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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같은 아이가 전하는 애들 같은 어른 세상

 

이 숟가락 무겁다. 무거워서 좋아요. 이모랑 살 때는 즉석밥 많이 먹었거든요. 설거지거리 안 생기게 일회용 숟가락으로. 밥을 거의 다 먹으면 숟가락으로 그릇 바닥을 긁게 되잖아요.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플라스틱 바닥을 긁게 되면 너무 가벼워서 튕겨나가기도 하고 그냥 기분이 이상해져. 먹은 밥도 날아가 버릴 것 같고.”

 

'오 마이 금비(사진출처:KBS)'

이제 열 살짜리 아이 금비(허정은)가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져 놓는다. 이 아이는 곧 자신이 보육원에 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애써 아이를 보살피려 노력했지만 부모도 친족도 아닌 강희(박진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고작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주는 것뿐. 밥그릇을 숟가락으로 툭툭 치는 금비는 그 소리가 좋다고 말한다. “묵직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강희는 아이에게 언제든 자신의 집으로 와도 된다며 아이가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자신이 이 집에서 제일 무거운 그릇이랑 숟가락 꺼내놓고기다릴 거라고 얘기해준다.

 

이 아이에게 밥이란 그냥 밥이 아니다. 그건 아이가 응당 가져야할 안정감 같은 것이다. 그래서 플라스틱 숟가락과 플라스틱 밥그릇이 주는 그 가벼워 튕겨나갈 것 같은 느낌은 아이가 현재 처한 현실 그대로다. “먹은 밥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그런 불안한 집, 혹은 가족. 아이는 그래서 무거운 그릇과 숟가락이 좋다고 말한다. 이렇게 어른스러울 수가 있나.

 

그 무거운 그릇과 숟가락을 챙겨줘야 할 어른들은 그러나 마치 애들 같이 철이 없다. 엄마라는 사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가 묘연하고, 사실상 아이를 키워온 이모라 불리는 어른도 아이를 버렸다. 그리고 보내진 아빠 모휘철(오지호)은 사기꾼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이가 그는 떼어내야 할 혹처럼 버거운 존재가 되어있다. 제 앞가림하기도 어려운 처지니.

 

그래서 아빠라는 자가 틈만 나면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식이라 달려드는 차 앞에서 아이를 구하려 뛰어든다. <오 마이 금비>가 대놓고 금비라는 아이와 저 비정한 사기꾼들이 득시글대는 어른들의 세계를 대결시키고 있다면 모휘철이라는 아빠는 그 중간지대에 서 있는 인물일 게다. 아이가 무슨 힘이 있을까 싶지만 모휘철은 점점 이 아이에게 마음이 기운다.

 

대신 차에 치인 모휘철이 가까스로 깨어나자 금비는 아빠를 놓아주겠다고 말한다. “약속은 지켜야지. 아저씨 정신 잃고 있을 때 기도했어. 아저씨 살려주면 보육원 가도 좋다고. 그러니까 빨리 가. 들키면 나까지 창피하다고.” 아이를 챙겨야할 어른이 거꾸로 아이의 배려를 받는다. 그것도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가겠다고.

 

앙다문 입술, 푹 숙여진 고개, 애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는 얼굴은 어린 나이지만 어른의 그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낼 때는 영락없는 아이일 수밖에 없다. KBS 수목드라마 <오 마이 금비>는 어찌 보면 지독할 정도로 잔인하다. 이 어린 아이 금비(허정은)를 이 비정한 어른들의 세상에 던져놓다니.

 

하지만 금비는 그 비정한 세상에서 어른들이 잃어가는 많은 것들을 그 존재 자체가 드러낸다. 아이는 어른을 오히려 걱정하고 배려하고 그를 위해 울어주며 심지어 떠나 주겠다고도 말한다. 악덕 채무업자로 모휘철을 쫓아다니는 차치수(이지훈)가 자신이 한 때 (아빠의) 친구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자, 금비는 한번 친구면 친구지 아닌 건 뭐야?”라고 되묻는다. 그런 금비에게 차치수는 아빠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남도 속이고 자기도 속이고 나중에 자기가 속였다는 사실도 잊어버려. 남의 인생 망쳐놓고 지가 그런 짓 한 건 기억도 못하고... 그놈하고 있으면 너도 그렇게 돼.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금비는 절대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

 

