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795)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584)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Total13,250,411
Today35
Yesterday315

'강심장'의 실험, '상플'의 복고

강호동, 이승기 같은 하나의 아이콘이 된 MC들. 인해전술에 가까운 화려한 게스트. 그 게스트들이 쏟아내는 경쟁적인 이야기들과 퍼포먼스들. '강심장'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강호동의 고함에 가까운 성량이나 강력한 리액션처럼, 강한 면모를 전면에 내세운 토크쇼다. 자신의 이야기를 경매 부치듯 제목을 적어 푯말로 세워두는 컨셉트는, 포털 메인 화면 위에 떠 있는 자극적인 제목들의 낚시질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포털 메인 화면이 그러하듯이 많아진 인물들(사실은 많아진 이야기 종류)은 그만큼 다양해진 대중들의 취향을 반영한다. 강호동과 이승기는 그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해 들을 것인가를 정하는 마우스의 화살표 같은 역할을 하고, 이야기 배틀을 통해 어떤 순위가 정해지는 것은 포털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련의 순위 시스템들을 떠올리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되어가는 과정을 이 토크쇼 내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 의해 또 다른 방향으로 튄다. 때로는 억측이나 추측성 내용들이 나오는 것까지 '강심장'이 보여주는 형식은 포털의 형식을 그대로 닮아있다.

이것은 '강심장' 같은 토크쇼들이 현 달라진 커뮤니케이션을 프로그램 속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공적인 것에 한정되던 이야기의 범주가 사적인 것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이야기는 언제나 넘쳐나고, 그 순도도 높은 편이다. 그러니 이러한 달라진 이야기 세상에서 서로 경쟁적으로 그 이야기를 쏟아내게 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강심장'은 일정한 대중성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 인터넷 생태계를 그대로 토크쇼로 가져온 형식이 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먼저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는 토크들은 초반에는 신선한 강도로 다가오지만, 차츰 지나다 보면 둔감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토크쇼가 주는 강한 이야기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은 오히려 이야기를 밋밋하게 만들어버릴 위험성도 있다. 포털 화면을 가득 채우는 글자들의 향연이 다양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산만함을 가져오는 것처럼, 인해전술 게스트들의 맥락없는 병렬적인 이야기들의 나열은 역시 산만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짧게 훑고 지나가는 카메라 앞에서 토크쇼의 인물들이 캐릭터를 구성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캐릭터는 내부에서 새롭게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가져온 것을 활용하게 된다. 붐 같은 캐릭터의 공백이 유난히 깊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가진 캐릭터의 안정감이 다른 인물들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때론 산만한 환경 속에서 대중들은 정반대의 욕구를 갖기도 한다. 그것은 이른바 복고나 향수가 되는데, '상상플러스2'는 '강심장'이 보여주는 화려한 빛의 어지러움에 의해 오히려 상대적인 힘을 얻고 있다. 새롭게 구성된 '앗 나의 진심' 같은 코너는 편안함을 준다. 과거라면 이 정도 게스트 수도 적지 않다고 여겨졌을 지 모르지만, '강심장' 같은 집단 게스트를 경험한 시청자들은 '상상플러스'의 게스트는 굉장한 집중력을 느끼게 해준다. 이 속에서는 그들의 진심을 다각적인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로 구성할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무엇보다 동류 카테고리로 묶여지는 게스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는 그저 산만하게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맥락으로 엮어진다는 점에서 힘을 발하게 된다.

'상상플러스2'는 사실 그다지 변한 게 없다. 하지만 토크쇼의 전통적인 모습을 고수하면서, 아니 그럼으로써 '강심장' 같은 강적이 보이는 형식의 정반대편에 서게 되면서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이것이 '상상플러스'가 '강심장'의 등장과 함께 조금씩 시청률이 오르고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Posted by 더키앙

토크쇼 전성시대, 토크쇼가 토크하고 있는 것은?

