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부적응자된 강호동,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신서유기2>에서 강호동은 예능 부적응자. 시즌1에서 처음 버스에 올라 오랜만에 모인 옛 <12> 멤버들이 그에게 옛날 사람이라고 놀릴 때만 해도 그게 그저 캐릭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캐릭터가 아니고 어쩌면 진짜 그의 부적응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게 시즌2에서는 여실히 느껴진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중국의 한 공항에 내려놓고 제작진이 도주해 버리는 그 상황에 강호동은 마침 전화를 받고 있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강호동은 또 당했다는 실감했다. 시즌2 2편에서 강호동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인터뷰를 통해 내가 영석이한테 말리나? 삶 자체가 말리는 것 같애. 영석이한테.”라고 말하며 한숨을 토해냈다.

 

청두에 도착한 날부터 낙오를 경험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있었던 기상미션(말 조각상 앞에서 사진 찍기)에서 1등을 할 수도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찾아놓고도 4등을 하는 그는 확실히 <12> 시절의 야생 시베리안 수컷 호랑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복불복 퀴즈에서 연거푸 계속 답변을 하지 못해 쩔쩔 매고 그래서 방송 분량 또한 나오지 않게 만드는 강호동은 낯설다. <12> 첫 회에 충북 영동에 가서 나무 아래 평상 하나에서도 충분히 분량을 만들어내던 그가 아닌가.

 

복불복이 가혹하다는 듯이 제작진이 꼬치를 걸고 복복복 게임을 제안하지만 그건 일종의 함정 같은 것이었다. 강호동이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져야지 계속 먹을 수 있는 게임에서 오히려 이기고는 환호하는 그의 모습이 연출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것 역시 나영석 PD 앞에서 예전보다 더 말리는그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지만.

 

그런 강호동을 막내이자 예능 초보자인 안재현이 옆자리에 앉아 다독이고 챙기는 모습은 예쁘지만 한편으로는 짠하게까지 느껴진다. 침체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이수근이 이동 간에 뜬금없는 콩트 개그를 선보이는 것 역시 강호동에게는 안쓰러운 대목이다. 늘 중심에 서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강호동은 미션 수행을 위해 달리면서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 힘겨워하고 버스에 오르면 좌석의 허리를 꺾어놓을 정도로 퍼질러지는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웃기려고 노력하지만 과거처럼 빵빵 터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떨 때는 잔뜩 주눅든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는 그의 모습은 한 때 야생의 강인함을 보여줬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힘이 많이 빠져버린 슬픈 짐승 같은 처연함마저 느껴진다.

 

아마도 이것은 지금의 강호동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일 게다. 그는 방송 복귀 후 꽤 오랫동안 여러 프로그램을 전전하면서 안간힘을 써왔다. 하지만 시청률도 반응에서도 그는 예전만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유재석처럼 강철 체력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다. 또한 예능의 나이는 트렌디하기 이를 데 없어서 그 흘러가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적응을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거기서부터 비로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가장 자기 자신인 그 진짜 모습에서부터 시작해야 새로운 것도 그의 방식으로 적응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신서유기2>의 강호동은 그래서 짠하지만 많은 걸 내려놓은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일찌감치 이랬어야 한다. 이제 비로소 그는 밑바닥에 발이 닿은 것이니. 그리고 그 밑바닥은 예능인들에게는 가장 좋은 포지션을 만들어주는 위치임이 분명하다

새 멤버보다 주목되는 <1박2일>의 변화

 

사실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근원을 좇다 보면 거기서 우리가 만나는 건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다. 국내 예능에 있어 <무한도전>이 건드리지 않은 아이템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이것은 <무한도전>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성격상 끊임없는 형식 도전을 해온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12>도 어찌 보면 <무한도전>이 했던 여행 도전의 한 분파로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1박2일(사진출처:KBS)'

