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 같은 <동상이몽>, 과한 편집도 수긍되는 까닭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눈꽃열차를 타는 거라고 말하는 엄마는 강원도가 미지의 세계라고 하셨다. 광주에 살면서 고작 강원도를 미지의 세계라고 하게 된 이유는 이런 여행조차 갈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거의 뛰듯이 하루 종일 일 속에서 사셨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딸은 그런 엄마를 걱정했다. ‘눈꽃열차를 좋아할 정도로 예쁜 걸 좋아하시던 엄마가 일 때문에 그런 감성조차 잊고 사시는 걸 걱정했다. 새벽에 녹초가 되어 쓰러진 엄마 대신 마치 우렁각시처럼 집안일을 해놓고 잠이든 딸은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가 들려준 이야기는 빠른 엄마와 느려터진 딸 사이의 갈등이었지만 거기에는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두 사람의 입장이 있었다. 가족을 위해 일 분 일 초도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와 그 엄마를 걱정하며 조금은 느리게 살았으면 하는 딸의 입장.

 

이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다가온 것은 지금 우리네 보통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쉬지 않고 달려야 되는 결코 쉽지 않은 현실 속에서 옆을 돌아보거나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아가는 부모들의 노동. 그래서 몸이 아파도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다름 아닌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입만 열면 자식 걱정 가족 걱정이지만 정작 자기 걱정을 하지 않는 엄마가 그러나 딸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한 삶이 몸에 배어버린 엄마와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그 엄마를 걱정해주는 건 역시 딸뿐이라는 이야기는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의 삶이 그래도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를 잘 말해준다. 결국 그 힘겨움을 넘어서게 해주는 것 역시 가족의 힘이라는 것.

 

그래서 여자의 몸으로 마트를 운영하며 정육 일을 하면서 몸에 익어버린 칼질에는 <생활의 달인>에서 느껴지곤 하는 그 삶의 신산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놀라운 정육 기술에 관객들은 환호를 보내지만 그 달인이 되어버린 기술 이면에 그 엄마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힘들게 노력하며 살았을까.

 

문이 닫힌다는 것을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는 마트를 운영하는 엄마에게 여전히 눈꽃열차는 이루기 힘든 꿈처럼 다가온다. 예쁜 하이힐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는 뛰어다닐 수 있는 운동화를 신어야 되는 엄마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 엄마가 힘겨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건 그 마음을 낡은 운동화와 예쁜 하이힐에 담은 그림을 선물해주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딸이 엄마에게 가장 바라는 건 그냥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이건 아마도 지금의 대다수 서민들이 바라는 것일 게다. 우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가족끼리라도 함께 조금의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는 그런 여지. 강원도 눈꽃열차가는 소소한 일이 심지어 꿈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는 그런 삶.

 

<동상이몽>은 때로는 짓궂은 편집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곤한다. 두 사람의 입장을 차례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앞부분은 과도하게 편집되어 비난받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다른 입장을 보여줌으로써 그 비난을 뒤집어 감동으로 바꾸는 반전을 연출해낸다. 물론 때때로 이 편집은 과도해져서 불편한 악마의 편집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가족 간의 숨겨진 사랑과 소통이 전제되기만 한다면, 조금 과한 편집조차 수긍되지 않을까. ‘눈꽃열차타는 게 꿈이라는 엄마와 그 엄마를 걱정하는 딸의 입장에 숨겨진 가족애가 모두 공감되었던 것처럼.



<아빠를 부탁해>, 변화를 결심한 아빠 강석우의 용기

 

우리는 얼마나 진심을 내보이며 살고 있을까. 스스로는 그것을 진심이라 말하지만 실제로는 진심이었으면 하는 가장이 되는 경우가 있다. SBS <아빠를 부탁해>의 강석우가 이 프로그램을 하며 느끼게 된 혼란은 아마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다. 딸 다은이에게 그토록 다정다감하고 때로는 로맨틱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던 강석우가 아닌가. 그런데 그는 이 방송을 하면서 점점 더 혼란스럽다고 조심스레 속내를 털어놨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처음 <아빠를 부탁해>가 파일럿으로 방송되었을 때만 해도 강석우는 좋은 아빠’, ‘자상한 아빠의 전형처럼 보였다. 딸의 아침을 챙기고, 딸의 방 침대에 캐노피를 직접 인테리어해주는 그런 아빠. 반면 조재현이나 이경규는 나쁜 아빠의 전형이었다. 거의 집안에서는 누워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고 딸과 무언가를 전혀 하려 노력하지 않고 심지어 귀찮아하는 아빠. 그런데 방송이 계속되면서 이 아빠들의 모습은 정반대로 다가오고 있다.

