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이 그나마 문가영의 처지가 눈에 밟히는 이유(‘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이런 거다. 괜한 오기를 부리게 하고. 흔들렸으면서도 끝내 솔직하지 못했던 이유. 그 남자의 망설임을 나조차 이해해버렸으니까.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권리가 나한테 없다는 거. 발버둥 쳐봤자 내가 가진 처지라는 게 고작 이 정도라는 거.” 안수영(문가영)이 하상수(유연석)에 대해 갖는 감정은 복잡하다. 그에게 흔들리긴 하지만 자신의 초라한 처지는 그의 작은 망설임조차 스스로 이해하게 만든다. JTBC 수목드라마 <사랑의 이해>가 다루는 사랑이야기는 그 관계 에 끼어드는 서열과 차별의 첨예함으로 인해 늘 어떤 넘지 못할 선을 마주한다. 

 

안수영이 말하는 처지란, VIP 접대 술자리에 상품 소개가 아닌 일로 앉아 있어야 하는 그런 처지다. 육시경(정재성) 지점장은 그 자리에서는 상품 소개가 아니라 VIP를 즐겁게 해주는 게 그의 역할이라고 했지만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술을 따라주고 웃어주는 그런 일을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불편한 자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자 육시경은 대놓고 안수영을 괴롭힌다. 문서고 정리를 하루 만에 혼자 끝내라고 하고,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혼자 하기에는 버거운 양이라며 박미경(금새록) 대리가 돕겠다고 하자 육시경은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하찮은 일’이라는 말은 안수영의 마음에 금을 긋는다. 

 

혼자 문서고 정리를 하는 안수영이 하상수는 눈에 밟힌다. 같이 하자고 하자 안수영의 입에서는 날선 말들이 툭 튀어나온다. “지점장님 얘기 못 들었어요?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본인 업무에 충실하라고. 기계적인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정말.” 안수영이 눈에 밟혀 다가오려는 하상수지만, 그들 사이에는 육시경 지점장이 그어 놓은 선이 있다. 

 

<사랑의 이해>는 사회생활에서도 서열로 나뉘는 이해관계 속에서 과연 사랑은 어떤 양상을 띨 것인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고부갈등, 집안의 반대처럼, 멜로드라마가 남녀의 사랑을 다루기 마련이고, 그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그 시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이 드라마는 이제 이해관계가 사랑 같은 관계에 장애가 되는 현 시대를 보여준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서열과 차별이 존재하고 거기서 어떤 선을 느끼는 건 안수영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수영이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VIP 술 접대를 하러 간 것처럼, 하상수 역시 육시경 지점장과 함께 VIP 골프 접대를 하러 간다. 그런데 그 VIP가 알고 보니 같은 은행 동료이자 학교 후배인 박미경 대리의 아버지다. 라운딩이 끝났을 때쯤 박미경은 하상수와 함께 동창 결혼식을 가려고 그를 픽업하러 오고 거기서 만난 아버지에게 냉랭하게 대한다.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딸이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 하상수를 접대를 빙자해 만나본 거라는 게 불편해서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박미경 대리는 부유한 집 자식이라는 사실 때문에 받는 편견이 싫다. 그는 뭐든 자신이 노력해 이뤄왔고 학교에서도 전액 장학금을 받아왔지만, 결혼식장에서 만난 동창은 그것이 착한 척하는 가식이라며 쏘아붙인다. “너 장학금 받고 다닌 거 되게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다 가져놓고 그거까지 뺏은 거야, 너. 너한테 밀려서 전액 장학금 놓친 애가 알바 세 탕 뛴 거는 알아? 네가 만약에 걔처럼 알바 하면서 공부했으면 그래도 장학금 탔을까? 네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알바 따위 할 필요 없었던 너희 집안 재력 덕분이라고. 그 옷, 그 가방 은행 다니는 월급쟁이가 살 수 있는 거 아니잖아.”

 

그 날 술에 취한 박미경은 하상수에게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는다.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게 ‘달리기’라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달리기는 명확하거든. 그것마저 부모덕이라고 말하는 애들은 없으니까. 난 그냥 인정받고 싶어서... 우리 엄마, 아빠 딸로 안 태어났어도 지금 이대로 잘 살고 있을 거다. 영포점 PB팀 박미경으로. 나도 자기들처럼 얼마나 노력하는데... 근데 지금 중요한 건 선배가 내 말을 배부른 소리처럼 들을까 봐.”

