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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가 블랙유머로 해부해낸 우리네 사회, 세계에도 통했다

 

제 72회 칸 영화제 폐막식의 주인공은 봉준호 감독에게 돌아갔다. 영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것. 아직 개봉된 작품이 아니라 그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현지 언론들의 폭발적인 반응들을 염두에 두고 예상해보면 역시 봉준호 감독 특유의 사회를 해부하는 블랙유머가 들어간 작품일 것으로 보인다. 작품 소개를 보면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사장(이선균)네 집 고액과외면접을 위해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이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분명 실현될 일이었다는 기시감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지금껏 여러 작품을 해오면서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들이 있었고, 그것이 어느 순간에는 그의 영화 세계로 구축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관심은 그의 첫 단편 작품이었던 <지리멸렬(1994)>에서부터 현재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까지 이어졌다.

 

대학교수와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의 허위의식을 발랄한 유머로 담아낸 <지리멸렬>로 주목받은 봉준호 감독은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한 중산층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담아낸 바 있다. <살인의 추억> 역시 연쇄살인사건을 통해 우리가 겪었던 한 시대의 암울함을 담아냄으로써 그가 사회성 짙은 진중한 메시지와 더불어 대중성 또한 겸비한 감독이라는 걸 보여줬다. 이 작품은 봉준호를 국내만이 아닌 해외에서도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괴물>로 그는 칸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미군부대가 방출한 화학약품이 원인이 되어 한강에서 출몰한 돌연변이 괴물로 인해 사투를 벌이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장르적 색깔을 가져오면서도 봉준호 특유의 사회성 짙은 블랙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괴물의 출몰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그간 벌어졌던 무수한 재난과, 그 재난에 대처하는 무능한 콘트롤 타워의 문제를 통렬한 유머로 담아냄으로써 이 작품은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흥행작이 되기도 했다.

 

<마더>는 한 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보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네 사회가 가진 모성애의 살벌한 이면을 들춰낸 문제작이었다. 아들을 위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아들의 잘못을 지워내기 위해 자행되는 범죄들은, 이른바 ‘치맛바람’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비뚤어진 모성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안겨준 작품이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달리는 설국열차에서 벌어지는 꼬리칸에서 머리칸으로 가는 투쟁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자본주의의 동력시스템을 해부하는 성취를 보여줬다. 자본주의라는 궤도를 달리는 열차를 멈춰 세우고 그 동작의 무한순환을 깨는 길을 마치 하나의 완결성 있는 상황극으로 담아낸 수작이다. 넷플릭스에서 투자해 동시 상영된 <옥자>는 그 달라진 영화 유통의 시대를 화두로 끄집어낸 작품으로, 식량과 환경이라는 문제를 슈퍼돼지라는 가상의 존재를 통해 풀어냈다.

 

이처럼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은 사실상 대부분이 우리네 사회에 대한 진지하고 통렬한 탐구를 담아낸 영화들이었다. 그 진지함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그래서 형사물이나 괴수물 심지어 가족극 같은 익숙한 장르들을 가져와서도 독특한 그만의 세계관으로 구축시켰고, 치열한 문제의식은 ‘봉테일’이라 불릴 정도로 그 작품에 놀라운 디테일을 부여했다.

 

따라서 이번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가 일관되게 해온 우리 사회에 대한 탐구가 이제 세계에서도 통했다는 걸 말해준다. <기생충>에 대한 외신들을 보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지만, 저마다 자국의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어느 한 사회에 대한 디테일한 분석은 결국 어느 사회에나 비슷하고 또 통할 수 있다는 걸 봉준호 감독은 보여주고 있다.(사진:영화'기생충')

Posted by 더키앙

왜 비행기에서 유독 갑질 논란이 많을까

 

바비킴이 비행기 안에서 음주난동을 부리고 심지어 성희롱까지 했다? 이렇게 처음 나온 뉴스보도는 또 다른 갑질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유독 항공기에서 갑질사건들이 쏟아져 나온 탓이기도 하다. ‘라면 상무이야기도, 팝핀현준이 항공기 협찬 관련해 불만을 토로하면서 나온 논란도, 무엇보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하나 때문에 항공기를 돌려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사건도 모두 비행기의 좌석에서 벌어진 갑질 논란들이다.

