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가 해부하고 있는 시스템의 밑바닥

 

수 백 억씩 주무르던 펀드매니저가 하루 아침에 노숙자 신세가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JTBC <라스트>는 이른바 작전 주식을 쥐고 흔들던 장태호(윤계상)가 오히려 누군가 주도한 역작전에 걸려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상머리에서 숫자로만 수 십 억씩 봐온 돈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지만, 막상 노숙자 신세가 되어보니 단 몇 천 원이 아쉽다. 배고픔은 밥 한 끼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처절함을 안겨준다.

 


'라스트(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 <라스트>가 그리고 있는 밑바닥의 풍경이 심상찮다. 거기에는 노숙자들 위에 군림하는 지하 경제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의 맨 꼭대기에 있는 곽흥삼(이범수)은 길거리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펜트하우스에서 지내며 100억 규모의 지하 경제를 움직인다. 넘버1 곽흥삼부터 넘버7까지 서열로 이뤄진 시스템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파티라고 불리는 대결에서 이겨야 한다. ‘파티에서 지면 그 패배자의 몸은 공장으로 가서 해체되는 최후를 맞이한다.

 

살벌한 시스템이지만 이 구조는 다름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시스템 그대로다. 태생으로 결정되는 일종의 사회적 서열 구조는 그 한 단계를 뛰어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서열 위치에서 윗 서열을 위해 열심히 봉사해야 한다. 그것이 시스템에서 생존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 넘버 1은 마치 맨 꼭대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위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윗 서열들이 숨겨져 있다. 밑바닥은 그것이 주먹의 논리로 돌아가지만 윗 세상은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

 

<라스트>가 그리고 있는 건 장태호라는 인물을 통한 이 시스템의 모험이다. 맨 밑바닥으로 떨어져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가며 알게 되는 시스템의 생리들. 저 위에서 펀드 매니저로 있을 때만 해도 잘 몰랐던 시스템의 구조를 온 몸으로 겪으며 체험해가는 것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다. 장태호는 그래서 서울역 노숙자들의 세상으로 내려와 거기 길거리를 전전하는 이들의 삶을 조금씩 알아간다. 또 신나라(서예지) 같은 길거리의 천사가 어떻게 그 시스템 바깥으로 나와 노숙자들을 돕는 삶을 살아가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길거리에 버려져 죽을 뻔 했던 삶에 내밀어준 누군가의 손길을 이제는 그녀가 내밀며 살아가게 된 것.

 

흥미로운 건 <라스트>의 밑바닥 시스템 안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그 서열이 어떻든 결코 행복해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이다. 장태호가 제끼려고 하는 넘버1 곽흥삼 역시 때때로 쓸쓸한 어깨를 드러내준다. 과거 그가 살아왔던 어두운 삶에서 그가 잔혹해진 건 어찌 보면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처럼 다가온다. 서로 대결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 때는 곽흥삼이나 넘버 2 류종구(박원상)나 서로 의리로 뭉쳐 있던 인물들이다. 그들은 내색은 안 해도 서로 위기에 처했을 때 몸을 사리지 않고 서로를 도우려고 한다.

 

