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방식으로는 유재석이라도 어쩔 수 없다

'놀러와'(사진출처:MBC)

'놀러와'에 더 이상 놀러가고 싶지 않다? 이 정체된 토크쇼의 추락이 예사롭지 않다. 연예인 게스트 토크쇼라는 이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 게스트 토크쇼인 '안녕하세요'에 밀리고 있는 상황. 게다가 MC가 유재석이 아닌가. 시청률이 급락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화제성에서도 그다지 주목되지 못하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형식도 변화 없는 반복에는 장사가 없는 법. 그것을 맡고 있는 MC가 유재석이라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놀러와'는 유재석이라는 MC의 성향을 극대화한 토크쇼다. 즉 편안하게 친구 같은 게스트들을 모셔놓고 유재석 특유의 '햇볕 토크'로 게스트들의 꼭꼭 싸매놓았던 외투를 벗겨내는(?) 토크쇼. 그 편안한 분위기에 던져지면 게스트들은 저도 모르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마련이었다. 이것을 더 극대화한 것이 '골방 토크'다. 신발을 벗고 편안히 골방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 형식은 그 골방이라는 공간이 갖는 편안함 속에서 게스트들을 무장해제시키곤 했다.

이런 토크쇼의 분위기는 유재석이 MC로 있는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다. 이 토크쇼 역시 유재석의 성향을 극대화해 목욕탕이라는 편안한(?) 공간으로 게스트를 초대해 멍석을 깔아준다. 유재석이 받아주고, 박명수와 박미선, 신봉선이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한없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줌으로써 게스트들을 놀게 해주는 토크쇼. '놀러와'나 '해피투게더'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유재석 토크쇼의 가능성을 열어보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프로그램이 정체되고 늘 같은 방식이 반복되면서 '놀러와'와 '해피투게더'는 모두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놀러와'는 중간에 '세시봉' 친구들을 통해 음악과 감성을 충전하면서 순간 상승했지만 최근 들어 이런 기운은 다 빠져버렸다. '해피투게더'의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어딘지 이 공간에 묶여 있는 듯한 답답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물론 이 두 토크쇼가 변화를 모색하지 않은 건 아니다. '놀러와'는 '해결의 책'이라는 코너를 만들었고, '해피투게더'는, 물론 파일럿 프로그램에 머물렀지만, 공간을 바꿔 연예인과 그 친구들을 대거 초대해 꾸리는 토크쇼로서의 변모를 모색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해결의 책'은 코너의 잔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프로그램 전체의 정체된 분위기를 일소할 만큼의 반향을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해피투게더'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계속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고 변화를 해오던 그 도전정신이 실종된 느낌이다. 목욕탕에서 매번 벌어지는 토크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반복되다 보니 누가 나와도 비슷비슷한 느낌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유재석이 제 아무리 노력하고 날고 긴다 해도 프로그램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그 노력이 성과로 돌아오기는 힘든 일이다. 사실 '유재석 토크쇼'로 인지되어 있는 '놀러와'나 '해피투게더'의 이런 변화 없는 형식이 갖는 식상함은 유재석 본인으로서는 대단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도대체 제작진들은 왜 이런 추락을 보고만 있는 것일까.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MC를 세워두고도 왜 반복된 형식으로 무너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좌시하고 있는 것일까. 혹 여전히 유재석이라는 MC 한 명만 세우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변화해야 한다. 그 형식이 무엇이든 지금은 현재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모험이 필요한 시기다. 그것이 유재석 본인에게도 좋고, 프로그램 제작자에게도 좋은 일이며 또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일이다. 확고히 정체된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는 과감한 변화가 없는 한, 이들 토크쇼의 추락은 멈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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