유일하게 금비를 챙기려는 강희는 자신의 아이를 잃었다. 그래서 유독 금비에 대한 마음이 애틋하다. 어째서 어른들은 아이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의 아이들이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깨닫게 될까. <오 마이 금비>는 그래서 금비라는 아이를 세워두고 어른들을 혼내는 중이다. 이토록 맑고 순수한 영혼의 아이가 무거운 그릇에 무거운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밥 한 끼를 먹지 못하게 만들었는가를 질책한다. 하수상한 시국과 사건과 사고들 속에서 아이들을 잃은 기억이 있던 우리 어른들은 그래서 이 아이 앞에서 모두 유죄일 수밖에 없다

Posted by 더키앙

농사 예능은 안된다? <삼시세끼>가 다른 까닭

 

농사과 예능의 만남은 <삼시세끼>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KBS <청춘불패>가 아이돌들과 함께 농촌으로가 정착형 예능을 보여준 바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것은 농사가 생각과 달리 쉽지 않고 또 그렇게 노동이 많이 투여되는 만큼 방송으로서 그림이 많이 나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하지만 그래도 농사라는 소재를 예능은 끊임없이 건드렸다. MBC <무한도전>이 벼농사 미션을 무려 1년간 해 뭥미를 기부하기도 했지만 역시 예능의 한 미션에 1년을 투여한다는 건 무리한 감이 있었고, KBS <인간의 조건-도시농부> 역시 도시의 옥상에서 농사를 짓는 시도를 했지만 생각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삼시세끼> 고창편이 본격적인 벼농사를 시도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이러한 많은 시도들과 그 어려움이 먼저 떠오르는 건 그래서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삼시세끼> 고창편은 차승원이 말하듯 만재도에 비해 몇 배는 힘들다는 것이 느껴졌다. 만재도에서야 할 수 있는 게 물고기를 잡거나 홍합 같은 걸 채취해 먹는 것이니 생각보다 노동이 세지는 않았을 게다. 하지만 <삼시세끼> 고창편이 살짝 보여준 모내기는 이 벼농사가 만만찮음을 보여준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삼시세끼>가 첫 회에 10% 시청률을 훌쩍 넘겨버림으로써 농사 예능이라는 미션을 하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 그 부담감을 없애버린 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다름 아닌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힘이다. 뭐든 척척 멋지게 요리를 해내는 차승원이 있고, 그를 그림자처럼 보조해주는 손호준과 새내기 남주혁이 새로운 케미를 만들어가는 와중에 영화 촬영을 하면서도 선뜻 합류해준 유해진으로 분위기는 훨씬 화기애애해졌다.

 

특히 차승원과 유해진의 이른바 아재 파탈<삼시세끼> 고창편이 다소 힘겨운 벼농사 미션을 함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콤비답게 툭툭 건네는 아재 개그는 잘 웃지 않던 남주혁마저 점점 빠져들게 만든다. 차승원을 까마득한선배라 칭하더니, 손호준을 마득한선배, 자신을 득한선배라고 말하는 식의 유해진의 농담은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남주혁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프로그램을 조금은 자유롭게 내버려두고 실제로 느끼는 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제작진의 접근방식도 이번 <삼시세끼>에 대한 몰입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육체적으로 피곤하면 낮잠 한 잠 자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제작진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자는 모습 또한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송에 내보낸다. 모내기를 할 때는 그만큼의 힘겨운 노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저녁 때의 삼겹살 파티가 주는 즐거움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그것이 바로 노동이 주는 힘겨움과 즐거움이 아닐까. 농사는 힘들지만 그렇게 하루의 피곤을 맛난 저녁으로 풀어내는 것.

 

그러다 보면 <삼시세끼>가 이번 고창편에서 궁극적으로 그리고 싶어 하는 그 그림, 바로 한 끼의 밥을 위해 농부들이 하는 그 숭고한 노동이 주는 그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와 햇볕과 그리고 농부의 노동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작품, 그것이 삼시세끼 우리가 먹는 그 밥의 행복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런 어려운 미션을 즐겁게 풀어가는 아재 파탈, 차승원과 유해진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힘들어도 농담 하나를 툭툭 던져 그걸 웃음으로 풀어내고, 소박한 저녁 한 끼로 하루를 보상받게 해주는 그런 능력은 다름 아닌 이 놀라운 아재들의 삶의 경륜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그들이 있어 그 어렵다는 농사 예능도 즐거워질 수 있으니.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에 포만감을 주는 연기자, 정보석

