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보다 소시민적 삶에 공감한 대중들

 

월화극의 대결구도는 이제 12소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애초 예상은 그 1강이 SBS <대박>이었다. 사극인데다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MBC <몬스터> 역시 만만찮은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황후>, <자이언트> 같은 대작을 성공시켰던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강은 가장 약할 것으로 여겨졌던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에게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든 것일까.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먼저 <대박>은 예상과 달리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아니라 오히려 비교점을 만들면서 힘이 빠졌다. 무언가 강렬한 극적 상황들이 계속 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과 사건이 맥락없이 연결되어 힘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무려 여섯 명의 주인공을 세워두고 여러 사건들을 겹치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힘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개국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대길(장근석)이나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이인좌(전광렬)와 대결하는 그 과정들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가 애매모호하다. 물론 대길은 복수하려는 것이고 연잉군은 날개를 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그런 사적인 욕망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들에 몰입하고 그들의 사적 욕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시청자들이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표가 지금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만큼 공적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제시가 제대로 공감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박>은 그저 도박과 복수극의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50부작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강기탄(강지환)이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소소한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다지 마음이 얹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기탄이 싸우고 있는 도도그룹이라는 세력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가 이 드라마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강기탄의 복수극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게임처럼 여겨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연수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드라마가 아닌 만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몬스터>의 최대 약점은 이 안에 배치된 많은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너무나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시력을 잃어 오히려 청력이 좋아진 이국철(이기광)이었을 때만 해도 그 주인공은 참신한 면이 있었지만 강기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마저 사라졌다. 도도그룹의 연수 최종 미션이었던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기탄이 증인인 오승덕을 법정으로 데려와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너무 깊이 없이 다뤄져 마치 하나의 가상극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들어와도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거대담론의 거창함을 피하고 동네변호사라는 소시민적 삶으로 내려옴으로써 오히려 공감대를 넓혔다. 물론 이 드라마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아버지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든가 악덕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의 입장 혹은 아버지로서의 조들호의 이야기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대중들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소시민적인 삶의 이야기에 더 공감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시작일 뿐일 것이다. <대박>24부작이고 <몬스터>는 무려 50부작이다. 그러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만일 <대박>이나 <몬스터>가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다면 자잘한 이야기 전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약점들이 분명한 드라마들, 남은 건 채워주는 연기력

 

월화드라마의 경쟁이 한 치 앞도 모를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시작은 SBS <대박>이 시청률 1위로 치고 나갔지만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조금씩 시청률을 올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대박>을 앞질렀다. MBC <몬스터>는 지금까지 3사 대결에서 계속 꼴찌 시청률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갈수록 시청률이 나아지는 양상이다. 이런 흐름이라면 <몬스터>가 언제 또 수위로 치고나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이 흐름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즉 방영 전까지의 액면으로 보면 <대박>이 단연 셀 수밖에 없는 드라마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사극인데다가 도박이라는 소재를 담고 있다. 게다가 장근석이나 최민수, 전광렬 같은 배우들의 면면도 확실히 끄는 매력이 있다. 그러니 <대박>이 첫 시청률에서 1위를 차지한 건 이런 요소들이 만들어낸 기대감 덕분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서 호불호는 당연히 나눠진다. 사극이라고는 하지만 상상력이 가미되어 어떤 면으로 보면 역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덜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역대 장희빈의 머리채를 잡은 숙종은 처음이라며 상찬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게 너무 과하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부인이었다가 도박으로 숙종의 빈이 된 숙빈 최씨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래도 <대박>의 힘은 여전히 세다. 한번 그 내용을 들여다 본 시청자라면 계속 어떤 전개가 나오게 될지 궁금해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장근석의 연기변신은 칭찬할만하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처음부터 확 땡기는 드라마는 아닐지 몰라도 각성한 인물이 억울한 이들의 편에 서서 변호를 해나간다는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끌리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웹툰이 원작이라고 해도 너무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많다. 변호사가 법정에서 거의 농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던진다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의 장면들은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걸 잘 채워주는 박신양이라는 연기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물론 조들호라는 캐릭터에 의지하는 면이 많지만 박신양이라는 연기자의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몬스터> 역시 강점과 약점이 분명하다. 강점은 장영철 작가의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의 힘이다. 복수극이라는 틀을 갖고 있어 드라마가 어떤 결말을 향해 갈 지는 뻔하다. 하지만 장영철 작가는 이 정해진 결말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의 재미를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약점은 역시 비현실적이고 나아가 만화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사극과 무협의 틀을 현대극으로 가져온 듯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호불호가 나뉠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 역시 이런 약점들을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있다는 점이다. 이기광이 초반에 확실히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냈다면 그 힘을 강지환이 잘 이어가고 있다.

