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부동산’이 은유하는 부동산 공화국의 현실

 

부동산이 현재 우리네 대중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라는 건 최근 나온 드라마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즌2까지를 마친 SBS <펜트하우스>는 강남의 초고층 주상복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 드라마로, 그 밑그림에는 부동산과 교육(이것도 부동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의 현실이 깔려 있다. 종영한 JTBC <괴물>이나 tvN <빈센조>에서도 부동산은 드라마의 중요한 밑그림이다.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일련의 실종과 살인사건을 다룬 <괴물>에는 ‘재개발’이라는 이슈가 진짜 괴물의 얼굴을 숨기고 있고, <빈센조> 역시 금가프라자라는 상가 건물을 재개발하려는 건설업체와 이를 막으려는 입주자들의 대결로부터 시작하는 드라마다. 또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마인>은 효원그룹이라는 재벌가의 대저택을 부감으로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그것 역시 대저택이라는 부동산을 중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다. ‘내 것’을 뜻하는 <마인>이라는 제목이 담고 있듯이, 대저택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에서의 위계를 드러내는 부동산의 위력을 상징한다. 

대박부동산

KBS 수목드라마 <대박부동산>은 바로 이러한 최근 대중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겨냥한 시의성 높은 작품이다. ‘귀신 들린 집’ 전문 부동산이라는 기막힌 설정을 가져온 이 드라마는, 원귀가 떠나지 않고 출몰해 집값이 뚝 떨어진 건물이나 집을 대상으로 중개업을 하는 ‘대박부동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박부동산의 퇴마사 홍지아(장나라)는 영매인 오인범(정용화)과 함께 집에 붙은 귀신을 퇴치하고 제 값에 부동산 매매를 해준다. 언제 한 푼 두 푼 벌어서 집 장만 하느냐며 아예 집 갖는 걸 포기한 채 사기를 쳐 살아가는 오인범은 홍지아와 일하면서 집과 얽힌 한 맺힌 사연들을 접하게 되고, 그저 일로써 퇴마만 하려는 홍지아를 설득해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는 데 앞장선다. 

 

설정은 ‘퇴마’를 하는 오컬트 장르에 공포가 더해진 B급 코미디처럼 가볍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네 부동산 현실이 들여다보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례들을 담고 있다. 임신한 딸을 위해 엘리베이터 있는 집을 사려다가 분양 사기를 당해 집도 돈도 다 날려버린 후 결국 화병으로 사망한 어머니, 기껏 고생해 대박을 냈지만 집주인에게 쫓겨나 이에 항의하다 실랑이 끝에 사망한 세입자, 임대아파트 사람들을 차별하며 철조망까지 설치해 놓은 것 때문에 이를 넘다 떨어져 사망한 아이, 안전이 확보되어 있지 않아 범행을 당할 위기에 처한 혼자 사는 여성을 도와주다 오히려 사망하게 된 이웃집 여성... 이들은 원한 때문에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되어 사람들을 공격한다. 

 

영매인 오인범은 이 귀신을 자신의 몸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홍지아는 그 귀신의 이름을 적어 넣은 비수로 오인범의 가슴을 찔러 귀신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순간 오인범은 귀신이 원한을 갖게 된 사연을 빙의된 상태에서 알게 된다. 그래서 미제로 남은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설정은 어딘가 KBS <전설의 고향>의 원귀 한 풀어주는 사또 이야기를 닮았다. 처음에는 공포로 시작하지만, 차츰 원귀의 사연이 진짜 이야기가 되는 구조의 이야기 설정이다.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네 부동산을 둘러싼 현실이 보인다. 드라마는 퇴마 같은 형식을 취해 사실은 이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LH 사태가 일파만파의 파장으로 정치권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젊은 세대들이 영혼까지 끌어모아 어떻게든 집을 마련하려는 부동산 현실 속에서 <대박부동산>이 그려내는 원혼들은 그래서 마치 내 집이 없어 여기저기 부유하며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은유한다. 그들은 더 가진 자들에 의해 길거리로 나앉았다가 결국은 삶의 바깥으로까지 밀려난다. 그래서 복수하듯 그 자리에 머물며 끝내 얻지 못한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거기 들어오는 이들을 가로막는다. 이 얼마나 슬픈 원혼들의 출몰인가. 그나마 그 원혼들의 한을 풀어주고 있는 대박부동산마저 도학건설 도학성 회장(안길강)이 재개발을 위해 몰아내려 하는 이야기는 그래서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든다. 이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부동산 공화국의 참담한 현실이 그 대결구도 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글:PD저널, 사진:KBS)

