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니까 가능했던 미션들

"역시 '무한도전'이야." 굳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다. 그만큼 '무한도전'은 하나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되어 있다. '나비효과 특집'이 그렇다. 사실 지구온난화가 어떤 방식으로 지구를 위협하는지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나비효과 특집'은 어떻게 에어컨을 틀면 그것이 북극의 얼음을 녹이고 그 녹은 물이 몰디브를 잠기게 하는가를 예능의 눈으로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시시콜콜하고 상식적인 것들도(사실은 매우 중대한 사안들조차 말로만 전달되었을 때는 이렇게 치부되어버린다) '무한도전'이라는 실험실 속에 들어가면 특별해지는 이유다. 말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행동하는 이는 적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아도 그걸 몸소 체험을 통해 느끼는 이는 드물다. "역시 '무한도전'이야"하는 말에는 '무한도전'이니까 가능한 이 경험들이 들어있다. 2010년 '무한도전' 역시 그랬다.

연초에 방영되었던 '복싱특집'은 WBC세계 챔피언 최현미 선수와 일본의 도전자 쓰바사 선수와의 패자 없는 아름다운 승부를 담아냈다. 흔히 한일전이라고 하면 그저 무조건 이기고 본다는 식의 시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자가 최고'라는 '무한도전' 정신을 두 아름다운 소녀들의 드라마틱한 경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죄와 길' 특집에서 벌칙으로 수행되었던 '알래스카에서 김상덕씨 찾기'는 '깨알 같은' 아이템들에 왜 '무한도전'이 과감히 뛰어드는 지를 말해준 미션이었다. 누군가 툭 던진 말 한 마디가 실제로 미션으로 제시되고 그 결과가 보여지는 곳, 그곳이 바로 '무한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무한도전'이라는 세계는 우리가 상상만 하던 것이 실제로 눈앞에 도전으로 제시되는 그런 세계라는 걸 각인시켰다.

몇 년을 거쳐 오면서 어쩌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미션들의 내용을 찬찬히 상기해보면 실제와 맞닿아있는 '무한도전'의 놀라운 결과물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이어트를 하면 실제로 몰라볼 정도로 살을 빼고, 달력 모델을 미션으로 부여받아 만들어낸 달력이 한 달만에 80만부 이상 팔려나가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비빔밥 광고가 만들어져 뉴욕 스퀘어 가든 전광판에 광고되는 세계. 그것이 '무한도전'이다.

장기 프로젝트로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던 '프로레슬링 특집'은 한 때 쇼라고 여겨지며 몰락의 길을 걸어간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무한도전' 특유의 몸의 미학으로 재조명해주었다.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몸을 던지고 부딪치는 기술들을 보여줌으로써 프로레슬링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것은 또한 쇼가 아닌 진짜 실제 상황으로 뛰어 들어가는 (프로레슬링을 그대로 빼닮은) '무한도전'이 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지를 알게 해준 미션이었다.

한편 '텔레파시' 특집은 어떤 공통의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감의 힘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소통이 왜 중요한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늘 손에 들려진 휴대폰으로 원하는 이와 즉각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소통이란 이미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잊기 마련이다. '무한도전'은 통신수단이 거세된 멤버들이 서로를 만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장면을 통해 그 소중함을 다시 일깨웠다. 역시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한 미션이었다.

'무한도전'의 이 많은 미션들은 공통적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연결고리의 공감을 통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말해주고 있다. 1년이 지났고, '무한도전'은 또 한 살을 먹었지만 이런 공감과 공존의 태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우리는 연결된 존재이기에 '무한도전'의 이런 시도들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한 해 동안 고마웠고 또 한 해를 기대한다.

와이파이 시대, 우리는 진정 소통하고 있나

휴대폰, 인터넷, 와이파이...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누구든 얘기하고픈 사람에게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건넬 수 있는 세상이다. 심지어 화상으로 뜬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지만 미디어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촘촘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과연 잘 소통하고 있을까.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무한연결되어 있는 와이파이 시대에 물음표를 하나 던진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지금껏 단체로 미션을 수행해온 것과는 달리, 각각 사방 팔방으로 떼어놓고 미션을 시작한다. 김태호 PD는 1시간 내에 각자 지정된 방향으로 가장 멀리 간 사람을 포상할 것처럼 해 멤버들을 떼어놓은 후, 그들이 ‘무한도전’을 그동안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모일 것을 진짜 미션으로 내놓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 ‘무한도전’의 많은 미션에서 도구로도 활용되었던 휴대폰을 모두 반납시켰다는 점이다.

