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송승헌의 전쟁 같은 사랑, 연우진의 시 같은 사랑

 

남자의 사랑, 뭐가 달라서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제목을 붙인 걸까. 임재범은 ‘너를 위해’라는 곡에서 남자의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 거야. 널 위해- 떠날 거야.’ 아마도 송승헌이 연기하는 한태성이라는 남자의 사랑이 이럴 것이다. 남자의 사랑은 팩을 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달라는 여자 친구 앞에서 당황하는 것만큼 어색하고 면구스러운 그런 것이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남자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그래서 여자들이 사랑을 통해 받고 싶은 표현과는 동떨어질 때가 많다. 한태성에게 짐짓 다가와 자신의 딸 미도(신세경)가 피아노 치는 남자를 멋있어한다며 슬쩍 귀띔을 해주듯이 여성들이 원하는 사랑의 표현방식은 현실적이기보다는 로맨틱한 어떤 것일 게다. 따라서 여성들을 주 타깃으로 삼는 멜로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남자의 사랑이란 현실적이기보다는 여성들의 판타지가 묻어난 것일 때가 많다.

 

그런 점에서 <남자가 사랑할 때>는 이 판타지와는 조금 결이 다른 남자의 사랑을 전면에 내보인다. 한태성의 사랑은 첫눈에 반한 미도에게 달려가 사랑고백을 하는 그런 식이 아니다. 그는 미도의 뒷바라지를 하고 그 집안을 돕고 가끔은 현실에 찌든 삶을 털어낼 여유를 제공하며 앞으로의 미래와 꿈을 돕는다. 물론 가끔 얼굴에 진짜 팩을 붙이고 인증샷을 보내거나, 시집의 한 문구를 그녀의 집 앞 칠판에 적어놓기도 하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좋아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지 그의 사랑의 진짜 얼굴은 아니다.

 

그래서 신사의 모습으로 사랑 앞에 어린아이처럼 쑥스러워하는 한태성이 그에게 도발하는 구용갑(이창훈)에게 야수성을 목격했을 때 미도는 놀랄 수밖에 없다. 그녀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아이 같지만 그것은 사랑 앞에 모든 것이 무장해제 된 남자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저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가면 또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남자들의 사랑 방식인 셈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는 전쟁 같은 사랑을 하는 한태성이라는 인물과 대척점으로서 여성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이재희(연우진)라는 인물도 있다. 한태성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인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인물. 본래 인생에서의 판타지란 이처럼 현실적인 공간에서 몇 시간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짧지만(어쩌면 짧기 때문에) 더 강렬한 한 때의 추억은 어쩌면 여자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재희는 그래서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시 같은 사랑을 하는 캐릭터다. 칠판에 ‘이 봄이 좋아. 네가 있어서’라고 적어 놓은 그에게 미도의 아버지가 “그게 끝이냐?”고 묻자 그는 “내가 봄을 불렀어. 너를 주려고.”하고 그 시의 뒤를 말해준다. 젊은 시절 문학을 했다는 미도의 아버지는 “유치하니 좋구만.”하며 이재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이재희는 퀸의 앨범이나 대학의 티셔츠 하나로 마음을 전하는 그런 사랑을 하는 존재다.

 

한태성과 이재희의 사랑은 이렇게 극과 극으로 갈린다. 한태성이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이재희는 여자들이 갖는 판타지의 하나로서의 남자의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재희가 이러한 판타지적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한태성과 이재희의 형인 이창희(김성오)의 전쟁 같은 삶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여유 덕분이다.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심지어 판타지에 빠진 것처럼 사랑할 때 그 밑에는 누군가의 현실적인 희생이 있기 마련이다. 미도에게 그래서 한태성의 사랑은 연인보다는 아버지 같은 느낌일 때가 많다.

