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아름다운 클래식? 추한 적폐들과 힘겨운 청춘들

 

어째서 이 청춘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클래식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게 되었을까.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아름다운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의 선율이 흐르는 드라마지만, 그걸 연주하는 청춘들을 둘러싼 현실들은 보기 불편할 정도다. 교수라고 부르기조차 꺼려지는 이들은 선생이 아니라 적폐다. 학생들 위에 군림해 실력도 없으면서 젊은 청춘들의 열정과 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적폐들.

 

은근히 대학원 제자 운운하면서 사실은 체임버를 꾸리는 일을 시켜 먹는 이수경(백지원) 교수 때문에 채송아(박은빈)는 갖은 잔심부름까지 마다치 않았다. 대전까지 가서 중고거래로 교수의 브로치까지 사다줘야 하는 일도 꾹 눌러 참으며 감수했다. 단원들에게 티켓을 판매하는 일에도 앞장서고, 이수경 교수가 원치 않는 단원을 잘라내는 일도 대신했다. 하지만 당연히 체임버 단원의 일원이라 생각했던 채송아가 사실은 그저 '총무'였다는 걸 직접 이수경 교수에게 듣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건 아니라는 걸. 결국 그는 그 일을 그만 하겠다고 말했고 이수경 교수는 그런 선택이 채송아에게는 대단한 실수가 된다고 으름장을 논다.

 

이정경(박지현) 역시 송정희(길해연) 교수의 제자 양지원(고소현)의 레슨을 도와줬다는 사실 때문에 버려졌다. 송정희 교수와 알력이 있던 이수경 교수가 그 사실을 폭로했고, 결국 분노한 송정희 교수는 이정경에게 대놓고 '실패자'라는 막말과 함께 그를 버렸다. 이런 사정은 박준영(김민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그를 지도하는 유태진(주석태) 교수가 그의 연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온라인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클래식을 소재로 이를 은유해 멜로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지만, 갈수록 이 클래식업계의 '불편한 현실'을 끄집어내고 있다. 이렇게 된 건 이 아름다운 클래식을 선택한 청춘들이 어쩌다 그 자체를 좋아하지 못하고 또 좋아할 수 없게 되었는가를 담으면서다. 채송아는 뒤늦게 바이올린을 시작한 탓에 늘 꼴찌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며 무시당하고, 박준영은 가난해 재단의 도움을 음으로 양으로 받으면서 피아노 연주가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가 되어버린다. 부유하게 자란 이정경 역시 사고로 사망한 엄마의 그늘 아래서 바이올린 연주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었다. 어려서는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갈수록 평범해진 자신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시선들 앞에서.

 

클래식이라는 소재를 통한 평범한 청춘 멜로로 여겼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제 사회극으로의 면모까지를 더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클래식이라는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게만 보이던 세계가 사실은 경쟁사회와 스펙사회 그리고 부조리한 조직문화 같은 적폐적 현실 속에서 결코 아름답게만 볼 수 없다는 걸 이 드라마가 드러내고 있어서다.

 

물론 이런 사회극적 요소들은 드라마를 그저 달달하고 설레는 마음을 즐길 수 없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애초부터 그리려던 청춘멜로와 엇박자를 낸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는 '꿈'과 '사랑'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할 수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다. 꿈에 대한 이야기가 클래식의 현실을 가져와 사회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면,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빈부와 스펙의 현실이 드리워진 청춘멜로의 풍경을 그려낸다.