 

하상수를 두고 안수영이 스스로 느끼는 처지와 박미경이 느끼는 처지는 정반대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이들의 남녀 관계 사이에 어떤 장벽이나 장애처럼 선을 긋는 건 분명하다. 하상수는 안수영과 박미경 사이에 서 있고, 그들 사이에는 다른 처지로 선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궁금한 건 KCU은행 영포점에서 은행경비원 정종현(정가람)처럼 안수영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이를 제외하고 모두가 안수영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유독 하상수만 그를 눈에 밟혀하는가 하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그의 어머니 때문이 아닐까. 에스테틱 원장으로 일하는 그의 어머니 한정임(서정연)은 늘 VIP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을 한다. 고객인 강남 사모들의 여드름 짜는 일도 마다치 않고 해온 인물이다. 남편이 사망한 후 아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상수는 어쩌면 안수영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겹쳐 보이는 게 아닐까. 그 같은 처지가 보이는 게 아닐까. 

 

<사랑의 이해>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스펙과 빈부, 집안 등으로 보이지 않게 그어져 있는 무수한 선들을 살핀다. 사랑이야기는 이 드라마의 메인이지만, 그건 어쩌면 이러한 선들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 과연 그 선들을 넘는 진정한 관계는 가능한가를 묻기 위한 장치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 역시 안수영이 육시경 지점장에게 접대를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걸 “그의 선택”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처지를 아직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안수영의 입장에서는 능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당연하게 거부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몰이해와 오해를 넘어 하상수와 안수영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보이지 않는 선을 넘어 처지를 뛰어넘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사진:JTBC)

'VIP', 이상윤의 구토에 담긴 의미는 뭘까

 

박성준(이상윤)이 누군가에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러 간다. 어느 카페 박성준이 어떤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그 상황은 SBS 월화드라마 <VIP>가 지금껏 궁금하게 만들었던 불륜녀의 정체를 드러낼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낯선 여자에게 박성준은 봉투를 꺼내 내민다. “부사장님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은 박성준이 부사장의 내연녀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냐며 자신은 헤어질 수 없다는 내연녀에게 박성준은 “부모님은 모르시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은근히 협박하고, 결국 내연녀는 비밀유지서약서에 사인한다. 카페 밖에서 내연녀를 보내고, 박성준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지 못한다. 골목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해댄다.

 

그의 구토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아니 그는 왜 구역질을 느낀 걸까. 그건 자신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 분노 같은 것들이 뒤섞여 생겨난 구토일 게다. 회사 일이 아니라 회사 상사의 더러운 뒤까지 닦아주며 살아내야 하는 자신이 못내 참기 힘들었을 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VIP>가 지금껏 그려온 이야기가 박성준 자신의 불륜 사실과 그와 관계한 불륜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들이다. 타인의 불륜을 처리해주며 구토감을 느낄 정도의 인물이 누군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의심하게 된다. 박성준은 과연 불륜을 저질렀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불륜을 관리해주다 앙심을 품은 이에 의해 그런 문자까지 아내가 받게 만든 것일까.

 

비밀유지서약서가 버젓이 등장한다는 건, 이 VIP와 그를 보좌하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일들에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조건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 과연 박성준은 자신의 불륜이 아니면서도 VIP와의 관계 때문에 아내에게조차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내 나정선(장나라)에게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가 왔고, 그것이 바로 나정선의 자리에서 보내졌다는 걸 알고는 박성준이 그 날의 CCTV 자료를 빼간 것도 너무 깔끔한 일처리가 오히려 눈에 띈다. 그것 역시 VIP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조처가 아니었나 의심될 정도로.