 

이경규는 딸과 함께 있는 게 여전히 어색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딸 예림이를 알아가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딸의 친구들과 함께 네일샵에 가고 또 멕시칸 음식점에서 함께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이경규에게서는 귀찮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기분 좋은 관계의 면면들이 보였다. 또 조재현은 바쁜 스케줄 때문에 피곤하고 귀찮아했지만 딸 혜정이의 자전거를 가르쳐주기 위해 막상 한강에 나오자 한껏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또 좌절할 때 혼자 한강을 찾아온다는 딸의 이야기에 차분하게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즉 이경규와 조재현은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그 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딸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강석우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석우는 무슨 이유에선지 자상한 아빠’, ‘멋진 아빠여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보였다. 그래서 스스로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타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강석우가 이런 속내를 어렵게 꺼내놓은 것은 실로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꽤 오랫동안 살아왔던 방식에 변화를 준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이 다은이에게 때로는 지루하고 힘들게 다가온다는 것을 방송을 통해 확인한 이상, 아빠 강석우는 변화의 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근본적인 엇갈림이기 때문이다.

 

강석우의 이런 자성과 변화에 대한 의지는 <아빠를 부탁해>라는 관찰카메라 형식의 프로그램이 가진 독특한 특성을 보여준다. 즉 이 관찰카메라는 우리가 평상시에는 잘 몰랐던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관찰해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강석우가 혼란을 느끼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신이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모습들이 관찰카메라에 담기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던 것.

 

강석우는 과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가 지금껏 입고 있던 그 껍질을 깨고 다은이 앞에 새로운 아빠의 모습으로 설 수 있을까. 거기에는 분명 아빠의 고통이 따를 것이지만 만일 실제로 그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강석우라는 아빠가 보여주는 이른바 착한 아빠에 대한 강박은 지금 현재 우리네 아빠들이 가장 많이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때 가부장적인 아빠들 밑에서 자라온 세대들은 자신은 다른 아빠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마음처럼 쉬운가. 오히려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억지로 혹은 강박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이려는 안간힘은 타인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떠한 강박도 없는 솔직한 아빠의 진짜모습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빠를 부탁해>의 관찰카메라는 그것이야말로 더 좋은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빠를 부탁해> 조재현 딸 조혜정, 왜 이렇게 예쁠까

 

이런 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 딸 조혜정에 대한 관심은 이미 파일럿 방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심한 아빠 조재현을 뒤에서 늘 바라다보며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딸 조혜정. 그녀가 늘 열어 놓고 있는 자신의 방문은 그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아빠에 대해 늘 열려져 있는 그녀의 마음을.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스스로도 말하듯 조재현은 딸에게만큼은 나쁜(?) 아빠다. 드라마 촬영에 딸과 시간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는 아빠. 집에 딸과 함께 있어도 뭘 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는 아빠. 전날 술을 마셨다며 한 시간만 자자고 말하고는 그걸 기다리는 딸의 마음까지는 잘 챙기지 못하는 아빠.

 

그런 아빠 주변을 뱅뱅 도는 딸 조혜정은 아빠 바라기다. 아빠랑 뭘 하고 싶냐고 적어보라고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이 위시리스트를 적는 딸. 하지만 고작 그녀가 해보고 싶은 건 아빠가 해주는 밥 한 끼를 먹는 것이나, 아빠와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것 같은 것이다. 그런 소소한 걸 하면서 그녀는 한없이 행복해진다.

