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버라이어티의 무한진화, '런닝맨'이 보여주는 것

'런닝맨'(사진출처:SBS)

세상은 넓고, 할 '게임'은 많다. 사실 게임만큼 예능의 오랜 '고정(?) 소재'는 없다. 멀게는 '명랑운동회'에서부터 '캠퍼스 최강전'이나 '출발 드림팀' 같은 예능을 거쳐 단련되어온 게임 버라이어티의 세계는 스튜디오든 야외든 어떤 특정 공간에서의 게임을 다루었다. 그러다 이 공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만나면서다. 이것은 카메라가 단순히 실내에서 야외로 나간 것이 아니라, 게임의 공간 자체가 확장된 것이다.

'무한도전'은 '여드름 브레이크'나 '경주보물찾기' 같은 특집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도시 전체를 게임의 공간으로 삼기도 한다. '1박2일'은 여행지를 복불복 같은 게임의 공간으로 활용하고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을 배경으로 그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임을 한다. 게임의 종목도 가지가지다. 축구나 족구, 배드민턴, 탁구 같은 일반적인 스포츠가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퀴즈 풀기나 머리를 써서 통과해야 하는 미션이 게임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런닝맨'은 바로 이 다양한 소재의 게임을 전면에 내세운 버라이어티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런닝맨'이 끊임없이 자체 진화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도시의 어떤 특정 랜드마크를 공간으로 해서 런닝볼을 찾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추격자와 도망자로 팀이 나뉘어져 추격전을 벌이다가(여기서 그 유명한 방울이 등장한다) 이제는 게스트를 찾는 게임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숨은 게스트를 찾는 게임에서, 게스트가 숨은 런닝맨들을 찾는 단계로 넘어서더니, 이제는 아예 런닝맨 속에 게스트를 숨겨놓는 제작진의 두뇌게임이 추가된다. 유재석이 사실은 숨겨진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다른 런닝맨들의 이름에 물총을 쏘았던 미션은 '런닝맨'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이 지점에서부터 런닝맨들은 제작진들을 믿지 않게 되었고, 그러자 미션은 좀 더 복잡해졌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전국을 횡단하는 미션은 아예 목적지도 그날의 게스트도 숨긴 채 시작되었다. 따라서 목표도 룰도 모르는 이 미션 속에서 런닝맨들은 중간 중간 주어지는 단서들을 찾아나가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것은 마치 컴퓨터 게임의 진화처럼 단순한 대전에서 복잡한 RPG나 시뮬레이션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또 끝이 아니다. 최근 '런닝맨'은 한 광고회사를(실제로 일하는 공간) 아예 게임의 공간으로 삼았고, 회식자리에 사원들을 더 많이 유치하는 게임을 벌였다.

'런닝맨'이 보여준 이 다양한 게임들과 그 진화과정들은(현재도 진행형인) 대단히 흥미롭고 심지어 놀랍기까지 하다. '런닝맨'은 이 과정들을 통해서 사실 어떤 공간이든 '놀이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우리가 늘 스포츠를 관람하던 경기장이나, 물건을 사러 갔던 백화점, 아니면 그저 걸어 다녔던 어떤 거리 혹은 심지어 치열하게 살아왔던 일터까지 '런닝맨'은 순식간에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이 얼마나 발랄하고 유쾌한 상상력인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천만에. 적어도 '런닝맨'이 보여주는 건 세상은 넓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놀이는 많다는 사실이다. 엄격한 일의 공간을 해체해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이 '런닝맨'의 진화과정이 흥미롭고 또 앞으로도 기대되는 것은, 일 권하는 사회를 무화시키는 이 발랄한 시각이 못내 유쾌하기 때문이다. 게임 버라이어티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는 '런닝맨'. 이제 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놀이의 상상력은 우리가 가진 어떤 고정관념을 또 깨주게 될까. 실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무한도전’ 봉우리 우화가 환기시키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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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것은 하나의 우화다. 높이 90미터의 스키점프대 꼭대기에 깃발이 하나 꽂혀 있고,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은 그 경사를 올라가야 된다. 지금껏 ‘무한도전’이 제시했던 미션들과 비교해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하지만 이 단순한 미션의 과정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왜? 그 과정이 자꾸만 다른 현실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한도전’의 이 단순한 미션과정을 보며 느낀 감동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르는 길은 하나지만 그 길을 오르는 이들은 천차만별이다. 다리 부상으로 미션에 참가하지 못한 정형돈은 말 그대로 ‘성대투혼’의 응원을 벌여주고, 유재석은 그 특유의 체력과 순발력으로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다. 하하와 노홍철이 가까스로 정상에 오르지만 거구의 정준하와 나이 많은 박명수는 자꾸만 밑으로 미끄러진다. 그건 꼭 오르고 올라도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보는 것만 같다.

