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로 보여주는 이효리의 또 다른 얼굴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세상 누구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도, 정작 매일 가까이 지내는 가족과는 서먹한 경우가 적지 않다. 어디서든 명랑 쾌활할 것 같은 사람도, 정작 혼자만의 시간에는 조용히 침작하는 경우도 있고, 이젠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릴 것 같은 사람이 의외로 소박하고 소탈한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누군가의 한 면을 보며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그건 일면일 뿐이고, 그 사람의 무수한 얼굴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걸 우린 안다. 그래서 방송에 노출되는 연예인들은 많은 얼굴들 중 괜찮은 한 면들만을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와는 정반대로 갈수록 다양한 면들을 그것 역시 자신의 얼굴이라고 가감없이 드러내는 이효리는 도드라져 보인다. JTBC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의 이효리 역시 그렇다. 

 

제목에 무엇이 담길 것인지 다 보여주고 있는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지만, 막상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이효리의 또 다른 면들에 문득 놀라게 된다. 이효리가 어린 시절 이발소를 했던 아버지 밑에서 4남매가 가난하게 살았던 이야기는 이미 ‘힐링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된 바 있다. 또 가난 때문에 아버지가 엄했고, 하다 못해 화장실 종이조차 몇 장 이상은 못갔고 가게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래서 엄했던 아버지와 안쓰러운 아이들 사이에 놓였던 엄마에 대해 이효리가 갖고 있는 상반된 감정은 잘 몰랐던 사실이다. 함께 여행을 하며 그 때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는 이효리에게 엄마는 “좋은 얘기만 하자”고 말했지만 이효리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솔직하게 엄마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털어놓는다.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힘들 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 시간이 나에겐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으로 평생 가슴에 남아 있고, 그래서 더 잘해야 됐는데 반대로 이상하게 그것 때문에 더 엄마를 피하게 되는 안보고 싶은 그런 마음이 좀 있었던 것 같았어요. 그게 미안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나의 무기력한 모습을 다시 확인하는 게 너무 두려워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그런 마음을 좀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그런 마음들이 엄마하고 나의 사랑을 확인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런 마음들을 용감하게 물리쳐 보고 싶어요.” 

 

즉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는 그저 이효리가 엄마와 떠나는 여행만을 담은 게 아니라, 이 여행을 통해 그가 마주하고픈 엄마와 자신 사이에 놓여진 어떤 장벽 같은 걸 이해하고 또 무너뜨리려 하는 일종의 도전을 담은 것이었다. 어려서 가난해 오징어 한 마리로 여섯 식구가 배불리 먹기 위해 엄마가 끓였던 ‘오징엇국’을 다시금 엄마가 끓여 내주고, 그걸 먹으며 이효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장벽 하나가 허물어지는 감동을 전해준다. 말로는 쉽게 넘을 수 없는 엄마의 마음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이 음식 하나로 뛰어넘는 그 장면은, 심지어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는 엄마지만 너무 가까워 다투기도 했던 자식들이라면 누구나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때론 엄마의 음식을 다시 먹으며 문득 뭉클해지는 마음처럼.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이효리가 대단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그는 어느 일면으로 고정되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대중들 앞에 솔직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여전히 사랑받는 몇 안되는 연예인 중 한 명이다. 핑클 시절의 화려했던 삶이나, 유재석과 함께 ‘해피투게더’, ‘패밀리가 떴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맹활약하며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모습이 바로 이효리지만, 어느 날 이상순과 결혼해 훌쩍 제주도로 떠나 소길댁으로 살아가던 모습 또한 이효리였다. 

 