 

그렇다면 남자의 이 전쟁 같은 사랑은 결실을 보게 될 것인가. 어쩌면 한태성은 저 임재범이 부른 ‘너를 위해’의 노래가사처럼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떠나주는 사랑을 할 지도 모르겠다. 미도의 행복을 위해 그녀의 판타지를 깨지 않고 든든히 지켜주는 현실적인 테두리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남자가 사랑할 때>의 진짜 모습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네 아버지들이 저 뒷전에서 남모르게 해왔던 것처럼. 어딘지 옛사랑의 느낌이 묻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사랑은 천편일률적인 판타지 멜로와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겨울', 이미 해피엔딩인 이유

 

멜로라는 장르는 그저 판타지에 불과할까. 우연적인 만남, 운명적인 사랑, 신분과 죽음마저 초월하는 사랑... 멜로라는 장르에는 분명 판타지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판타지들이 하나 둘 모여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어떤 울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멜로가 단지 판타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판타지가 환기하는 현실을 지향하기도 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는 ‘슬픈 동화’ 같은 판타지를 통해 돈에 지배된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멜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차라리 사기를 치지.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나 같은 놈, 사랑을 하게 하지 말 걸.” 오수(조인성)의 참회는 이 드라마가 가진 대결의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짜 오빠 행세를 하며 78억을 받아내기 위해 시각장애인 오영(송혜교)에게 접근했지만 그 사기가 사랑에 무릎 꿇어버린 것. “사랑했어. 너랑 함께 있어서 나도 행복하기도 했어. 그러니까 네가 날 속인 건 무죄야." 오영의 이 비수 같은 말은 오수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78억이 없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오수의 삶이란 기실 우리네 현대인들의 처지를 그대로 재연한다. 자본주의의 삶 속에서 돈이란 어느새 생명이 되어버렸다. 살기 위해 사기 치는 삶. 그 삶에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오수나 조무철(김태우)은 삶이 살아지니 사는 그런 자본주의에 포획된 삶을 살아가며 힘겨워 한다.

 

반면 어마어마한 자산을 가졌지만 왕비서(배종옥)의 뒤틀어진 모성에 대한 집착으로 눈이 멀게 되는 불행한 삶을 살아온 오영에게 돈은 추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여타의 자산가와 오영이 다른 점이란 그녀는 늘 죽음을 옆에 끼고 살았다는 점이다. 그런 그녀에게 78억 정도는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오빠에서 연인으로 다가온 오수는 그녀에게 한 자락 의미를 전해준 인물이다. 비록 사기로 시작된 것이지만.

 

<그 겨울>의 드라마 구조가 자본과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는 것은 인물들의 변화를 통해 보여진다. 돈을 목적으로 혹은 자신의 이기주의를 채우기 위해 시작된 관계는 후반으로 오면서 그 돈의 관계를 털어버린다. 오수는 결국 받았던 78억의 돈을 거부하고, 그 돈을 종용했던 조무철은 오수를 통해 사랑이 있다는 걸 확인하곤 죽음을 선택하며, 모성이 아닌 집착으로 오영과의 관계를 유지해온 왕비서는 그 집에서 나옴으로써 진정한 모성을 알아간다. 돈 때문에 친구를 배신했던 손미라(임세미)는 돈을 거부하고 진정한 친구관계를 선택한다.

 

눈 먼 오영을 중심으로 세워진 거대한 돈의 관계들이 오수라는 부족하지만 사람 냄새나는 인간과의 부딪침을 통해 사람의 관계로 복원되는 것. 이것이 <그 겨울>이 그리고 있는 세계다. 오영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돈에 눈먼 인간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오영의 감긴 눈은 오히려 세상과 사람들을 더 명료하게 보게 만드는 장치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이 오영의 감긴 눈을 통해 어쩌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았을 지도 모른다. 도대체 진정으로 눈먼 자는 누구인가.

 

<그 겨울>이라는 멜로의 주인공들이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기약하면서도 웃고 있는 것은 그 자본에 의해 맞이하는 파국 속에서 비로소 그들이 인간 혹은 사랑을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수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오영을 사랑하게 됐고, 조무철은 죽음을 맞이해서야 비소로 오수를 통해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왕비서는 쫓겨남으로써 오영을 통해 모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본이 그들의 피부 속에 각인시킨 그 무엇을 털어버리는(그것은 죽음일 수 있지만) 것으로 진정한 관계를 회복한다.