결국 제일 먼저 정상에 오른 유재석이 줄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 정준하에 이어 박명수를 끌어올린다. 도무지 오르지 못할 것 같아 거의 포기상태에 이른 길에게 유재석은 아이젠을 풀어주고 그래도 오르지 못하자 심지어 줄을 놓고 맨 밑으로 다시 내려간다. 다시 올라와 뒤에서 길을 밀어주기 위함이다. 미안해하는 길에게 “포기만 하지 마라”는 유재석은 결국 길과 함께 동료들이 끌어주는 줄을 잡고 다시 정상에 오른다.

마침 배경음악으로 깔린 이적의 ‘같이 걸을까’는 이 우화 같은 장면에 울림을 더해준다. ‘길을 잃은 때도 있었지. 쓰러진 적도 있었지. 그러던 때마다 서로 다가와 좁은 어깨라도 내주어 다시 무릎에 힘을 넣어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이 노래가 전해주는 ‘같이’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같이 오르고 또 오르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훈훈한 장면들과 어우러졌다.

이 우화가 환기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병과 배고픔에 ‘남은 밥’이라도 달라는 쪽지를 남긴 채 저 세상으로 떠난 고 최고은 작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생활고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작년 말 숨진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고 이진원씨가 떠오르는 건? 지금도 장벽처럼 놓인 사회로의 좁은 통로 앞에서 절망하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이 생각나는 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인 대우를 생계란 이름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노동자들이 아른거리는 건? 도대체 왜일까. 이 ‘무한도전’이라는 우화의 세계 속에 찍혀지던 ‘우린 원래 평균이하이니까’라는 자막이 못내 눈에 밟히는 이유는?

물론 ‘무한도전’이 의도적으로 이런 우화를 그려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웃음을 전제로 우연히 해보자던 미션에서 갑자기 피어난 웃음기 사라진 감동적인 이야기는 결코 연출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돌발 상황 속에서 피어난 멤버들의 동료애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는 프로정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이런 비의도적인 장면들이 가끔 우화처럼 그려지고 사회적 현실을 떠올리게 하며 그로 인해 우리 가슴을 파고드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는 독특한 ‘무한도전’만의 심지어 카프카적인 색채가 돋보인다.

가상의 설정이나 놀이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속에 리얼한 멤버들의 반응을 담아내는 방식은, 완전히 가상의 세계처럼 보이면서도 보는 이마다의 현실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드는 카프카식의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이게 가능한 것은 그 가상의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거는 멤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은 그렇게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끊임없는 우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우화는 현실에 닿아있어 우리의 마음을 속절없이 울린다.

유재석의 부활은 왜 추억과 함께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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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이 부활하고 있다. 물론 유재석이 위기인 적은 없다. 하지만 작년 유재석이 출연했던 일련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시청률에서 고개를 숙였다. 대표 예능인 ‘무한도전’은 물론 시청률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경쟁 예능인 ‘스타킹’에게 추월당하기도 했고, 새로 시작한 ‘런닝맨’도 예상 밖의 고전을 면치 못했다.

유재석과 늘 경쟁구도로 세워지는 강호동과는 사뭇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강호동은 메인 예능이라고 할 수 있는 ‘1박2일’도 탄탄했고, 새로 시작한 ‘강심장’이나 ‘스타킹’을 정상으로 끌어 올려놓는가 하면, ‘무릎팍 도사’ 역시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2강 체제가 사뭇 강호동쪽으로 기울어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역시 뚝심의 유재석이었다. 그저 평범한 저녁 토크쇼였던 ‘놀러와’와 ‘해피투게더’를 최고의 토크쇼로 끌어올리면서 그는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2011년 들어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회복하면서 토요 예능 최강자 자리를 되찾았고, ‘런닝맨’은 15%대까지 시청률을 끌어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유재석의 화려한 귀환을 도왔던 것일까.

그 핵심 키워드는 바로 ‘추억’이다. ‘놀러와’는 그 단서를 제공했다. ‘세시봉’ 특집은 이른바 ‘추억 예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중년들이 출연해 인생경험이 묻어난 솔직한 입담을 선보이고, 게다가 과거를 향수케 하는 음악이 곁들여지니 공감대는 세대를 초월했다. 당연히 시청률은 급상승했다. 많은 이들이 ‘놀러와’의 성공을 신정수 PD의 탁월한 섭외능력에서 찾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러한 중년 게스트들을 시청자와 편안하게 만나게 해주는 능력이다. 유재석은 이 부분에서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신구세대를 잇기에 적당한(?) 나이에 유재석 특유의 ‘듣고 콕 집어내는’ 방식의 토크는 ‘추억’을 끌어와도 꼴통이 아닌 예능을 가능하게 했다.