그래서일까.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도 <무한도전>을 지향하는 경향이 생긴다. <무한도전>의 추격전 같은 콘셉트에서 그 한 분파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런닝맨>이 지향했던 것도 무한 게임도전같은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한 소재에 집중해 끝없는 게임 형식의 도전을 해왔던 것. 하지만 <12>은 조금 달랐다. <무한도전>의 한 지류로 등장했지만 오래도록 해오면서 <12>만의 색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색깔은 다름 아닌 토착적인 느낌, 국내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 무엇보다 복불복 게임 같은 것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12>은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껏 달려왔던 길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색다른 도전과 느낌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얼빈 특집은 <12>의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국내 여행지만 고집했던 <12>이 해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최근의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워낙 밖으로 구석구석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한계 같은 것을 넘고자 하는 시도다. 물론 토착적인 느낌이 강한 <12>이 해외를 가게 된다고 해도 거기에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하얼빈 특집에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좇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12>의 해외 행에 대한 충분한 명분과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하얼빈 특집을 통해 <12>은 이제 해외로 가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그만한 의미만 있다면 갈 수 있다는 걸 하얼빈 특집은 인증해준 셈이다.

 

땅끝마을 해남으로 떠난 <12>봄맞이 간부수련회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봄맞이정도가 지금껏 해왔던 <12>의 특집이었을 게다. 하지만 <12>은 여기에 간부수련회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프닝에 선거철을 맞아 갖가지 선거 행태를 풍자하는 반장 선거’, ‘회장 선거’, ‘왕 선거’, ‘짱 선거같은 걸 집어넣었다. 선거를 풍자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열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웃기는 상황극들이 만들어졌다.

 

유호진 PD는 이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저 여행을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 담아내기보다는 이제 확실한 미션들을 계속 투입해 재미있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음식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에서도 알파고를 풍자한 알파오를 통해 오목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투입되었다. 사실 현지에서 그 특성에 맞게 복불복을 꾸며왔던 <12>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현재 대중들이 관심을 가진 사안들, 이를 테면 선거나 알파고 같은 아이템들을 <12>이라는 여행 버라이어티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프로그램 중간에 출연자들을 통해 얘기된 것이기도 하지만 <12>은 아직 김주혁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 멤버를 충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새 멤버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12>의 새로운 변화들이다. 지금껏 유호진 PD가 들어와 <12>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원년의 그 정서들을 새로운 멤버들을 통해 잘 살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유호진 PD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12>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을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12> 안에서도 해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1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해왔던 일이니 어떤 면에서는 새로움을 시도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 시도가 <12>의 외연을 넓혀줄지, 아니면 본래 색깔을 퇴색 시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건 <12>로서는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아쉬움도 예능으로, <12>의 이별이란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지만 구탱이형 김주혁을 보내는 <12>의 마음이 헛헛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맏형으로서의 비빌 언덕 하나가 사라지는 듯한 아쉬움. 그러니 김주혁이 떠난 그 맏형의 자리를 김준호가 극구 싫다며 차태현에게 넘기려 한 건 단지 그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었을 게다. 늘 김주혁이 서 있던 그 자리가 이제 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을 테니.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12>은 그 아쉬움도 예능으로 풀어낸다. 들어올 땐 맘대로 들어와도 나갈 땐 맘대로 못 나간다며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을 고난의 시간으로 채워 넣으려 한 것. 처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새벽 잠자리에 기습해 잠을 깨우고, 미리 짜놓은 대로 가장 가기 힘든 여행지 고흥을 선택하게 만든다. 고흥에는 몸으로 하는 예능의 성지(?)’가 되어버린 갯벌과 꼬막채취가 기다리고 있다.

 

힘든 일정을 함께 소화해가며 멤버들은 이게 다 김주혁 탓이라고 몰아세운다. 김주혁이 하차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하루를 보내게 됐다는 것. 그러니 뻘밭에서 게임을 하며 김주혁을 공격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얻은 꼬막으로 저녁 식사 요리를 놓고 벌인 경매에서도 동생들은 김주혁이 꿈꾸던 소박한 식사를 못하게 방해하며 즐거워한다.

 

부친인 고 김무생이 방송을 통해 증언한 것처럼 김주혁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무뚝뚝한 성격이란다. 그러니 괜스레 하차하는 걸 갖고 동생들이 울적해하거나 마음 쓰는 걸 김주혁은 원치 않았을 터다. <12>은 그래서 평상시보다 더 세게 하던 대로의 복불복을 진행했을 것이다. 동생들도 그 어느 때보다 김주혁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었을 테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고흥으로 간 <12>은 김주혁의 마지막 촬영이라고 해도 특별히 다를 바 없는 한 회로 채워진 느낌이다. 이런 방식은 <12>이 왜 여전히 인기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사실 <12>은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시즌2는 프로그램의 존폐를 얘기할 정도로 위기 상황도 겪었다. 하지만 시즌3에 와서 다시 안정기를 되찾았다.

