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시세끼>가 묻는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실 이런 걸로 예능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고추 장아찌를 담근다며 항아리를 사다가 고추를 넣고 간장 양념을 끓여 넣는다. 장아찌가 잘 되게 하기 위해 눌러 놓을 돌을 구하러 간 이서진은 소식이 없다. 알고 보니 뭐든 과한이서진이 짱돌 하나를 구하려고 별 고심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어찌어찌해 고추 장아찌를 담아낸다는 이야기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이 아무 것도 아닌 짧은 에피소드는 그러나 <삼시세끼>라는 예능 신세계에서는 충분한 예능 소재가 된다. 가져온 짱돌이 항아리 구멍에 맞지 않아 투덜대는 이서진과 다 채워넣고 고추에 미리 냈어야할 구멍을 안내 다시 꺼내 고추 자르게 만드는 옥빙구 택연이 있으니 금상첨화다. 어떻게 이런 소소함이 예능이 될까.

 

그것은 메인으로 내세울만한 극적 내러티브가 없는 <삼시세끼>라는 신세계 덕분이다. 도시와 유리된 이 곳에서는 뭐든 하나하나가 작은 모험(?)처럼 다가온다. 사실 곰탕 한 그릇 먹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 도시에서라면 유명한 곰탕집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삼시세끼>에서는 다르다. 가마솥에 밤새 우려낸 국물에 기름을 덜어내고 직접 담근 깍두기와 텃밭에서 갓 뽑은 파를 썰어 가마솥 밥과 함께 내놓는 곰탕. 하나하나 손길이 닿은 그 일련의 과정들은 곰탕 한 그릇의 맛은 물론이고 그 훈훈함까지 더해준다.

 

없다는 것은 <삼시세끼>에서는 이 새로운 공간에서의 설렘과 모험의 시작이다. TV가 없어 할 게 서로 떠드는 일이고, 보일러가 따로 없어 군불을 때며, 커피 메이커가 없어 맷돌로 갈아 커피를 한약 내듯 뽑아낸다. 물론 해야 될 일들이 많아 바로 눈앞에 펼쳐진 구름 낀 옥순봉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그렇게 옥순봉 풍경 한 번 쳐다보고 지나갈 도시인들이 느낄 수 없는 시골 체험의 묘미가 거기에는 있다. 하다못해 이 곳에서는 강아지 밍키의 성장 하나도 볼거리다.

 

갓 딴 텃밭 채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솥뚜껑에 기름 뿌려 만든 달걀프라이를 솥밥에 얹어 참기름, , 고추장을 넣고 썩썩 비벼먹는 맛은 그래서 그대로 도시인들에게는 로망이 될 수밖에 없다. 생김에 숟가락으로 기름을 살살 칠하고 소금을 뿌려 숯불에 직접 구워낸 김은 또 어떤가. 비록 손은 많이 가지만 그렇게 한 장 한 장 구워내 한 통 가득 담긴 김이 주는 느낌은 말 그대로 뿌듯하다. 석쇠에 구운 고등어 한 점이 주는 훈훈함. <삼시세끼>는 멀리서 바라보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곳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매번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여기에 수수밭 베기같은 노예 놀이는 마치 <12>의 복불복처럼 자칫 가라앉을 수 있는 분위기에 팽팽함을 만들어낸다. 노동이 만들어내는 땀의 힘은 <삼시세끼>에서도 여지없이 효력을 발휘한다. 그저 삼시세끼 챙겨먹는 시골 생활의 소소함을 클로즈업하고 거기에 강도 높은 노동을 얹으니 나영석 PD만의 균형 잡힌 예능 신세계가 탄생한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듯한 설렘은 이 세계가 건네는 꿀잼의 덤이다.

 

여기에 이서진처럼 전혀 과하지 않은 나영석 PD만의 스타일로 재미에 의미가 덧붙여진다.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러 군청에 들어간 택연을 차에서 서진이 기다릴 때 마치 맞춘 것처럼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내레이션.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 행복은 삶의 의미이며 목적이고 인간 존재의 궁극적 목표이며 지향점이다.” 힘든 하루의 노동에서 잠시 허리를 펴고 거실에서 뒹굴대는 이서진과 택연의 모습이 그 내레이션 위에 겹쳐진다.

