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사랑이라 밀해요

“세상 외로워 보이고 세상 심심해 보이는 그 등짝이 제일 별로라고. 겉만 멀쩡하면 뭐해? 그런 축축한 등짝을 달고 사는데. 미련해 보여서 싫어.”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이성경)는 동진(김영광)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그 말 속에는 애증이 담겨있다. 그건 다름 아닌 ‘불쌍하다’는 이야기지만, 우주는 애써 그게 ‘별로’이고 ‘싫다’고 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은 우주가 동진에게 접근한 이유에서부터 비롯된다. 우주가 동진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가 의도적으로 접근한 건, 그의 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버지의 내연녀였던 마희자(남기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 마희자는 우주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내연녀 마희자 때문에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엄마는 화를 속으로 삭이다 암에 걸렸다. 겨우 언니와 동생과 함께 버텨가며 살았지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그들이 살던 집조차 마희자가 빼앗아버린다.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지경에 이른다.   

 

“매일 매 순간 매 초마다 생각했어. 내 주제에 무슨 복수냐. 관두자. 참는 게 남는 거다. 근데 이거 내 생각이 아니라 우리 엄마가 입에 달고 산 말이거든? 나는 여전히 그 때 우리 엄마가 그 아줌마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된다고 생각해. 그럼 적어도 암은 안 걸렸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뭐라도 해야겠다고. 안 그럼 내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 

 

그런데 그렇게 복수하기 위해 동진의 회사에 들어온 우주는 가까이서 이 남자를 들여다보며 연민을 느낀다. 지독히도 당하고 아프게만 살아가는 사람인데 뭐 하나 아프다고도 말하지 않고 항변조차 않는 남자. 그의 주변에는 배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7년 만났던 애인이 배신했고, 살뜰하게 자신이 가정사까지 일일이 챙겨줬던 거래처 본부장이 배신을 했으며, 직원마저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내부 정보를 빼돌리는 배신을 했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그 배신의 상처 앞에 이렇다 할 말 한 마디를 토로하지 않는다. 애인이 배신했을 때는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고, 배신한 거래처 본부장을 찾아가 “술 적게 드시고 건강 챙기라”고 말한다. 직원의 배신을 알고도 그는 대놓고 뭐라 하지 않는다. 라이벌업체의 신대표(신문성)가 그 배후인 걸 알고 그 사실을 드러내면 또 다른 직원에게 접근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뭐라 항변도 하지 않고 늘 당하기만 하는 그가 우주는 몹시 눈에 밟히기 시작한다. 혼자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힘겹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눈에 밟히고, 비틀대다 차가 달려와도 마치 그대로 죽고 싶다는 듯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애써 끌어당겨 구해낸다. 그러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우주는 끝없이 대놓고 동진에게 속에 있는 날이 선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자 참다못한 동진이 드디어 입을 연다. 

 

“근데요, 그렇게 매번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살면 편해요? 심우주씨 눈엔 다른 사람들이 미련해서 참는 거 같은가 본데, 속에 있는 말 다 해버리면 실시간으로 내 말에 상처받는 얼굴들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게 참는 거보다 더 고역이라서 안간힘 쓰는 사람도 있어요.” 동진의 그 말은 우주를 주춤하게 만든다.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우주와 동진의 관계는 결코 사랑처럼 시작하지 않는다. 아니 복수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복수의 마음은 우주가 동진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누그러지고 어떤 지점에서는 지독히도 상처받은 이들로서의 동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한없이 저마다의 세상에서 눈물을 삼키며 버텨내던 두 사람이 어느 순간 그 지치고 지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솟아오르는 건 그래서다. 그 눈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너도 아파? 나도 그래. 