'내 마음이 들리니'(사진출처:MBC)

끼니 때마다 그는 아들 봉마루(남궁민)를 위해 정성스럽게 밥을 그릇에 담는다. 물론 아들이 언제 집으로 돌아올 지 그는 모른다. 그래도 그는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밥을 퍼 잘 싸놓는다. 무려 16년째. 그 언제 올지 모르는 아들을 기다리며 밥을 싸는 봉영규(정보석)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봉영규는 봉마루가 집을 나간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같은 바보가 아버지라는 게 부끄럽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봉영규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게 따뜻한 밥을 해서 준비해놓는 일이다. 하지만 정작 만난 아들은 자신을 부인한다. 그것은 "당신이 바보라서 (아들이라고) 거짓말 한 것"이라고 한다.

순간 봉영규의 얼굴은 흔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말한다. "마루야. 그런데 딱 한 번만 집에 와라. 집은 안 창피하잖아. 꼭 한 번만 와. 내가 밥 맛있게 해줄게. 나 이제 밥 맛있게 잘한다. 그럼 진짜 다시는 아는 척 안하고 기다릴게." 그 얘기를 듣던 봉마루의 애써 차갑게 굳은 얼굴이 흔들린다. 봉영규는 그 와중에도 젖은 눈을 숨기려는 듯 봉마루를 위해 바보 같은 미소를 애써 짓는다.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정보석이 연기하는 봉영규라는 캐릭터는 그 '밥 한 끼'로 상징되는 뜨거운 진심이다. 모두가 욕망을 향해 달려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밟고 상처줄 때, 봉영규는 이 드라마의 한 구석에서 묵묵히 밥을 짓는다. 그 따뜻한 밥 한 공기의 온기가 없었다면 이 얽히고설킨 드라마는 자칫 자극만 난무하는 막장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사위가 장인의 죽음을 방조하며,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 원수의 자식을 데려다 키워 그 원수에게 복수하게 하는 이 극한의 상황을 모두 덮어버리는 것이 바로 이 밥 한 공기의 온기다. 이 드라마는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친자식을 버리고, 또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그 자식을 다시 찾으려는 똑똑한 친부모들과, 친부모는 아니지만 집나간 아들을 위해 바보처럼 16년 간 밥 한 공기를 준비해 놓는 봉영규를 대결시킴으로서 비로소 주제의식을 지켜낸다.

봉영규가 한쪽에서 묵묵히 밥 한 끼를 준비하는 모습은 정보석이라는 연기자의 묵직한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한 없이 망가지며 이 시트콤에 웃음의 바탕을 만들어내던 그는 '자이언트'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 조필연으로 열연하며 드라마의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들리니'의 지적장애를 가진 봉영규를 통해 그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정보석이라는 중견연기자의 아우라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드라마의 중심에 서지 않지만 그 묵직한 존재감으로 드라마의 든든한 포만감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그는 드라마의 따뜻한 밥 같은 존재다. 매 끼니 때마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반찬일 지 모르지만, 우리를 든든하게 해주는 것은 밥인 것처럼. 정보석은 그렇게 우리가 바라보지 않는 구석에서도 열심히 밥 한 끼를 준비해놓는, 그럼으로써 그것이 결국 그 드라마의 결이 되게 만드는 그런 연기자다.

Posted by 더키앙

김수현 작가의 밥상은 늘 훈훈하다

‘엄마가 뿔났다’의 엄마, 김한자(김혜자)는 자식들 때문에 뿔이 잔뜩 났다. 늘 부엌에서 살다시피 밥을 짓는 그녀가 울면이 먹고싶다며 시아버지를 조른다. 중국집에서 시아버지가 사주시는 울면을 먹으면서 그녀는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한편, 뿔난 그녀가 마음에 걸려 남편 나일석(백일섭)은 붕어빵을 사 가지고 그녀를 찾는다. 울면이나 붕어빵은 흔하디 흔한 음식이지만 이 드라마 속에서는 그것이 마음을 전해준다. 그 마음은 그걸 만들거나 사주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고, 그걸 먹는 사람의 마음이기도 하다.