 

결국 무언가(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래서 그걸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일이 어째서 청춘들에게 이토록 어려워졌는가를 드라마는 꼬집고 있다. 채송아와 박준영 그리고 한현호와 이정경의 음악과 사랑의 변주가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 순수한 청춘들 앞에 놓인 암담한 현실 때문이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그 현실을 만들어내는 적폐들이 있어 이 청춘들이 아프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이 청춘들의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그저 달달한 청춘 멜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사진:SBS)

‘슈츠’, 미드의 정서적 한계를 넘게 해준 실감나는 현실

KBS 수목드라마 <슈츠>는 어딘가 우리 정서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건 아무래도 유명 미드 원작의 리메이크라는 데서 오는 한계일 게다. 사건들이 한 회에도 두세 개씩 등장해 중첩되고, 이를 동시에 해결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삶의 진리’ 같은 걸 끄집어내는 <슈츠>는 확실히 완성도가 높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서적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우리네 변호사들의 현실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미국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이런 이질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캐릭터가 최강석(장동건)이다. 그의 대사를 들어보면 일상어투라기보다는 명언을 의식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말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물론 그것이 뭐든 자신이 최고라고만 여기는 이 캐릭터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미드 원작이 갖는 정서적 한계점이 분명하지만, 최근 <슈츠>는 검찰과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그 이질감이 저절로 극복되는 신기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최강석의 검사 시절, 사수였던 오병욱(전노민)의 비리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다. 그가 결정적인 증거들을 빼돌려 판결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최강석이 알게 된 것. 최강석은 그럼에도 감찰에 들어간 오병욱의 비리를 증언하지 않으려 했지만, 홍다함(채정안)은 당시 자신이 모아온 비리증거들을 내놓음으로써 오병욱 스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검찰 전체가 최강석을 적으로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제아무리 비리를 저질렀지만 자신의 사수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강석 변호사와 사건으로 맞붙게 되는 검사들이 사력을 다해 그를 이기려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이면 오병욱이 과거 빼돌린 증거 때문에 감옥에서 이미 10년 넘게 복역한 이의 재심을 최강석이 맡게 되면서 검찰과의 갈등은 더 증폭되었다. 재심은 마치 검찰이 한 잘못을 인정하는 일처럼 여겨졌고, 그걸 당시는 검사였지만 지금은 변호사가 된 최강석이 맡았다는 것에 더 반발하게 된 것. 

의도적으로 선별된 에피소드이겠지만, ‘검찰과 맞서는 변호사’의 이야기가 최고의 몰입을 만들어낸 건 그 사안이 우리네 현실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로 지목되기 때문일 게다. 저 검찰 비리의 문제와 그 적폐 청산이라는 소재로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tvN <비밀의 숲>을 떠올려 보면 지금 <슈츠>가 담고 있는 이 에피소드가 어째서 미드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인 공감대를 만들어내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 새롭게 시작할 순 없지만 현재로부터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순 있다.’ <슈츠> 9회에 달린 소제목은 그래서 의미심장해졌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검찰과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최강석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과연 이 팽팽해진 대결의 끝에서 최강석은 ‘새로운 결말’에 이를 수 있을까. <슈츠>가 미드 원작의 한계를 벗고 우리네 정서와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사진:KBS)

‘비밀의 숲’이 남긴 여운,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려면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등, 이 작품이 엔딩까지 남긴 여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첫 회부터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엔딩까지 보여줬고,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남긴 울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 모든 사건의 설계를 했던 장본인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의 숲>이 하려는 이야기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관계와 검찰이 엮어진 오래된 유착과 그로 인해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적폐청산의 문제였다. ‘밥 한 끼’로 시작하는 관계들이 얽혀 거대한 욕망으로 변질되며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되는 괴물들. 한두 명의 검사가 뜻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그들만 배제되는 ‘비밀의 숲’. 그 비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비리의 숲’. 

이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해결해보기 위해 이수연 작가가 필요로 했던 건 이창준 같은 자기희생까지 해버리는 괴물과 심지어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제거되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황시목 같은 검사였다. 특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황시목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폐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이 모든 적폐들이 쌓이게 되는 그 시발점은 <비밀의 숲>이 말했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하게 되는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관계다. 그 관계에서부터 청탁이 시작되고 그 청탁은 법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들의 본질을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본질은 가해자들의 죄를 덮어버리고 대신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긴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시목 같은 다소 과장된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조직으로서 여전히 수장의 한 마디가 법이 되는 검찰과,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밥 한 끼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검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들. 그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이만한 무감함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는 걸 이수연 작가는 통감했으리라. 