즉 이들의 밑바닥 삶은 그 서열로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의 피땀으로 적셔진 생존이 거대한 지하경제를 만들고 그것이 저 지상의 삶을 사는 상류층의 삶들에 이익으로 상납되고 있다는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즉 저들의 밑바닥이 누군가의 호화로운 삶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시스템의 부조리는 그래서 밑바닥들이 그 부조리한 시스템과 대적하기보다는 그들끼리의 살기 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장태호의 모험은 그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의 세계와 밑바닥의 세계를 모두 들여다본 자로서의 장태호는 그 부조리한 관계를 아는 인물이다. 그들을 비참하게 만든 건 저 바깥에 있는데 그들끼리 파티라는 이름으로 생존경쟁을 하는 그 광경들이 씁쓸하게 여겨지는 건 그래서다. <라스트>가 액션 느아르 같은 장르적 성격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어떤 쓸쓸한 밑바닥 정서를 담고 있는 건 이것이 우리 현실의 일단을 해부하듯 잘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개콘>, 남성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KBS <개그콘서트>나 혼자 남자다라는 코너는 그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제목만 보면 요즘 부쩍 여성화된 남성들을 풍자하면서 마치 나만 남자다라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코너에서 레이디 컴퍼니라는 회사에 다니는 박성광을 통해 우리는 이 제목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나 혼자 남자다는 그 회사에서 거의 남자는 자기 혼자가 된 박성광의 처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회사적응을 걱정하는 엄마에게 걱정 말라고 전화통화를 하는 박성광이지만. 그는 키 크고 당당하게 등장하는 허안나와 성현주, 김니나 앞에서 잔뜩 주눅 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내려다보며 허안나는 이렇게 말한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그래. 여자 부장이라고 불편해하지 말고 그냥 편한 형이라고 생각해.”

 

업무 시작 전 함께하는 스트레칭에서 여자와 엉덩이가 부딪치게 되자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여자가 아니라 박성광이다. 메추리알을 껍질을 까서 먹느냐 아니면 통째로 먹느냐에 대해 후배 직원으로서 갈등하는 이도 박성광이다. 여자들을 상사로 두고 있는 남자직원의 고충. 아마도 이것은 최근 우리 사회에 새롭게 보여지는 현상일 것이다. 교육관련 회사들이나 출판사처럼 여성들이 많은 회사에서는 남자직원들은 심지어 여성화된다고까지 말한다.

 

같은 회사에서 박성광이 안일권과 정승환 같은 남자직원을 발견하고 즐거워하지만 곧 이들이 여성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웃음을 주는 나 혼자 남자다는 그래서 웃음 끝에 최근 여성화되어가는 남성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옷을 피팅해주고 잘 내려가지 않는 지퍼를 내려주겠다고 나서는 여자 부장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박성광의 모습은 만약 그 남녀의 성별이 바뀌었다면 도무지 개그 소재로도 나오기 힘들었을 장면이다.

 

취해서 온 그대에서 취해서 온 이희경에게 거꾸로 성희롱을 당하는 건 늘 서태훈이다. 그녀는 남자 팬티를 선물하겠다고 서태훈에게 주다가 갑자기 돌변해 왜 이런 선물을 자기에게 주냐고 묻는 여자다. 술잔에 빠지려는 머리칼을 잡아주자 뭐예요?”하며 스킨십까지 해대는 착각녀’. 물론 술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지만 여성에게 당하는 남성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은밀하게 연애하게는 겉으로 드러난 서열체계와 달리 연애관계에서는 정반대가 되는 관계의 역전을 웃음의 포인트로 잡아내고 있다. 즉 김기열은 타인이 보는 데서는 신입인 박보미를 호통치는 척 하지만 사람들이 없는 데서는 그녀에게 절절 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자리는 가장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그들 위에 서 있는 여성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것은 쉰 밀회에서의 남녀 서열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남녀 관계를 꼭 서열의 관점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그콘서트>의 콩트 코미디가 여성들을 코너의 중심으로 세우고 그 대상화하는 남성을 희화화하거나 공감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대거 많아졌다는 건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그간 지나치게 남성 중심으로 흘러왔기 때문에 그 변화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성들에게 당하는 남자들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드리워져 있고 그것이 개그의 공감 포인트로 제시되고 있다는 건 지금 현재 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개그콘서트>의 남성들의 위상은 달라지고 있다. 우리네 현실이 그런 것처럼.

 

<런닝맨>의 진화, 시청자 참여로 가능해지나

 

본래 게임이라는 게 그렇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더 재밌고, 하다가 조금씩 새로운 룰 같은 걸 만들어 변형시켜나갈 때 더 재밌다. <런닝맨>의 가장 큰 고충은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작진이 제 아무리 대단한 게임 매니아이고 아이디어 뱅크라 하더라도 수년을 반복하다보면 어떤 한계점을 보이기 마련이다. 이럴 때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 오히려 그 아이디어를 시청자들로부터 받는 것이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보다 수백 수천 명의 아이디어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것. <런닝맨> ‘홍콩에서 온 편지편은 그 훌륭한 사례다.

