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코', 어떻게 오디션 끝판왕 됐나

주말 내내 이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계속 해서 보다보면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역시 오디션은 '보이스코리아'"라는 것. 뭐니 뭐니 해도 그 첫 번째 이유는 가창력이다.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비교해 '보이스코리아'의 참가자들이 보여주는 무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준다. 탄탄한 기본기는 물론이고, 그 위에 독특한 보이스의 매력이 얹어지니 금상첨화다.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보이스코리아'는 그 독특한 시스템 때문에 코치(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다)들의 상찬과 과감한 리액션은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리액션조차 과도하다 여겨지지 않는 건 참가자들의 기량이 그런 상찬을 받을 만큼 충분하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K팝스타'에서 무려 100-100-99점을 받았던 박지민의 무대에 쏟아진 심사위원 3명의 리액션이 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물론 현 단계에서 '보이스코리아'와 'K팝스타'를 비교하는 건 적절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즉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은 오디션과 현재 생방송을 하고 있는 오디션에는 확실히 질적인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라면 생방송에서 오히려 시청률이 점점 상승곡선을 그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너무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난립은 경연과 서바이벌이 주는 긴장감 그 자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제 대중들은 서바이벌이라는 장치 위에 드러나기 마련인 음악 그 자체에만 주목한다. 그러니 생방송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음악적인 면모에 오히려 실망할 수밖에.

그런 점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에 굳이 생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은 적절하다. 생방송의 의미는 마치 저 스포츠처럼 경쟁과 서바이벌에서 누가 이기느냐에 집중하게 될 때 효과를 가지는 것일 뿐, 지금처럼 톱10에 들어가면 누가 떨어지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환경(그들은 이미 선택된 이들이라는 걸 우리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학습했다)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이 주목해야 할 것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통해 주는 감동의 무대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보이스코리아'는 아직 생방송에 돌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오디션 환경에 가장 적응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즉 '보이스코리아'는 기존 서바이벌에 방점을 찍던 오디션들이 갖기 마련인 세 가지 요소를 일찌감치 없애버렸다. 그것은 독설, 과열경쟁, 합격 불합격으로 나오는 당락, 이 세 가지다.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들이 앉아있고, 그들은 독설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참가자들에게 심지어 세레나데를 부른다. 합격 불합격 같은 자극적인 말들은 좀체 들리지 않고, 참가자들 사이에서의 과열 경쟁 또한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은 '보이스코리아'만의 독특한 배틀 라운드 시스템을 통해 드러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탈락되는 배틀 라운드가 한 무대 위에서의 하모니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은 이 오디션이 경연 그 자체보다 최고의 무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 무대 위에서 경쟁자들은 자신의 기량을 혼자 뽐내기보다는 상대방과 맞춰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대를 망치게 되고 그것은 결국 자신의 탈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협력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이 아이러니한 구조의 배틀 라운드 시스템은 그래서 여타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기본적으로 하모니를 이뤄야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경쟁보다 하모니에 맞춰진 시스템은 그래서 경연이 끝나고 나서도 지극히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떨어진 참가자가 붙은 참가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붙은 참가자가 떨어진 참가자를 진심으로 껴안아줄 수 있게 되는 것. 이러한 음악 그 자체에 맞춰진 오디션 시스템과 그래서 갖게 되는 한바탕 음악적인 어우러짐처럼 여겨지는 경연 무대는 '보이스코리아'가 오디션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제 경쟁은 지겹다. 음악을 허하라. '보이스코리아'는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하다.


'보코', 경연에도 하모니가 들리는 이유

'보이스코리아'(사진출처:엠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서바이벌일까, 아니면 음악 그 자체일까. 아마도 1년 전만해도 우리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서바이벌'이었을 것이다. 그 경쟁 스토리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이제 오디션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지금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적인 스토리는 어딘지 구질구질한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굳이 덕지덕지 스토리를 갖다 붙이지 않아도 음악과 무대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채워지는 어떤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닐까.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는 이렇게 달라진 오디션의 관전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었다. 제목 자체가 ‘배틀 라운드’이고, 무대 역시 마치 격투기 선수들이 이름이 불려지면 오르는 사각의 링 같은 서바이벌의 느낌을 풍기지만, 실제 그 위에서 부르는 두 사람(그 중 한 명은 떨어진다)은 절정의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첫 링(?)에 오른 장재호와 황예린은 그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별의 ‘안부’를 마치 연인 같은 느낌으로 불러주었다. 기둥처럼 굳건하게 중심을 세워주는 장재호의 보이스 위에 화려하게 장식되는 황예린의 보이스가 만들어내는 화음은 듣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파워풀한 지세희의 목소리에 브릿팝의 감성을 느끼게 해주는 오경석의 목소리가 겹쳐져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듯 불려진 ‘맨발의 청춘’, 너무 뛰어난 목소리들의 화음 때문에 백지영으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든 유성은과 임진호가 부른 이은하의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4차원 소녀 우혜미와 파워풀한 보컬의 정소연이 블루스적인 감성을 흠뻑 느끼게 해준 신촌블루스의 ‘아쉬움’은 또 어떻고. 이것은 분명 한 명은 탈락하는 배틀 라운드지만 최고의 무대 그 자체에 더 방점이 찍히는 무대였다.