이른바 토크쇼 전성시대다. 월요일에는 MBC의 ‘놀러와’, SBS의 ‘야심만만2’, KBS의 ‘미녀들의 수다’가 경쟁을 벌이고 있고, 화요일에는 KBS의 ‘상상플러스’, 수요일에는 MBC의 ‘황금어장’, 목요일에는 KBS의 ‘해피투게더’, 금요일에는 SBS의 ‘자기야’, 토요일에는 MBC의 ‘세바퀴’ 같은 토크쇼들이 포진해 있다. 실로 거의 일주일 내내 토크쇼를 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토크쇼라는 형식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토크쇼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형식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갖추고 있는 형식, 즉 호스트가 게스트를 초청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답변을 듣는 과정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욕망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연예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른바 신비주의의 해체기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고, 대중들은 그 솔직 대담한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고 있다. 이른바 리얼 토크쇼가 대세가 된 것이다.

리얼 토크쇼는 시청자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그 시청자들을 등에 업은 호스트가 게스트를 압도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즉 게스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시청자를 대신하는 호스트가 원하는 이야기를 게스트가 하게 된 것이 리얼 토크쇼가 등장한 배경이다. 여기에 연예인들의 신비주의 콘셉트가 무너지면서 오히려 솔직한 모습이 인기를 끌게 되자, 게스트들의 솔직한 이야기는 자발적인 모습을 띄게 되었다.

하지만 이 리얼 토크쇼는 또한 문제점도 갖고 있다. 지나치게 과열된 경쟁 속에서 솔직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폭로성의 이야기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억지로 게스트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까지 들춰내기도 하고, 심지어 게스트를 윽박질러서 울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지나친 사생활 침해라고 할 수 있는 집요함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리얼 토크쇼가 태생적으로 갖는 단점이다. 리얼 토크쇼의 토크 양상은 자극적으로 흐르게 마련인데, 바로 이 자극은 반복되면 둔감해지고 따라서 더 큰 자극을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토크쇼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연예인들의 가십 수준에 머문다는 건, 현재 우리의 토크쇼가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토크쇼는 사람을 출연시켜 그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진솔한 모습을 추구하는 리얼 토크쇼에서는 그 사생활적인 부분을 다룰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전 세계 어느 곳에 있는 토크쇼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끄집어내려 하거나, 또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억지로 말하게 하는 토크쇼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토크쇼가 그저 쇼가 아니라, 한 시대의 화법을 대변해 보여주고 어떤 면에서는 교육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아이들 같은 경우에 이런 형식에 반복 노출되면 대화의 방식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물론 토크쇼들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잡담이 아닌 다른 것들을 담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릎팍 도사’는 지금 현재 가장 진취적인 토크쇼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대의 화법으로 자리 잡은 직설어법을 쓰면서, 게스트에 대해 시청자가 알고 싶은 점을 피하지 않고 질문하는 공격적인 화법을 구사하면서도, 그 게스트를 통해 어떤 시사점까지 찾아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사생활은 그저 가십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론 중요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사생활로 제시된 개인적인 삶이,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삶으로서 어떤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십이 아니다. 토크쇼는 이처럼 개인에 집중하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연예인으로 한정된 직업군에서 계속해서 어떤 보편적으로 공감을 주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무릎팍 도사’가 시도한 게스트의 외연을 넓힌 작업은 토크쇼에 있어서 큰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도 연예인이 아닌 비연예인이 출연했을 때, 시청률이 더 높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런 점으로 보아 대중들은 좀 더 다양한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연예인에 편중된 게스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호스트들도 너무 몇몇 MC에 국한되어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실제로 현재는 강호동과 유재석 이 두 개그맨이 거의 토크쇼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만큼 토크쇼의 진행 자체가 녹록치 않게 된 상황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박중훈쇼’의 추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실제로 토크쇼의 성공은 생각보다 어려운 점이 많다.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것은 시청률 보증수표인 이 개그맨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기 보다는 유명 개그맨을 기용해 쉽게 시청률을 가져가려는 것이다.