 

'비정상회담(사진출처:JTBC)'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비킴의 이번 사건은 바비킴보다는 오히려 대한항공측이 더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이 됐다. 드라마 <피노키오>가 과도한 살빼기를 시도하다 사망에 이른 한 여인의 에피소드(과도한 다이어트가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딸에게 이식을 하기 위한 모성애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드러난 사건은 그 내막을 모르면 엉뚱한 이슈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바비킴 사건이 딱 그렇다.

 

문제는 그간 자신이 쌓아놓은 마일리지로 정당하게 요구될 수 있는 비즈니스석 업그레이드가 어떤 이유에선지 직원의 실수로 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 게다가 비즈니스석에는 여유 좌석이 있었고 심지어 다른 손님은 그 자리로 옮겨 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바비킴만 거부된 사안은 그를 흥분하게 했던 것.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그에게 계속해서 와인을 갖다 줘 만취상태에 이르도록 방치했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얼마나 음주 상태에서도 참을 수 있는가 하는 한 사람의 인내력 테스트를 제대로 한 셈이다.

 

물론 그 상황에서 음주난동을 부리고 성희롱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 바비킴은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분명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게 어떤 상황이든 비행기 안에서의 난동은 심각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나오게 어떤 원인제공을 한 건 대한항공측이다. 바비킴 같은 연예인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음주난동을 의도적으로 부릴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갑질의 이야기는 거꾸로 뒤집어진다. 즉 요즘 툭하면 터지는 손님은 왕이란 명목으로 벌어지는 갑질이 아니라, 항공사가 정당한 요구조차 제 맘대로 들어주지 않는 갑질로 역전되는 것. 물론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 인해 가뜩이나 대한항공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대중들의 심리가 작용한 탓도 있지만 거기에는 서민들이 비행기를 타게 될 때마다 느끼는 그 놈의 클래스가 주는 상대적 박탈감도 들어가 있다.

 

비행기가 어느 때인가부터 갑을 정서를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그것이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의해 클래스가 나뉘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내면 다리도 쭉 펼 수 있고 심지어 비행 중 라면도 먹을 수 있는 기내서비스의 퍼스트 클래스에 탈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앉아 있다기보다는 거의 짐짝처럼 쳐박혀 갈 수밖에 없는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야 한다. 이것은 <설국열차>의 머리 칸과 꼬리 칸의 현실 그대로다.

 

그러니 우리 같은 서민들은 마치 탕수육 하나 먹으려고 짜장면 쿠폰을 모으듯이 마일리지를 모은다. 하지만 그 마일리지라는 것이 100 프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성수기는 아예 제외되고 성수기가 아니라도 빈 자리가 있어야 가능한 게 마일리지다. 그래서 자리를 업그레이드시키는데 주로 쓰기도 하지만 그것마저 좌절될 때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물론 바비킴이 이런 우리네 서민들의 상황과 똑같다는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비행기에서의 갑질 논란에서부터 이번 바비킴 사건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정서에는 분명 비행기 안에서 클래스로 나뉘어지는 그 갑을정서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다. 특이하게도 바비킴의 경우 그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항공사에 대한 비난여론이 커진 것은 그 갑질이 고객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항공사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바비킴이 잘한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지게 만든 항공사는 더더욱 잘한 게 없다. 도대체 클래스가 뭐고 돈이 뭐라고 텅텅 빈 비즈니스 클래스 좌석이 남아 있어도 돈 낸 만큼 좁고 불편하게 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 가본 사람이라면 이번 사안의 불편한 정서가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동수단에까지 자본의 논리로 붙여지는 클래스. 현대판 계급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송강호, 그가 있어 가능했던 '변호인' 천 만

 

<변호인>이 천 만 관객을 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했다는 것 때문에 개봉 전부터 근거 없는 비아냥과 평점 테러까지 받았던 영화. 그런 영화가 천 만 관객을 넘겼다는 것은 반전 중의 반전이다.

 

사진출처:영화'변호인'

무수한 분석이 나온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을 보이기보다는 보편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이념과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었다는 점,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으로 내 편 없는 세상에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준 서민들의 대변인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송강호, 김영애, 곽도원 심지어 임시완까지 보여준 놀라운 호연까지.

 

하지만 이 모든 분석들 중에서도 단연 설득력을 갖는 건 송강호라는 배우다. 그가 연기 잘한다는 것은 이미 공인된 사실이지만 이번 <변호인>을 통해 발견한 것은 그가 연기력 그 이상을 가진 배우라는 점이었다.