‘동물은 먹지 않지만 바다 고기는 좋아해요. 개는 사랑하지만 가죽 구두를 신죠. 우유는 마시지 않지만 아이스크림은 좋아해요. 반딧불이는 아름답지만 모기는 잡아 죽여요. 숲을 사랑하지만 집을 지어요. 돼지고기는 먹지 않지만 고사 때 돼지머리 앞에서는 절을 하죠. 유명하지만 조용히 살고, 조용히 살지만 잊혀지긴 싫죠. 소박하지만 부유하고 부유하지만 다를 것도 없네요. 모순덩어리 제 삶을 고백합니다.’ 당시 제주도로 떠났던 이효리가 SNS에 올린 솔직한 글은 모든 이들을 공감시켰다. 그건 스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모순덩어리 삶 그대로를 꺼내놓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효리네 민박‘으로 다시 대중들 앞에 섰을 때 이효리는 ”천천히 내려가는 것도 받아들일 때가 됐다“고 말할 정도로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유기견을 돌보는 모습으로 세상에 대한 소신을 드러내고 그렇게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픈 마음 또한 숨기지 않았다. ’놀면 뭐하니‘를 통해 린다G라는 부캐를 만들고 자꾸만 서울에 올라와 그 삶을 동경하는 모습 또한 솔직한 마음이라는 점에서 대중들을 설득시켰다. 이효리의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함과 자연스러움은 관찰카메라 시대에 그를 다시 주목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특히 이효리의 솔직함이 갖는 미덕은 그것이 인정과 변화의 전제라는 점 때문이다. 이효리는 자신이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또 제주도에 내려와 살면서도 서울 같은 도시의 욕망에 이끌린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또 과거 가난했던 시절 만들어진 가족들과의 기억들이 현재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정에서부터 변화가 만들어진다. 나이드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자신 속의 욕망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며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요가와 명상을 통해 갖게 된 이 삶의 자세는 우리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솔직한 인정이 전제되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걸 이효리는 지금도 우리 앞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다. (글:국방일보, 사진:JTBC)

지배종

 

지난 1월 KBS ‘다큐 인사이트’에서 2부작으로 방송된 ‘지속 가능한 지구는 없다’는 환경 위기의 문제를 전 지구적 차원에서 다룬 다큐멘터리다. 2부 ‘재활용 식민지’편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불법 수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다뤘다. 값싼 플라스틱 쓰레기를 연료로 사용해 시멘트를 만들고 두부를 생산하는 공장을 16살 환경운동가 니나가 방문해 그 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담겼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연료로 사용하지만, 그래서 쌓인 쓰레기들과 유해한 가스들은 인도네시아의 환경을 급속도로 오염시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니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어디서 온 것인가를 확인하는데, 미국, 유럽, 호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간 쓰레기들도 쏟아져 나온다. 

 

썩지 않는데다 태워도 유해가스가 나오는 플라스틱이 환경 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플라스틱 재활용이 유일한 대안처럼 제시됐고 분리수거만 잘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OECD에 의하면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약 9%만이 재활용되고 19%는 소각되며 50%는 매립되고 22%는 통제를 벗어나 자연으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유일한 대안은 사실 플라스틱을 쓰지 않는 일이다. 인도네시아의 니나가 자국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채워지는 걸 전세계에 폭로하고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가 전 지구적인 위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고, 또 그것이 지구를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게 만들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우리는 이를 바꾸지 못할까. 거기에는 플라스틱에 의존해 흘러온 기존 산업들이 만만찮은 장벽으로 등장한다. 당장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선택으로 플라스틱을 전면 금지하거나 쓰지 않게 되면 이들 산업들은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실제로는 아니지만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는 식의 위장전술이 등장한다. 그러면서 소비자들이 갖게 되는 죄책감을 친환경 제품이라는 마크를 붙이거나, 재활용에 앞장서는 친환경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더해 상쇄시킨다. 소비자들 역시 늘 해왔던 습관대로 소비하던 방식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 누구나 다 이대로 가면 위기가 닥친다는 걸 알면서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그 변화에 다양한 이익과 손실들이 부딪치며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지배종’은 어째서 세상을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가를 그 포스터에 담긴 문구 한 줄로 표현한다. ‘세상을 바꾼 자. 모두의 표적이 되다’가 그것이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Blood Free)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드라마는 인공 배양육이 왜 필요한가를 설득하는 BF 대표 윤자유(한효주)의 사업설명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그저 당연하다는 듯 고기를 소비하지만, 그 고기를 위해 무수한 소들이 사육되고 도축된다는 걸 마치 없는 사실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윤자유는 그 과정을 눈앞에서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면서 환경 오염 문제나, 생명 윤리의 문제 같은 것들을 인공 배양육이 필요한 이유로 제시한다. 기업의 이름처럼 피(희생) 없이 생산된 고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시대. 얼마나 달콤한 이야기인가.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친환경’이라는 포장지를 덧씌움으로써 소비의 죄의식을 상쇄시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플라스틱의 사례처럼, 인공 배양육도 일종의 기만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들이 제기된다. 인공 배양육이 세균덩어리라는 소문이 떠돈다. 또한 윤자유가 사업설명을 하는 연회장 바깥에서는 이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들이 든 피켓에는 ‘살인기업 BF 각성하라’라는 글귀와 더불어 ‘축산 다음 타깃은 어디?’라는 문구도 보인다. ‘식량을 위한 피’를 보지 않겠다고 주창하는 인공 배양육을 내놓은 생명공학기업에게 ‘살인기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분명하다. 인공 배양육의 탄생은 축산업자들의 도산으로 이어질거라는 것. 이처럼 세상을 바꾸려하는 일에는 만만찮은 반발과 도전이 이어진다는 걸 ‘지배종’은 보여준다. 플라스틱을 쓰지 말자고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뒤져 그 출처를 밝히고 그 불법적인 일들을 폭로하는 16살 소녀 니나의 외침은 너무나 합당하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지만, 그 맞은 편에는 플라스틱을 사용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전 세계의 기업들이 서 있다. 그들은 소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원하지 않고 그래서 심지어 이를 막기 위한 일들도 서슴지 않는다. 