‘무한도전’의 화려한 기지개에도 역시 이 ‘추억’은 어른거린다. ‘타인의 삶’에서부터 어떤 세대 소구점의 변화를 보여준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그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만남’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TV는 사랑을 싣고’는 그 자체로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서도 유재석은 과거와 현재를 조율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재연 배우로서 향수를 끄집어내면서도, 사회자로서 ‘TV는 사랑을 싣고’를 현재방식으로 재해석해냈다. 엉뚱하게도 찾는 이의 동생과의 즉석만남을 연결하고, 찾고 싶지 않은 이를 찾아 긴장감을 유발하는 식이었다.

최근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런닝맨’은 뛰고 또 뛰는 형식 때문에 ‘추억’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심형래 특집이 향수를 끄집어낸 것은 물론이고 최근 유재석이 새롭게 만들어낸 유혁이라는 캐릭터 역시 과거 고고클럽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새로운 장르적 성격(‘런닝맨’은 기존 게임 예능에 액션 스릴러 장르를 추가시켰다)을 시도하면서도 그 속에 ‘추억’이라는 보편적인 맛을 첨가한 것이다.

유재석의 부활은 추억을 싣고 오고 있다. 이것은 작금의 예능의 소구층이 폭넓어진 것에 대한 반응이면서, 유재석 스스로 자신의 강점이 어디 있는가를 재확인 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 주춤했던 유재석은 그 바닥을 치고 올해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그는 날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한도전', 도대체 뭐가 달라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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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이 달라졌다. 먼저 시청률이 다르다. 작년 12월 '무한도전'의 평균적인 시청률은 14%(agb닐슨)대였다. 그런데 1월1일에 방영된 '연말정산 뒷끝 공제 특집'이 15.8%를 기록한 데 이어, 1월8일 '정총무가 쏜다' 17.8%, 1월15일 '타인의 삶1' 18.4%, 1월22일 '타인의 삶2' 18.9%를 기록했다. 1월 한 달 만에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회복한 셈이다.

물론 '무한도전'의 가치를 시청률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이 가진 독특한 형식적 특징 때문이다. 보통 호평을 받는 포맷이 생기면 그 형식을 반복하는 여타의 예능과 달리, '무한도전'은 매번 새로운 형식을 도전한다. 따라서 시청률 기복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무한도전' 역시 시청률의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금은 마니아적이고 비교적 젊은 층들에게 소구되는 전위적이고 도전적인 느낌은 '무한도전'만이 갖는 아우라지만, 바로 그 점은 좀 더 폭넓은 시청층을 끌어들이는 데는 분명 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2011년을 맞아 '무한도전'은 확실히 이 보다 넓은 시청층을 겨냥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바로 '타인의 삶'이라는 아이템이다. 박명수와 재활의학과 의사인 김동환 교수가 서로 하루 동안을 바꿔 살아보는 이 컨셉트 속에는 전에는 발견하기 힘들었던 이른바 '감동 모드'가 발견된다. 병원에서 일일의사인 박명수와 환우로 투병하는 예진이의 예쁜 만남이 그것이다. 쿨하기만 한 줄 알았던 '무한도전'이 이토록 훈훈한 모습을 연출하는 건 여러모로 보다 넓은 시청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 훈훈함도 박명수가 했기 때문에(그는 버럭 캐릭터다) '무한도전'만의 쿨함을 유지하지만.

또한 '타인의 삶'에서 일일 박명수로 김영환 교수가 멤버들과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굉장히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무한도전' 속에 중년남자가 들어와 함께 어우러지고 과거를 추억하는 게임을 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중년 세대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런 정도의 아이템이라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앞에 온가족이 둘러앉아 보아도 분명 어떤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9일 방영되는 '무한도전'의 소재는 '무한도전 TV는 사랑을 싣고'다. 이 아이템 역시 '타인의 삶'이 보여주었던 그 폭넓은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엿보인다.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만남'이라는 아이템은 누구에게나 가슴을 울리는 소재가 아닌가.

물론 '무한도전'은 '데스노트'처럼 여전히 '무한도전'다운 실험적인 놀이를 즐길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보다 폭넓은 세대들이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건 왜일까. 이건 혹시 '무한도전'이 올해 던지는 승부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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