 

그는 늘 서민들의 옆 자리에 서 있던, 마치 피곤한 일상에 영화라는 잠시 간의 여행을 떠난 관객의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이자 가이드 같은 배우였다. <넘버3>미친 존재감이라는 서민들의 가치를 끄집어냈고,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아닌 (소외된 서민들로서는 이상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 이상한 놈으로서 어딘지 악당 같은 삐딱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배우.

 

그가 <변호인>에서 연기한 송우석이라는 캐릭터에서는 그래서 영화 <밀양>의 종찬처럼 비극에 빠진 여주인공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비춰주던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가 보이고, <설국열차>의 남궁민수처럼 잘못된 시스템의 옆구리에 폭탄을 터트림으로써 관성화 된 정신을 깨우는 존재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송강호의 가장 큰 장점은 그 거창할 수 있는 일들을 지극히 인간적인 일로 바꿔놓는다는 점이다. <변호인>의 송우석이 만약 시대적 소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천만 관객의 발길이 영화관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될 그런 보편적인 정서를, 내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것은 지금껏 송강호가 해왔던 특별한 연기의 세계다. 똑같은 역할이라도 그가 하면 다르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그는 <우아한 세계>에서 조폭의 상스러움과 가장의 성스러움을 동시에 보여주었고, <괴물>에서 바보스러움과 가슴 찡함을 동시에 선사했으며, <박쥐>에서도 기괴함에 해학까지 보여주기도 했다.

 

즉 그는 역할의 균형을 잘 맞추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과장된 캐릭터라도 그 속에서 정 반대의 모습을 끄집어낼 줄 안다. 이것은 마치 관객이 그런 거짓말이 어딨어?’하고 물을 때 화답하듯 슬쩍 속내를 꺼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당신과 똑같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속물적인 속내를 슬쩍 끄집어냄으로써 관객을 안심시키는 그런 배우.

 

흥미로운 건 올 한 해 단 6개월 만에 무려 3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이 괴물 같은 배우가 서 있는 위치다. 그는 이상하게도 주연으로 서 있으면서도 늘 우리 주변에 있는 인물로 각인되어 있다. 꼭대기가 아니라 늘 아래 서 있고, 중심이 아니라 주변에 머물러 있는, 그렇지만 그 곳에서 늘 따뜻한 볕을 보내주는 ‘secret sunshine’ 같은 존재. 이것은 송강호의 진정한 힘이면서, <변호인>이라는 영화가 신드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이 시대의 서민들이 바라는 인물상인지도 모른다.

Posted by 더키앙

힘빠진 <썰전>, 강용석과의 상관관계

 

강용석을 구원한 건 물론 본인이다. 그가 꽤 치밀하게 방송인이 되기 위한 수순을 밟아왔다는 것은 <슈퍼스타K4>에 참가했던 사실에서부터 알 수 있다. 누군가를 평가하던(사실은 고발하던) 입장에서 <슈퍼스타K4>의 자리는 평가받는 이미지를 부여했다. 대중들이 그를 평가하고 심지어 비난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방송에 들어오는 티켓을 부여받았던 것.

 

'썰전(사진출처:JTBC)'

하지만 강용석을 좀 더 대중들 가까이로 끌어들인 인물은 김구라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은 물론 ‘김구라쇼’라고 해도 무방할 법한 김구라를 위한 토크쇼지만, 그 안에서 키워진 강용석의 존재감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것이 <썰전>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하드코어 뉴스깨기’와 후반부 ‘예능심판자’에 김구라와 함께 강용석이 출연하는 이유일 게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강용석에 대한 반응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비호감 정치인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던 그가 방송인으로서 승승장구하던 몇 달 전을 떠올려보면 지금은 그의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어마어마한 악플이 달라붙는 것을 볼 수 있다. 변호사로서 또 한때 정치인으로서 경험했던 것들을 토크의 무기로 장착하고 방송인으로서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감을 보여주던 강용석이었지만 이 신선감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어찌된 일일까.

 

가장 큰 이유는 <썰전>의 힘이 빠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강용석의 존재감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며 심지어 종편 JTBC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보편적인 시청층까지 확보한 프로그램이 <썰전>이 아니던가. 하지만 토크쇼가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썰전>에도 그대로 드리워지고 있다.