김한자가 답답하다며 남편 나일석을 졸라 저녁 드라이브를 간 곳은 다름 아닌 딸이 일 때문에 잠을 자곤 하는 오피스텔이다. 그녀의 손에는 반찬그릇이 들려있다. 그리고 그 집 앞에서 그녀가 발견하는 것은 아마도 딸이 먹고 내놓았을 배달음식 그릇들이다. 마침 오피스텔에는 딸이 만나는 이혼남, 이종원(류진)이 함께 있었는데 그는 재빨리 이층으로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 빈자리에서도 엄마는 다른 사람의 흔적을 쉽게 찾아낸다. 그 흔적이란 다름 아닌 두 개의 커피 잔이다.

음식은 늘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있고, 그걸 먹은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수현 작가는 우리 생활 속에서 바로 이 음식의 흐름, 음식의 법칙을 가장 잘 아는 작가다. 전작이었던 ‘내 남자의 여자’에서도 화영(김희애)과 지수(배종옥)의 캐릭터를 극명하게 나누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의 부엌과 그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본처를 버리고 아내의 친구와 살림을 차린 홍준표(김상중)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지수가 해주던 음식. 뻔뻔스럽게도 그는 지수를 찾아와 밥을 차려달라 하고, 그런 뻔뻔스런 남자에게 그래도 지수는 밥을 차려준다.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특히 드라마의 화자가 엄마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유달리 음식에 대한 묘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막내딸과 사귀는 재벌집 아들이 불쑥 찾아왔을 때도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저녁거리였다. 여기서 저녁거리를 차려주는 엄마는 그 자체로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재벌집 아들과 헤어지겠다 마음먹고 회사에 사표까지 낸 후 집으로 돌아온 막내딸에게 엄마는 밥을 먹으라 권하지 않는다. 이유는 “마음이 더 아플테니 밥이 넘어가겠냐”는 것이다. 그런 엄마를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막내딸이 “나는 괜찮아”하고 말하자 엄마가 먼저 하는 이야기가 “괜찮으면 밥 먹어”이다. 엄마의 사랑은 밥으로 가장 잘 표현된다.

때론 ‘밥 먹는 것을 끊는 것’으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고은아(장미희)의 결혼반대에 대해 그녀의 아들 김정현(기태영)은 단식투쟁을 한다. 결국 사흘을 굶는 아들 앞에서 고은아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제아무리 강한 여자라 해도 한 아들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식이 굶는 것을 눈뜨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허락을 받아낸 김정현에게 그래도 자신이 받은 치욕 때문에 결혼은 할 수 없다는 나영미(이유리)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도 역시 밥이다. 그녀는 김정현이 죽을 각오로 사흘을 굶었다는 말에 와락 눈물을 쏟아낸다. 그녀 역시 미래의 엄마이다.

자신의 집안에서의 반대 때문에 힘겹게 했던 일들에 대해 사죄를 하는 김정현에게 “네가 승낙을 얻어왔어도 반대한다”는 나일석의 마음을 열게 하는 것 역시 밥이다. 자기 딸과 결혼하기 위해 사흘을 굶었다는데 아무리 나쁜 녀석이라도 세상의 어떤 아빠의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까. 말은 반대한다 말하면서도 나일석은 그 나쁜 녀석에게 먹일 죽이 잘 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그 죽 한 그릇이 전하는 의미는 아무리 많은 말로 해도 다 채워지기가 어렵다.

김수현 작가는 일상의 생활 속에서 툭툭 던져지는 말이나, 늘 행해지는 행동들에서도 그 독특한 뉘앙스의 의미들을 잘 찾아내는 작가다. 그래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서 나오는 명대사란 실상은 그다지 거창한 수사가 별로 없다. 그냥 일상 용어일 뿐인데, 그것이 특정한 상황에 콕 찍힐 때 놀라운 울림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것은 유독 그녀의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 음식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그것이 아무리 매일 먹던 밥이나 죽이더라도 김수현이 차려놓은 드라마 상황이라는 밥상 위에 올려지면 특유의 훈훈한 맛을 전한다. 그것은 마치 매일 매일 먹는 밥이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엄마의 온기 같은 것이다. 이것이 김수현 작가가 매번 차리는 밥상이 훈훈한 이유고,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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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키앙

준표가 지수의 밥을 그리워하는 이유

‘내 남자의 여자’, 두 여자가 만난다. 남편과 눈맞은 여자, 아무리 한 때 절친한 친구라 해도 만나서 제일 먼저 하는 얘기는 생뚱맞게도 밥 얘기다. ‘그 남자’의 에고에 대해 얘기하자며 자연스레 밥 얘기를 꺼낸다. 지수(배종옥)는 어느 날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밥을 챙겨먹지도 못하던 남편 준표 얘기를 한다. 그 때 이 후 그녀는 “밥 때는 거의 밖에 안 있었다”고 말한다. 거기에 대해 화영은 “지금은 혼자서도 잘 차려먹더라”고 말한다.

