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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밤’, 아픈 기억은 어째서 밤을 필요로 하는가

영화 <동주>에서 감옥에 수감되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점점 파리해져가는 강하늘의 그 초점없는 눈빛이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관객이라면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영화 <기억의 밤>은 바로 그런 강하늘의 얼굴이 가진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올 게다. 밝고 맑은 청년 같은 얼굴로 시작하지만 저 뒤편으로 가면 ‘절실함’에 몸부림치다 스스로를 놓아버리는 그의 얼굴 속에 한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걸 느낄 수 있을 테니.

<기억의 밤>은 스릴러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동시에 공포물이 갖는 충격 요법이 적절히 배치된 작품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기 어렵고, 또 벌어진 일이 실제인지 꿈인지 알 수 없다는 그 사실이 주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게 된다. 

워낙 반전의 반전이 많은 작품이라 어떤 언급조차 스포일러가 될까 조심스럽지만, <기억의 밤>은 어느 날 낯설게 변해버린 형 유석(김무열)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동생 진석(강하늘)이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집으로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하면서 밤마다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추적해 가는 진석은 그가 본 것들이 실제인지 아니면 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신경쇠약을 앓고 있는 자신의 환상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가림막이 주는 공포스러운 상황은 그러나 영화가 중반 정도를 지나면서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공포물이 아닌 스릴러의 긴박감을 만들어낸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소름 돋는 반전이 관객의 예측을 깨버리면서 이야기는 과거 우리가 겪어냈던 시대의 아픔을 기억으로 소환해낸다. 진석의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던 영화가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어간다는 건 이 작품이 단순한 스릴러 장르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전하려는 주제의식이 분명하다는 걸 말해준다. 

밤에만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기억이 실제인지 아니면 환상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일들은 이 작품의 제목이 왜 <기억의 밤>인가를 말해준다. 그것은 진짜 기억이 무엇인지를 찾아 헤매는 밤이라는 영화의 실제 상황을 지시적으로 말해주면서, 동시에 우리의 아픈 기억이 어째서 망각이라는 밤이 필요한가를 얘기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최근 2,30년 동안 꽤 많은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어왔다. 다리가 붕괴되고 건물이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해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길바닥에 나앉고 지하철 화재와 배의 침몰로 무고한 생명들을 잃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른바 안전 불감증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사건들이 가진 충격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그건 진짜 우리가 안전에 대한 불감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건 어쩌면 너무나 고통스런 기억들이어서 마치 없는 일처럼 치부하고, 나에게는 벌어지지 않을 일이라 여기려는 안간힘에서 생겨난 ‘증상’은 아니었을까. 기억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밤을 필요로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기억의 밤>이라는 제목은 우리 사회가 가진 이 증상을 지칭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로 강하늘은 그 변화해가는 얼굴 속에 우리 사회가 겪은 그 상처의 면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연기를 보인다. 스릴러 장르가 가진 반전의 쾌감이 주는 재미가 그저 장르적 재미로 휘발되지 않고 어떤 사회적 함의로 확장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이 강하늘의 얼굴에 담긴 시대의 정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얼굴 속에 우리네 현대사의 상처들이 어른거린다.(사진출처:영화<기억의 밤>)

Posted by 더키앙

‘피고인’, 기억의 문제가 유독 중요하게 다가오는 까닭

고구마다. 사이다다.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에 대한 의견들은 눈을 뗄 수 없다는 호평에서부터 마치 시청자 본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듯 답답하다는 볼멘소리까지 다양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살인죄 누명을 쓰고 심지어 기억까지 잃은 채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박정우(지성)가 조금씩 기억을 찾아가고 또 닥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피고인(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과정이 한 회에 단서 하나로 매듭 하나를 풀고, 그렇게 풀어진 매듭도 다시금 진짜 살인자인 차민호(엄기준)에 의해 다시 꼬이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니 시청자들은 사이다를 기다리다 연거푸 목구멍으로 밀어 넣어지는 고구마에 턱턱 숨이 막힐 지경이다. 도저히 16회만으로는 스토리를 마무리 지을 수 없다며 2회 연장을 선언한 것에 대해 그럴 거면 더 빠른 전개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그런데 이러한 호평과 비판이 엇갈리는 가운데, <피고인>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두고 있는 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어떤 무언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우리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이자 넘어야할 산으로 다가오고 있는 ‘기억의 문제’다. 왜 하필 박정우는 기억과 망각을 거듭하는 걸까. 감옥에서 그를 봐주는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말한다. 너무나 고통스런 기억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망각이라는 기제를 꺼내든다는 것. 결국 박정우는 차민호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적으로는 스스로와도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망각의 대결이다. 

