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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캅', 아줌마의 촉과 오지랖 어떻게 볼 것인가

 

아줌마들 특유의 촉과 오지랖은 일에 있어서 장점일까 단점일까. <미세스캅>의 최형사(김희애)라는 캐릭터는 제목에 걸맞게 아줌마들의 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장착한 인물이다. 첫 회에서 연쇄살인범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 여자의 집에서 시루떡을 보고는 그것이 '이사 떡'을 빙자한 침입이었다는 걸 간파하는 장면은 이 최형사의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다.

 


'미세스캅(사진출처:SBS)'

이 드라마는 기획의도에 들어있듯이 아줌마이기 때문에 가진 능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내 가족의 건강과 재산을 위해서라면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가족의 수호자'인데다, '남자의 직감보다 20배 이상' 뛰어난 아줌마의 '수사적 직감'이 그것이다. 기획의도에 따르면 아줌마의 촉이란 '예컨대, 남편 자동차 조수석 의자가 기울어진 각도만 보고서도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를 잡아낸다거나, 셔츠에 묻은 낯선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국과수 따위의 감정결과 없이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추정하는 능력, 심지어 짙은 스킨과 향수로 도배를 해도 낯선 여자의 향취를 맡아내는 경이로운 능력'을 말한다.

 

기획의도이니 다소간 과장이 있을 것이지만 여성들의 직감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건 인정할만한 이야기다. 게다가 아줌마들의 오지랖을 '쪽팔릴 것 없고 못할 것 없는' 장점으로 부각시킨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최형사가 연쇄살인범이 투항의지를 밝힘에도 참지 못하고 총을 쏜 후 감사를 받는 입장에서 거짓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밝힘으로써 파출소장으로 강등되는 이야기나, 그랬던 그녀가 아줌마 특유의 오지랖으로 자칫 자살사건으로 종결될 수 있었던 연예지망생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 이야기는 모두 이 '미세스캅'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최형사의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모습이 우리가 지금까지 형사물에서 봐왔던 형사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살벌한 범죄 현장에서 최형사 같은 인물이 과연 있을까 싶은 의구심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설혹 그런 인물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제로 드라마 같은 효과를 발휘할 것인가에 대해 고개가 갸웃 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마디로 비현실적인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본래 판타지를 그리기 마련이고, 따라서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판타지로 그려지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왜 불편한 느낌을 줄까. 그것은 혹시 지금껏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져 왔던 형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 아줌마의 이야기가 주는 이물감은 아닐까. 조직의 부정이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사실 '조직의 생리가 다 그렇지' 하며 생겨난 일종의 포기상태에 갑작스레 그것이 잘못됐다 얘기하며 나서는 아줌마 형사의 오지랖이 불편함을 주는 건 아닐까.

 

이런 의심이 드는 건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그 대결구도를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도 하다. 미세스캅 최형사는 여동생과 딸, 이렇게 세 여자가 한 가족을 이뤄 살아가고, 범죄 현장에서 살해당하는 이들은 모두가 여성들이며, 그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들이나 사건을 애써 덮으려는 그룹 회장과 2, 그리고 비리 경찰까지 모두 남성들이다. 그러니 마치 최형사 특유의 아줌마 오지랖이 깨나가는 건 단지 잘못된 수사가 아니라 잘못된 시스템으로 굳어져 있는 남성들의 세계처럼 보인다.

 

즉 최형사의 도발은 어쩌면 상명하복의 구악으로 남아있는 폭력적이고 나아가 범죄적인 남성들의 시스템을 향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남성들의 시스템 앞에 한때는 저항했지만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견고함에 포기하고 심지어 순응했던 남성들에게 최형사의 도발은 통쾌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잘못된 것과의 대결이 주는 통쾌함이지만,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불편함이다.

