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 그 소박함의 역발상

 

영화 <시네마천국>의 토토가 사는 작은 마을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이럴까. 어둑해진 야외, 운동장과 야외 캠프장에 소박하게 만들어진 작은 영화관(?)에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눈이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어찌 보면 반딧불이가 사랑을 할 때 내는 불빛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연을 온 몸으로 느낄수록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눈빛은 더 깊어진다.

 

'무주산골영화제(사진출처:MJFF)'

영화는 스크린 위에만 펼쳐지는 게 아니다. 고개를 들면 저 하늘 위에 펼쳐진 대자연의 스크린 위에 별들이 펼쳐놓는 영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귀를 기울이면 숲속 풀벌레 소리가 영화와 어우러져 기막힌 정서를 만들어낸다. 세상에 이런 영화제가 있을까 싶지만 지금 현재 무주에서 펼쳐지고 있는 산골영화제가 바로 그것이다.

 

등나무 운동장에서 열린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찰리 채플린의 <유한계급>이 상영되었다. 1921년에 만들어진 영화. 흑백 화면에 무성영화지만 지금 봐도 충분히 재밌는 그 영화는 김종관 감독과 뮤지션 모그가 참여해 독특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졌다. 영화 속 찰리 채플린이 영화 밖으로 튀어나온 듯 똑같은 분장을 한 인물들의 무대가 영화와 어우러졌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듯한 개막작 퍼포먼스는 무주산골영화제만이 가진 소박하고 아날로그적이며 복고적인 정서를 잘 표현해냈다.

 

메르스 공포가 전국을 강타했지만 무주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영화제 자체가 시끌벅적한 도시의 영화제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이 거의 없는 무주라는 지역에 자연 속에 스크린을 걸고 영화를 틀자는 소박한 취지에서 시작한 이 영화제는 인구가 고작 2만 명인 이 조용한 산골 마을에 기막힌 역발상의 묘미를 선사했다.

 

산골영화가 어떻게 기묘한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는 그 무주라는 공간에 들어와 보면 쉽게 이해되는 일이다. 도시의 밤풍경이란 불야성에 가깝지만 무주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이 포근하게 마을을 감싼다. 그러니 야외 어디고 스크린을 걸고 영사기를 돌리면 영화관이 되는 것이다. 이 어찌 기막힌 역발상이 아닐 수 있을까. 무주하면 먼저 떠오르는 반딧불이 축제의 반딧불은 그래서 산골영화제에서는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가 되는 셈이다.

 

상대적으로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최근의 문화 트렌드가 지향하는 소박함이나 스몰 지향 그리고 자연 같은 키워드는 산골영화제가 도시인들에게 하나의 로망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삼시세끼> 같은 시골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화려한 호텔 예식장이 아니라 소박한 시골의 밀밭이 협찬(?)해준 식장에서 치러진 원빈과 이나영의 결혼식에 열광하는 것처럼, 산골영화제는 작고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특색을 모두 담고 있다.

 

화려한 레드카펫 대신 소소한 그린카펫을 지향하고, 복잡한 인파를 벗어나 소박한 가족, 친구, 연인과의 추억을 만들어내며, 화려한 도시의 불빛 대신 어두워 더 잘 보이는 별빛을 지향하는 그런 영화제. 상상 속으로만 꿈꾸던 그런 영화제가 바로 이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보는 영화라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영화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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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에 집착할 때 콘텐츠를 만든 저력

 

이제 감히 전성시대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방할 듯싶다. 실제로 여러 사실들이 그 전성시대라는 표현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tvN은 케이블 채널로서는 넘사벽으로 느껴져 왔던 두 자릿수 시청률이 이제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슈퍼스타K>가 케이블 두 자릿 수 시청률의 포문을 열었지만 지금 그 일등공신은 바로 나영석 PD.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금요일 밤 tvN의 채널 장악력을 몇 주 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대박을 치더니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이 그 뒤를 이었고 이제 다시 <삼시세끼> 정선편으로 돌아와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사의 채널 장악력이란 그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나영석 PD는 금요일의 사나이로 자리 잡았다.