 

우주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고, 정반대로 동진은 뭐라도 하면 누군가 상처를 입는 걸 봐야하는 걸 견디지 못해 아무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 두 청춘의 공통점은 그래서 그 참혹한 현실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부모들 사이의 관계로 들여다보면 결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 사람이, 차라리 잘 됐으면, 그 아픔을 서로가 보듬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김영광은 <썸바디>의 그 살벌했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한없이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동진을 뒷모습마저 공감하게 만들고, 이성경은 그저 밝기만한 청춘의 이미지를 탈피해 한없이 텅 빈 슬픈 눈빛으로 톡톡 쏘아대는 상반된 모습을 통해 이 복합적인 감정의 인물을 놀라울 정도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여기에 밑바닥을 긁는 주인공들의 축축함을 순식간에 말려주는 신스틸러 성준과 김예원, 전석호의 연기가 더해져 <사랑이라 말해요>는 균형 잡힌 드라마가 됐다.   

 

그래서 <사랑이라 말해요>가 말하는 사랑이란 뭘까. 어른들에 의해 꼬이고 꼬인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래서 참 많은 설명과 설득이 필요한 관계지만, 둘 다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감이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떤 것. 그걸 이 드라마는 사랑이라 말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유연석이 그나마 문가영의 처지가 눈에 밟히는 이유(‘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이런 거다. 괜한 오기를 부리게 하고. 흔들렸으면서도 끝내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 그 남자의 망설임을 나조차 이해해버렸으니까.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거. 발버둥 쳐봤자 내가 가진 처지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는 거.” 안수영(문가영)이 하상수(유연석)에 대해 갖는 감정은 복잡하다. 그에게 흔들리긴 하지만 자신의 초라한 처지는 그의 작은 망설임조차 스스로 이해하게 만든다.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그 관계 에 끼어드는 서열과 차별의 첨예함으로 인해 늘 어떤 넘지 못할 선을 마주한다. 

 

안수영이 말하는 처지란, VIP 접대 술자리에 상품 소개가 아닌 일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그런 처지다. 육시경(정재성) 지점장은 그 자리에서는 상품 소개가 아니라 VIP를 즐겁게 해주는 게 그의 역할이라고 했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술을 따라주고 웃어주는 그런 일을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불편한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육시경은 대놓고 안수영을 괴롭힌다. 문서고 정리를 하루 만에 혼자 끝내라고 하고,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라며 박미경(금새록) 대리가 돕겠다고 하자 육시경은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하찮은 일’이라는 말은 안수영의 마음에 금을 긋는다. 

 

혼자 문서고 정리를 하는 안수영이 하상수는 눈에 밟힌다. 같이 하자고 하자 안수영의 입에서는 날선 말들이 툭 튀어나온다. “지점장님 얘기 못 들었어요?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 업무에 충실하라고. 기계적인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정말.” 안수영이 눈에 밟혀 다가오려는 하상수지만, 그들 사이에는 육시경 지점장이 그어 놓은 선이 있다. 

 

<사랑의 이해>는 사회생활에서도 서열로 나뉘는 이해관계 속에서 과연 사랑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고부갈등, 집안의 반대처럼, 멜로드라마가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 마련이고, 그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이제 이해관계가 사랑 같은 관계에 장애가 되는 현 시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서열과 차별이 존재하고 거기서 어떤 선을 느끼는 건 안수영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수영이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VIP 술 접대를 하러 간 것처럼, 하상수 역시 육시경 지점장과 함께 VIP 골프 접대를 하러 간다. 그런데 그 VIP가 알고 보니 같은 은행 동료이자 학교 후배인 박미경 대리의 아버지다. 라운딩이 끝났을 때쯤 박미경은 하상수와 함께 동창 결혼식을 가려고 그를 픽업하러 오고 거기서 만난 아버지에게 냉랭하게 대한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 하상수를 접대를 빙자해 만나본 거라는 게 불편해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박미경 대리는 부유한 집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받는 편견이 싫다. 그는 뭐든 자신이 노력해 이뤄왔고 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지만,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창은 그것이 착한 척하는 가식이라며 쏘아붙인다. “너 장학금 받고 다닌 거 되게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다 가져놓고 그거까지 뺏은 거야, 너. 너한테 밀려서 전액 장학금 놓친 애가 알바 세 탕 뛴 거는 알아? 네가 만약에 걔처럼 알바 하면서 공부했으면 그래도 장학금 탔을까? 네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알바 따위 할 필요 없었던 너희 집안 재력 덕분이라고. 그 옷, 그 가방 은행 다니는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그 날 술에 취한 박미경은 하상수에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게 ‘달리기’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달리기는 명확하거든. 그것마저 부모덕이라고 말하는 애들은 없으니까. 난 그냥 인정받고 싶어서... 우리 엄마, 아빠 딸로 안 태어났어도 지금 이대로 잘 살고 있을 거다. 영포점 PB팀 박미경으로. 나도 자기들처럼 얼마나 노력하는데... 근데 지금 중요한 건 선배가 내 말을 배부른 소리처럼 들을까 봐.”