토크쇼는 문제와 해법을 계속 제시하면서 진화를 거듭해왔고 지금도 그 변화의 과정 속에 있다. 토크쇼는 과거 가장 기본적인 형식인 1인 토크쇼에서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자니윤쇼’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집단으로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서세원이 진행했던 ‘토크박스’ 같은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야심만만’이 대표적이다. 설문 형식을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연예인들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새로운 토크쇼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리고 직설어법의 시대에 와서 토크는 좀 더 독해졌고 과감해졌다. 하지만 지금 이것도 저물어가고 있다. 더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정체된 느낌의 토크쇼는 이제 자극적인 웃음만이 아닌 어떤 공감을 찾고 있다. 진솔하면서도 사람의 스토리가 살아있는 토크쇼, 이런 게 그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친절한 컨셉트, 사투리 앞세운 ‘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가 새 단장을 했다. 초창기 포스트잇이 잔뜩 붙은 댓글방으로 화제가 되었고, 노현정 아나운서를 중심에 세우고 탁재훈과 신정환 콤비의 활약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올드 앤 뉴’ 이후에 ‘상상플러스’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책 읽어주기’, ‘놀이의 탄생’, ‘상상 우리말 더하기’같은 코너들을 새롭게 선보였지만 그다지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금번 ‘상상플러스’가 들고 나온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친절한 4형제’와 ‘전국 사투리 자랑’. 이 두 코너는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 것일까.

‘친절한 4형제’, 친절한 컨셉트로도 웃길 수 있다?
‘친절한 4형제’는 기존 ‘대박대담’의 변형 코너다. ‘대박대담’이 MC의 질문과 진행을 통해 대박이냐 쪽박이냐를 가리는 구성으로, 게스트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쪽으로 접근했다면, ‘친절한 4형제’는 일단 ‘친절한 토크’를 표방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불친절한 느낌을 받았을 때 게스트가 버튼을 눌러 MC를 제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정환이 소녀시대의 수영에게 농담으로 던진 “혹성탈출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은 당사자는 물론 시청자까지 불쾌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곧 이어 그에게 가해지는 벌칙으로 인해 이러한 불쾌감은 상당부분 상쇄될 수 있다.

굳이 ‘친절함’을 컨셉트로 삼은 것은 저 ‘박중훈쇼’가 말하는 작금의 ‘불친절한’ 토크쇼를 떠올리게 한다. 상대방을 몰아세우고, 누군가의 비밀을 공개하게 만드는 식으로 이어지는 작금의 토크쇼들에게 불친절함은 하나의 대세이기도 하다. 이것은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보다 시청자들의 알고 싶은 욕구를 더 우선시하는 토크쇼의 리얼리티 경향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박중훈쇼’가 말하듯 ‘친절함’이 곧 ‘재미없음’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 면에서 ‘친절한 4형제’는 친절하면서도 재밌는 토크쇼를 상상하는 것 같다. 따라서 게스트를 공격하기보다는 스스로 무너지는 선택을 하는 ‘친절한 4형제’의 컨셉트를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은 박재정이다. 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함을 내세워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그것으로 웃음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국 사투리 자랑’, 사투리 그 자체로만도 충분하다?
‘전국 사투리 자랑’은 ‘전국 노래 자랑’의 형식에 사투리라는 강력한 웃음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이지애 아나운서는 ‘전국 노래 자랑’의 트레이드 마크인 실로폰 소리로 코너를 시작한다. 워밍업으로 하는 퀴즈에서는 특정한 상황을 전국 사투리 버전으로 보여준다. 특징적인 것은 그것이 대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리얼한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라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은 이 코너에 리얼 버라이어티적인 재미를 부가시킨다. 그저 사투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상황에, 촌철살인의 순발력 넘치는 말들은 퀴즈 형식으로 엮어져 더욱 폭발력을 갖게 된다.

