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와 역사 속 실제인물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이 드라마는 특정인물이나 사건과 관련이 없으며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창작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보면 시작 전에 이런 자막을 내보내는 경우가 있다. '빛과 그림자'도 그런 드라마 중 하나다. 특정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그 시대의 인물들이 드라마 속 인물과 겹쳐져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런 자막을 내보내도 드라마 속 인물들이 역사 속 실제 인물을 떠올리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그래서 자막을 굳이 붙이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빛과 그림자' 같은 시대극은 이 가상의 캐릭터와 실제인물을 맞춰보는 재미 역시 쏠쏠한 드라마임에 틀림없다.

'빛과 그림자'는 현대사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했던(물론 실제로는 암울한 역사였지만)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을 다루고 있다. 워낙 드라마틱했기 때문에 이 시절을 다룬 드라마가 꽤 있었지만 '빛과 그림자'는 이 시절을 영화사, 가요사 같은 대중문화사의 눈으로 바라봄으로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드라마에 전면으로 '각하'가 등장하진 않지만 '각하'의 존재감은 이 드라마의 기본전제가 된다. 장철환(전광렬)이나 김부장(김병기)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드라마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근거는 바로 이 '각하'에 대한 충성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특정인물과 상관없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서로 못 잡아먹어 으르렁대는 장철환과 김부장에서 차지철과 김재규를 떠올리게 되는 건 그런 이유다. 그만큼 당대의 권력자들인데다 그 팽팽한 대립이 결국 궁정동의 총성으로까지 이어진 시대의 인물들이 아닌가. 각하를 두고 벌어지는 비서실과 중정의 대립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기본 얼개가 되어 있다. 그 밑으로 장철환의 비호를 받는 조명국(이종원)이 있고, 김부장이 밀어주는 빅토리아 클럽의 손미진(이휘향)이 있으며, 또 조명국 밑으로 세븐스타쇼단의 노상택(안길강)과 빛나라쇼단의 강기태(안재욱)가 서 있다. 위로는 정치권력의 대립이 있고 그 밑으로 딴따라로 비하되던 쇼단 연예인들의 대결이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차지철과 김재규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은 많은 이들에게 궁정동에서 벌어진 '그 때 그 사람'의 실제 사건을 예감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누군가에게 총을 쏠 것인가와 그 자리에 누가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이다. 알다시피 당시 자리에 각하와 이들 권력자들, 그리고 연예인들이 함께 있는 이 그림은 다분히 정치와 연예계를 엮어 그 시대를 풀어내려는 '빛과 그림자'의 풍경이 가진 뉘앙스를 떠올리게 한다. 물론 '특정 사건과 관련 없다'고 주장하는 드라마는 전혀 다른 결말을 향해 갈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시대극이 당대의 현실과 무관한 허구로만 치닫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 당대를 드러낼 수 있는 사건들과 인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 드라마 속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다만 똑같이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되고 재해석될 뿐이다. 하지만 다른 이름으로 인물이 만들어지고 사건이 재해석된다고 해서 너무 실제와 멀어져서도 안 된다. 따라서 어디선가 실제로 본 듯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세창이 연기하는 느끼남 최성원이나 당대 전국구 주먹으로 나오는 조태수(김뢰하)를 보며 당대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게다. 물론 이 드라마는 아예 실제 인물을 오마주로 활용하기도 한다. 박준규가 연기하고 있는 마도로스박이다. 이 인물은 실제 당대 최고 액션배우였던 박준규의 아버지 박노식을 오마주한 캐릭터다.