 

변화에는 반발이 따른다. 이건 ‘지배종’을 쓴 이수연 작가가 지금껏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일관되게 그려온 세계의 역학이다. ‘비밀의 숲’이 검찰의 부패를 척결하고 그 조직을 개혁하려는 자와 이를 막으려는 세력과의 대결을 그렸다면, ‘라이프’는 병원에 대한 두 관점, 즉 생명을 다루는 곳이면서 자본의 논리에서 경영되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두 관점을 대변하는 세력의 대결을 그렸다. ‘지배종’ 역시 인공 배양육이라는 근미래에 화두로 대두될 수 있는 문제를 가져와 생명윤리와 환경문제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상은 그 이면에 놓여진 기득권자와 새로운 세력 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사실 정치가 요구되는 건 바로 이러한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갈등과 분쟁들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보수와 진보는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변화를 요구하는 자들과 이를 원치 않는 자들 사이의 대결구도로 등장한다. 물론 보수든 진보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건 잘못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고 어떤 타협점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라, 편가르기를 통해 상대를 무시하고 무너뜨리려 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어렵고 또 그 과정은 당연히 어려워야 한다. 정쟁이 아닌 진짜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다. 총선이 끝나고 민심이 드러난 현재,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필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글:이데일리, 사진:디즈니+)

“넌 선택받은 자야. 이제 달라져야 해.” 마이크 미첼, 스테파니 스티네 ‘쿵푸팬더4’

쿵푸팬더4

“넌 선택받은 자야. 이제 달라져야 해.” 애니메이션 ‘쿵푸팬더4’에서 용의 전사 포에게 시푸 사부는 새로운 소명을 알려준다. 이제 용의 전사 대신 평화의 계곡의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자신을 대신할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포는 용의 전사로서 모든 이들에게 추앙받으며 살아가는 그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순 없지만 만두는 많이 살 수 있다는 자족적인 삶에 머무르려 한다. 하지만 최강 빌런 ‘카멜레온’이 나타나 계곡의 평화가 깨지게 되면서 포는 모험을 떠나고 자신을 뛰어넘는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쿵푸팬더’의 성공요인은 물론 ‘쿵푸 하는 팬더’라는 독보적인 캐릭터의 힘이 가장 크지만, 팬더 자체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인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중국으로 가게 된 푸바오 열풍을 통해서 새삼 확인한 것이지만, 팬더에 대한 인기는 전 세계적이다. 팬더 외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떠나는 팬더에 눈물을 흘린 건 푸바오의 경우만이 아니다. 프랑스의 위안멍, 일본의 샹샹이 떠날 때도 똑같은 풍경이 벌어졌다.  

 

마침 그 빈자리를 포가 채웠다는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로, ‘쿵푸팬더4’에 대한 남다른 관심은 푸바오 열풍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떠난 푸바오에 대한 아쉬움은 물론이고 새로운 터전에 잘 적응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커서인지,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는 포의 이야기 또한 각별하게 느껴진다. 