특정한 사투리의 의미를 맞추는 코너는 저 ‘올드 앤 뉴’에서부터 지금껏 변함 없이 내려온 ‘상상플러스’의 전통이 되었다. 다만 소재적으로 사투리를 선택했다는 점이 이전에 ‘상상 우리말 더하기’에서 외래어 선택보다는 더 친화적이라는 점이 이번 코너의 특징이 된다. 표준어에 경도된 우리네 언어습관보다 좀더 다양한 사투리들을 발굴함으로써 우리 언어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겠다는 기획의도 역시 의미와 재미를 찾겠다는 이 코너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상플러스’는 인터넷 매체 등의 변화 속에서 급변하는 우리말을 민감하게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인 몇 안 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새롭게 구성된 코너들이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애초의 기획의도에 가까워지려는 노력만큼은 쉽게 읽어낼 수 있으며 그것이 전망을 밝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Posted by 더키앙

독설의 홍수, 내우외환 겪고 있는 ‘상상플러스’

처음 ‘상상플러스’가 시작되었을 때 그 제목에는 당대 인터넷의 언어문화를 TV 프로그램으로 껴안겠다는 기획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즉 상상을 덧붙인다는 그 의미 속에는 이른바 댓글 문화에 대한 이 프로그램의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것을 하나의 코너로 만든 것이 댓글방의 활용이었다. 스타들에 대한 재치 넘치는 댓글들을 포스트잇으로 방 한 가득 붙여놓고 거기서 몇 개를 골라 그걸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은, 자연스레 네티즌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이로써 ‘저들끼리의 이야기’로만 치닫던 당대의 토크쇼에 참신한 변화를 제공했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그로 인해 변해 가는 언어에 대한 ‘상상플러스’의 관심은 곧바로 ‘세대공감 올드 앤 뉴’로 이어졌다. 당시 건전한 KBS의 방송이미지에 걸맞는 이 프로그램은 기성세대의 언어와 신세대의 언어 사이에 교량역할을 하겠다는 야심찬(?) 의도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또한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인포테인먼트에도 잘 편승하는 형식이었다. 세대 간의 공감대를 넓힌다는 좋은 취지 하에 출연진들은 맘껏 놀 수 있는 멍석이 마련되었다. 노현정 아나운서를 중심에 세워 유지한 말에 대한 엄정함은 몸 개그와 부적절한 언어가 난무하는 출연진들의 경박함에 어떤 긴장관계를 만들며 균형을 잡히게 했다.

하지만 ‘상상플러스’의 추락은 바로 그 엄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투여된 노현정 아나운서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면서 연예인화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인포테인먼트로서의 정보와 재미 중에 점점 재미에 경도되게 되면서 ‘상상플러스’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그것은 또한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흔들어 만들어낸 인기일 뿐이었다. 긴장감은 흐트러졌고 노현정 아나운서가 빠지자, 상황은 급변했다. 인기가 급하락하면서 ‘상상플러스’는 말에 대한 관심을 버렸고, 그러자 과거 그 프로그램이 벗어나고자 했던 말장난으로 회귀했다.

‘놀이의 탄생’같은 몸 개그로의 변신을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 ‘상상플러스’는 먼 길을 돌아 다시 말에 대한 관심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지금의 이지애 아나운서가 자리한 ‘상상우리말더하기’라는 코너다. 하지만 이 돌아온 탕아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그 동안 ‘상상플러스’가 내적으로 겪은 그 일련의 과정들, 즉 아나운서가 연예인화되고, 인포테인먼트가 엔터테인먼트로 변화하는 그 과정이 프로그램 외부에서도 진행되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공감 올드 앤 뉴’가 나왔던 그 시절만 해도 아나운서의 권위는 여전했고 따라서 그들이 구사하며 굳건히 지키고 있던 방송언어의 권위도 여전했다. 물론 방송사에서 독립해 연예활동을 하던 아나운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나테이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폭발적인 아나운서들의 변신이 일반화된 시점은 정확히 노현정 아나운서가 인기의 극점에 있었던 그 시기와 일치한다. 이 변화의 시기부터 아나운서들은 더 이상 우리 말의 최후의 보루를 잡고 있는 권위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예인 혹은 방송인의 하나로 그 존재를 낮춰오기 시작했다.