 

물론 이건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 흐름 상 박성준이 불륜남이 아닐 거라는 심증이 자꾸만 생겨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고 같은 사무실에 남편 박성준과 아내 나정선을 나란히 세워놓은 건 그들이 하는 일(VIP를 관리해주는 일)과 그들의 사적인 삶이 겹쳐졌을 때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VIP이기 때문에 불륜이 용인되고, 심지어 그걸 관리해주는 박성준은 그런 일이 실상 VIP 전담팀이라는 그럴 듯한 부서가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정선과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나정선 또한 그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문자 하나가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함께 그 일을 하는 동료들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다. 만일 박성준이 불륜이 아니었고 그것이 VIP를 관리하는 일의 하나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정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핵심은 무엇이 VIP라는 존재들에 이토록 윤리와 도덕 바깥으로 나가도 관리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그건 결국 VIP들을 위해 발급된다는 카드에 붙어 있는 번호표가 그들의 서열이 되는 것처럼, 돈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자본주의 세상 깊숙이 들어와 살다보니 돈에 의해 서열이 나뉘고 심지어 비윤리적인 것까지 관리되고 용인되는 VIP의 세계를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세계가 참으로 기이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불륜’이라는 코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사진:SBS)

<12> 나잇값 못하는 그들에게 슬럼프란 없다

 

대상의 위엄 따윈 잊은 지 오래? KBS 연예대상을 받은 김종민이 <12>을 대하는 태도는 그 전과 후가 똑같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분에 신나 들떠하는 그였고 스스로 바보스러움을 드러내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대상을 받았을 때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한 그의 말은 그러고 보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듯싶다. 그는 진짜 아이 같고 천진한 나잇값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1박2일(사진출처:KBS)'

신년을 맞아 첫 방송으로 KBS <12>이 이른바 나잇값특집을 마련한 건 그래서 매우 시의 적절했다고 보인다. 그것은 신년이 되면 늘 먼저 생각하는 한 살 더 먹은 나이에 대한 생각들을 아이템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를 대하는 출연자들의 한결 같은 천진난만함을 통해 그런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이 아이템은 <12>이 그토록 긴 세월을 방송을 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재미있는 이유가 바로 그 아이 같은 모습들 때문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심지어 대상까지 받았지만 그것도 아랑곳 않는 김종민의 모습이라니.

 

속초 영금정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 살 더 먹은 새해의 풍광을 보여준 <12>은 곧바로 전문가를 통해 그들의 정신연령을 체크했다. 흥미로운 건 실제로는 가장 나이가 어린 동구가 정신연령이 가장 높았고 김종민이 가장 정신연령이 낮은 것로 나타났다는 것. 이러한 실제나이와 정신연령의 괴리는 정신연령대로 형 동생 서열을 정하면서 웃음의 포인트로 바뀌었다. 서열 놀이만큼 코미디의 본령이 없는 법. 이어진 서열대로 음식을 물려 먹는 물림상은 복불복의 또 다른 풍경을 가능하게 했다. 사실상 가장 서열이 낮은 김종민은 거의 먹을 게 없어 울상이 되었던 것.

 

하지만 이 나잇값 서열은 어찌 보면 <12>에서 누가 더 강력한 웃음을 주는가를 역순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대상의 위엄에 빛나는 김종민이 가장 큰 웃음을 주었고 그 다음으로 정신연령이 낮게 나온 데프콘이 그리고 김준호가 그 뒤를 이었다. 이 순서가 말해주는 건 <12>의 웃음이 여행이라는 일상을 벗어난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소 퇴행적일 수 있는 아이 같은 모습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새해 첫 방송이고 바닷가에 갔으니 입수가 빠질 리 없다. 그런데 그 입수 복불복에도 여지없이 나이를 두고 벌어지는 게임이 한 몫을 차지했다. 나이가 적혀진 게임복을 입고 먹물로 칠하면 거기 적혀진 숫자만큼의 나이를 빼앗는 콘셉트의 그 게임에서도 단연 주목되는 인물은 역시 김종민과 데프콘 그리고 김준호였다. 특히 김종민과 데프콘이 경기와 상관없이 서로의 뺨을 마구 때리는 장면은 보는 이들을 폭소하게 만들었고, 동구의 머릿칼을 부여잡고도 결국 점수 계산을 통해 보니 입수자가 된 김준호의 황당해하는 모습 역시 큰 웃음을 주었다.

 

칼바람이 돋는 바닷가에서 살을 내놓고 벌어지는 복불복 게임에, 심지어 차디찬 바닷물에 입수까지 하는 그 모습이 유쾌한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나잇값과는 상관없는 그들의 아이 같은 즐거운 모습이었다. 특히 김종민의 거의 진심이라 보이는 즐거운 모습은 그가 대상을 받은 인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여전함이 묻어났다.