‘텔레파시’라는 아이템에는 ‘무한도전’이 교육실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붙여진 과장이 있다. 각자 공간에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장소로 오라고 다른 멤버들에게 마치 진짜 텔레파시를 보내듯 과장하는 모습은 예능으로서의 웃음을 주기 위한 과장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에는 그간 ‘무한도전’이 해왔던 미션들에 대한 추억과 향수또한 담겨져 있다. 그 아련한 기억을 좇고 그 기억 속을 함께 했던 멤버들에 대한 소중함을 담아내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이었다면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은 프로그램 전체를 감싸는 아련한 느낌까지 연출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텔레파시’라는 과장 이면에 담겨진 ‘소통’이라는 메시지는, ‘소통’되지 않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담아내면서 의미를 확장시킨다. 여기에 ‘무한도전’ 텔레파시 특집이 보여준 역설이 있다. 휴대폰 같은 보다 손쉬운 통신기기를 단절시켜놓자 더 절절해지는 진짜 소통의 욕구.

만일 각자 떼어놓고 휴대폰을 지참하게 한 채로 만나고 싶은 곳에서 만나라고 했다면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저 전화 통화하고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한 뒤 만나면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과 마음이 전하는 소통은 찾기가 어려워진다.

멤버들이 허공을 향해 과장된 몸짓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우습다가 차츰 어떤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똑같이 생각한 장소에서 간절히 원했던 멤버가 서로 만났을 때 어떤 작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프로그램 중간에 자막으로 등장한 왓비컴즈를 비판한 패러디 노진요(노홍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는 그래서 그 의미가 더 깊다.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속도나 전달력은 엄청나게 빨라지고 손쉬워졌지만 그것이 거기에 맞는 소통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는 ‘무한도전’ 특유의 풍자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과 프로레슬링은 뭐가 닮았을까

왜 프로레슬링을 볼 때보다, '무한도전'이 보여준 레슬링 특집을 보면서 우리는 더 열광했을까. 그것이 '무한도전'이라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무한도전'의 인기 때문에 그들이 보여준 레슬링이 더 긴박하게 보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물론 시뮬레이션된 동작들이고,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가는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쇼'를 넘어서는 '실제상황'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레슬러들은 링 위에서 보여주는 경기 모습 이외에 그 이면에 놓여진 그들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시뮬레이션된 '쇼'를 하면서도 자신들이 하는 경기가 실제인 것처럼 보여주려는 경향을 갖는다. 그러니 그걸 바라보는 관객들은 (실제로 그 경기들이 쇼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치 실제인 듯 보이려는 프로레슬러들의 동작에서 어떤 실감을 얻기가 어려워진다. 거기에는 실제상황은 안보이고 실제인 척 하는 '쇼'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 접근했다. 일단 프로레슬링이 쇼라는 것을 그대로 다 드러낸 후, 그것을 연습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쇼 이상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 그러자 프로레슬링이라는 경기는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시뮬레이션된 정해진 동작들을 감당해야할 육체적 고통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의 프로레슬링은 과거와 달리 프로레슬링이 쇼라는 것을 인정한다. 과거 1965년 튀어나왔던 '레슬링은 쇼'라는 말에 민감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실감을 느낄 수 없었던 건, 이미 각인된 '쇼'라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는데다, 프로레슬링의 기술 자체가 가진 고통스러움과 위험성은 대중들이 잘 몰랐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링 바깥으로 카메라를 가져와서 보여준 것은 이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 아닌가. 그러니 그 몸이 겪을 고통의 느낌은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된다. 절대로 프로레슬링 같은 힘겨운 경기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이 몸을 날리고 링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마치 우리가 겪는 듯 느꼈던 것은 그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 경기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가 하는 점이다.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승패를 바라본 게 아니라 그 경기에서 기술을 던지고 합을 맞추는 '무한도전' 멤버들 전원을 응원했다. 정형돈, 정준하와 유재석, 손스타가 더블 매치를 할 때, 때론 정형돈의 이름을 외치고, 때론 유재석의 이름을 외치는 모습은 프로레슬링의 진짜 즐거움이 승패가 아니라 그 퍼포먼스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고 상대편이었던 정형돈을 안은 유재석의 마음이 그토록 절절히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흔히 한일전의 양상을 보였던 과거 프로레슬링의 승패에 대한 집착은, 어찌 보면 진정한 프로레슬링의 묘미와는 다른 이상과열 상태가 아니었을까.