 

하상수를 두고 안수영이 스스로 느끼는 처지와 박미경이 느끼는 처지는 정반대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이들의 남녀 관계 사이에 어떤 장벽이나 장애처럼 선을 긋는 건 분명하다. 하상수는 안수영과 박미경 사이에 서 있고, 그들 사이에는 다른 처지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궁금한 건 KCU은행 영포점에서 은행경비원 정종현(정가람)처럼 안수영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를 제외하고 모두가 안수영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유독 하상수만 그를 눈에 밟혀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그의 어머니 때문이 아닐까. 에스테틱 원장으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 한정임(서정연)은 늘 VIP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한다. 고객인 강남 사모들의 여드름 짜는 일도 마다치 않고 해온 인물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상수는 어쩌면 안수영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겹쳐 보이는 게 아닐까. 그 같은 처지가 보이는 게 아닐까. 

 

<사랑의 이해>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스펙과 빈부, 집안 등으로 보이지 않게 그어져 있는 무수한 선들을 살핀다. 사랑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메인이지만, 그건 어쩌면 이러한 선들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과연 그 선들을 넘는 진정한 관계는 가능한가를 묻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역시 안수영이 육시경 지점장에게 접대를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걸 “그의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처지를 아직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안수영의 입장에서는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당연하게 거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몰이해와 오해를 넘어 하상수와 안수영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처지를 뛰어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진:JTBC)

복수극 난무하는 시대, ‘법사’가 선택한 새로운 길

법대로 사랑하라

층간소음, 아동학대, 성폭력, 학교폭력. 소재만 봐도 그 사안의 심각함을 누구나 체감할 게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할 때마다 대중들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사건들. 하지만 끝나지 않고 계속 터져 나오는 사건들. 그래서일 게다. 현실이 해결해주지 않는 이 사건들이 드라마 속으로 들어와 속 시원한 해결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사회 문제와 사건들을 소재로 가져온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이를 복수극 형태로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던지는 드라마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 사건을 사적 복수의 형태로 해결하는 드라마들도 적지 않아졌다. 이런 시대에 KBS 월화드라마 <법대로 사랑하라>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저 심각한 사안들을 가져오고 그 사안들에 대한 판타지 사이다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 드라마는 변호사가 출연하고 있고 그래서 법을 다루고 있지만 법정 안에서의 싸움을 그리진 않는다. 그렇다고 법 바깥에서 사적 복수를 취하지도 않는다. 대신 사안이 발생한 그 서민들의 삶 속 깊숙이 들어가 ‘실질적인 해법’이나 도움이 되는 길을 모색한다. 로펌에서 나와 로(Law) 카페를 차려 법원에 가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주는 김유리(이세영)라는 인물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는 저 심각한 사안들을 겪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며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준다.

 

층간소음 문제 때문에 미칠 지경이 된 한 사내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것이 이웃 간의 에티켓 문제가 아니라 건설사의 부실시공이 문제라는 걸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는 김유리와 김정호(이승기)의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여타의 법정드라마 혹은 법 밖의 복수극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라는 예고에 가까웠다. 법적 대응을 해봐야 소송비용을 빼고 실질적으로 아파트 주민들이 얻어갈 것이 없을 거라는 걸 간파한 이들은 각자 다른 집에서 악기를 연주해도 하나로 어우러지는 이른바 ‘층간소음 밴드’ 영상을 SNS에 올림으로써 브랜드 이미지 추락에 직면한 건설사의 합의를 얻어낸다. 

