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가족>이 보여준 박명수의 예능 적응력

 

격변기는 누군가를 영웅을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누군가에게는 위기가 되기도 한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한때 예능을 이끄는 2강 체제를 만들 수 있었던 건 리얼 버라이어티와 리얼 토크쇼가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면서부터였다. 지금은 이 트렌드가 고개를 숙이고 대신 리얼리티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용감한 가족(사진출처:KBS)'

이 변화에서 강호동은 적응하지 못했다. 리얼리티쇼 형식에서 진행형 MC는 불필요하다. MC 같은 비일상적 존재는 리얼리티쇼의 핵심일 수 있는 일상의 진정성을 보여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유재석 역시 리얼리티쇼에는 적응하지 못한 존재다. 그는 여전히 MBC <무한도전>SBS <런닝맨>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캐릭터 쇼를 진두지휘한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건재한 이유는 그의 실제 삶이 주는 진정성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재석의 리얼리티쇼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성실한 일상이 진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굳이 리얼리티쇼가 필요 없는 존재다.

 

격변기를 두고 볼 때 유재석이나 강호동보다 더 잘 적응하고 있는 인물은 유재석에 가려 만년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 박명수다. 박명수는 과거 콩트 코미디 시절부터 자기만의 캐릭터를 갖고 있었고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대세가 되자 유재석과 함께 <무한도전>을 통해 그 중심에 섰다. 가수가 예능을 하고 예능인이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하는 연예인의 멀티 플레이어화가 진행됐을 때도 박명수는 자신의 장기인 노래를 잘 살려 가수는 물론이고 프로듀서, 작곡자의 입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 박명수가 이제는 리얼리티쇼에도 뛰어들었다. KBS <용감한 가족>에서 귀차니스트 삼촌으로 등장한 박명수는 라오스 콕싸앗 소금마을에서는 박주미와 가상 부부 역할을 하면서 점점 그만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의 리얼리티쇼 적응기가 결코 호락호락했던 건 아니다. 계란을 실수로 떨어뜨린 설현의 머리를 밀쳤다는 논란을 통해 박명수는 리얼리티쇼의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렀다.

 

처음에는 그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늘 보이던 상황극 설정을 보이는 듯 했으나 차츰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쁜 남자 이미지로만 있던 그가 때로는 상남자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고, 때로는 자상한 남편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하기도 했다. 박주미와의 가상 부부 설정도 처음에는 어색해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내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용감한 가족>의 콘셉트는 이문화 체험과 적응이 갖는 힘겨움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가족 간의 관계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당연히 가족관계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갈등도 있고 또 화해의 순간들도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유사가족의 화학작용을 들여다보는 것이 이 리얼리티쇼의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 박명수는 이 관계의 화학작용을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 되고 있다. 부적응자처럼 보였던 초창기 모습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지금은 가상 아내 박주미를 향한 이상적인 남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격변기에서의 적응력이나 생존력은 박명수가 유재석이나 강호동보다 한 수 위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리얼리티쇼에도 완벽 적응한 모습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에는 만년 2인자였던 박명수. 하지만 지금은 자기만의 나쁜(?) 매력을 대중들에게 여지없이 보여주며 자신의 예능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조기종영 <개과천선>, 시즌제 주장 나오는 까닭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본래 18부작이었지만 중간에 몇 번 결방을 하게 되면서 16부로 조기종영하게 됐다. 워낙 아쉬움이 남기 때문인지 조기종영에 대한 서로 다른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MBC측은 김명민의 스케줄을 이유로 댔고, 김명민측은 스케줄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을 이유로 들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런 이유 이외에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방송사에 부담이 됐을 거라는 추론도 나온다. 물론 그것이 진짜 조기종영의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벌어졌던 대기업과 관련된 사건들이 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해 그 적나라한 얼굴을 보여줬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다른 측에서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 이유로 시청률을 들고 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디테일을 담고 있는 본격 법정물로 8%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복잡한 금융 사건들은 전문가들이 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복잡함은 사건이 커도 관계자들 이외에 대중들이 사건에 무관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그래서 시청률 8%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조기 종영되었지만 드라마 팬들은 벌써부터 시즌2를 얘기하고 있다. 드라마 내용만으로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김명민)가 막 본격적으로 차영우펌에 맞서 한판 승부를 겨루는 시점이다. 중소기업에게 불리한 금융상품을 제대로된 설명 없이 판매한 은행에 맞서 김석주 변호사는 고군분투하지만 그는 차영우펌이 가진 네트워크에 첫 패배를 맛본다. 변호사의 역할을 마치 로비스트처럼 생각하는 차영우(김상중)의 말처럼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인적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시스템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지금 이런 사건들과 본격적으로 싸워나가는 그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서민들이 억울하게 판결 받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많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반추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이야기 소재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의 면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팬들은 각별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현실에서 찾기 힘든 희망처럼 그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많은 시즌2 요구 드라마들이 실제 시즌2를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개과천선>이 시즌2를 할 가능성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 시즌2 요구는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들어가 있다. 현실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끌고 와 디테일하게 다룬 <개과천선>에 쏟아지는 호평이 말해주듯, 이 드라마에 대한 시즌2 요구는 공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에 의해 불의가 정의인 양 둔갑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 현실의 시스템에 의해 묵과되는 사안들을 드라마에서나마 확인하고픈 마음. <개과천선> 시즌2 요구에는 그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개과천선>의 질문, 변화는 가능한가