프로레슬링은 쇼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은 아니다. '무한도전'은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로서의 프로레슬링의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아마도 '무한도전'의 레슬링 특집이 우리의 프로레슬링에 어떤 영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프로레슬링이 좀 더 한국적이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스토리를 경기에 부여해야 한다는 것일 게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프로레슬링은 모두 쇼지만 그렇다고 거짓이 아닌 '리얼'이라는 점에서 분명 공통점이 있다. 프로레슬링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접목은 그래서 그만큼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된다.

'무한도전', '1박2일' 그리고 '남자의 자격'이 보여준 진심의 힘

링 바깥에서 극도의 긴장감에 연실 토하면서도 링 위에서 애써 건재함을 보이려한 정형돈. 통증으로 경기 1시간 전에 응급실에 누워 있었지만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링 위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보여준 정준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부족했던 기술을 고통스럽지만 한 번 더 하라고 말하는 하하.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완벽한 악역을 소화해내는 길. 부족한 기술이지만 특유의 쇼맨십으로 장내를 장악해버린 박명수와 노홍철. 리더로서 팀원들을 독려하고 걱정하며 늘 솔선수범하는 유재석과 손스타. 이들이 살과 살의 부딪침으로 연출해낸 '무한도전 WM7'은 그저 '리얼'이라는 수식어로는 담아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다. 정형돈이 괴로워할 때, 저 링 위에서 싸이가 부르던 '연예인'이라는 노래의 가사,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줄게요"가 오버랩될 때 느껴지던 그 진심.

바로 이 진심은 '남자의 자격'에서 각양각색의 합창단원들을 진두지휘하는 박칼린의 눈빛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자애로운 눈빛으로 단원들을 독려하고 때론 엄하게 꾸짖으며 단원 한 명 한 명을 마치 악기 조율하듯 섬세하게 매만지는 그녀의 눈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하모니'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다. '남자의 자격-남자와 하모니'편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합창이라는 소재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합창단에 합류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던 그들이 하나의 음악 속에서 완벽한 하나가 되는 그 기적 같은 경험.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쉴 새 없이 던져지는 농담 속에서도 늘 진지함을 잃지 않는 박칼린과, 그녀의 지휘에 따라 합창단 전체의 마음이 노래 속에서 하나가 되는 그 과정을 어찌 '리얼'이라는 단어로 다 말할 수 있을까.

'1박2일'의 멤버들이 다섯 코스로 나뉘어 둘레길을 따라 걷는 그 여정에서도 우리는 곳곳에 묻어나는 진심을 읽을 수 있다. 강호동과 은지원이 길 위에서 만난 혼자 길을 걷는 청년에게서도, 그들이 민박집에서 만난 가족들에게서도, 또 늦은 시간에도 한상 떡 차려 내어주시는 인심 좋은 민박집 주인에게서도 그 따뜻한 진심이 묻어난다. 이승기가 한 정자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은 물론이고, MC몽에게 참치캔을 내어주던 청년들, '1박2일' 팬이라며 이수근에게 잠자리와 먹을 것을 내어주시던 이장님까지, 이 조미료 쏙 뺀 다큐 예능이 보여준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 길 위에서 팀원들이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우는 모습은 '1박2일'이 본연의 여행이라는 취지의 버라이어티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어두운 밤길에 여전히 자신을 알아볼까 저어하는 김종민에게 지나치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행인들의 그 마음은, '다큐'라는 타이틀을 내걸은 것처럼 리얼 그 이상의 따뜻함을 담아낸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말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그래서 이 진심까지 잡아내고 그 마음을 전해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표현이 되었다. 버라이어티쇼는 이제 재미는 기본이고 교감의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 어떤 말보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것으로 정직하게 그 마음을 전하는 '무한도전'이나, 합창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이 하나로 묶여지는 기적 같은 경험을 전해주는 '남자의 자격', 그리고 길 위에서 그 길을 걷지 않았던들 경험해보지 못했을 소중한 만남의 따뜻함을 전하는 '1박2일'이 모두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때 인위적인 웃음이었던 예능은 '리얼'로의 변신을 통해 마치 다큐 같은 실제상황을 끌어들였고 이제는 그것을 넘어 그 날것이 전해주는 신산한 진심까지 담아내고 있다. 웃음을 주는 버라이어티쇼를 보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경험은 이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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