검사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황시목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세워뒀다는 사실은 이수연 작가의 만만찮은 공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작가는 캐릭터가 바로 주제의식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밀의 숲>에는 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처리된 캐릭터가 없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숲 속’에서 황시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그 숲을 바꾸는 ‘첫 번째 나무’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이유로 엄청난 두뇌나 힘이 아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제시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을 희구하는 요즘, <비밀의 숲>의 이런 문제제기는 한번쯤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남궁민이 하니 다르네, 속시원한 풍자극 <김과장>

왜 하필 경리과장일까. 드라마에서 경리라는 직책은 어떤 사건의 보조적인 인물 정도였던 게 사실이다. 드라마로서 그다지 판타지를 줄만한 요소가 없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KBS 새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아예 대놓고 TQ그룹 경리과장이 된 김성룡(남궁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과장(사진출처:KBS)'

그가 그 자리에 들어오게 된 건 그 자리를 지키던 경리과장이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TQ그룹의 회계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그는 협박을 받았고 결국 자신으로서 모든 걸 덮기 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TQ그룹의 비리는 그래서 그 일개 경리과장의 사적 비리로 치부된다. 그가 떠나간 빈자리에 채용된 김성룡은 자신 역시 회사에서 이용되다 버려질 운명이라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하지만 TQ그룹 역시 이 새로 온 김과장에 대해 모르는 사실이 있다. TQ그룹의 재무이사인 서율(준호)은 새로 올 김과장이 군산에서 조폭사장의 경리 일을 해주면서 적당히 삥땅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덴마크 이민을 준비하는 적당히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라는 걸 간파하고 그 사실을 이용해 그를 좌지우지하려 한다. 하지만 김과장은 그의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그려내려는 속 시원한 사이다 풍자극의 핵심이니까. 

결국 이 드라마가 경리과장을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뜻은,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비리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기업의 돈이 오고가는 곳. 그 곳에서 빚어지는 많은 비리들과 그걸 몇몇 희생자를 만들어 덮으려는 기업의 음모. 우리네 현실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그 돈의 잘못된 흐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김과장>은 기업의 회계 비리를 파헤치고 진실을 드러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 주인공이 검사가 아니라 그 자리에 오게 된 김성룡이라는 경리과장이다. 이 선택은 이 드라마가 사회 비리에 대항하는 사이다 드라마를 지향하면서도 그 방식으로서 유쾌하고 코믹한 풍자극을 지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무거울 수 있는 스토리는 그래서 김과장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코믹함으로 한껏 가벼워진다. 한편에서는 회사의 모든 비리를 한 몸에 떠안은 채 나무에 목을 매는 비정한 무게감이 드리워지지만, 아무 것도 모른 채 TQ그룹의 경리과장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 면접관들 앞에서 눈물의 연기를 선보이는 김과장의 모습은 과장된 코미디로 웃음을 선사한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건 김과장의 진지함을 숨긴 채 한껏 무너지고 망가지며 가벼운 면면들을 드러내는 과장된 코믹함으로 캐릭터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남궁민의 연기다. 이미 SBS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 강렬한 악역 연기를 보여주고는 또 이와는 정반대 이미지의 코믹한 캐릭터를 SBS <미녀 공심이>에서 선보여 확실한 연기파 배우의 면면을 세운 그다. 

이번 <김과장>의 과장된 코믹 캐릭터는 이제 남궁민이 다양한 연기의 결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믿고 보는 연기자가 됐다는 걸 확인시켜준다. 자칫 잘못하면 엉성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그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기대하고 지지하게 만드는 캐릭터로 그려내고 있다. 그로 인해 <김과장>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속 시원히 건드려주는 풍자 사이다 드라마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