 

시간

MBC <개과천선>은 시간에 대한 드라마다. 거기에는 과거가 있고 과거로부터 단절된 현재가 있으며 그 현재가 만들어갈 미래가 있다. 김석주(김명민)는 기억상실을 겪게 되는 사건을 통해 과거로부터 단절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과거 속에는 자신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있다. 차영우펌에서 에이스로 일하며 관계해온 대기업의 인물들은 김석주가 자신들을 대변해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과거와 단절된 김석주는 현재라는 시간대에 새로운 자신을 세우려 한다. 심지어 과거의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들을 현재 뒤집으려 한다. 현재는 과거와 대결한다. 그의 약혼자인 유정선(채정안)과 그녀의 집안인 유림그룹은 과거로부터 튀어나온 이들이지만 현재의 그와 약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과거의 김석주와 유정선의 관계는 이익관계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의 김석주는 진정으로 유정선을 걱정하는 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집안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위기에 처한 유정선을 구해주는 과정은 현재와 과거의 대결에서 그의 승리를 보여준다.

 

시간과 기억

기억으로 단절되어 있지만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병을 앓고 있는 김석주가 키우는 개는 기억 속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인권변호사인 아버지 김신일(최일화)도 마찬가지다. 인권변호사의 삶이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것에 대한 반발로 김석주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나, 그 기억을 지워버린 그는 아들로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변화에 이상함을 느낀다.

 

흥미로운 건 아버지 또한 치매를 앓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점점 그의 기억은 사라져간다. 만일 아들이 과거의 기억을 잃고 아버지 또한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나 위태로워질까. 관계란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낸 산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가냘픈 기억의 끈은 이제 과거의 기억을 잃고 현재의 기억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아들 김석주에 의해 이어져갈 것이다. 아버지를 도와 은행에 피해를 본 중소기업을 도우며 그는 아버지를 닮아간다.

 

시간과 기억 그리고 선택

시간은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기억으로 축적된다. 김석주는 차영우펌에 사직서를 내지만 그 시간에 강직한 판사였던 전지원(진이한)은 차영우펌에 들어온다. 김석주의 선택과 전지원의 선택은 그래서 이제 그들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고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견고한 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은 선택하려 하지만 시스템은 언제든지 그 사람을 바꿔치기 한다. 시스템에 입장에서 전지원은 김석주의 과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이 시스템과 대항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차영우펌이 가진 그 시스템의 견고함은 어쩌면 김석주 자신이 과거에 이룩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는 그래서 또다시 과거 자신이 만들었던 이 괴물 같은 시스템과 맞서게 된다. 과거는 또다시 현재와 대결한다.

 

변화, 개과천선은 가능한가

<개과천선>이 김석주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미래를 만들어내는가 하는 점이며, 그 선택으로 만들어진 과거를 되돌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점이다. 기억이라는 견고한 틀로 과거와 현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는 인간은 사실 변화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만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석주는 그 기억의 일관성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그냥 살아갔을 가능성이 높다.

 

변화는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김석주 변호사가 과거 그러했듯이 현실에서는 도대체 인간이 어쩌면 저런 끔찍한 선택을 아무런 가책 없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이 하는 것이다. 각종 금융시스템은 그 숫자들 뒤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은폐한다. 변호사들이 다루는 법조항들은 그 문구들 뒤에 달린 누군가의 인권을 지워버린다. 인간이 아니라 그저 숫자를 다루고 법조항을 다루고 있다는 착각은 끔찍한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기억의 조작이다. 시스템이 조장하는 일종의 치매다.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그렇게 시스템에 연루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시스템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과거의 기억을 잃었지만 어쩌면 그것은 시스템이 잠시 인간성에 대한 기억상실을 조장했던 기억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선택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다. 시스템과 대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변화는 불가능하지 않다. 흔히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이들이 느끼는 그 순간의 무한한 자유가 새로운 선택들을 가능하게 하듯이. 김석주 변호사가 차영우펌을 빠져나올 때 그를 향해 축복처럼 쏟아지는 햇살처럼. 변화는 가능하다.