'괴물', 신하균에서 이규회·천호진까지 모두 괴물로 만든 건

 

모두가 괴물 같다. 아마도 범죄 스릴러에서 누가 범인일까 하는 건 가장 중요한 드라마의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괴물처럼 보이는 드라마다. 그건 그만큼 이 범죄 스릴러의 동력이 멈추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처음에는 이동식(신하균)이 괴물처럼 보였다. 20년 전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 거의 미쳐버린 형사. 마침 외사과에서 만양파출소로 내려온 이 자그마한 동네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주원 경위(여진구)는 이동식을 범인이라 끝없이 의심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의심이 맞는 것처럼 이동식이 실종된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의 잘려진 손가락 열 개를 슈퍼 앞 평상에 가지런히 내려놓는 장면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준다.

 

이러니 이동식이 괴물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드라마는 이내 강민정을 죽인 범인이 그의 아빠인 강진묵이었다는 걸 드러낸다. 시청자들은 오리무중에 빠져버리지만, 그것이 강진묵을 통해 그가 숨겨 놓은 사체를 찾으려는 이동식의 큰 그림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결국 연쇄살인을 벌이고 사체들을 곳곳에 묻어버린 괴물이 바로 강진묵이었다는 게 확실해진다.

 

하지만 16부작 드라마에 고작 8회 만에 괴물이 밝혀졌다는 건 어딘지 찜찜함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범인은 강진묵만이 아닌 또 다른 인물이 있다는 게 그가 자살하며 남긴 '유연이는 아니야'라는 글귀를 통해 명확해진다. 그리고 강진묵이 20년 전 집을 나간 아내 윤미혜를 찾아다녔고, 그가 찾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같은 윤미혜의 친구인 방주선은 물론이고 업소에서 일하던 많은 여자들을 죽였다는 걸 알아낸다. 그가 강민정을 죽인 것도 20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윤미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던 그를 민정이 자극했고 결국 살해하게 된 것.

 

이렇게 보면 강진묵이라는 인물의 연쇄살인은 아내 윤미혜와 관련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이동식의 여동생인 유연이는 아니라며, "유연이는 내가 너한테 돌려줬거든.."이라는 말은 또 다른 범인이 있고, 그 범인이 누구인지를 강진묵이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동식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의 집 벽 속에서 유연이의 사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갑자기 자살하게 된 강진묵을 방조한 혐의로 남상배 파출소장(천호진)이 긴급체포된다. 강진묵이 암시한 또 다른 범인이 그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만들어지고, 실제로 강진묵이 자살하던 날 누군가 유치장을 찾아와 그에게 낚시줄과 윤미혜의 시체 검안서를 건네줬고, 그 날 남상배가 그 곳에 들어가는 걸 유재이(최성은)는 목격한다.

 

한 걸음 뒤편에 있었지만 남상배는 어딘가 이상했던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을 챙기는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이동식이 슈퍼 평상 앞에 잘려진 손가락을 놓는 장면이 찍힌 CCTV를 지웠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숨겨진 과거는 유재이의 모친이자 실종된 한정임의 첫 사랑이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가 숨겨진 또 다른 범인일까.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 같이 괴물처럼 보이고 무언가 자신들만의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이 범죄스릴러를 끝까지 쫄깃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런데 이렇게 괴물로 보이는 이들은 모두 저마다 실종된 이들을 애타게 찾는 인물들이다. 유연이를 20년간 찾아온 이동식은 물론이고, 연쇄살인범이었던 강진묵도 집 나간 윤미혜를 20년간 찾아 헤맨 인물이다. 그리고 아마도 남상배 역시 사라진 첫사랑 한정임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까.

 

실종된 인물을 수십 년 간 찾아 헤맨 자들이라는 상황은 이들의 이상한 행동들조차 납득하게 만든다. 저 정도의 절박함이라면 저런 '미친 짓'도 하게 될 것이라는 공감이 생기는 것. 그래서 <괴물>의 등장인물들은 모두가 괴물 같은 느낌을 주고, 그것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괴물>은 이런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얼 말하려는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이 낙후되어 있는 변두리라는 공간과, 심지어 사람이 계속 실종되어도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그 공간의 쓸쓸함과 소외가 어떤 괴물들을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개발, 부동산 같은 투기적 목적으로만 바라보는 땅 속에 사라져버린 사체들이 나온다는 건 그래서 강렬한 비판의식을 담아낸 은유처럼 읽힌다. 거기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니까.(사진:JTBC)