 

KBS 연예대상은 한 때 대상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상을 받았던 이들이 추락을 거듭하는 결과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김종민의 경우에는 걱정할 일이 없을 듯 싶다. 결국 추락이란 높은 곳에 있을 때 생기는 일이다. 대상을 받든 안 받든 늘 밑바닥에 자신을 두고 기꺼이 웃음을 위해 신나게 한바탕 뒹구는 그의 모습에서 슬럼프는 있을 리가 없다.

 

이건 또한 <12>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그간 KBS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꼽아져 왔지만 늘 낮은 자리를 찾아가는 그 자세. 그것이 <12>을 지금껏 꾸준히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만든 경쟁력이다. 나잇값?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새해가 와도 여전히 아이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새 멤버보다 주목되는 <1박2일>의 변화

 

사실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근원을 좇다 보면 거기서 우리가 만나는 건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다. 국내 예능에 있어 <무한도전>이 건드리지 않은 아이템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 이것은 <무한도전>이 워낙 독보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성격상 끊임없는 형식 도전을 해온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12>도 어찌 보면 <무한도전>이 했던 여행 도전의 한 분파로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1박2일(사진출처:KBS)'

그래서일까.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도 <무한도전>을 지향하는 경향이 생긴다. <무한도전>의 추격전 같은 콘셉트에서 그 한 분파로 나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있는 <런닝맨>이 지향했던 것도 무한 게임도전같은 것이었다. 게임이라는 한 소재에 집중해 끝없는 게임 형식의 도전을 해왔던 것. 하지만 <12>은 조금 달랐다. <무한도전>의 한 지류로 등장했지만 오래도록 해오면서 <12>만의 색깔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색깔은 다름 아닌 토착적인 느낌, 국내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지 주민들과의 교류, 무엇보다 복불복 게임 같은 것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12>은 무언가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금껏 달려왔던 길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색다른 도전과 느낌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하얼빈 특집은 <12>의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이템이다. 국내 여행지만 고집했던 <12>이 해외를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최근의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워낙 밖으로 구석구석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한계 같은 것을 넘고자 하는 시도다. 물론 토착적인 느낌이 강한 <12>이 해외를 가게 된다고 해도 거기에는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

 

하얼빈 특집에서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를 좇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12>의 해외 행에 대한 충분한 명분과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하얼빈 특집을 통해 <12>은 이제 해외로 가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졌다는 점이다. 그만한 의미만 있다면 갈 수 있다는 걸 하얼빈 특집은 인증해준 셈이다.

 

땅끝마을 해남으로 떠난 <12>봄맞이 간부수련회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봄맞이정도가 지금껏 해왔던 <12>의 특집이었을 게다. 하지만 <12>은 여기에 간부수련회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오프닝에 선거철을 맞아 갖가지 선거 행태를 풍자하는 반장 선거’, ‘회장 선거’, ‘왕 선거’, ‘짱 선거같은 걸 집어넣었다. 선거를 풍자하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서열구조를 통해 자연스럽게 웃기는 상황극들이 만들어졌다.

 

유호진 PD는 이 과정에서 더 적극적으로 방송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저 여행을 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한 발 물러서 담아내기보다는 이제 확실한 미션들을 계속 투입해 재미있는 상황들을 만들어내려는 의지 같은 게 엿보였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음식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에서도 알파고를 풍자한 알파오를 통해 오목대결을 벌이는 장면이 투입되었다. 사실 현지에서 그 특성에 맞게 복불복을 꾸며왔던 <12>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현재 대중들이 관심을 가진 사안들, 이를 테면 선거나 알파고 같은 아이템들을 <12>이라는 여행 버라이어티에 녹여내려는 시도가 엿보였다.

 

프로그램 중간에 출연자들을 통해 얘기된 것이기도 하지만 <12>은 아직 김주혁의 빈자리를 채워줄 새 멤버를 충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현재 새 멤버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런 <12>의 새로운 변화들이다. 지금껏 유호진 PD가 들어와 <12>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었던 건 원년의 그 정서들을 새로운 멤버들을 통해 잘 살려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유호진 PD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내는 <12>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여행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할 수 없었던 다양한 시도들을 <무한도전>이 그런 것처럼 <12> 안에서도 해보려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10년 넘게 전국을 다니면서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해왔던 일이니 어떤 면에서는 새로움을 시도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물론 그 시도가 <12>의 외연을 넓혀줄지, 아니면 본래 색깔을 퇴색 시킬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한다는 건 <12>로서는 어쩌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