 

그나마 저력이 여전히 느껴지는 건 <썰전>의 전반부를 장식하는 ‘하드코어 뉴스깨기’다. 워낙 정치나 시사 문제를 소프트하게 예능으로 접근한 토크쇼가 부재했던 터라 이 코너가 가진 파괴력은 여전히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이철희 소장과 강용석 변호사가 때론 지나치게 의견충돌을 일으켜 가운데 앉아있는 김구라를 당황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하드코어 뉴스깨기’만의 특별함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드코어 뉴스깨기’에서도 강용석 변호사의 멘트의 힘이 초반에 비해 파괴력을 잃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초반만 해도 이 코너는 온전히 강용석 변호사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에 대해서 때론 지나치게 사적으로 접근하는(이를테면 정치인들이 목욕탕 가는 이야기 같은) 강용석 변호사의 이야기가 워낙 참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이런 식의 엉뚱한 접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식상해지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이철희 소장이 더 주목을 끄는 것은 초반 시선을 끈 강용석 변호사의 이야기가 재미는 있었을 지 몰라도 점점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간파한 대중들의 달라진 관점 때문이다. 정치문제와 시사문제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강용석 변호사의 접근방식이 너무 가볍게만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볼만한 부분이 많은 ‘하드코어 뉴스깨기’지만 후반 코너인 ‘예능심판자’는 그다지 확실한 재미를 뽑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허지웅 기자가 조금씩 새로운 캐릭터로 등장하고는 있지만 강용석 변호사는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인 감상을 심지어 막말을 섞어 자극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대중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설국열차>를 갖고 나눈 이야기에는 강용석 변호사가 가진 한계가 드러난다. 물론 호불호가 나뉠 수 있고 또 비판적 관점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자기만의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주입식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면서 “어떤 것을 주입받았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그건 자칫 비판이 아니라 비난이 되기 때문이다.

 

영화 속 송강호가 열차의 보안설계자로 나오는데 문을 따는 방식이 “허접하다”고 표현한 것도 그렇다. 그것은 영화적 장치일 뿐이며 사실 어떻게 따느냐는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허접하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과하다는 인상이 짙다. 안철수 교수를 멘토 최장집 교수가 떠난 이유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강용석은 거의 소설에 가까운 때 아닌 ‘운영자금문제’를 이유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아무렇게나 던지는 멘트는 강용석이 잠깐 방송인으로서 만들어냈던 호감의 요소마저 지워버린다. 불성실하게 여겨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가 그토록 싫어한다는 ‘가르치려는 태도’의 또 다른 이야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아가 뭐든 자신이 던지는 말이면 대중들이 받아들일 것으로 여기는 태도로까지 보여질 수 있다.

 

비호감 정치인이었던 강용석이 방송인으로서 승승장구하는 것에 대해서 SBS 박상도 아나운서가 걱정스런 비판을 내놓았을 때 또 그걸 보고 대중들이 공감했을 때조차 강용석 본인은 아무런 입장이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최소한 아무런 자숙기간 없이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는 여전히 좋지 않다. 이런 상황에 더 많은 방송으로 승승장구 하는 모습은 방송인 강용석에게 좋은 이미지로 작용하기 어렵다. 그는 좀더 방송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점은 강용석이 비호감으로 점점 전락하는 과정에서 그를 끌어내주고 함께 방송을 하고 있는 김구라의 이미지도 같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김구라의 진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함께 방송을 하다 보니 강용석이 하는 멘트에 때로는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 과정에서 김구라가 마치 동조자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이것은 김구라로서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강용석이든 김구라든 어떤 능력을 통해 방송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능력보다는 그 사람이 주는 호감이 우선한다는 것을 먼저 생각해볼 때다. <썰전>은 지금 바로 그 능력과 호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실로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설국열차>가 비판하는 <설국열차> 독과점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설국열차>가 다루고 있는 것은 저절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실체다. 하층 계급이 무임승차한 대가로 사는 열차의 맨 꼬리 부분에서 상층 계급이 살고 있는 맨 머리 부분까지 달려가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의 여정(?)은 그래서 이 계급으로 나눠진 자본주의 시스템이 어떻게 저 스스로 작동하는 지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설국열차(사진출처:CJE&M)'

흥미로운 것은 하층 계급의 혁명가인 커티스가 일으키는 반란조차 적절한 인구수를 조절하는 이 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하층 계급이 상층 계급으로 올라가려는 욕망은 그래서 이 열차의 통치자인 윌포드(애드 해리스)에 의해 때로는 부추겨진다. 결국 맨 머리 부분까지 올라간 커티스를 윌포드가 설복시켜 차기 통치자로 내세우려는 장면은 그래서 이 시스템의 통제방식이 하나의 반복적인 궤도를 이루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커티스가 혁명의 이름으로 맨 꼬리 부분에서 맨 머리 부분까지 달려가는 이 욕망의 시스템에 충실한 인물이라면, 남궁민수(송강호)는 이 시스템의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전면에 나선 인물이 커티스임에도 불구하고 남궁민수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결국 이 시스템을 깨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커티스의 오로지 앞으로만 나가려는 힘과 남궁민수의 자꾸만 옆길로 빠지려는 힘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요한 두 흐름과 그 부딪침을 만들어낸다.