 

감정 표현에 솔직한 조혜정은 애교덩어리다. 말투에서부터 애교가 뚝뚝 떨어진다. 이런 애교의 모습은 무뚝뚝한 아버지 조재현과는 사뭇 대비되는 그림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애교에는 아빠에 대한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 존경어린 시선이 담겨있다. 사근사근한 태도로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은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방랑하다 돌아온 나쁜 아빠와 자신의 마음을 일기장에 적어 놓는 딸의 모습이 등장하는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조혜정의 마음에 시청자들도 공감한다. 그것이 조혜정에게는 고스란히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을 터이다. 그걸 본 아빠 조재현의 마음은 어땠을까. 일 때문에 가족과 그리 많은 시간을 갖지 못했던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조재현이란 아빠는 우리네 대부분 아빠들이 가족에게 갖는 부채감을 드러내는 존재처럼 보인다. 밖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멋진 아빠지만 집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나쁜 아빠.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과 조혜정의 관계가 유독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그것이 고스란히 보통의 우리네 아빠와 딸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량이 소주 두병 반이라고 딸 조혜정이 말하자 아빠 조재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다. 여전히 어린애로만 생각한 딸이 어느새 부쩍 자라 함께 술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남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도 못했는데 저토록 아빠를 바라보며 함께 걷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 한없이 행복해하는 모습이라니. 조혜정이라는 딸이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모습을 보며 새삼 세상의 아빠들은 자신의 딸들을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됐을 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딸들을.

 

<아빠를 부탁해>의 관찰카메라 특별하게 다가오는 까닭

 

호통치고 면박주고 때론 낄낄 대던 이경규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SBS <아빠를 부탁해>의 이경규는 우리가 방송으로만 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검사와 시술을 받기 위해 병실에서 초조해하는 이경규는 그 나이의 보통 아빠들과 다를 바 없는 중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은 낯설기도 했지만 또한 쓸쓸한 공감대가 느껴지는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이경규의 민낯이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아빠를 부탁해>의 시선이 남다를 수 있는 건 그것이 딸의 관점 나아가 일반 대중들의 관점으로 거기 등장하는 아빠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딸 예림이가 보게 된 병상에 누운 아빠 이경규의 모습은 저 스튜디오에서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아빠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털털하기 그지없는 예림이가 하릴없는 농담을 괜스레 건네면서도 간간이 얼굴이 걱정으로 굳어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거기에는 무뚝뚝하게만 보였던 예림이의 아빠에 대한 마음이 어른거린다. 표현은 하지 않아도 걱정과 안쓰러움이 뒤섞인 그 감정이 얼굴에 묻어나고 때로는 그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괜스레 눈물이 쏟아지기도 한다.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 무뚝뚝하게 대했던 아빠의 진심을 다시 발견하게 됐을 때, 그런 아빠를 오해했던 딸의 마음은 한없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예림이가 아빠 이경규의 진심과 실제 모습을 발견하고 차츰 소통해가는 과정은 바로 <아빠를 부탁해>라는 관찰카메라가 가진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흔히들 관찰카메라라고 하면 타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악취미 정도로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아빠를 부탁해>의 관찰카메라는 서로 속내를 몰랐던 관계들의 실체를 찾고 발견해내는 새로운 시선의 역할을 해준다.

 

우리는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일상이 어떻게 꾸려지고 있고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얼마나 오해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아빠를 부탁해>는 바로 이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일상을 다시 들여다보는 관찰카메라다. 그래서 한 자리에 모인 아빠들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보며 때론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웃찾사>를 보는 것 마냥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그렇게 카메라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한 아빠들은 그래서 바로 그것을 계기로 딸과의 새로운 관계와 소통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딸도 마찬가지다. 그간 강하다고만 여겨져 왔던 아빠 이경규의 아픈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발견하는 딸은 아마도 아빠에 대한 마음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딸의 관점을 취하고 있는 <아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의 공감대가 시청자들과 만나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변화다. 마치 이경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소통의 물꼬를 트는 딸 예림이의 시선처럼, 이 관찰카메라는 그간 발견하지 못한 이경규의 새로운 면모를 통해 대중들과의 소통의 길을 열어준다.

 

흔히들 이경규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날방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일면일 뿐이라는 걸 <아빠를 부탁해>는 보여준다. 방송 중에도 가슴을 툭툭 치며 힘겨움을 애써 숨기는 모습은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이든 베테랑 방송인의 남다른 고충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껏 방송에서의 어떤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이경규에게 <아빠를 부탁해>라는 카메라가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거기에 방송인 이경규가 아닌 인간 이경규 아니 아빠 이경규의 모습이 담기기 때문이다. 예림이의 시선을 빌어 비로소 이경규의 또 다른 숨겨진 반쪽의 모습이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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