 

지속적으로 벌어진 아동학대 때문에 아이가 밤마다 거리로 도망쳐 나와 돌아다니고 김유리가 운영하는 로카페에 까지 들어오게 된 사건도 가해자인 부모를 처벌하는 것보다는 피해자인 아동의 이야기를 김유리와 김정호가 들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해결책을 보여줬다. 게다가 김유리는 해당 관청에서 이런 신고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에 항의하지만, 해당 공무원 역시 보호 아동이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는 현실적인 토로를 함으로써 아동학대 문제와 연관된 아동보호시설의 부족까지 꼬집기도 했다. 

 

5회에 등장한 가사도우미 성폭력 사건은 흥미롭게도 ‘적극적 동의(Yes means Yes)’에 대한 이야기를 김유리가 김정호에게 동의 없이 키스한 대목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이 법적인 사건과 드라마 속에 부지기수로 등장했던 이른바 ‘동의 없는 키스들’에 대한 비판을 달달한 멜로와 엮어 풀어내는 기막힌 전개를 보여줬다. 

 

이른바 ‘벽치기’라고도 불리는 드라마 속 동의 없는 키스 장면들은 이제 ‘폭력’으로 간주되어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키스의 적법성에 관한 고찰’이라는 부제에 맞게 김유리는 자신의 키스가 김정호의 동의 없이 했던 것에 대해 재차 사과한다. 이건 이런 장면에서의 남녀 상황을 뒤집어놓은 설정을 가져와 이러한 친밀감을 표현하는 행위들에 사전 동의가 필요하며 그게 아니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이야기는 가사도우미에게 아무런 동의 없이 스킨십을 하려한 집주인의 성폭력 사건과 연결되어 사안을 더 확장해서 보게 해준다. 

 

6회에 다뤄지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도 마찬가지다. 로 카페에 상담하러 온 폭력 피해학생이 ‘촉법소년’에 대해 물어오고 그건 그가 심각한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위기의 신호를 암시한다. 그 폭력을 옆에서 알아차린 역시 학교폭력으로 동생을 잃은 로카페 바리스타 서은강(안동구)이 피해학생을 돕겠다고 일부로 방화사건을 내고 그걸 가해학생들의 짓이라 거짓 증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직접적인 보복도 법적인 해결도 아닌 이들이 제시한 제3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사실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주로 ‘법대로 하라’는 말이 법대로 ‘처벌하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처벌’ 대신 ‘사랑’을 선택했다. 처벌이 가해자들에 대한 단죄를 말한다면, 사랑은 피해자들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 물론 심각한 사건들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중요할 게다. 하지만 그러한 처벌만큼 삶이 나아지려면 피해자들을 보듬어주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의 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법대로 사랑하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읽힌다. 김정호와 김유리의 관계로 보면 김유리를 사랑하지만 자신과(혹은 가족) 관계된 일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는 김정호엑 이 드라마는 일단 법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당당해진 후 사랑하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앞서 말했듯 ‘법대로’ 처벌만이 아닌 사랑을 하라는 의미로도 읽히고, 저 성폭력 사례의 적극적 동의의 관점으로 보면 법에 저촉되지 않는 방식으로(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여러모로 복수의 방식으로 법이 그려지곤 하는 시대에 색다른 선택이 주목되는 작품이다. (사진:KBS)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이 하면 멜로도 이렇게 다르다