 

'런닝맨(사진출처:SBS)'

홍콩의 팬 아이린양이 제안한 게임은 장기를 응용한 게임이었다. 동양권에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기라는 게임에서 초와 한의 왕과 차, , , 졸을 가져와 <런닝맨>의 이름표 떼기 게임과 접목시킨 것. 초와 한으로 나뉘어져 각자 가진 기물을 이용해 상대편 낮은 서열의 기물을 없애는 방식은 마치 현실 밖으로 나온 장기 게임을 연상케 함으로써 더욱 흥미로워질 수 있었다.

 

<런닝맨>은 그간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도하곤 했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구상해 왔다. 하지만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특성 상 시청자 참여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아이린양이 보여준 시청자 참여 형식은 <런닝맨>에 가장 적합한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시청자도 참여하고, 아이디어도 확보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이 끝나고 숨어 있었던 아이린양이 직접 나와 상을 수여하는 장면은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를 남겼다. <런닝맨>의 팬들이라면 아이린양이 그런 것처럼 누구나 이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하고픈 욕구를 가질 것이다. 직접 자신이 만든 게임판 위에서 <런닝맨> 출연자들이 게임을 하고 그 우승자에게 자신이 상을 준다고 생각해보라. 그 얼마나 흥분되는 일이겠는가.

 

이것은 한때 침체의 길을 걷다가 다시 부활한 레고가 시도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전 세계 레고 동호인들의 대회를 통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끌어 모으고 그것을 상품화함으로써 팬들을 제작에 참여시켰던 것. 프로슈머의 시대에 소비자(시청자)의 참여는 상품(콘텐츠)의 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게임 버라이어티라는 한 가지 길로 달려온 <런닝맨>은 실로 다양한 놀이와 게임의 룰을 개발해냈다. 이름표 떼기, 물총 쏘기, 스파이 미션, 공포의 방울 레이스, 보물 찾기 등등 우리가 게임이나 놀이 등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것들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만한 추리극 형식이나 판타지 같은 장르까지 게임화 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주말 예능이라는 지점에 있어 너무 복잡한 게임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위험성이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전과 편안함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으려 노력해왔던 흔적도 역력하다. 이제는 <런닝맨>이라는 문호를 시청자들에게 개방해야 할 때다. 시청자들이 생각해낸 게임을 마치 테스트하듯이 실현해 보이는 일은 시청자와 함께 뛰는 <런닝맨>이라는 새로운 모토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제안된 게임들 중 어떤 것이 견고하고 훌륭했는가를 품평하는 시간도 가능할 수 있다. 시청자 참여로 <런닝맨>은 과연 새로운 진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실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푸른거탑>과 <레밀리터리블>의 성공 요인

 

군대 이야기만큼 닳고 닳은 소재가 없지만, 이 이야기만큼 공감가고 관심이 가는 소재도 없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봤을 이야기들. 그래서 흔해 빠질 수밖에 없는 군대 이야기의 관건은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 것인가가 된다. 똑같은 군대 이야기라도 어떤 이들은 군대 문턱에도 가보지 않았던 여성들의 귀까지 쫑긋 세우게 만들지만, 어떤 이들은 지겹게 들은 이야기의 반복으로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tvN의 <푸른거탑>과 공군에서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해 만들어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미국 언론에도 호평을 받은 <레밀리터리블>의 성공은 바로 이 스토리텔링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낸 데 있다.