 

출연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상황은 사실 <12>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는 큰 사건이지만, 유호진 PD가 이를 대하는 방식은 지극히 차분하다. 아쉬움이 있고 그 빈자리가 큰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호들갑을 떨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어쩌면 유호진 PD가 생각하는 여행이고, <12>일 지도 모른다. 여행이라는 것이 본래 거창하지 않아도 함께 만나고 떠나고 헤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네 사는 모습이기도 하고.

 

유호진 PD가 그간 2년 동안 <12>이 찾아간 곳을 채워 넣은 지도는 전국 방방곡곡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빽빽했다. 그렇게 한 회 한 회 걷다보면 그렇게 거대한 족적이 남겨진다는 걸 그 지도 한 장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지점 하나를 손으로 찍으면 그 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돋아난다. 김주혁은 그 많은 기억들 속에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아쉬움을 예능으로 풀어낸 <12>이 맏형 김주혁을 떠나보내는 방식은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면서도 그 안에서 페이소스가 묻어난다. 그것은 10년을 달려온 <12>을 우리가 떠올릴 때 갖게 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먼저 왁자한 웃음이 피어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아련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그런 감정. 그 많은 만남들이 사실은 늘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데서 오는 흐뭇하고 아쉬운 그 느낌.



<12>의 구탱이를 자처하던 김주혁의 존재감

 

토사구탱!” <12>에서 토사구팽을 잘못 알고 그렇게 외치는 순간 김주혁은 구탱이형이 되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김주혁의 <12> 적응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즉석에 벌어진 인기투표에서 꼴찌를 당한 그 굴욕 앞에 김주혁은 진심으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때는 연기자로서의 자존심이 예능이라는 판에서 망가지는 자신을 아직까지는 용납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하지만 어느 음식점에서 얼굴에 영구 분장을 하고 영구 흉내를 자처하는 김주혁은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그 영구 흉내도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동생들은 그런 김주혁의 노력에 활짝 웃으며 리액션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런 과한 설정을 통한 웃음도 김주혁의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차츰 <12>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차렸다. 맏형이라는 그 위치가 바로 자신이 서야할 곳이었다.

 

<12>은 출연자들의 마치 형제 같은 모습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웃음은 물론이고 때로는 짠한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여행이 소재일 수밖에 없고 그 여행 위에서 복불복 게임을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자극제지만 그 바탕에 깔린 가족적인 형제애가 없다면 이 모든 것들의 색깔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시청자들도 저들과 같이 여행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해주는 그들만의 끈끈함이 있어야 여행이든 게임이든 <12> 특유의 훈훈함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김주혁이 맡은 맏형이라는 역할은 그래서 튀지는 않지만 중요하다. 항상 맏형이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 동생들은 찧고 까불고 하는 것이 편안해진다. 본인이 드러내진 않아도 동생들이 놀 자리를 든든하게 마련해주는 일 그게 맏형이 가진 존재감이다. 그래서 적절히 위치를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적당히 자신을 망가뜨려 동생들이 놀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김주혁은 복불복 게임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아마도 설정이 아닌 진짜였을 몸 개그를 보여주기도 했고, ‘토사구탱처럼 퀴즈 대결에서도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또한 슬기작가와 러브라인을 형성함으로써 시커먼 남자들의 예능 <12>에서는 좀체 없었던 달달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응답하라1988>에서 김주혁은 훗날의 덕선 남편으로 깜짝 등장해 연기를 선보였다. 연기가 본업인 그에게 연기에 대한 갈증은 그 누구보다 깊었으리라. 이제 <12>을 하차하지만 대중들은 이로써 더 많은 드라마, 영화에서 그를 보기를 원할 것이다. <12>을 통해 대중들이 그에게 갖게 된 친근한 이미지는 연기에 있어서도 자양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안한 이미지는 물론이고 그 정반대의 변신도 그만한 반전효과를 줄 테니.

 

김주혁은 <12>을 떠나지만 구탱이형의 그 존재감은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그 빈 자리에 남아있을 것 같다. 늘 그가 선 자리는 구탱이였지만 <12>의 훈훈한 공기를 만들어주던 장본인이 바로 그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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