 

중국 도착 직후 푸바오는 앞구르기만 반복하는 모습으로 많은 우려를 낳았지만 지금은 잘 적응하고 있단다. 그 지표로서 새 사육사가 내민 손을 잡는 모습이 사진으로 소개됐다. 푸바오의 ‘할부지’ 강철원 사육사는 새 환경에서 팬더가 손을 사육사에게 내미는 건 중요한 적응의 징표라고 한 바 있다. 변화를 수용한 결과라는 것. 마침 총선을 치러서일까. 푸바오와 새 사육사의 사진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변화를 요구하는 유권자들이 내민 손을 이제 선택받은 자들이 맞잡아야 한다고.(글:동아일보, 사진:영화'쿵푸팬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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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종’, 세상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맞이하는가

지배종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지배종’은 새로운 인공 배양육의 시대를 연 생명공학기업 BF의 대표 윤자유(한효주)가 사업을 설명하는 자리로 문을 연다.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소들이 설명회장 속으로 뛰어들어오는 듯한 입체적인 영상이 펼쳐지자 사람들은 신기해 하지만, 곧바로 그 소를 도축하는 끔찍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괴로워한다. 그건 어찌 보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고기를 먹고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는 않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걸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입체적인 영상으로 보여주는 건, 윤자유가 소개할 인공 배양육이 얼마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설득하기 위함이다. 인공으로 배양한 고기이니 피를 볼 필요가 없다. 도축할 소들을 키워내면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이 발생시키는 환경 오염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실제 고기와 다를 바 없는 맛과 식감을 자랑한다. 이 기업의 이름 BF는 ‘비프’ 즉 고기를 뜻하는 단어처럼 읽히지만 그 의미는 ‘Blood Free’다. 피(희생) 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의미일 게다. 이 기업은 인공 배양육으로 물고기까지 성공시켰다며 그 고기를 맛보게 하는 퍼포먼스까지 선보인다. 

 

‘지배종’이 보여주는 이 첫 도입부는 이 근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질 드라마가 가진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건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것이다. 드라마는 이 문제에 대한 솔루션을 인공 배양육이라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바꿀 세상을 먼저 펼쳐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솔루션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진짜 바뀔까. ‘지배종’은 질문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수많은 도전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은 이전의 세상을 바꾸거나 닫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공 배양육을 상용화해 그것이 고기를 대체하게 만들면, 지금껏 그걸 생계로 삼아온 축산업자들은 모두 도산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물고기까지 인공 배양육으로 바꾸면 어업에 종사하는 이들 모두가 위기를 맞는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하나의 산업이(그것도 거의 원시사회부터 이어져온) 하루 아침이 사라지게 된다. 어찌 반발이 없을 수 있을까. 

 

그래서 BF와 이를 이끄는 윤자유는 저들의 ‘표적’이 된다. 인공 배양육이 세균덩어리라는 루머가 퍼지고 연구소의 컴퓨터를 랜섬웨어로 해킹한 후 800억을 요구하는 사건도 벌어진다. 즉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솔루션을 가진 자와 이를 막으려는 모종의 세력들과의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위협하는 세력의 실체가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음으로써 드라마는 그 실체에 접근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놓을 작정이다. 

 

이수연 작가는 특히 어떤 조직 내부에서 생겨난 변화에 직면해,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이들이 그것 때문에 그려내는 ‘관계의 화학작용’을 잘 그려내는 작가다. ‘비밀의 숲’이 검찰 개혁을 소재로 그걸 그려냈다면, ‘라이프’는 병원에 다른 신념을 가진 사장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렸다. 이번에는 인공 배양육으로 상징되는 미래에 대한 어떤 선택이 그 갈등의 소재가 된 셈이다. 

 

폭탄테러로 두 다리를 잃은 후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전직 대통령 이문규(전국환), 그 테러가 있었던 부대에서 동료를 잃은 트라우마를 가진 채 이문규의 지시에 의해 의도적으로 윤자유의 전담 경호원이 된 우채운(주지훈)은 물론이고, 랜섬웨어 해킹 사건의 범인이 내부 직원일 수 있다는 증거가 나옴으로써 용의선상에 오른 연구소 직원들인 온산(이무생), 김신구(김상호), 서희(전석호), 전해든(박지연), 홍잎새(이서), 랜섬웨어로 BF 그룹이 처한 위기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이익을 얻어내려는 국무총리 선우재(이희준) 등등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드러내며 보여줄 관계의 화학작용을 기대하게 만든다. 

 

결국 ‘지배종’은 선택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인간의 다른 표현일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그래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선택이 마주하게 되는 도전 속에서 과연 모든 것이 통제되는(인간에 의해 지배되는) 완벽한 삶이 가능할 것인가를 되묻지 않을까. (사진:디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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