또 다른 장면, 준표의 어머니의 호출로 화영과 외출하려는 준표에게 지수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저녁 집에 와서 먹어. 해줄게.’ 만나서 할 얘기가 있는 지수는 만나자는 말도 밥 얘기로 시작한다. 준표의 어머니를 만나고 돌아온 화영은 준표에게 묻는다. “저녁 뭐 먹고 싶어?” 그러자 준표는 6시 반이 넘었다며 그냥 시켜먹자고 한다. 그러자 화영이 발끈해서 말한다. “꼭 6시 반에 저녁 먹어야 해? 한 시간쯤 늦게 먹으면 안돼?” 결국 냉면에 떡갈비를 시켜먹는 그들. 준표가 말한다. “좀 불었다.” 화영의 대꾸, “나도 알아. 그냥 좀 먹어. 지금 음식 투정하게 생겼어?” 잘못했다며 그래도 좀 먹으라는 준표에게 화영은 쏘아댄다. “돼지야? 혼자 많이 먹어!” 결국 준표는 남은 음식을 버린다.

‘내 남자의 여자’는 유난히 식사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실생활에서라면 그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드라마 상에서라면 말이 다르다. 김수현 드라마의 묘미가 대사에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그냥 대사를 주고받으면 되지 왜 굳이 ‘밥을 먹으며’ 대사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밥’이 가진 일상의 무게감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첫 회에서 준표와 화영의 외도가 발각되는 장면에서도 역시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비큐 파티를 하는 중에 잠시 집안으로 들어간 둘은 애정행각을 벌이다 은수(하유미)에게 덜미를 잡힌다. 화영과 살림을 차리기 전 지수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준표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하지만 준표는 화영과 살면서 감자 하나 제대로 찌지 못하는 그녀를 타박하고, 지수가 해주는 밥을 그리워한다. 시켜먹고 대충 때우는 화영의 부엌에서 잠시 해방(?)된 준표는 허겁지겁 지수가 해주는 밥을 두 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생전 안 해보던 고맙다는 말을 한다.

지수가 홀로 서기 위해 찾은 자신만의 일은 다름 아닌 ‘먹는 장사’다. 샌드위치는 바로 만들어 먹어야 제 맛이라는 그녀는 미리 만들어 대량으로 팔 수 있는 기회도 저버린다. 장삿속으로 장사를 하는 게 아니고 진짜 사람들이 먹을 걸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 밥을 해주고 먹을 걸 차려주는 행위는 그녀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준표를 지겹게 만든 것은 바로 그녀가 밥을 차려주는 행위로서 고착된 모든 걸 챙겨주는 심성에서 비롯되었다. 준표는 그런 그녀가 자신을 숨막히게 한다고 말하고, 반면 화영은 자신을 남자이게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밥이 가진 이중성을 보여준다. 매일 먹는 밥은 때론 지겹지만 그 밥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집에서 해먹는 밥이 질려 외식을 하고 나면 먹을 땐 좋았는데 꼭 속이 좋지 않다. 조미료가 가득 든 음식이 입에는 달아도 몸에는 영 맞지 않아서이다. 밥으로 얘기한다면 준표가 하고 있는 외도는 꼭 외식과 닮았다. 자극적인 맛에 정말 맛있어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막상 먹고 나면 소화시키기 어려운 음식.

준표가 지수를 떠나오기 전 그 밥해주는 행위를 무시했던 것처럼, 화영이 밥 먹으라는 사람에게 “돼지냐”고 쏘아붙이듯, 사람들은 밥을 무시한다. 하지만 밥은 오히려 숭고하다. 늘 필요한 곳에 있어 칠뜨기에 밥순이로 무시됐던 지수가 점차 숭고하게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내 남자의 여자’에 등장하는 그녀들의 다른 부엌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대부분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가족이 해체되는 것은 그 중심에 선 부엌으로 상징되는 모성애에 대한 무시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만 같다. 부엌에서 된장국 하나 제대로 끓여내는 일은 입으로 조잘대는 사랑보다 더 숭고하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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