 

tvN을 이끄는 또 한 축은 신원호 PD.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달아 성공한 이래 tvN은 다양한 로맨틱 코미디류의 드라마들을 선보였지만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미생>이 그 체면을 차리게 해줬을 뿐이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 신원호 PD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응답하라 1988>은 현재 캐스팅을 어느 정도 완료한 상태로 대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PDtvN에 있는 건 아니다. <코미디 빅리그>를 꾸준한 팬덤으로 만들어온 김석현 CP도 있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집밥 백선생>의 고민구 PD도 있다. 모두가 KBS 출신들이다. 이 전체를 이끌고 있는 이명한 tvN 본부장은 프로그램의 전체 균형을 조율한다. 최근 필자와 만난 이명한 본부장은 지금 현재 tvN이 어떤 안정기에 들어갔다는데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시세끼> 같은 전방위에서 끄는 프로그램들만큼 <집밥 백선생>이나 <문제적 남자> 같은 방송사의 허리를 채워주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기획해내고 있다. <집밥 백선생>은 그 성과물이다.

 

한편 JTBC는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뉴스에 있어서 골고루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든 거의 유일한 종편 채널이다. 사실 JTBC가 종편이라 불리기를 꺼려하는 건 여타의 종편들 이를테면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방송사와 비슷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JTBC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제작비의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계속 제작해냈고, <밀회><빠담빠담>, <유나의 거리> 같은 질 높은 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JTBC에서 예능은 방송국의 위상을 세워준 일등공신이다. <썰전>이나 <비정상회담>, <히든싱어>,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프로그램의 성공을 넘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제는 JTBC에서 만드는 예능의 트렌드를 지상파들이 따라 하기 바쁜 형국이다. 그만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저력을 과시한데는 역시 유능한 PD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유재석이 JTBC와 방송을 하기로 한 일은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콘텐츠가 있는 곳으로 결국 모두가 모이기 시작한 것.

 

JTBC는 또한 종합편성채널로서 반드시 가져가야할 뉴스 신뢰도에 있어서도 성과를 만들었다. 손석희 앵커를 투입해 매거진 형태의 뉴스를 시도한 건 타 방송사에서도 주목했던 대목이었다. 그 힘이 여지없이 발휘됐던 건 작년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팽목항에서 직접 뉴스를 브리핑하는 손석희 앵커의 모습을 통해서였다. 뉴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JTBC는 드라마, 예능과 함께 이제 진용이 갖춰진 상황이다.

 

tvNJTBC가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얘기는 거꾸로 지금까지 기득권을 갖고 있던 지상파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와 같다. 그 위기는 다름 아닌 아직까지도 플랫폼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모습에서 비롯된다. 결국은 콘텐츠이고 콘텐츠를 만드는 맨파워다. tvNJTBC 전성시대는 콘텐츠 시대로 들어오게 된 작금의 방송 환경 변화를 잘 말해주고 있다.

 

나영석 PD가 밝힌 기획의 원칙, ‘뚝심

 

나영석 PD에게 물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대뜸 돌아온 답변은 뚝심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나영석 PD(사진출처:tvN)'

처음 기획을 할 때는 모든 게 각이 서 있기 마련이잖아요. 흔히 말하듯 엣지가 세워져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 얘기 듣고 또 저 사람 얘기 듣고 이건 된다 이건 안된다 하다보면 그 각이 닳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둥글둥글해서 밋밋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죠. 그러니 조언을 듣더라도 본래 기획에서 갖고 있던 그 세워진 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뚝심의 소산이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도 밝혔고, 이 프로그램의 주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서진도 첫 회에 이 프로그램 망했어!”라고 얘기했으며, 게스트로 찾아온 윤여정씨도 망한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했던 게 바로 <삼시세끼> 아닌가. 프로그램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에게도 나영석 PD<삼시세끼>를 처음 찍고 와서 이번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반신반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가졌던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하루 정도 도시를 떠나 어딘가 콕 박혀 아무 것도 안하고 밥이나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고 싶다, 그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지금의 <삼시세끼>가 가능해졌다. 애초에 망할 거라던 프로그램은 대박을 쳤고, 의외의 그 유유자적하는 어른들의 소꿉놀이는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사실 <삼시세끼>는 기존의 예능에서 흔히 말하는 되는 조건들에서 한참 벗어난 프로그램이다. 적당히 출연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곤혹스런 게임을 하게 하며, 때로는 굶기기도 하고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게도 하는 식의 이른바 예능의 법칙들은 예능 PD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게 거의 없었다. 시커먼 남자 둘이 산골에 콕 박혀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안하는 걸 보여주는 예능이라니! 그러니 얼마나 뚝심을 건드리는 걱정어린 목소리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되는 조건들의 틀을 빠져나오자 <삼시세끼>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별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지만, <삼시세끼>의 집과 그 주변에 자라는 작물들 또 동물들, 하다못해 갑자기 내리는 비나 불어 닥치는 바람까지도 하나하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나영석 PD<삼시세끼>의 출연자는 이서진과 옥택연, 김광규와 게스트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집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출연자들이죠.”