 

<미세스캅>이라는 드라마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 캐릭터나 캐릭터가 해나가는 성취 또한 현실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누구도 던지지 않는 그 불편한 질문을 던져본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미세스캅>의 최형사는 물론 비현실성으로 인해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계가 말하는 비현실성이란 오히려 그 세계의 비상식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이병헌 이야기에 대중들이 진저리를 치는 까닭

 

작년에 이어 올해도 새해 벽두의 빅 이슈로 떠오른 건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병헌 이야기. 디스패치가 단독 보도한 내용은 진위여부를 떠나 이 사안이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양파 껍질 같다는 걸 잘 보여줬다. 하지만 새해 벽두에까지 이런 듣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는 대중들을 진저리치게 만드는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한밤의 TV연예(사진출처:SBS)'

디스패치가 문자 메시지를 재구성해서 보여준 이병헌 이야기는 굉장히 복잡해 보여도 사실 팩트로만 보면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 이미 이민정과 결혼해 유부남인 이병헌이 이지연을 여러 차례 만났고 그 집에도 갔으며 선물도 하는 등 마치 연애라도 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함께 만나기도 했던 김다희는 그의 성적인 농담을 촬영했고 이 동영상으로 이병헌에게 50억 협박을 했으나 그는 도리어 이를 경찰에 신고해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라는 것. 이병헌 측에서는 문자 메시지 공개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이렇다할 반박은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피해자는 이병헌이고 피의자는 이지연과 김다희지만 그것은 협박에 관한 법적인 문제에 관한 것일 뿐, 그 과정에서 벌어진 관계들이 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이지연이나 김다희가 성적 농담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느껴 이를 성희롱으로 고소했다거나, 아내인 이민정이 이들의 관계를 부적절하다고 여겨 고소했다면 상황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무엇 때문인지 그러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법적인 상황은 이병헌이 피해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이병헌 이야기가 불쾌감을 주는 건 여기 관계된 인물들 대부분이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먼저 첫째, 유부남이 스무 살 연하의 여자들과 그런 사적이고도 은밀한 자리를 계속 했다는 것이 그렇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대중들이 용납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둘째는 이런 유부남과 여러 차례 자리를 함께 한 여자들이 비상식적이고, 셋째는 그 여자들이 동영상을 찍고 50억을 요구하는 협박을 했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런 상황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내 이민정도 상식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보이고 있어서인지 이 사안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이병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은 점점 증폭되고 있는데, 그가 아무런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로서 남게 된다는 것은 오히려 대중들의 공분을 만들어내고 있다. 차라리 합당한 벌이라도 받는다면 그런 분노가 어느 정도 삭혀질 수도 있을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할리우드를 오가며 심지어 아내와의 뜨거운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법적인 판단은 공판에 의해 결정되도록 놔두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병헌의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을 과연 대중들이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적으로 피해자임을 떠나서 이미 일부 대중들은 이병헌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를 치며 손가락질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반복되어 터져 나오는 사안들은 이제 듣는 것조차 피곤한 공해 수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병헌은 대중들의 지지기반으로 세워진 스타다. 그런데 그 기반이 자신의 적절치 못한 행동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런 그가 순애보의 주인공으로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을까. 대중문화는 상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상식은 과도한 걸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지켜야할 어떤 것일 뿐이다. 그 상식이 깨졌을 때 대중들이 등을 돌리는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최소한의 지켜야할 것을 지키지 않았다.

 

Posted by 더키앙

서세원의 빨갱이발언, 그렇게 영화에 자신이 없나

 

빨갱이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안 지키면 자녀들이 큰일 난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70년대도 아니고 2014년도에 빨갱이라는 단어를 듣게 되다니. 영화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시나리오 심포지엄에 이 영화의 제작 총감독을 맡은 서세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역시 믿지 못할 얘기다. 한 때는 그래도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던 개그맨이 아니었던가.