즉 서바이벌을 통해 누군가 붙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은 그저 결과일 뿐이고, 사실은 과정 즉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이 두 사람의 놀라운 어우러짐이 ‘배틀 라운드’의 진짜 얼굴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포인트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보이스 코리아’는 질척이지 않고 대단히 쿨한 느낌을 선사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하지만, 무대에서는 배틀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함께 부르는 노래 그 자체에 집중하고 모든 걸 그 화음에 쏟아 붓는다. 그렇기 때문에 합격과 불합격이 나뉘는 그 서바이벌 결과의 순간에 잠깐 흐르는 눈물은 기존 오디션이 갖는 신파의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세련된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최선을 다해 무대 위에서는 싸운 선수들이 무대를 내려와 서로를 토닥이는 그런 쿨함.

오디션 프로그램을 서바이벌로 보게 되면 자극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독설이 난무하고 누가 떨어질 것인가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이 묻힐 수밖에 없다. 결국 오디션에서 서바이벌은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도전자들로 하여금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자극제. 하지만 이제 음악을 듣기 시작한 대중들은 자극제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결국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음악으로 귀결된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K팝스타’의 수펄스를 통해 경험한 적이 있다. 모두가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과정이지만, 그 속에서 탄생한 수펄스라는 네 명의 아이들이 만들어낸 절정의 하모니는 듣는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 순간 우리는 이것이 서바이벌의 무대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음악에 집중했던 것이 아닌가. ‘보이스 코리아’의 배틀 라운드가 보여준 그 특유의 쿨함은 지금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하나의 징후로 보인다. 음악이다. 서바이벌이 아니고.


음악만 들어가면 주목되는 예능 프로그램 왜?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지금 불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광풍은 서바이벌 오디션의 성공인가, 아니면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의 성공인가. 혹자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장치가 그 원인이라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바로 이 팽팽한 긴장감이 서바이벌이라는 장치를 통해 조성되지 않았다면 그 무대는 밋밋해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혹자는 서바이벌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소재가 그 주요 원인이라고 말한다. 이것 역시 맞는 얘기다. 현재 다양한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음악이라는 소재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오디션과는 상관없이 음악을 소재로 끌어들인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도대체 무엇일까. 서바이벌이 갖는 경쟁일까, 아니면 음악이 주는 감성일까.

'나는 가수다'가 이토록 모든 이슈를 먹어치우는 예능의 핵이 된 것은 이 두 요소가 폭발적으로 엮여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표 기성 가수들이(혹자들은 신이라고까지 칭하는!) 경연을 벌이고 그 중 한 명이 탈락하는 이 시스템은 이 무대의 기대치를 200% 높여놓았다. 백전노장 가수들마저 떨게 만들고 자신의 한계치를 넘나드는 무대를 도전하게 하는 시스템이 주는 힘은 고스란히 대중들의 전율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 전율을 감동으로 연결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라는 감성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이 무대는 그저 피만 철철 흐르는 검투사의 무대에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이 경쟁을 감성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재도전으로 서바이벌의 피로도가 급격히 올라갔을 때, 그것을 순식간에 내려준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감동적인 무대는 서바이벌 이상의 가치를 이 무대에 부여했다.