 

이 메시지는 <그 겨울>이라는 멜로가 얼마나 세상과의 대결을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없이 끌어당겨진 클로즈업 속에서 우리는 이들의 멜로에, 이들의 사랑에, 이들의 체온에 한없이 빠져들었지만, 그들의 파국을 바라보면서 또한 그 프레임 바깥에 놓여진 비극적인 현실을 떠올린다. 조무철과 오수를 옥죄어오는 저 김사장이라는 인물은 그래서 그 숨겨진 차가운 현실의 표상이나 다름없다. 돈이라면 목숨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캐릭터.

 

그래서 <그 겨울>은 비극이면서도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이지만 그 자본을 벗어나 사랑으로 탈주하려는 이들에게는 비극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달라져 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래서 <그 겨울>은 눈물 속에서 웃고 있는 캐릭터들처럼 이미 해피엔딩인지도 모른다. 물론 표면적인 결론이 해피엔딩일지 새드엔딩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 그 겨울 ', 송혜교·조인성 그 눈빛에 빠져드는 이유

"멜로영화는 더 별로. 말이 별로 없잖아요. 요즘 멜로 영화는 음악만 나오고. 사실 멜로영화에서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건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어떤 눈빛인가.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또 어떤 눈빛인가. 둘이 어디서 만나고 무슨 옷을 입고 뭘 먹나 그런 건데 보다시피 난 눈이.." <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 의 오영(송혜교)의 이 대사 속에는 이 특별한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달리 어떻게 더 절절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실제로 음악만 나오고 말이 별로 없는 그런 멜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오영이 얘기하는 것처럼 멜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그 속에 담겨진 감정일 것이니. < 그 겨울 > 이 이 감정을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그 클로즈업의 미학에 있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배우에 1센티 더 근접함으로써 그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하는 작은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그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는 송혜교의 앙다문 입을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절망감을 애써 누르는 오영의 감정을 포착하고, 조인성의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자꾸만 마음을 쓰게 되는 오수(조인성)의 진심을 담아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과 그녀를 바라보는 오수 사이에 놓여진 미묘한 마음의 간극을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좀 더 근접한 영상으로 잡아낸다.

겉으로 던져지는 독한 대사와 그와는 상반되게 가녀린 감정을 담아낸 송혜교의 표정은 그래서 오영이라는 인물의 외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얼마나 외롭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그 상처받은 마음을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감추려 하는 걸까. 그녀에게는 엄마 행세를 하지만 엄마는 아닌 왕비서(배종옥)가 있고, 오빠 행세를 하지만 진짜 오빠가 아닌 오수가 있으며, 약혼자처럼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돈에만 관심 있는 이명호(김영훈) 변호사가 있다. 마치 가족처럼 그녀의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그 누구도 가족은 아닌.

이 가족처럼 굴면서 사실은 오영에게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속내는 그래서 말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가 인물들이 어떤 대사를 던질 때 그 대사의 내용보다 그 표정에 더 집중하는 건 이처럼 그 속내가 가진 끔찍함이나 혹은 절절함을 보다 강렬하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 클로즈 샷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또 그들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채는 외로운 오영의 마음이 포착된다.

그래서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난 외롭지 않아'하고 외치듯 버티던 오영이 오수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라고 말할 때 그 외로운 감정은 더 극적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믿어'도 아니고, '믿어도 돼?'라고 묻는 것도 아닌 '믿어도 된다고 해달라'는 요청 속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믿고 싶은 오영의 절박함이 담겨있다.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그런 오영 앞에서 오수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돈을 위해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했지만 그녀의 절망을 들여다보고는 오빠가 아닌 남자로서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 오영의 손을 잡는 떨리는 오수의 손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 또 저도 모르게 키스할 듯 다가가는 그의 입술은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생 참 별거 아니라고 그저 살아지는 거니 사는 거라는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오수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묻게 된다.

< 그 겨울 > 의 송혜교와 조인성이 만들어가는 멜로가 더 강렬한 것은 시각장애인 오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황이 멜로와 범죄(사기 혹은 거짓) 사이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멜로의 감정을 극적으로 잡아내는 클로즈업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이들 연기자들의 놀랄 만큼 섬세해진 연기력이 그 클로즈업의 압박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얼굴 표정 하나, 손 동작 하나에도 그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그 겨울 > 이 만들어내는 극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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