이들에게 그 힘겨움이 ‘꽃이 피어나기 위한’ 고난이라고 위로해주는 드라마다. 

 

전 세계가 주목할 독보적인 임상춘 작가의 세계

<폭싹 속았수다>는 이러한 임상춘 작가의 세계가 훨씬 깊어졌다는 걸 실감하게 한다. 제주 해녀의 삶을 토속적이면서도 거친 제주 방언의 특색을 더해 그 삶의 신산함을 드러내는 대목은 ‘문학적인’ 느낌마저 준다. 대사의 표현에서도 이런 면모들이 드러난다. “그러게 복어를 왜 건드려? 독으로 버티고 사는 걸.” 같은 대사로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의 삶을 단적으로 표현해낸다거나 “명치에 든 가시 같은 년” 같은 대사로 광례가 애순을 얼마나 애닳게 생각하는가를 표현해내는 점들이 그렇다. 

 

시인을 꿈꿨던 애순이 쓴 시들도 예사롭지 않다. ‘점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같은 기막힌 구절이 돋보이는 어린 애순의 시 ‘개점복’이나, 나이 들어 이제 시인의 꿈을 버린 지 오래지만, 백일장에 장사하러 나왔다가 애순이 쓴 ‘추풍’이라는 시도 그렇다. ‘춘풍에 울던 바람/ 여적 소리내 우는 걸,/ 가만히 가심 눌러/ 점잖아라 달래봐도/ 변하느니 달이요./ 마음이야 늙겠는가’ 나이 들어 이제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애순이 봄날의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걸 담아낸 이 시에서는 어쩌면 임상춘 작가도 한때 꿈꿨을지 모르는 문학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번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는 점에서도 임상춘 작가에게는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임상춘 작가는 줄곧 KBS에서 작품을 공개해왔다. 즉 어찌 보면 가장 로컬의 색채가 묻어나는 방송국에서 작품을 해왔던 셈이다. 임상춘 작가 특유의 끈끈한 가족 서사의 매력이 KBS라는 플랫폼과 어울려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은 최고 시청률 23.8%(닐슨 코리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OTT를 통해 공개되는 <폭싹 속았수다>는 어떨까. 가장 로컬적인 콘텐츠가 글로벌할 수 있다는 걸 지금껏 증명해온 넷플릭스에 임상춘의 세계는 확실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 공개 2주차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 비영어 부문에서 2위에 올랐다. 한국은 물론이고 브라질, 칠레, 멕시코, 터키, 필리핀 베트남을 포함한 총 41개국에서 톱10 리스트에 랭크된 것. 제주를 비롯한 한국의 현대사 같은 낯설 수 있는 로컬 색깔들이 묻어나는 작품이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나 부부 관계 같은 보편적인 인간관계의 서사가 담겨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다. 

 

특히 소외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깊이있게 천착함으로써 그 삶을 위대한 모험담처럼 그려내는 임상춘 작가의 세계는 비정한 자본주의의 틀에서 고통받는 많은 이들에게 한바탕 씻김굿 같은 눈물을 통한 거대한 위로가 아닐 수 없다. 세계가 주목할만한 작가의 탄생이다. (글:시사저널, 사진:넷플릭스)

'사이코', 좋은 드라마엔 어째서 늘 오정세가 있었을까

 

자신의 엄마가 사랑하는 강태(김수현)와 이제 가족이 된 상태(오정세)의 엄마를 죽인 범인이라는 걸 알게 된 문영(서예지)은 충격에 빠져버린다. 강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영 옆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지키고, 상태는 문영이 아프다는 얘기에 순덕(김미경) 아줌마가 만들어준 죽을 싸서 문병을 온다.

 

하지만 문영은 상태를 마주 보지 못한다. 그저 "미안하다" "용서해 달라"라고 말할 뿐이다. 상태는 왜 문영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동생 강태와 싸웠을 거라 짐작하며 애써 문영의 입에 죽을 떠넘겨주려 한다. "용서해줘." 문영이 그렇게 말하자 상태는 선선이 "이거 먹으면 용서해줄게"라며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처럼 문영의 입에 죽을 넣어준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등장하는 이 장면이 특히 감동적인 건 자폐를 가져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할 거라 여기는 상태가 오히려 문영과 강태를 애써 챙기려는 그 마음이 보여서다. 그는 "내가 형이니까"라며 강태에게 용돈을 쥐여주기도 하고 이제 가족으로 받아들인 문영 또한 형으로서, 어른으로서 챙기려 한다.