 

'푸른거탑'(사진출처:tvN)

군대 이야기의 대부분은 과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혹한기 훈련을 이야기 하며 오줌만 눠도 얼음이 얼더라는 식의 과장은 당연한 군대 이야기의 양념처럼 들어간다. <푸른거탑>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며 꽁꽁 얼어버린 야전 화장실의 분변을 곡괭이로 깨며 “젠장 말년에 곡괭이로 언 응가를 깨고 있다니!”라고 외치는 최병장(최종훈)의 한 마디에 어찌 빵 터지지 않을 수 있을까. 혹한기 훈련이라는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그것이 결국 ‘변의 전쟁’ 같은 엉뚱한 일로 비화될 때 웃음은 터질 수밖에 없다.

 

귤 풍년이 군대에 몇 박스씩 들어온 귤을 다 먹어치워야 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태권도 단증을 따기 위해 마치 ‘바람의 파이터’처럼 단련을 하며, 군대에 뒤늦게 들어온 나이 많은 신병이 알고 보니 옛 은사였다는 식의 시퀀스는 군대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이지만, <푸른거탑>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드라마 <하얀거탑>의 패러디는 그 OST를 까는 것만으로도 <푸른거탑>에 충분한 효과를 준다.

 

코미디적인 상황을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결국 ‘서열’ 문화라고 볼 때, <푸른거탑>의 군대나 <하얀거탑>의 의사사회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즉 <하얀거탑>이 그 서열의 권력구조를 심각하고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면, <푸른거탑>은 그 서열 사회를 풍자하고 과장함으로써 웃음을 주는 식이다. <유머일번지>의 ‘동작그만’ 같은 코너를 통해 계급 사회로서의 군대는 그 자체로 웃음의 단골소재로 활용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많던 조폭개그나 기업의 서열개그(이를테면 ‘갑을컴퍼니’ 같은) 역시 이 군대 개그가 가진 계급 사회 뒤집기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힘들었던 군대 시절의 이야기는 회고담 형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늘 기억의 왜곡을 만들어낸다. 다만 그 왜곡이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군대 이야기의 과장은 어떨 때는 터무니없는 것이면서도 너무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푸른거탑>의 웃음 포인트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어디 군대 이야기가 그저 웃음뿐일까. 군대 이야기만큼 눈물 나는 이야기도 없다. 그것을 잘 보여준 에피소드가 명절에 어머니의 부음을 듣게 된 백봉기 일병의 이야기다. 군대에서 명절 때가 되면 더더욱 그리워지는 얼굴이 바로 어머니라는 점에서 이 에피소드는 많은 이들의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한편 <레밀리터리블>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레미제라블>이라는 보편적인 콘텐츠를 분단국가인 우리의 군대이야기(그것도 제설작업)라는 특수성으로 해석해냄으로써 유튜브를 타고 글로벌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아예 자막처리가 되어 있다는 점이나 유튜브 같은 신매체를 활용했다는 점은 아예 글로벌한 접근을 의도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의외로 진지하고 잘 짜여진 음악적 구성은 그것이 군인이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반전의 힘을 발휘한다.

 

끝도 없는 활주로 제설작업을 하는 이등병을 장발장으로, 눈길을 뚫고 달려온 여자친구를 코제트로, 또 이들 사이를 가로막고 제설작업을 요구하는 당직사관을 자베르로 패러디한 점은 실로 절묘하다. 이미 유튜브 조회수 300만 건을 돌파한 이 패러디 동영상은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 역을 맡았던 러셀 크로우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리트윗하면서 해외의 관심이 급증했다고 한다. <레밀리터리블>은 군복에 가려진 군인들이 보여준 창의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새롭다.

 

한없이 웃기다가도 때론 한없이 슬퍼지는 <푸른거탑>이나, 제설작업이라는 군대의 상황을 <레미제라블> 콘텐츠로 패러디해낸 <레밀리터리블>은 모두 군대 이야기라는 닳고 닳은 소재도 어떻게 스토리텔링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짧지만 강력한 <푸른거탑>의 에피소드들이나 <레밀리터리블> 같은 동영상은 그래서 이미 많이 차용된 이야기 소재들이라고 해서 모두 식상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는 섣부른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관건은 결국 스토리가 아니라 텔링에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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