이 아나운서들의 변신이 말해주는 것은 그것을 용인해주는(혹은 권장하기까지 하는) 방송사의 달라진 말에 대한 태도를 말해주기도 한다. 아나테이너들은 보도와 뉴스 속에서 엄정함을 유지하기보다는 쇼 프로그램 속에서 춤을 추고 끼를 발휘하는 방송인으로 활약했고, 이렇게 달라진 방송사의 태도와 리얼리티가 강조되는 방송 환경이 만나자 권위를 포기한 방송언어는 막말과 독설로 변질되어 갔다. 아나운서의 변신은 그 자체가 방송언어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예고했던 징후들이다.

‘상상플러스’가 내우외환을 겪게 되는 것은, 이 외부적인 변화(독설의 트렌드화 같은) 속에서 어떤 적응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결국 내부적인 문제까지 도출하게 되는 그 악순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언어를 다룬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각종 막말 논란에 휩싸이게 되는 이 아이러니는, 이제는 권위를 잃어버린 아나운서와의 사라진 긴장감이 그 문제의 밑바탕을 제공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형식이 무의미해지면, 그 속의 인물들은 과도해지거나 무성의해지기 마련이다.

‘상상플러스’의 끝없는 추락은 한 토크쇼의 부적응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아나운서에 대한 인식의 변화, 나아가 방송사가 언어를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 같은 것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긴다. 이제 막말까지 치닫는 방송언어 환경 속에서, 그저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상상플러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위기에 직면해 있는 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그들에게도, 시청자에게도, 예능에도 좋지 않다

컴백한 비와 김종국이 예능을 장악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채널을 돌리다 걸리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는 이들이 게스트로 출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월드스타 비는 해외활동 때문에 국내에 그간 보이지 못한 얼굴을 한껏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솔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김종국 역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느라 그간 뜸했던 방송에 새 앨범과 함께 컴백하면서, 특히 집중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공략하고 있다.

비는 ‘무릎팍 도사’, ‘예능선수촌’, ‘상상플러스’에 이어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할 예정이고, 김종국은 ‘패밀리가 떴다’, ‘놀러와’에 이어 ‘상상플러스’에도 출연했다. 물론 그 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방송출연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연거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나 예능 프로그램의 입장에서나 또 비와 김종국 당사자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다.

비가 출연해 진솔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던 ‘무릎팍 도사’는 한 청년의 세계를 향한 도전과 좌절, 그럼에도 그걸 딛고 일어선 비의 불굴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 비가 강조한 오기와 독기는 혼자 세계와 대항하는 듯한 그의 이미지를 세워주면서 동시에 힘겨운 젊은이들에게 어떤 힘을 불어 넣어주기까지 했다. 한편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가 그 이야기를 ‘예능선수촌’과 ‘상상플러스’에서 반복해서 하자 그 의미는 상당부분 사라져버렸다. 그 진술은 반복되면서부터 진솔함의 토로에서 홍보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것은 김종국도 마찬가지다. 김종국은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대체로 그대로 반복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사실상 김종국을 하나의 캐릭터로 구축하기 위해 온 패밀리가 김종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해프닝을 벌였다. 그는 ‘놀러와’와 ‘상상플러스’에 연거푸 출연하고 앞으로도 ‘패밀리가 떴다’에 게스트의 입장으로 계속 출연할 예정이다.

