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훌륭' 존경 말고 존중, 견주 말고 보호자

 

"너 예쁘지 않아. 그런 행동은 하나도 예쁘지 않아. 존중받을 필요가 없어. 반려견들을 존중해야 되는 건 맞아요. 근데 많은 보호자분들이 뭘 실수하시는지 아세요? 반려견들을 존경해요. 존중해야 하는데 존경해줘요. 그러면 반려견들은 그 보호자가 싫어요. 보호자로서의 역할은요 하고 싶은 걸 다하는 게 아니라 지금 이 행동이 옳은 지를 판단하는 거예요. 보호자가 돼야 해요. 보호자가."

 

KBS <개는 훌륭하다>에 출연한 레브라도 레트리버 '녹두'는 제작진이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너무나 반갑게 달려와 같이 놀자고 조르는 '천사견'이었다. 도대체 이 반려견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보호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잠깐 부모님 댁에 녹두를 맡겼는데 옆집 포메라니안을 문을 열고 나가 물고 흔들어 결국 죽게 했다는 것.

 

녹두의 문제는 대형견 전용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가자 금세 발견됐다. 다른 개를 보자 사납게 짖기 시작했고 철창 저편에 있는 개에게 달려들기까지 했다. 목줄을 쥐고 있어도 엄청난 힘으로 달려 나가 보호자가 통제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실제로 보호자는 산책 도중 그렇게 튀어나가는 녹두 때문에 넘어져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문제는 결국 보호자에게 있었다. 반려견이 하는 행동들을 그저 받아주기만 했을 뿐, 해야할 행동과 그러지 말아야할 행동들을 구분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고, 사회성을 키운다며 카페에 데려다 풀어 놓음으로써 오히려 경쟁심만 본능을 갖게 만들었다. 강형욱은 많은 보호자들이 반려견이 다른 반려견과 만나게 하는 걸 좋게 생각하지만 반려견은 먼저 보호자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가 보호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그 결과는 의외로 클 수 있다는 걸 녹두의 사례는 보여주고 있었다. 존중해줘야 할 반려견을 존경하듯 무조건 예뻐하고 챙겨주기만 해서 녹두는 보호자를 보호자라 여기지 않았던 것. 강형욱은 더 큰 문제가 다른 개를 향한 녹두의 이런 공격성이 자칫 어린 미취학 아동들을 향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정말 놀랍게도 강형욱의 훈육이 들어가면서 녹두는 금세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레브라도 리트리버라는 종이 그렇게 훈련 습득 능력이 뛰어난 종이었다. 보더콜리 헬퍼독을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공격성을 드러냈던 녹두는 보호자에게 집중시키는 훈련을 통해 가까이 지나가도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개는 훌륭하다>가 지금껏 지속적으로 내놓은 메시지는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개가 문제가 아니라 보호자가 문제라는 거였다. 조금만 훈육을 해줘도 금세 변화되는 녹두의 사례는 그가 심지어 '살생견'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된 것이 누구의 잘못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녹두는 충분히 훌륭한 반려견이었다. 다만 보호받지 못했을 뿐.

 

흔히들 반려견에 대해 하는 착각이 반려견이 자신을 보호해주기 위해 있는 존재처럼 생각한다는 점일 게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다. 보호자가 반려견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 반려견도 보호자를 보호자로 여기며 따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존이 가능해진다는 점이었다.

 

"전혀 훈육을 하지 않는 보호자. 한 번도 내가 숫자도 안 가르쳐 보고 한글도 안 "전혀 훈육을 하지 않는 보호자. 한 번도 내가 숫자도 안 가르쳐 보고 한글도 안 가르쳐본 보호자. 선생님 붙여줬던 보호자. 그렇게 되면 얘는 보호자를 존중하지 않아요. 그럼 이제 보호자라는 말을 못 써요. 그냥 견주인 거예요. 개주인. 보호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많은 보호자들이 이렇게 키운다니까요." 반려견과 함께 하는 가족이라면 강형욱의 따끔한 일침에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보호자인가 견주인가.(사진:KBS)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는 은근 닮은꼴