'펜트하우스'가 개연성 없는 막장에 시청자를 중독시키는 방식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사실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틀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복수극이다. 김순옥 작가가 늘 해왔던 방식의 반복. 사회적 공분을 일으킬 만큼 추악한 악당들의 갖가지 행태들이 먼저 공개되고, 그렇게 당하던 이들이 저들에게 처절한 응징을 해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펜트하우스>라는 제목은 이 드라마가 지목하고 있는 공분의 대상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미 JTBC 드라마 <SKY 캐슬>이 끄집어냈던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이른바 대한민국 0.1%의 부를 차지한 이들이 갖고 있는 천박한 선민의식과 갑질 그리고 그것을 핏줄로 이어받는 자식 교육의 문제다. 물론 <SKY 캐슬>은 그 문제의식을 가져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냈지만, <펜트하우스>는 완성도보다는 그 소재의 자극성만을 끌어왔다. 완성도? 자극과 당장의 사이다를 위해서라면 그런 건 별 중요하지도 않다 여겨지는 대본과 연출이 <펜트하우스>에서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게다가 천민자본주의의 갑질과 대물림되는 불공정한 교육의 문제에 <펜트하우스>는 '부동산'이라는 뇌관까지 더했다. 현재 한정 없이 치솟는 부동산 시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있는 대중들은 <펜트하우스>가 꺼내놓은 부동산을 통한 일확천금의 소재에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다. 그것을 하나의 로망처럼 여기면서도, 그것이 저들 가진 자들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다.

 

드라마는 이 양가감정을 끌어와 헤라팰리스라는 국내 최고가의 부동산에 입주한 이들에 대한 분노를 끌어내고, 이들과 대적해 나가는 오윤희(유진) 같은 서민이 복수를 꿈꾸는 심수련(이지아)과 공조해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고 그래서 부동산 재개발을 통해 서민들의 피눈물을 자신들의 주머니 속 돈으로 만들어내던 악당들 주단태(엄기준), 이규진(봉태규), 하윤철(윤종훈)을 곤경에 처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통해 사이다를 던진다. 오윤희는 결국 이 부동산을 통한 복수(?)로 헤라팰리스에 입주한다.

 

드라마는 매회 공분의 대상들이 하는 악행들을 마치 불길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던져 넣는 장작처럼 제공한다. 주단태는 불륜에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고, 이규진은 이를 위해 폭력까지도 스스럼없이 쓰는 악마의 모습을 드러낸다. 헤라팰리스에 사는 아이들 역시 악마들처럼 그려진다. 오윤희의 딸 배로나(김현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주석훈(김영대), 주석경(한지현), 하은별(최예빈), 유제니(진지희) 같은 아이들은 학생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악마의 모습을 드러낸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시청자들은 그래서 이들의 악다구니에 거슬리지만 자극을 받고, 공분을 일으키는 악역들에 뒷목을 잡으면서 동시에 이들과 대적해가며 조금씩 돈을 벌어 부유해지고 하나씩 복수를 해나가는 심수련과 오윤희의 공조에 빠져든다. 그래서 마치 드라마는 누구나 이야기만 들어도 속이 퍽퍽해지는 고구마 현실(부동산, 교육문제)을 끌어와 죽 나열해 보여주고 거기에 사이다 한 잔씩을 주는 방식으로 시청자들을 조금씩 그 세계에 중독시킨다.

 

이런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방식이 잘못된 건 없다. 게다가 대중들이 공분을 일으키는 특권층들의 불공평한 부동산이나 교육문제를 밑그림으로 끌어온 건, 드라마가 현실의 결핍을 가져와 판타지로 채워주는 그 기능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드라마를 막장이라고 부르며 마치 발암물질 보듯 하게 되는 건 이런 이야기의 소재나 틀거리 때문만이 아니다.

 