하긴 그들의 출연목적은 본래부터가 홍보이기는 했다. 가수가 음반을 내고 홍보를 하기 위해 예전 같으면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예능 출연이 더 효과적인 세상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능 선택은 다다익선인 셈이다. 하지만 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과거와 지금의 예능 사정은 달라졌다. 예능의 리얼리티화는 홍보 프로그램으로 전락한 예능 프로그램에 던진 시청자들의 외면에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아무리 홍보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매번 비슷한 식단을 들고 예능에 등장하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도 그다지 유익한 것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로 인해 예능 프로그램이 홍보 프로그램으로 변질되면서 결국에는 시청자들의 볼 권리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그들이 아예 고정MC로 출연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아예 고정이라면 프로그램 속에 어떤 캐릭터로서 기여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는 입장이 되지만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게스트라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그 자체로 흐트러뜨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탈신비주의도 좋고 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는 취지도 좋다. 하지만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쏠리는 예능 프로그램의 자력은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하다. 오랜만에 돌아온 비와 김종국, 그 반가운 얼굴이 자칫 식상해지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된 ‘상상플러스’

‘상상플러스’라는 토크쇼의 미덕은 말이 가진 표현에 천착했던 점이다. 스타에 관한 재치가 넘치는 댓글들을 방 한 가득 붙여놓고 거기서 몇 개를 골라 스타의 이면을 얘기하는 포맷 속에는 기본적으로 네티즌의 참여와 그 참여한 네티즌의 재치 넘치는 댓글이 힘을 발휘한다. 이 토크쇼에서의 대화는 따라서 저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닌 네티즌이 참여된 이야기가 된다.

이 미덕이 발전적으로 이어지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세대공감 올드 앤 뉴’이다. 여기서 말은 코너의 중심주제로 부각되었다. 젊은이들의 언어와 기성세대의 언어를 끄집어내면서 세대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겠다는 취지가 있었기에 토크쇼라면 응당 있기 마련인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는 인정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취지를 살리듯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노현정이라는 아나운서가 앉아 있었다.

아나운서가 자리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잘못된 표현은 거침없이 수정하고,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노현정 아나운서는 오락프로그램의 말장난 속에서 오히려 더 빛나게 되었다. 문제는 점차 노현정 아나운서가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인화 되어갔다는 점이다. 이 도무지 어느 국적의 사람들인지 의심케 만드는 출연자들의 말장난을 수정하고 교정해주는 역할에서 함께 웃고 즐기는 상황으로 바뀌었던 것.

이것은 만일 이 코너의 취지가 말 그대로의 잘못된 언어사용이나 세대차이가 나는 언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제대로 된 언어사용을 하는 아나운서마저 무너지게 만드는 잘못된 언어들의 공격을 통한 재미였다면 당연한 귀결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과정을 따라간 것은 분명하다.

노현정 아나운서가 빠지고 백승주 아나운서나 최송현 아나운서가 그 자리에 앉자 이런 상황은 더 가속되었다. 아나운서가 해야 할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다. 노현정 아나운서는 적어도 아나운서로서의 위치를 지키는 과정에서 어떤 웃음을 주었지만, 나머지 두 아나운서는 그런 역할이 강조되지 않았다. 함께 출연진들과 웃고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아나운서들은 말 그대로 말발 센 개그맨들 앞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새로운 포맷으로 시작하는 ‘놀이의 탄생’은 이제 ‘상상플러스’가 댓글과 같은 언어의 세계를 버리고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놀이의 탄생’이 시청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은 재치 있는 말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따라서 이 포맷의 재미는 아이디어 자체라기보다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몸 개그다.

‘상상플러스’는 ‘야심만만’처럼 점점 사라져가고 자리를 잃어가는 토크쇼들 속에서 몸 개그로의 전환을 하려 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토크쇼가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은 저들만의 이야기, 신변잡기식 토크쇼에 물린 탓이라는 점이다. 말을 버리자 말장난이 되어버린 ‘상상플러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애초부터 시청자 참여를 이끌며 나가려 했던 ‘상상플러스’만이 가진 말에 대한 감수성이 아쉽기 때문이다.
Posted by 더키앙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