갈수록 폭발력 커지는 <무도> 가요제의 비밀

 

어쩌면 이렇게 늘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무한도전> 가요제는 강변북로 가요제(2007)부터 시작해 올림픽대로 가요제(2009), 그리고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를 거쳐 이번 자유로 가요제(2013)가 무려 네 번째다. 그런데 이처럼 회를 거듭하면서도 그 폭발력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자유로 가요제는 일단 그 규모가 훨씬 커졌다. 3만5천여 명이 운집한 공연장은 웬만한 록 페스티벌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단 하루 게릴라식으로 치러지는 가요제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무한도전>이라는 이름을 걸고 음악과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어엿한 페스티벌을 만들어도 충분할 듯하다. 의미와 가치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듯 싶다.

 

무엇보다 과거와 달라진 음악들이 주목된다. 유재석이 댄스곡을 고집한다거나 박명수가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반복했다면 식상해질 수도 있는 가요제였다. 하지만 유재석이 부르는 R&B는 괜찮은 느낌을 주었고, 프라이머리의 색깔이 묻어나는 레트로 힙합을 박명수가 부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첫 무대에 올랐던 김C와 정준하의 실험적인 무대는 실로 압권이었다. 정제되면서도 세련되고 또 다채로운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펼쳐 놓음으로써 좋은 시작을 알렸다. 퍼포먼스가 좋았던 정형돈과 지드래곤의 무대, 노홍철과 장미여관 그리고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선보인 파워 넘치는 록 스피릿, 그리고 보아와 길이 보여준 춤의 경연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무한도전> 멤버와 아티스트들의 조합, 그리고 그 관계에서 나오는 스토리텔링도 갈수록 세련되어지고 있다. 아마도 여러 차례의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생겨난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 가요제에 함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반색할 가수들의 풀이 넓어진 것은 음악적인 다양성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메인 게스트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게스트에만도 이소라, 다이나믹 듀오, 김조한 같은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정도가 아닌가.

 

자유로 가요제에는 지드래곤이나 보아처럼 국내 대형 기획사의 화려한 가수들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미여관 같은 이제 막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인디밴드가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장미여관의 육중완의 옥탑방에서 노홍철이 YG 사옥을 가리키며 게찜을 먹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하와 장기하와 얼굴들이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점심을 먹는 YG 식당을 급습하는 장면도 말이다.

 

여기에 유희열이나 김C 같은 이미 예능을 통해 믿고 보는 캐릭터들의 가세는 자유로 가요제의 예능을 남다르게 만들었다. 특히 감성변태 유희열과 유재석이 곡 선정을 하면서 서로 댄스와 R&B를 고집하다가 <100분토론>(?)까지 하는 이야기나, 제주도를 여행하며 김C의 독특한 음악 세계에 점점 빠져 들어가는 정준하의 이야기, 그리고 정형돈과 지드래곤이 퀴어코드를 활용해 마치 연인처럼 밀당을 하는 이야기는 큰 웃음은 물론이고 발표될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보통 시즌제를 하는 가요제나 오디션 프로그램이 빠지는 늪이 바로 이 반복과 패턴화로 인해 생겨나는 피로감일 것이다. 제 아무리 파괴력을 보여준 소재라도 반복하면 힘이 빠지는 것이 당연지사. 과거 <남자의 자격>이 했던 하모니편은 단적인 사례이고, 최근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예전 같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무한도전> 가요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더 승승장구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한도전> 가요제 특유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기인한다. 보통 시즌제 프로그램이 작게는 몇 달마다 길게는 1년 정도를 두고 반복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휴지기가 2년이다. 그만큼 이전의 열기가 충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즌제에서 휴지기가 중요한 것은 준비기간이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한껏 올라가 있는 기대감을 상대적으로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야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의 기대감을 빼는 방식에서 더 중요한 것은 독특한 스토리텔링 속에도 들어있다. 보통의 가요제라면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나는 가수다>다. <나는 가수다>는 출연자들이 방송국을 찾아오는 순간부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장면, 리허설 등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가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꾸로다. 멤버들은 가수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한없이 기대감을 뺀다. “과연 저렇게 해서 노래는 나올 수 있을까”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 자유로 가요제에서 보듯이, 막상 무대에서 발표된 곡들은 기대 이상의 결과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토리텔링은 예능적으로 접근하고(기대감을 낮추고) 무대는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방식.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과의 이야기까지 가사로 녹여진다면 웃음과 즐거움을 넘어 감동까지 주는 무대가 완성되는 셈이다.

 

방송에 있어서 비슷한 소재를 갖고 회를 거듭하면서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가요제는 그 독특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통해 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무한도전> 가요제는 가요제 형식의 <무한도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게다. 이것은 또한 무수한 시즌제를 추구하는 방송 프로그램들에게도 분명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형식 도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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