 

결국 월화드라마가 어느 한 작품이 확고한 선두를 치고 나가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하게 된 건 압도적인 작품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마다 강점도 있지만 약점 또한 분명하다. 그래서 주목되는 건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채워주는 연기자들의 연기력이다. 월화드라마의 대결은 이제 연기력 대결로 치닫고 있다

<몬스터> 시청률 급상승, 이기광이 만들어낸 기대감

 

MBC 월화드라마 <몬스터>에서 이기광은 단 2회만 출연했다. 그리고 그의 성인역할로서 강지환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단 2회 출연이고 이미 성인 역할로 교체되었다고 해도 이기광이 이 드라마에 만들어낸 기대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3회에 <몬스터>가 시청률 9.5%(닐슨 코리아)로 급상승하며 SBS <대박>(11.6%)KBS <동네변호사 조들호>(10.9%)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던 건 이기광의 공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몬스터(사진출처:MBC)'

장영철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몬스터> 역시 사극 같은 스토리 구조들을 그 바탕으로 깔고 있다. 현대극이지만 어찌 보면 사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도도그룹이 일종의 궁궐이라면 그 총수인 도충(박영규)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역할이고 그의 아들인 안하무인 도광우(진태현)와 첩실 소생인 도건우(박기웅)가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극 속 궁중 권력투쟁의 구도다. 여기에 가신들로 들어가 있는 야심가 변일재(정보석)나 문태광(정웅인) 같은 인물들의 대결구도도 사극의 그것처럼 흥미롭다.

 

여기에 화평단이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무협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MK2 변종바이러스라는 요소는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지만 그로 인해 힘을 얻게 되는 기보 같은 역할을 갖고 있다. 국철(이기광)이 변종바이러스의 유일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바닥에 떨어져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후에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화평단의 옥채령(이엘)이 그의 면역혈청을 사는 대가로 그를 부활시키는 것. 물론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청력이 좋아지는 이야기 역시 무협적인 요소다.

 

<몬스터>는 현대극이지만 조금은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다. 시력을 잃은 채 청력만으로 교도소에서 자신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인물에게 복수하고 탈출하는 이야기나,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복수를 꿈꾸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전형적인 무협지 이야기다. 3회에 강기탄(강지환)으로 이름을 바꿔 돌아온 국철이 도도그룹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연수를 받는 모습 또한 그렇다. 그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만화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인데다가 그 결말도 대체로 정해져 있는 뻔한 복수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낸 건 바로 이제 몇 차례 연기 도전을 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기광의 연기 몰입이 좋았기 때문이다. 번듯이 잘 살아가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과정을 이기광은 절절하게 연기해냈다.

 

특히 결코 쉽지 않은 시력을 잃은 국철이라는 캐릭터를 이기광은 잘 소화해냈다. 시력을 잃고 절망하면서도 차정은(이열음)에게 살짝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는 그 연기에 섬세함마저 느껴졌다. 이기광이 만들어낸 이런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지환으로 그 힘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힘을 강지환이 얼마나 더 살려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이기광이 그 밑바탕이 되는 판만은 확실하게 깔아줬다는 점이다

<대박>, <조들호>, <몬스터>, 강점과 약점들

 

월화극 대전의 첫 방이 끝났다. 시청률로 보면 첫 방의 승자는 SBS <대박>. 시청률 11.8%(닐슨 코리아)10.1%를 기록한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를 앞지르고 1위를 차지했다. MBC <몬스터>는 아쉽게도 7.3%로 최하위 시청률로 시작했다.

 


'대박(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첫 방송의 시청률만으로 이 순위가 계속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아무래도 <대박>이 첫 방 시청률 1위를 기록한 건 이전 작품이었던 <육룡이 나르샤>의 영향이 없을 수 없다. 게다가 사극이라는 점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가장 먼저 포획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일 수 있다.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현대극이면서 첫 회에 <대박>을 거의 따라잡는 두 자릿수 시청률로 시작했다는 건 아마도 고무적인 일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이 정도의 성과를 가져갈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법 정의의 문제가 대중들의 정서를 그만큼 파고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잘 나가던 검사가 하루아침에 노숙자 신세로 전락해 가난한 자들을 변호하는 인물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최근 권력의 문제에 대해 민감한 대중들에게는 정서저격이 될 만한 소재다.

 

SBS <대박>은 사극이라는 장르에 도박이라는 소재를 덧붙였다는 점에서 그 극성이 어느 것보다 높다는 장점을 가졌다. 조선판 타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 하지만 숙종(최민수)이 노름꾼인 백만금(이문식)과 그의 아내인 복순(윤진서)을 걸고 벌이는 도박 한 판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만큼 사극으로서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법 하다. 제 아무리 드라마지만 도박하는 숙종이라는 설정이 역사에서는 너무 벗어난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 이런 점은 앞으로도 <대박>이 가진 강점(사극+도박)이 또한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말해준다.

 

한편 첫 방송에 꼴찌 시청률을 기록한 MBC <몬스터>는 한 회에 무려 세 사람이 죽고 주인공은 시력을 잃고 길바닥을 전전하는 노숙자신세가 되는 이야기를 말 그대로 폭풍전개로 밀어붙였다. 이야기의 풍부함은 아마도 <몬스터>의 장영철, 정경순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이미 <대조영>에서부터 <자이언트>, <기황후> 같은 작품들을 통해 끝없이 펼쳐지는 풍부한 서사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들이 아닌가. 하지만 이러한 폭풍 전개의 스토리, 게다가 복수극이라는 소재는 자칫 잘못하면 막장드라마의 전개 구조처럼 오인될 수 있다. 빠른 전개는 장점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 부족은 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첫 방송이 끝났을 뿐이지만 방송 3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 자신들이 내놓은 작품들에 최고’, ‘대박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 지상파 3사의 세 가지 색깔을 가진 드라마들의 장점이 분명하지만 또한 단점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누가 왕좌에 오를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치열해진 방송3사 드라마들의 3색 대결은 앞으로 더 흥미진진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 장단점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 재미있게 월화극 대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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