이 뻔한 막장의 중독이 위험한 건, 이런 고구마와 사이다가 존재한다면 드라마의 개연성이나 완성도 따위는 상관없다는 식의 접근방식에서 나온다. 도대체 저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엉터리 개연성으로 당장의 사이다를 던져주는 건 전혀 현실성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는 오히려 더 큰 허탈감을 줄뿐이다. 그건 마치 당장 목이 말라 바닷물을 들이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드라마가 현실에 어떤 의미를 제시하는 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지만, 반드시 꼭 의미만을 지향할 필요는 없을 게다. 하지만 적어도 개연성 자체를 무시하고 내놓는 사이다란 오히려 현실에서 돈을 가진 자들이 마음껏 갑질 하는 삶이 당연하다는 식의 의식을 드러낼 뿐이다. 권선징악의 막장드라마들이 맨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악당들이 무너지는 결말로 끝을 내지만, 그 과정의 대부분을 악당들의 세상으로 채워 넣음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거나 당연하게 내세우는 듯한 불편함을 안기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건 일종의 공해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보다는 세상은 본래 그렇다는 걸 정당화하는 또 다른 방식이 아닐까. 이건 드라마일뿐이야 라고 말하지만, 거기 담겨진 부동산이나 교육문제는 결코 드라마로만 치부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개연성 없는 이야기들은 마치 현실에 있는 부동산이나 교육문제가 가진 심각함을 너무나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가려버린다. 간간히 던지는 바닷물을 사이다인양 던져주고, 그걸 마셔봐야 갈증만 더할 뿐이라는 걸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드라마는 영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사진:SBS)

'서울집', 집방은 과연 우리의 집에 대한 관념을 바꿔줄까

 

이른바 집방 전성시대다. MBC <구해줘! 홈즈>가 의뢰인의 요구에 맞는 집을 연예인들이 대신 찾아주는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도심에 직접 집을 짓는 협소주택이나 도심을 벗어나 전원주택을 찾는 이들을 조명하며 주목을 받은 건 현 대중들의 집에 대한 로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대목이다. 그건 어떻게든 직장 가깝고 학군 좋은 서울에서 작고 비싸더라도 아파트 살이를 할 수밖에 없는 부동산 현실 속에서 정반대로 서울을 좀 벗어나더라도 진짜 집 같은 집을 꿈꾸는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 후 SBS가 파일럿으로 방영한 <나의 판타집> 같은 프로그램 역시 꿈꾸던 집을 찾아 연예인들이 그 공간을 체험해보는 시간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집주인이 그런 집을 짓게 된 이유가 등장했고, 그걸 공감하는 연예인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했다. 어쩌다 잠깐 밤에 들어가 몸을 눕혔다가 아침이면 빠져나오는 그런 집이 아니라, 여유 있게 정원을 산책하고 가족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오롯이 묻어나는 그런 진짜 집에 대한 로망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더욱 강력해졌다.

 

JTBC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분명 이러한 집방 전성시대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아예 '서울 바깥'을 앞으로 보여줄 집의 조건으로 달아 놓았다. 이것은 그간 도심으로 몰려드는 인구들 때문에 집이 점점 수직으로 세워지고 좁아지면서 가격은 높아진 서울로 대변되는 부동산의 현실을 저격하는 제목이다. 그런 집들을 과연 '우리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담겨있다. 요컨대 서울엔 없지만 서울 바깥에서 드디어 '우리집'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프로그램 콘셉트는 여타의 집방처럼 집을 찾아가 구경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바깥으로 나와 집을 직접 지은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들은 그 집이 그렇게 지어진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예컨대 권유진 의상감독의 양평집은 90대 노모에 대한 사랑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고, 김포에 사는 3형제를 위해 지은 집은 마음껏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게 하고픈 부모의 사랑과 다양한 취미를 가진 남편의 로망이 담겨 있다.

 

또 여주에 있는 벙커처럼 생긴 집은 고층을 올릴 수 없는 환경적 조건 때문에 오히려 밑을 파서 더 특색있는 집이 만들어졌다. 지하2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햇볕이 들어오고 지하이기 때문에 천연적인 단열 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집. 게다가 중정에 세워진 나무가 계절에 따라 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거실에서 방에서 욕실에서 저마다의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호사까지. 서울 바깥으로 나오자 도시에서는 도무지 꿈꿀 수 없던 집에 대한 상상력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연예인들이 일반인인 집주인을 찾아가 만나고 그 집을 구경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한끼줍쇼>의 특징이 묻어난다. <한끼줍쇼>가 음식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눈다면,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는 집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를 뿐, 그 소통의 훈훈함과 즐거움은 유사하다. 특히 집주인의 이야기가 집의 건축 속에 자연스레 묻어나 있다는 점은 집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서울을 벗어나 꿈꾸던 집을 짓고 살아간다는 건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 또한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이제 더 이상 도시로 집중되는 삶보다는 지역으로 분산되어 저마다의 커뮤니티를 갖는 삶이 우리에게는 보다 안전하고 바람직한 삶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전히 현실은 꿈의 발목을 잡지만 그래도 꿈꾸는 일부터가 현실을 바꾸는 첫 걸음이 되지 않을까. <서울엔 우리집이 없다>가 부여하는 로망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 이유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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