헤어질 결심

죽어가는 자들의 눈에는 그 마지막 순간이 담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가 하는 일은 어쩌면 그 죽어가는 자들의 눈에 담긴 그 마지막 순간을 찾아내는 일이 아닐까.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그건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런 것들을 건조하게 의심하고 추적하는 일이 아닐까.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의 형사 해준(박해일)의 그런 시선을 따라간다. 산 정상에서 추락해 사망한 남자. 남편이 죽었는데도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는 아내 서래(탕웨이). 해준은 의심의 시선으로 서래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잠복근무를 통해 서래의 주변을 맴돌며 사진을 찍는 그 의심의 시선은 점점 관심으로 바뀌어간다.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여자. 아픈 엄마를 스스로 죽였다는 서래에게 그가 관심을 갖는 건 그 ‘결심’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마음 같은 것 때문이었을 게다. 죽음 앞에서야 사는 의미가 찾아지는 해준.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갖게 된 이런 상태는 주말부부로 만나 건강을 위해서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는 아내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에게 삶은 죽음 같은 ‘헤어질 결심’까지 하게 만드는 그런 순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어떤 것이다. 

 

해준의 이런 관심은 고스란히 서래에게도 전해진다. 해준의 집 벽에 붙여져 있는 사건 관련 사진들 속에 자신의 일상이 담겨진 사진들을 보면서 서래는 느낀다. 이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단지 형사가 용의자를 바라보는 시선 그 이상이라는 걸. 서래는 해준의 ‘반듯함’과 ‘젠틀함’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형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긍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래서 그 자긍심마저 깸으로써 “완전히 붕괴됐다”고 말하는 해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의심에서 관심으로 넘어가고 그래서 자신이 붕괴되는 것마저 감수하는 해준의 마음과, 자신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거기에서 어떤 보호받고 이해받는 느낌까지 받다 그의 마음이 그의 모든 걸 붕괴시킬 정도로 강렬하다는 걸 알게 된 서래의 마음. 그들은 조금씩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중국인이라 부족한 말 표현을 넘어선다. 

 

이처럼 우리가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되는 경계들은 마치 안개가 낀 듯 흐릿해지고 이 편과 저 편이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뒤섞인다. 법적인 부부와의 관계는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고, 사실상 불륜이자 그것도 형사와 용의자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는 서로 나누는 눈빛이나 숨소리, 핸드크림을 발라주는 손길만으로도 에로틱하고 감정을 툭툭 건드린다. 

 

불면으로 잠 못드는 해준의 눈은 마치 죽은 후에도 부릅뜨고 마지막 순간을 애써 보려하는 시신들의 눈을 닮았고, 안구건조증에 넣는 안약으로 흐르는 눈물에는 물리적 고통과 감정적 고통이 뒤섞여 있다. 그런 눈이 세상의 경계를 어찌 분명히 볼 수 있을까. 안개 가득한 이포의 바닷가에서 애타게 서래를 찾는 해준의 모습이 분명하다 여겼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 헤매는 인간의 실존처럼 비춰진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정훈희와 송창식의 ‘안개’가 이들의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만드는 이유다. 

 

히치콕의 ‘관찰자의 시선’을 가져온 박찬욱 감독은 그 용의자를 바라보는 형사의 의심을 ‘관심’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틀어 수사극을 멜로로 풀어낸다. 관찰자가 대상에 빠져들고 관찰되던 자 역시 자신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래서 이건 박찬욱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시선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길 대상에 대해 의심하고 관심을 갖게 되다가 어떤 ‘결심’의 순간을 발견하곤 자신이 생각했던 굳건한 경계들이 붕괴될 정도로 매료되었던 건 아닐까. 

 

결국은 사랑이야기지만, 박찬욱 감독이 그려낸 <헤어질 결심>은 죽음을 결심하는(죽이거나 죽거나) 그 순간의 강렬한 삶을 전제하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일상적으로 쉽게 ‘사랑’이라 부르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진짜일까를 생각하게 되고, 진짜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은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다른 표현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한다. 그 방식이 색달라 낯설고 결코 쉽지 않은 안개 같은 영화지만, 다 보고 나면 그 안개 깊숙이 전해지는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작품이다. (사진: 영화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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