 

사진출처:채널A

서세원의 이 말은 이 날 행사에 참여한 김길자 대한민국사랑회 회장과 애국총연합회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영화 <변호인>을 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되살리려 한다며 비판한 것에 대해 덧붙여 나온 발언이라고 한다. 그것이 어떤 경로로 나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 발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와 이 영화의 시나리오 심포지움이라는 행사가 얼마나 비상식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서세원은 이런 얘기도 했다고 한다. “똥 같은 상업영화 때문에 한 국가와 시대, 민족이 잘못된 집단최면 상태에 빠지고 있다.” 또 이 영화의 후원자인 서울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대중들의 선택에 대한 상식 이하의 폄하가 깔려 있다.

 

대중들이 선택한 상업영화들을 같다 표현한 것이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은 졸지에 나라가 망하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이를 빨갱이발언과 연관해 생각해보면 이들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은 어쩌면 <변호인>을 본 천만 관객을 빨갱이에 물든 대중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설마.

 

물론 서세원은 자신의 발언의 과격함을 의식했는지 이번 기회에 하나가 되고 이념 싸움을 하지 말자.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승만 나쁜 놈, <변호인> 나쁜 놈 하지 말자는 발언을 덧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굳이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변호인> 운운한 것에는 분명한 의도가 엿보인다. 사실은 빨갱이운운해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념적인 잣대를 내세워 일종의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

 

사실 <건국 대통령 이승만><변호인>은 비교자체가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제목에서부터 비롯되듯이 <변호인>은 굳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아도 작품 자체로 충분히 대중들을 끌만큼 자족적인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다. 하지만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말 그대로 대놓고 이승만 대통령의 영화가 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영화는 제작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념적인 잣대부터 내놓는 것일 게다.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대중들의 자유의지로 선택 받기는 애초에 글렀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니 상업영화를 똥 같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런 영화를 선택한 대중들을 망국의 징조로까지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영화가 3000만 관객을 동원해 한국이 잃어버린 건국 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놀라운 발언이 아닌가. 영화를 얘기하면서 잃어버린 건국정신 회복을 운운하는 것도 우습지만, 여기에 3천만 관객 동원이라는 상업적인 수치를 덧붙이는 것은 말 그대로 블랙 코미디다.

 

영화가 영화로서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애국주의와 연결되며 허상을 만들었던 경험을 우리는 이미 심형래의 <디 워>논쟁에서 겪은 바 있다. 이번 빨갱이발언으로 논란에 불을 지핀 서세원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영화 제작 심포지엄에서 <디 워>의 망령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종교행사 같은 분위기에 국가를 운운하며 특정 이념을 강요하는 심포지엄. 제 아무리 이념도 장사가 된다지만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걸까. 설마 종교적인 믿음이나 애국주의까지 들먹여야 겨우 볼 수 있는 영화라 스스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 영화감독이라면 자신의 영화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는 없는 일일까.

Posted by 더키앙

<오로라공주>가 던진 비난 떡밥들, 입질은 있었나

 

아예 작정을 한 걸까.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오로라공주> 첫 회는 욕 먹기를 작정하기라도 한 듯한 장면과 대사와 상황이 쏟아졌다. 시작부터가 불륜이다. 오금성(손창민)이 내연녀에게 “한 달만 기다려. 정리하고 올께. 약속해.”라고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말은 자못 도발적이다. 저녁 7시 대 일일드라마로서 첫 장면에 불륜 장면을, 그것도 너무나 버젓이 던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색깔을 명확히 해준다.

 

'오로라공주(사진출처:MBC)'

다음 시퀀스는 임성한 월드의 특징을 정확히 보여준다. 여주인공 오로라(전소민)가 검사인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대면하는 장면. 위 아래로 훑어보며 “다 해봐야 십만 원 밖에 안되겠네”라고 대놓고 말하는 속물근성 덩어리 어머니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발끈하게 될 즈음, 갑자기 극 흐름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코털이 인서트된다. 임성한 작가의 전작들이 가끔씩 상상 신을 활용해 인물들의 꿈틀대는 속내를 꺼내보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오로라는 남자친구 어머니의 턱을 잡고 코털을 자르는 상상을 한다.