 

물론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강태와 문영이라는 독보적인 캐릭터 위에 서 있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서도 상태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만만찮게 느껴진다. 그는 사실상 이 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가장 잘 드러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폐를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폐는 아니고 나아가 역설적이게도 이 드라마 속 그 어떤 인물보다 건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상태라는 이 쉽지 않은 캐릭터를 이토록 실감나면서도 가슴 따뜻하게 연기해낸 오정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연기가 가능해진 건 아마도 이 배우가 진정으로 자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전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정세가 지적장애를 가진 팬에게 꿈같은 하루를 선물해준 미담은 이 배우의 진가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진 챌리스트 배범준씨가 드라마를 보며 상태를 위로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듣고 흔쾌히 상태의 모습 그대로 배씨와 놀이공원 데이트를 했다고 한다. 이 만남을 성사하게 해준 배씨의 여동생은 "바쁜 스케줄 속에서 오빠를 만나기 전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하시며 노력하셨는지 느껴졌다"고 했다. 그 말 속에는 오정세가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생각해보면 최근 오정세가 출연한 작품들이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고 그 속에서 오정세는 확실한 자기만의 연기 영역을 보여줬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그는 옹산 군수를 꿈꾸지만 잘 나가는 홍자영(염혜란) 변호사와 찌질하지만 따뜻한 로맨스를 담은 노규태로 분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백승수(남궁민) 단장과 각을 세우는 권경민이라는 악당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한 바 있다. 이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의 상태는 물론이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모범형사>에서 오종태라는 악당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찌질하지만 인간적인 남자 역할에서부터 뒷목잡게 하는 악당과 천사가 따로 없는 자폐를 오가며 오정세는 이처럼 나날이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데 그 작품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가 최근 좋은 작품으로 호평을 이끌었던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고르는 남다른 선구안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선구안이 좋고 운이 좋아도 작품을 임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연기가 따라주지 않았다면 오정세가 이만큼 좋은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사실 오정세는 주인공으로 주목받은 배우가 아니다. 그는 늘 주인공 옆에 서 있거나 혹은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주인공인 문영에게 죽을 떠 먹여주고 강태를 형으로서 챙기는 그의 연기는 주인공 그 이상의 존재감을 만들어낸다. 오정세는 마치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처럼 그런 주변인의 역할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이런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인물이라면 중심에 있건 주변에 있건 빛나기 마련이다. 자폐를 가진 상태라는 인물이 이 드라마에서 오히려 가장 건강하게 보이는 것처럼, 오정세는 어쩌면 자신의 위치에서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걸 혼신을 다한 연기로 보여주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좋은 드라마엔 오정세가 늘 있었다는 말은 거꾸로도 들린다. 오정세가 있어 좋은 드라마가 됐을 수도 있다는.(사진:tvN)

 

당당하고 소신 지키며 자기 삶에 충실한 청춘들의 등장

 

청춘들이 달라졌다. 드라마에서 청춘들은 주로 두 부류의 캐릭터로 소비되곤 했다. 그 하나는 청춘멜로의 대상. 청춘들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소재 중 하나다. 다른 하나는 사회 현실의 어려움에 직면한 청춘들이다. 현재의 사회 현실을 담은 드라마들이 청춘들을 등장시킬 때 그들이 실제로 겪곤 하는 취업 현실이나 만만찮은 조직의 적응기가 그것이다.

 

최근 드라마 속 청춘들의 초상을 보면 현실을 벗어나 사랑이라는 판타지에 빠져 있거나, 혹은 만만찮은 현실과 사투를 벌이던 청춘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들이 발견된다. 물론 사랑과 현실 이야기가 빠지진 않지만 이걸 대하는 이들의 면면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드라마는 역시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JTBC <이태원 클라쓰>다. ‘청춘 복수극’이라는 새로운 틀을 가져온 이 드라마에서 박새로이(박서준)는 기성사회의 부정하고 잘못된 시스템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이 진정한 복수라 말하는 청춘이다. 그는 갖가지 갑질과 핍박에 시달리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정해놓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간다.

 

전과자라는 설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청춘은 취업이 아닌 창업을 택한다. 그리고 조금씩 가게를 성장시켜 국내 최고의 요식업 회사를 꿈꾼다. 가진 것 없는 그에게 기성관념이 허황되다고 말할 때 그는 일갈한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니까. 원하는 거 다 이루면서 살 거야.”

 

청춘들은 이제 기성 사회가 만들어놓은 시스템 안에서 참고 적응해내려 했던 <미생>의 장그래와는 많이 달라졌다. 대신 작아도 자신의 일을 추구하고, 거기서 성공과 행복을 찾으려 한다. 종영한 드라마 KBS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강하늘) 같은 청춘은 옹산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순경으로 살아가면서도 소신을 지켜가며 나름의 행복과 사랑을 실천해가는 인물이다. 시청자들이 이 청춘에 매료됐던 건, 순박하고 소박하지만 타인의 시선이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 면모 때문이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JTBC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의 임은섭(서강준) 같은 인물도 이러한 달라진 청춘의 색깔을 보여준다. 북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그마한 책방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청춘이지만, 지역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통해 정을 나누고 단단한 자기만의 소신을 갖고 있다. 추운 겨울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을 그 책방처럼 따뜻하게 품어주는 인물. 서울살이에 지쳐 내려온 목해원(박민영)과 그의 사랑이야기가,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를 힐링시켜주는 건 이 청춘의 묵묵히 타인을 배려하며 소신 있게 살아가는 삶이 따뜻한 온기를 전하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소신을 가진 청춘들의 등장은, 이제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누군가 세워놓은 기준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 것보다는 자기 스스로 세운 소신을 갖고 큰 성공은 아니더라도 확실한 나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청춘들. 그들의 당당함이 우리 사회의 어떤 희망처럼 느껴지는 이유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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