'이 드라마는 특정인물이나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드라마의 문구를 볼 때마다 거꾸로 자꾸만 그 특정인물과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당대를 살아온 이들의 호기심일 것이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는 암울했던 시대의 정치와 딴따라가 대결하는 그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이 드라마 속 인물들이 과연 실제 역사에서 누구와 닮았는가를 찾아내는 것도 쏠쏠한 드라마다. 저 인물은 도대체 실제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일까. 이것은 하나의 놀이(?)이지만 그 놀이가 갖는 역사성은 지금 현재와도 연결고리를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빛과 그림자', 이토록 유쾌해도 되는 걸까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빛과 그림자'가 그리는 시대는 우리가 흔히 '어두웠던 시절'이라 부르는 독재시절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어두움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렇게 유쾌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이 특유의 유쾌함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빛과 그림자가 대결하던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빛과 그림자의 싸움을 머릿속에 늘 그려왔지만, 사실 빛이 그림자를 내모는 방식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림자는 빛이 더 빛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빛과 그림자'의 유쾌함은 마치 시대의 어둠을 유쾌함으로 이겨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정치의 암울함에 맞서 딴따라라 불렸던 발랄한 쇼가 대결하는 드라마, 바로 '빛과 그림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기 마련. '빛과 그림자'라는 드라마는 그 통상적이지만 영원한 우리네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먼저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성공과 실패, 그 빛과 그림자를 오간다. 강기태(안재욱)는 순양극장을 소유하고 있는 지방유지 강만식(전국환)의 아들로 고민 없이 부유하게 자라지만, 밉보인 장철환(전광렬) 의원에 의해 몰락하게 되는 인물. 장철환의 사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아버지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온 후, 집안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반면 강기태네 집 식모의 아들인 차수혁(이필모)은 친구인 강기태를 배신하고 장철환 의원을 보좌함으로써 그와 함께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빛나라쇼단의 단장 신정구(성지루)는 강기태의 돈을 떼먹고 야반도주 하지만 그렇게 1년을 탕자처럼 지내고는 길바닥을 전전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양태성(김희원)은 정혜(남상미)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전형적인 건달이었지만 월남에 가서 무기 밀거래를 하며 벼락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빛과 그림자'들의 인물들의 인생역정은 이처럼 다이내믹하다. 하루아침에 그림자로 전락했다가도 어느 순간 빛으로 떠오르는 그런 인생.

이것은 그 시대가 가진 빛과 그림자를 떠올리게 한다. 군부 독재 시절로서 이유 없이 남산에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시체로 나오던 그 어두운 시대였지만, 또한 성공의 사다리가 지금처럼 꽉 막혀 있지 않고 도처에 있던 시대. 물론 그 성공에는 값비싼 대가가 치러졌지만 향수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당대란 그림자마저 추억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모두가 멈춰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를 하던 그 잿빛의 암울함은, 신정구과 강기태가 그 정지화면 위에서 도망치고 추격하는 장면이 발랄하게 삽입될 정도의 추억으로 그려진다.

사실 강기태라는 캐릭터 자체가 하나의 향수이자 추억이다. 도무지 이 인물은 절망하거나 비관할 줄 모른다.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인 이 인물은 아버지가 죽고 몰락한 집안에서도 여전히 큰 소리 뻥뻥이다. 그래서 보통의 드라마가 누군가에 의해 몰락한 집안을 다시 세우기 위해 복수를 꿈꾸지만, 이 드라마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강기태라는 캐릭터는 복수보다는 자신의 성공을 더 꿈꾸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는 가장 무거울 수 있는 강기태의 몰락을 그리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하다. 이것은 강기태라는 캐릭터의 힘이면서 지나간 일을 추억어린 눈으로 회고하는 이 시대극의 시선이 가진 힘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발랄함의 시선이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 드라마가 '쇼'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부음을 듣고도 쇼 무대에 올라 바보 연기를 했다는 과거 코미디언들의 유명한 일화들처럼, 이 시대극의 쇼는 그 무대 뒤편의 그림자들을 덮어줄 만큼 빛으로 가득하다. 당대의 쇼 비즈니스는 안가에 연예인들이 불려가 노래를 불러야 할 정도로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쇼란 그 어둠마저 덮어버리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던가. '빛과 그림자'는 그래서 정치와 얽혀진 어두운 시대의 쇼가 보여주는 양면을 보여주면서도, 거기에 어둠마저 시간이 지나면 빛으로 환산시키는 기억이 만들어내는 마법을 집어넣는다.