 

<꽃보다 할배>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이른바 ‘일섭다방’에는 우리가 막연히 생각했던 어른신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귀여운 할배들의 ‘서열놀이’가 들어있다. ‘젠장 나이 70에 막내라니...’라는 자막과 함께 투덜대는 백일섭과 그 놀이가 재미있다는 듯 장난기 어린 얼굴로 뒤에서 웃고 있는 이순재, 그리고 백일섭에게 커피 타라고 시키는 신구는 나이만 쏙 빼놓으면 영락없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꽃보다 할배(사진출처:tvN)'

나이 들면 아이가 된다고 했던가. <꽃보다 할배>의 할배들이 그렇다. 그들에게 주어진 ‘배낭여행’이라는 중차대한 미션은 그들을 순식간에 아이들로 만들어버린다. 파리에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이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오는 장면처럼 흥미진진한 모험의 연속이다.

 

누가 뭐라 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직진하는 이순재와, 무거운 짐 때문에 따라가지 못하자 아내가 정성스럽게 챙겨준 장조림통을 바닥에 내팽개치는 백일섭이 그렇다. 또 그 투덜대는 막내(?)를 살뜰하게 지켜주고 그가 버리고 간 꽃다발을 챙겨 그의 가방에 꽂아주는 바르고 착한 어린이 같은 신구와, 드라마 속에서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멋진 스타일에 여전히 소년처럼 보는 이를 설레게 만드는 미소를 짓는 박근형이 그렇다. 이들은 적어도 <꽃보다 할배>에서는 소싯적의 아이들로 돌아간 모습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여행이 주는 힘 덕분이다. 일상과 일 속에서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자 후배들이 우러러보는 국민배우들이지만, 여행은 그런 무거운 타이틀들을 모두 벗어버리게 만든다. 그들은 그저 오래도록 함께 같은 길을 걸어온 형 동생 사이일 뿐이다. 나영석 PD는 아마도 <1박2일>을 통해 이미 여행이 주는 감성이 때 묻은 어른의 껍질을 벗어내고 대신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게다. 중년의 어른들도 계곡 앞에 서면 입수를 걸고 목숨 걸듯 복불복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보면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전혀 다른 소재를 갖고 있으면서도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쪽이 이제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할배들을 조명한다면, 다른 한쪽은 실제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으로 무장된 밝은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여행이라는 일상과는 다른 시공간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할배와 아이는 비슷한 구석이 많다. 보통의 성인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어떤 경우에는 보호자(?)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약자의 위치는 예능이 주는 간단한 미션조차 흥미진진한 모험으로 만들어준다. 아이들에게 시골이라는 낯선 공간이 하나의 도전이라면, 할배들에게는 배낭여행으로 가게 되는 외국의 낯선 공간이 도전이 되는 셈이다. 낯선 환경 속에서 아이들에게 아빠들이 보호자로 서 있다면, 할배들에게는 이서진이라는 젊은이가 보호자가 되는 셈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기호가 점점 ‘조미료 없는 예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할배와 아이라는 약자의 지점은 중요하다. 성인이라면 훨씬 강도 높은 미션이 주어져야 그만한 효과를 보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다이빙을 한다든지 군에 재입대를 한다든지 해야 그만한 효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할배와 아이처럼 출연진 자체를 약자로 두게 되면 단순한 일조차 미션이 된다. <꽃보다 할배>의 파리에서 지하철을 타고 숙소 찾는 첫 번째 미션이 별다른 조미료(설정) 없이도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되는 이유다.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지금 현재의 예능 트렌드는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서 자신의 순수했던 모습을 다시 찾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진짜사나이>가 다 큰 장정들의 아이 같은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혹독한 군대로 들어가야 하는 반면, 할배들과 아이들은 이 순수함을 그 자체로 보여줄 수 있는 인물군들이다. 어쩌면 향후의 새로운 예능 트렌드는 <꽃보다 할배>와 <아빠 어디가>가 보여준 그 순수의 지대에서 새롭게 피어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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