'위대한 탄생'은 서바이벌보다는 음악이 주효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즉 서바이벌 형식에 덧붙인 멘토제는 공정한 경쟁을 상당부분 상쇄시켜버린 느낌이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을 봤던 것은 거기 음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이 예능에 발휘하는 힘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작년 '남자의 자격'을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에 놓은 것은 다름 아닌 '하모니'라는 합창이었다. 그 음악의 어우러짐이 만들어내는 감동이 이 예능에 깊은 감성을 부여한 것. '놀러와'에서 시도된 '세시봉'이 신드롬을 일으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토크쇼에 음악을 덧붙이자 스토리화된 음악은 더 감성적으로 대중들의 귀에 꽂혀버렸다. 이것은 지금도 '놀러와'에서 가수들이 등장할 때 좀 더 큰 화제가 되고 시청률이 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음악이 다뤄지는 예능이 주목받는 현상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이 어쩌면 음악 예능의 열풍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무릎팍 도사'보다 '라디오 스타'가 더 주목되는 것도 그 한 예일 것이다.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백두산의 김도균과 트랙스의 정모 씨앤블루의 용화 종현이 즉석에서 벌인 잼이 큰 화제가 된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무한도전'의 서해안 가요제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감흥을 주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제는 웬만한 토크쇼에 가수가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노래를 하는 것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렸다. '승승장구'에 나온 남진은 춤을 추며 옛 노래를 열창하고, '놀러와'에 출연한 얼굴 없던(?) 가수들 김범수, 박완규, 조관우 역시 잔잔한 토크 위에 전율의 음악을 얹어 놓았다.

반면 음악이 아닌 소재를 가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런 프로그램의 성공이 오디션이 아니라 음악이라는 심증을 더 굳게 만든다. '신입사원'처럼 아나운서를 뽑는 오디션이 주목도가 낮고, 또 '키스 앤 크라이'처럼 김연아를 투입하면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음악이 예능에 얼마나 큰 힘을 보태주는가를 실감하게 한다. 

비교적 서바이벌과 음악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는 가수다'의 장단점을 분석해보면 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어디에 더 핵심을 두고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즉 서바이벌 과잉이 만들어낸 이상 열기는 오히려 '나는 가수다'의 무대를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음악 외적인 것들이 각종 이슈들로 쏟아져 나올 때 이 프로그램은 힘겨워 진다. 반면 그 힘겨움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건 바로 가수들의 음악이다. 논란 속에서도 김건모의 열창은 그 모든 논란을 넘어서게 만드는 힘이 있고, 김범수의 도발은 유쾌하게 피곤한 무대를 날려버린다. 물론 무대를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장치는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성을 열어주는 음악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오디션 전성시대가 아니라 음악 예능 전성시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모든 방송사들이 뛰어들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러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 논란의 핵심, 시청자의 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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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공개 프로그램에서 방청객은 시청자와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이것은 프로그램 제작자의 기획의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즉 방청객의 참여는 시청자들이 참여한다는 것을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방청객은 대표성을 띠게 마련이다. 그들의 환호나 눈물이나 감동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대표해서 보여준다고 여겨지게 만든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들의 경연에 투표하는 방청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시청자의 대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바이벌 형식에 대한 '나느 가수다'의 논란은 그 7명의 가수들 중 가장 적은 투표수를 받은 1인이 탈락한다는 지점에서 생겨났다. 도대체 왜 기성가수가 부르는 노래에 순위가 매겨지고 그 중 한 명은 무대를 내려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전문가들의 심사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의 투표를 통해서. 그런데 희한한 상황이 발생했다. 첫 경연에서 김건모가 탈락자로 발표되자 갑자기 재도전 카드가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 김영희 PD는 '누구를 탈락시킨다기 보다는 최고의 무대를 보이는 프로그램'이라는 기획의도에 맞춰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초기에 '왜 심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을 생각해보면 김영희 PD의 결정은 일견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서 필요악처럼 서바이벌 형식이 필요했다는 애초의 진술을 생각해보면 갑작스럽게 내민 '재도전 카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김건모가 결국 그 탈락자로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가수들의 반발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경연을 했고 그 경연에 대한 결과가 나왔을 때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만일 애초부터 최후 탈락자에게는 1회의 재도전 기회를 주겠다고 룰을 세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김건모의 재도전 카드는 말 그대로 급조한 것이다. 따라서 거기 참여해 투표를 한 방청객들의 선택은 무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결국 나아가 시청자를 무시한 것과 같은 결과다.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 선택에는 결국 방청객이나 시청자의 의견이 빠져있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가수들이든, 제작진이든 '그들끼리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디션 형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청자 참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나는 가수다'의 '시청자 배제'는 최악의 무리수를 쓴 셈이다. 오디션 형식이 가지는 비정함에 대해 시청자들도 대부분 안타까움을 갖는다. 그래서 김건모가 탈락자로 선정됐을 때, 아마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만일 김건모가 그대로 이것을 수용하고 김영희 PD가 누차 강조한 것처럼 '다음 가수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었다면 오히려 김건모에 대해 대중들은 호감을 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비정한 결정이라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저들끼리 번복하고 저들끼리 룰을 만드는 식의 행태는 대중들을 늘 허탈하게 만드는 비민주적인 행동이다. 우리가 늘 정치권을 통해 느끼는 그 허탈감.

재도전은 물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재도전은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의 주인이 시청자인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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