 

크로놀 중독자처럼 보이던 남궁민수가 열차의 맨 머리 부분의 윌포드가 있는 문 앞에 서서 커티스와 나누는 설전은 그래서 대단히 흥미롭다. 남궁민수는 그 자리에서 커티스에게 “문을 열고 싶다”고 말한다. 그것은 남궁민수라는 캐릭터의 역할(각 계급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가 열려는 문은 윌포드가 있는 곳으로 가는 문이 아니다. 열차 바깥으로 나가는 문. 여기서 크로놀은 마약이 아니라 폭탄으로 돌변한다. 시스템에 중독된 이들을 깨는 방식으로 크로놀을 사용한다는 설정에는 봉준호식의 블랙유머가 살짝 들어가 있다.

 

그렇다. <설국열차>는 단순하게 말하면 모두가 동승해야만 하고, 또 각자 부여받은 칸에서 살아야만 하며, 또 계급 상승 욕구를 갖고 있다고 해도 오로지 윗칸으로만 달려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 무비판적이고 세뇌적인 시스템의 옆구리에 옆으로 나갈 수 있는 구멍을 뚫는 영화다. 모두가 다 앞으로만 달려갈 때 왜 그래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남궁민수의 역할은 그래서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에 해당한다.

 

결국 이 <설국열차>는 자본주의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을 열차라는 상황으로 집약해 놓은 놀라운 작품이다. 마치 카프카가 만들어내는 세계가 그러하듯이 거기에는 비현실적이고 심지어 판타지적인 세계가 그려지지만 그 세계의 작동방식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너무나 리얼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저 시간 죽이는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면 적잖이 옆길로 새는 이 영화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진 상징이나 블랙 유머를 한 번 생각해보면 <설국열차>라는 작품이 가진 나름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설국열차>라는 영화 자체가 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이라는데 있다. 이 영화는 CJ E&M이 무려 450억을 투자해 만들어진 영화다. 할리우드라면 소자본 영화겠지만 우리로서는 블록버스터 중에 블록버스터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이렇게 투자된 영화에 CJ가 총력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CJ가 구축하고 있는 CGV 멀티플렉스는 그래서 이 <설국열차>가 움직이는 시스템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스크린 독과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설국열차> 개봉 첫 주말 스크린 수는 1128개로 역대 6위라고 한다. 상영 횟수도 지난 13일만 두고 보면 1014개 스크린에서 무려 5213번 상영되었다고 한다. 이미 6백만 관객 수를 동원하고 7백만 나아가 1천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괜찮은 영화지만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함으로써 결국은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볼 수밖에 없는 영화가 됐다는 것은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몇몇 언론에서는 아예 대놓고 관객 수 카운팅 기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올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 역시 영화 흥행의 시스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치 <설국열차>를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 관람의 행렬에 동참하지 않으면 소외될 것 같은 기분. <설국열차>에 올라탄 승객들이 가졌을 기분이 이렇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열차 바깥으로 나가면 우린 모두 죽어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처럼.

 

<설국열차>는 좋은 영화지만 그것이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과정에는 이 영화가 메시지로 던지고 있는 ‘옆길로 샐 권리’ 자체를 봉쇄하는 씁쓸함이 담겨져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아이러니인가. 영화는 옆길로 샐 권리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보여지는 방식은 그걸 허용하지 않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굳건히 붙박여 있다는 것은. 이것은 이 영화가 대단하기 때문일까(그만큼 자본주의 시스템을 제대로 꿰뚫고 있기 때문?) 아니면 이런 메시지조차 시스템으로 묶어두는 자본주의의 힘이 대단한 것일까. 봉준호 감독은 이 시스템에서 남궁민수가 되고 싶었겠지만 그 윌포드식의 완벽한 현실의 시스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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