 

아마도 드라마에서 이런 코털 장면은 흔한 일이 아닐 것이다. 뾰족한 가위를 코 속에 넣어 자른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특이하면서 자극적이다. 하지만 그 뿐이다. 이 시퀀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 흐름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저 시청자의 이목을 끌거나 화제가 될 만한 장면을 집어넣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것은 임성한 월드가 늘 추구해오던 것이기도 하다. 언제 주제의식이나 스토리의 일관성을 따졌던가. 그저 자극적이거나 눈요기 거리거나 화제(아니 나아가 논란)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끼워 넣는 것이 임성한 월드의 특징이다.

 

품격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찾아보기 힘든 막가파식의 설정과 대사 역시 빠질 수 없다. 오금성과 아내 이강숙(이아현)이 함께 안마를 받는 자리에서 오금성이 이혼을 선언하자 이강숙이 알몸을 가린 가운을 열어 보여주며 하는 대사는 리얼하다기보다는 자극을 위한 자극처럼 보인다. “뭐가 부족해 내가! 호강에 겨워서 뭐에 빠진다고... 마흔 셋에 이 정도 유지하는 여자 봤어? 누구는 주물러 터트려서 귀찮아 죽겠대. 뭐가 그리 잘났는데? 나니까 살아줬어. 토끼 주제에...” 그러자 남편 오금성도 못지않은 막말을 쏟아낸다. “식어 빠진 사발면을 그럼 1,2분이면 해치우지 2,30분에 먹냐.” 실로 19금딱지 붙은 드라마에서도 듣기 힘든 대사들이 아닌가.

 

비상식적인 가족의 대화는 오왕성(박영규), 오금성, 오수성(오대규)이 저녁을 먹으며 불륜에 빠진 오금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동생 오수성은 바람난 형에게 연실 장난치듯 비아냥대고, 형인 오왕성은 책망을 하지는 못할망정 내연녀의 나이를 궁금해 하고 부러워한다. 오금성이 내연녀가 서른다섯 처녀라고 말하자 이 두 형제는 심지어 “대박!”이라고 감격하기까지 한다. 형제들이 바람피는 것을 부러워하고 은근히 자랑질 하는 이 장면을 정상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장면이 야기하는 짜증은 임성한 월드가 굴러가는 연료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욕하기 위해 본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아마도 임성한 월드는 이 잘나가는 가족들의 속물근성을 끄집어내 보여주고 싶은 것일 게다. 이 가족 속에 등장하는 계급들의 모습, 이를테면 오로라를 시중드는 하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평범한 옷을 입고 명품백을 사러 온 오로라를 불친절하게 대하는 종업원의 모습 역시 속물 자본주의가 가진 여전히 봉건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는 있다. 또 임성한 월드에 꼭 등장하는 무속이나 종교적인 행태들(이번 드라마에도 잠자는 황마마(오창석) 옆에서 불경을 외우는 누나들이 등장한다) 역시 21세기에도 존재하는 전근대적이고 비이성적인 행동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속물 자본주의나 전근대적인 행동들을 끄집어내 보여주는 목적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풍자나 비판의식을 담재하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그 비상식적인 장면들이 만들어내는 짜증을 증폭시키기 위함으로 보인다. 즉 임성한 월드가 움직이는 동력은 바로 이러한 시청자의 감정을 낚는 이른바 ‘비난 떡밥들’이 도처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첫 회만 봐도 이런 논란이 될 만한 떡밥들은 거의 매 시퀀스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 그토록 욕을 하면서도 챙겨봤던 것처럼(어쩌면 욕하기 위해) 지금의 시청자들도 이 떡밥들을 덥석 물것인가. 첫 회에 시청률 11%를 기록할 정도로 임성한 월드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끝없이 던져지는 짜증나는 시퀀스들에 이제 진력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번 <오로라 공주>의 성패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비난을 먹고 자라는 이상한 임성한 월드는 여전히 그 기능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지나가버린 퇴행적인 세계로 기록될 것인가. 그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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