왜 기억과 망각의 이 대결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걸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바로 이 기억과 망각의 대결로도 읽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이 연달아 벌어졌을 때마다 우리는 ‘안전 불감증’에 걸린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지목하곤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런 일들은 멈추지 않았을까. 그리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 같은 참담한 일들까지 벌어졌을까. 결국 당시에는 잊지 말자고 했던 그 다짐들이 금세 망각으로 지워져버리고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비단 사고에만 머물지 않는다. 갖가지 정관계 비리들이나 법조계 비리들, 정경유착, 더 시원을 따라 올라가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친일파 청산 문제,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사과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위안부 문제 등등. 사안들이 터질 때마다 기억하자고 우리는 얘기했지만 어느 순간 마치 최면이라도 거린 듯 다시금 망각의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그건 책임자 처벌과 같은 제대로 된 사후처리가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가중된 고통 속에서 우리 스스로 그 아픔을 지워내려 했던 탓은 아니었을까.

박정우가 처한 상황이 딱 그렇다. 그 고통을 제대로 마주해야 비로소 그 고통스런 ‘기억의 감옥’ 속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끝까지 마주 봐야 한다. 망각의 유혹이 고개를 들어도 그걸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고 진범을 처벌 받게 해야 비로소 ‘기억의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다. 만일 그렇게 확실한 결말을 내지 못한다면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기억의 고통과 망각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사건과 사고로 고통스런 삶을 계속 살게 되었듯이.

Posted by 더키앙

<썰전>, 비상식적 현실 유시민의 상식을 만나면

 

국정감사에서 난리가 났었는데 끝나고도 대책회의도 안했다는 건 놀고먹었다는 거다.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지.” 유시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부인했던 조윤선 장관의 청문회 이야기를 하면서다. 사실 유시민이 말한 대로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그 말이 납득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런 중차대한 문건이 나돌고 있다는데 문화부 장관이라는 직책에서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 유시민은 그것이 놀고먹었다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썰전(사진출처:JTBC)'

촛불민심을 소크라테스에 비유해 논란을 낳은 서석구 변호사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유시민 작가는 명쾌한 상식으로 맞섰다. 소크라테스의 비유는 직접 민주주의의 의사결정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경고하는 사례로 흔히 사용되는데, 이번 탄핵의 경우에는 이런 비유가 적절치 않다는 것. 탄핵에는 엄연히 헌법재판소의 심사가 있는데, 서석구 변호사의 말대로라면 헌법재판관들이 군중심리에 좌지우지되는 사람들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관들은 법과 절차에 따라 법리적으로 심의할거다. 거기다 대고 이렇게 말하면 우리를 군중심리에 떠밀려 갈 사람으로 보는거야?’라며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 추론이다.

 

또한 서석구 변호사가 거론한 촛불집회에서 “(대통령 퇴진곡을 만든) 윤민석이란 사람은 김일성 찬양 노래로 감옥 갔다 온 사람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유시민 작가는 사실관계를 재차 명확히 했다. “윤민석씨가 국보법 위반으로 재판에 간 적 있지만 김일성 찬양 노래는 서석구 변호사의 주장일 뿐이라는 것.

 

이번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 수사와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재의 심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이런 저런 말들은 사실 대중들을 혼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나름의 그럴 듯한 논리들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들을 미혹시키는 말들은 사실 한 발만 물러나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앞뒤가 맞지 않거나 말 자체가 부적절한 경우가 적지 않다. 유시민 작가가 그 말들이 가진 허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상식을 들고 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건 그래서다. 엉뚱한 논리는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비상식적인 면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한일 외교관계 역시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유시민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냈다. 위안부 합의 문제에 대해 유시민은 한국을 뭘로 보는 거냐. 자기네가 이 문제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끼리 협의 하면 온 국민이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라며 일본의 태도가 지극히 부적절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10억 엔을 내놨다는 건 저들이 잘못한 게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돈으로 때우는 게 아니라 진정한 사과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

 

여기에 대해서는 전원책 변호사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합의란 걸 했다. 그런데 무슨 권리로 하냐. 박근혜 정부나 당시 서명한 윤병세 장관, 이병기 비서실장이 어떤 권리로 합의했는지 국회가 따져봐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위안부 할머니가 당사자다. 이분들이 위임해준 적이 없는데 무슨 자격으로 그걸 했냐는 거다. 법률적으로 무효다.”라고 그는 말했다.

 

유시민 작가는 이 한일 문제에 있어서 망각이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냈다. 그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가면서 치렀던 학살을 잊을 수 있어서 한민족 공동체가 성립됐던 것처럼 망각 없이는 공동체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망각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본 전제는 진정한 사과라는 걸 명확히 했다.