 

실로 망할 권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사실 누가 망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성공만을 외치다보니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초에 그토록 창대했던 기획이 차츰 둥글둥글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망할 조짐이 아닐까. 나영석 PD의 뚝심이 만들어낸 <삼시세끼>라는 외계 예능의 성공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좋아하는 까닭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조재현은 투덜이 아빠다. 귀차니즘의 대가(?)답게 집에서는 거의 런닝셔츠같은 차림에 소파, 침대와 껌딱지다. 딸 혜정이 뭘 하자고 하면 일단 그걸 왜 하냐?”고 투덜대고는 결국은 그걸 하게 된다. 늘 투덜대고 퉁명스럽게까지 보이지만 그건 그의 겉모습일 뿐이다. 그는 다만 겸연쩍은 행동을 하기가 쑥스러운 것뿐. 대부분의 아빠들이 이렇지 않을까.

 

'아빠를 부탁해, 삼시세끼(사진출처:SBS, tvN)'

<아빠를 부탁해>에 조재현이 있다면 tvN <삼시세끼>에는 원조 투덜이 이서진이 있다. 그 역시 이 시골 살이에서 뭐든 귀찮아하는 귀차니즘의 대가다. <삼시세끼>에서 혜정의 역할은 나영석 PD. PD가 이틀 후 아침 메뉴로 갈릭 바게트를 얘기하자 이서진은 난 못 알아 들었어라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이틀 후 그는 스스로 만든 화덕에서 잘 구워진 갈릭 바게트를 꺼내놓고는 득의만만해했다.

 

투덜이들이 사는 세상. 도대체 관찰카메라가 투덜이들을 더욱 좋아하는 까닭은 뭘까. 그것은 고분고분 수긍하고 순종하는 인물보다 훨씬 극적인 상황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관찰카메라가 한 편의 드라마라면 그럴 듯한 갈등 구조가 있어야 한다. 상황 속에서 대립각이 서지 않으면 그 장면은 밋밋하게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조재현이나 이서진이 이 관찰카메라 세상에서 주목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들은 결코 사소한 일 하나라도 그냥 쉽게 넘어가는 일이 없다.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 하나 타는 일도 하다못해 딸과 함께 스티커 사진을 찍는 일도 또 딸의 자전거를 가르치는 일도 조재현에게는 엄청난 도전이다. 그것 자체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덜투덜대지만 어쨌든 그는 그러면서도 그걸 다 해낸다. 그래서 그가 나오는 분량은 매회가 작은 도전처럼 여겨진다.

 

이서진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밥 한 번 스스로 해먹지 않았을 것 같은 분위기의 이 차도남은 정선의 삼시세끼 집에 내리면서부터 툴툴대기 시작한다. “그런 것 좀 하지 마.” “노예근성을 버려.” “○○은 얼어 죽을...” 이런 말들을 수시로 쏟아내지만 나영석 PD 말대로 그는 또 그러면서도 결국은 더 열심히 그 일을 해내는 인물이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서진은 그래서 나영석 PD 앞에서는 불만을 잔뜩 쏟아놓지만 할배들 앞에서는 모든 걸 살뜰히도 챙기는 아들 같은 존재다.

 

그런데 이들이 관찰카메라에서 주목받는 건 단지 이 대립을 통한 극적인 효과만은 아니다. 그것은 관찰카메라가 추구하는 가장 보통의 캐릭터들로서 그들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조재현은 가장 보통의 아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서진 역시 가장 보통의 도시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낯선 경험들 앞에서 투덜대지만 또한 그 경험이 주는 즐거움에 조금씩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행동은 가장 보통의 자연스러움으로 다가온다.

 

관찰카메라는 특별한 것들의 선망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이고 보통인 것들의 공감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방송이라고 해도 늘 해왔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들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오게 된다. 그 투덜이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 똑같은 모습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그들의 변화에 동조하게 된다. 조재현이나 이서진 같은 투덜이에 대한 주목은 관찰카메라 시대가 어떤 인물을 요구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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