'빛과 그림자'가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이 추억의 시간여행이 가져다주는 특유의 유쾌함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한때 딴따라라 불리던 연예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어두운 정치권력, 그리고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시대극의 무게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코 발랄함을 잊지 않는다. 당대의 힘겨웠던 삶조차 이렇게 몇 십 년이 흐른 뒤 바라보면 한 바탕의 쇼처럼 아련해지는 모양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시각은 지금 현재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힘겨워도 이것을 이겨내고 나면 이 또한 한 바탕 우리 삶의 즐거운 쇼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 딴따라라 불리던 그들이 이제 우리의 가슴 속에 별로 남은 건 그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유쾌한 쇼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딴따라라 불렸던 쇼가 당대 권력인 정치를 이겨내는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힘겨워도 빛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스스로 빛나는 것.


2인자 연기, 이 정도면 명품이다

'빛과 그림자'(사진출처:MBC)

이 친구 특별하다. 그저 처음에는 '달인' 김병만 옆에서 보조하는 정도의 캐릭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차츰 그 '받아주는 역할'을 하는 류담의 존재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억지를 부리는 김병만에게 조소 섞인 웃음을 날리며 "뭐라고요?"하고 묻는 그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달인'이라는 코너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조연 없는 주연 없듯 2인자가 없는 1인자가 있을 수 없다.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가 이제는 한 물 간 스타 최곤(박중훈)에게 말하듯,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그 별을 빛나게 하는 별, 그가 바로 류담이다.

'달인' 바깥으로 나와 연기의 영역으로 들어온 류담은 좀 더 특별해진다. '선덕여왕'에서 그는 이문식과 이른바 '죽방고도' 콤비를 이뤄 사극의 팽팽한 긴장감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문식이야 감초 연기로 정평이 나 있던 연기자였기에 그다지 두드러질 것은 없었지만, 고도를 연기한 류담은 말 그대로 '재발견'이었다. 보통 개그맨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그런 카메오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고, 다양한 표정연기는 류담의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게 만들었다.

특유의 푸근한(?) 몸집에 억울한 얼굴과 호기심 가득한 동그란 눈,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바보 같은 웃음은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천진난만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그가 주인공 옆에 서 있으면 어딘지 마음이 든든하고 푸근해진다. 달인 김병만 옆에 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류담이 그렇고, 덕만 옆에 죽방과 함께 서 있던 고도가 그랬으며, '빛과 그림자'에서 강기태(안재욱) 옆에 영원한 동생으로 자리한 양동철(류담)이 그렇다. 그는 중심에 서 있지는 않지만 그 중심을 빛나게 해주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이 부분에서 그저 '달인' 김병만의 보조처럼 여겨졌던 류담이 사실은 김병만이 흉내 낼 수 없는 '연기의 영역'을 가진 존재라는 게 드러난다. 김병만도 마찬가지로 코미디를 바탕으로 연기를 하는 개그맨이지만, 류담은 코미디 연기 이외에 정극의 연기도 점점 가능한 배우로 성장해가고 있다. '빛과 그림자'에서 류담이 연기하는 양동철은 그저 강기태를 보조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한 명의 어엿한 연기자로서 의리에 죽고 사는 동생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러한 류담이 가진 특별한 존재감이 빛났던 적이 있다. '정글의 법칙'에서 김병만족(?)이 아프리카의 힘바족 마을에 들어갔을 때다. 모두들 어딘지 어색하고 서로 다가가지 못하는 그 순간에 류담은 힘바족과 가장 빨리 친하게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어 보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류담이 가진 개그맨이자 연기자로서의 가장 좋은 장점이다. 그가 가진 특유의 선한 웃음은 그게 누구든 쉽게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개그맨으로서 연기자로서 이만큼 좋은 자질이 있을까.

류담은 중심보다는 주변에서, 별이기보다는 그 별을 빛나게 하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 중심과 주변이 구분되지 않고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시대를 맞아 그 역할 자체로 빛나는 별이 되고 있다. 별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별을 빛나게 하는 게 어둠만은 아니다. 별 옆에서 같이 빛나면서 별을 비춰주는 별, 그게 바로 류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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