 

유시민 작가가 갖가지 복잡해 보이는 시사적인 사안들을 갖고 와도 명쾌하게 그것들의 진상을 드러내주는 방식은 어찌 보면 너무나 간단하다. 지극히 보편타당한 상식과 논리가 그것이다. 바로 이 점은 아마도 대중들이 유시민 작가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게다. 좋은 세상이 대단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며, 상식만 지켜도 보다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제 대중들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Posted by 더키앙

<기억>,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가시 같은

 

기억이란 마치 가시 같다. 뺑소니로 아이를 잃은 박태석(이성민)은 그 기억이 가시처럼 뇌리에 걸려 있다. 그건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면서도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전처인 나은선(박진희)은 그래서 그 기억의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아이를 잃은 기억의 고통을 자신과 박태석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일로 여긴다. 그녀는 태석에게 한시도 그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기억(사진출처:tvN)'

아마도 그 기억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서영주(김지수)와 재혼한 박태석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빠져 살아왔던 것은. 그런데 그 몸부림의 끝에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기억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병.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잊고 싶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지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은 자꾸만 잊혀진다. 술에 취해 그는 전처인 나은선의 집을 자꾸만 찾아간다.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건 제목처럼 기억이라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자 천형에 대한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지만 바로 그 잊혀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가시 같은 기억은 죄의식같은 걸 자극해 인간다운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태석의 아이를 뺑소니 친 채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승호(여회현)는 잊지 못할 가시 같은 기억 때문에 아이가 죽은 곳에 꽃다발을 갖다 놓는다.

 

잊고 싶은 기억, 잊혀지는 기억, 잊지 말아야할 기억. 태석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하루는 그 기억과의 사투 속에서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그는 일터에서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잊어버려 낭패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렇게 뛰고 또 뛰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죽은 아이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 술 취해 나은선의 집에서 잠든 자신을 아내 영주가 찾아왔다는 그 기억에 미안해하고, 착한 영주의 심성을 빼닮은 아들 정우(남다름)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가슴 아파한다.

 

태석의 하루는 실로 전쟁터 같다.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동시에 자신의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태석은 조금씩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집단 따돌림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하려던 정우를 찾는 태석은 그 누구보다 간절해진다. 또 아이를 잃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정우를 찾아낸 태석은 자신이 지켜내야 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억>이 그리고 있는 태석이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우리 시대의 가장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태석 같은 존재가 기억 속에 아른거릴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어느 순간 떠나버렸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그 가장의 모습. 태석의 안간힘을 보며 어떤 슬픔 같은 걸 느끼게 됐다면 그건 이 인물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저마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때로는 자의와 상관없이 사라져가는 기억. 우리는 어쩌면 태석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기억의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그는 알츠하이머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게 아닌 우리가 그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기억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또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겨질 지도 모를

Posted by 더키앙

<시그널>은 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을까

 

갑자기 지지직대며 울려대는 무전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무전기 소리에 이제 박해영(이제훈)도 이재한(조진웅)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민감해져 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넘나들며 잊혀졌던 과거의 사건을 들춰내거나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고한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그렇게 무전기라는 판타지 장치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아무 생각 없이 그 무전기로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의 현풍역 기찻길에서 벌어질 살인을 예고하게 된 박해영 경위는 그 얘기를 듣고 현장에 간 이재한 순경의 개입에 의해 일어날 살인이 미수로 바뀌게 되는 걸 목도한다. 과거를 바꾸자 현재의 기록들이 모두 바뀌는 걸 확인하게 된 것. 박해영은 이 놀라운 변화를 보고는 1989년에 살아가고 있는 이재한에게 보내는 무전을 통해 그 끔찍했던 연쇄살인사건을 막아보려 한다.

 

다시 수사를 하면서 박해영은 연쇄살인사건이 한 버스노선을 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리고 그 날 현풍역 기찻길에서 도주한 범인인 이전 범행과는 달리 주거지 근처에서 살인을 벌이는 등 폭주하고 있는 걸 확인한다. 범인의 목격자인 버스에 탔던 승객들을 하나하나 죽이고 있었던 것. 하지만 당시의 목격자를 추적하다가 박해영은 당시 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를 발견하고 자책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시그널>의 이야기가 전하는 현실적인 함의는 놀랍다. 즉 살인사건을 막아내자 살인이 미수로 바뀌는 장면이 고스란히 전하는,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한다는 명제가 그렇고, 26년 만에 다시 나타난 동일 수법의 살인이 전하는 기억에 사라졌어도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경고가 그렇다. 무전기의 지직 대는 소리가 그저 귓가에 울리는 소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망각의 저편으로 던져놓았던 것들을 긁어서 다시 깨워내는 소리로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시그널>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저 판타지가 섞여있는 형사물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가 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물론이고,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까지 무수한 사건 사고들로 점철되어 있는 게 우리 사회의 맨얼굴이다. 당시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목 놓아 외치며 한 목소리를 내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누구도 관심을 보내지 않고 결국은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간다. 제대로 된 해결도 없고 사후대책도 나오지 않았지만 망각은 그것을 애초에 없던 일처럼 만들어버린다.

 

<시그널>의 무전은 그 망각을 파고들어오는 휘발된 과거의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 사건은 기억 속에서 묻혀 졌을 뿐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전하고 있고, 과거의 벌어진 사건들이 결국은 현재를 만든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평범한 판타지 형사물로 보기에는 그 깊은 함의와 신랄함이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그널>이 던지는 무전은 그래서 저들 드라마 속 형사들만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휘발시켜온 우리들에게도 날아오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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