 

조지 오웰.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말아야 행복할 수 있다.” 서진이 수수를 베는 모습이 이어지고, “빅토르 위고.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다.”라는 멘트에 백일섭이 이서진에게 무언가를 먹여주는 장면이 보여진다. 그리고 자막. ‘아아 나는 정말 노예인가 아닌가 과연 행복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 자막의 목소리는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시청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되지 않았을까.

 

마침 군청에서 물 한 잔 얻어 마시고 돌아온 택연이 패트병에 담아온 물을 서진에게 건네자 그가 물을 마시는 장면에 이런 자막이 붙는다. ‘아 역시 난 행복해..’ 이것은 나영석 PD<삼시세끼>가 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는 이들을 훈훈하고 흐뭇하게 만드는가를 잘 보여주는 편집 영상들이다. 이제 나영석 PD는 시골의 짱돌 하나로도 예능을 만들어내는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개콘> 이문재의 개그에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개그 영역에 더 이상 새로운 건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개그맨 이문재에게만에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그가 하고 있는 개그는 지금껏 우리가 보지 못했던 독특한 감성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의 ‘나쁜 사람’에 이어 ‘두근두근’을 통해 이문재는 그만의 영역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것을 ‘감성 개그’라고 해야 할까? ‘나쁜 사람’이 관객을 웃기는 방식은 과장된 리액션을 통한 감성의 증폭을 통해서이다. ‘나쁜 사람’으로 몰렸지만 사실은 ‘착하고 불쌍한 사람’인 이상구의 반전 멘트와 함께 OST로 깔리는 ‘냉정과 열정사이’에 빵 터지는 이유는 그 앞에서 과장되게 눈물을 참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이문재 때문이다.

 

이문재의 웃음 코드가 절묘한 것은 어떤 감정을 보이지 않아야할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감정이나 속내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용의자를 심문해야할 상황이지만 용의자의 아픈 상황과 현실에 공감하며 심지어 같이 눈물을 흘려주는 형사는 그 강한 인상과 정반대의 가녀린 감성이 충돌하면서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여기에는 작금의 대중정서에 대한 깊은 공감이 깔려 있다. 용의자가 되어 끌려온 사람이 사실은 ‘나쁜 사람’이 아닐 때, 그것이 비판하는 것은 그를 ‘나쁜 사람’으로 내몬 ‘나쁜 세상’일 것이다. 그래서 이문재의 눈물 과잉 연기는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만들어준다. 즉 처음에는 진짜로 ‘나쁜 사람’ 아니냐고 추궁하다가 나중에는 그 사연에 자신 같은 형사마저 눈물 흘리게 만드는 ‘나쁜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뀐다.

 

이러한 이문재의 특별한 이중적 감성 개그는 최근 새로 시작한 ‘두근두근’에서도 빛을 발한다. ‘나쁜 사람’과 ‘두근두근’은 전혀 달라 보이지만 그 웃음의 기재는 이문재 특유의 감성 개그의 틀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장효인과 이문재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서 친구처럼 지내지만 사실은 서로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고 있는 상황. 그 설렘이 어떤 특별한 말이나 행동으로 드러났을 때 생겨나는 그 알콩달콩한 분위기와 거기에 과장되게 반응하는 장효인과 이문재의 리액션이 웃음의 핵심 포인트다.

 

즉 ‘나쁜 사람’이 용의자와 형사라는 관계 속에서 넘어서지 않아야할 감성의 선을 넘어서 웃음을 준다면, ‘두근두근’은 친구 사이에서 살짝 연인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감성으로 웃음을 준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나쁜 사람’이 ‘냉정과 열정 사이’ OST를 사용하는 반면, ‘두근두근’은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의 ‘Ode To My Family’를 깔아 그 두근대는 감성을 증폭시킨다.

 

실로 웃음에는 많은 결이 있다. 통쾌한 웃음도 있고 이지적인 미소도 있으며 심지어 불편한 웃음도 있다. <개그콘서트> 같은 다양한 코너들이 한 무대에 올려지는 프로그램은 비슷한 코드의 웃음보다는 그 웃음의 결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문재가 잡아온 이 감성적인 웃음은 실로 가치 있다 여겨진다. 상황과 심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특별한 개그는 그래서 몸 개그나 말 개그들 속에서 도드라진 면이 있다. 때론 두근거리는 감성을 때론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는 것. 실로 마법 같은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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