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가 조명한 광화문 집회, 거기서 발견한 희망

 

이번 최순실 게이트JTBC <뉴스룸>을 비롯해 <썰전>이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주말 저녁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역시 5%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목받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최순실 게이트특집으로 1편에서는 최순실 라인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먹잇감으로 작업을 해왔다는 의혹을 제기한데 이어, 2편에서는 지금의 최순실 게이트가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이사장으로 있을 때 터졌던 영남대 사태와 유사한 평행이론을 보여준다는 걸 보여줬다.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사진출처:JTBC)'

3편에서는 최순실 일가의 재산축적 미스테리를 추적하기에 앞서 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진 집회현장을 직접 찾은 이규연의 시선으로 그 날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규연이 거기서 발견한 건 역설적이게도 희망이었다. 분노로 광화문 광장에 나온 것이지만 집회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김제동이 표현한 대로 일등 국민의 면모 그대로였다.

 

묵묵히 바닥에 남겨진 쓰레기를 줍는 한 청년에게 왜 이걸 하고 있냐고 이규연이 묻자, 그는 늦게 도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라 이렇게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100만 명의 인파가 몰린 집회 현장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질서정연한 모습이었고,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아이들과 손잡고 나온 부모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나왔다고 말했고, 오랜 만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온 딸은 이런 시위 현장에 처음이라며 모두가 모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 마음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그 곳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던 세대 갈등은 보이지 않았다. 이규연은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그토록 강조했던 세대통합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사태를 통해 분출된 민심들에 의해 통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규연이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은 달라진 집회 문화였다. 과거 876.10 항쟁 때만 해도 집회가 끝나고 난 거리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광화문에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나서 비폭력을 외치는 모습이 보여 졌다. 한 격앙된 시민이 전경과 몸싸움을 벌이자 시민과 전경이 한 목소리로 비폭력을 외치는 장면도 연출됐다.

 

한 고등학생은 시민들과 대치하고 서 있는 전경에게 음료수를 놓고 가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규연이 따라가 왜 우느냐고 묻자, “저 분들도 저러고 싶지 않을 거 아니냐며 전경의 입장을 이해하는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한 아주머니는 전경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며 대통령 잘못 만나 우리 아들들이 불쌍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목소리를 낼 공간을 내준다면 굳이 서로 완력을 쓰고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규연의 말대로 평화는 힘이 아니라 소통으로 유지됨을 광화문은 알고 있었다는 것. 이규연은 광화문에서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당당한 미래세대세대공감의 현장”, “풍자로 승화시킨 울분성숙한 시민의식을 봤다며 그것은 새로운 희망이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해 국민들이 가장 많은 비판을 해온 대목이 바로 불통이라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번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적인 내용 역시 바로 이 소통부재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소통해야 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고 소통하지 말아야할 사람들과 소통한 데서 비롯된 비극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어낸 근본적이 이유라는 것. 그래서 이번 광화문의 촛불은 그동안 막혀 있던 이 소통의 욕망이 분출되어 나온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 양상이 비폭력으로 소통공감에 맞춰져 있었다는 것. 그건 우리에게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국민들이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아버지와 나> 바비네가 보여준 세대 소통의 비법

 

바비와 아버지는 하와이 호놀룰루의 거리를 산책하며 끝없는 잡담을 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코에 맡아지는 대로 들리는 대로 모든 게 화젯거리가 된다. 그건 대화라기보다는 반응이다. 바비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반짝반짝 빛나는 형형색색의 불빛을 입은 카페를 보며 너무 예쁘다고 말하고, 어디선가 맡아지는 냄새에 이게 무슨 냄새야?”하고 묻는다. 키가 스케이트 보드 정도밖에 안 되는 꼬마가 그 보드를 타는 모습에 엄지를 척 세워주고, 길거리에서 팝핀을 하는 청년에게 눈길을 던지며 환호를 해준다.

 

'아버지와 나(사진출처:tvN)'

tvN <아버지와 나>가 보여준 무려 두 시간을 그렇게 주제 없는 환호성과 반응들로 가득 채워진 두 사람의 대화는 그들 스스로도 잡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목적이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두 사람은 대화를 하지 않고도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말로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자기 생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흘러가는 것들을 함께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아들이 춤을 춰도 아버지는 그저 씩 웃을 뿐 뭐라 하는 법이 없다.

 

제작진도 궁금했을 게다. 이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그 흔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지자 아버지는 잔소리 하는 걸 싫어한다며 그 이유로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도 그건 내 욕심이라고 한다. 답답해도 아이들은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이고 그건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별거 아닌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몇 십 년을 더 산 아버지 입장에서 잔소리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걸 실천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래도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을 때는 책을 빌어서 말해준다고 한다. 직접적인 말은 잔소리로 들릴 수 있지만 산보하며 나누는 잡담 같은 공감의 경험처럼 책은 좋은 이야기를 강권하는 게 아니라 같이 공유하는 경험으로 제시해준다. 세대 간에 이만큼 좋은 소통 방법이 있을까.

 

그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시행착오는 아버지도 한다. 무작정 야경이 멋있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고 찾아가기로 나선 바비네 부자는 길을 헤매다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길로 접어든다. 처음 가는 길. 그들을 따라나선 제작진들이 두려움을 느낄 정도지만 정작 바비네 부자는 그런 어두컴컴한 곳으로 가게된 것에 대해 그다지 탓을 하는 법이 없다.

 

그리고 의외로 그 곳에서 저 아래 펼쳐진 호놀룰루의 놀라운 야경을 발견하게 된다. 바비가 말하는 것처럼 야경은 마치 물결치는 것처럼 반짝거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바람의 존재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두 사람은 그 경험이 소중하고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엉뚱한 시행착오처럼 오게 된 깜깜한 길 위에서, 오히려 그곳이 깜깜하기 때문에 더 잘 보이는 야경을 발견하고 바람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얼마나 즐겁고도 소중한 경험일까.

 

다시 도시로 돌아와 피자와 파스타를 시켜놓고 먹는 자리에서도 아들이 손으로 마구 토핑을 집어 피자에 얹어 먹어도 아버지는 묵묵히 자신의 파스타를 자신의 방식으로 먹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이야기도 스스로에 대한 것일 뿐 상대방에게 생각을 강권하는 건 아니다. 미술을 하는 아버지와 음악을 하는 아들은 서로의 분야에 대한 자신들의 불만족을 이야기한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충분히 공감대를 갖는다.

 

요즘처럼 세대 갈등이 심각해진 시기에 바비네가 서로 소통하는 방식은 참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나이 좀 먹었다고 또 좋은 얘기를 건네겠다고 하는 어른의 말은 어쩌면 바로 그런 자세와 위치 때문에 젊은 세대와 소통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보다는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고 그 느낌을 공감하는 시간을 갖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을까. 결국 소통의 물꼬는 조금은 나이를 더 먹은 세대가 열어줘야 한다. 부자관계라는 틀을 벗어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친구관계를 지향하는 것. 거의 정답처럼 보이는 바비네의 소통법이 주목되는 이유다

<디마프>, 관계의 족쇄 벗어 버리고 친구가 된다는 것

 

엄마도 여자야. 내 말이 맞지 엄마. 엄마도 여자지? 엄마도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그치?” 꼰대 남편과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집 나온 정아(나문희)에게 딸들이 찾아와 자신들의 고충을 토로한다. 엄마가 집을 나오자 아빠가 딸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며 일을 시킨다는 것. 딸들은 집나온 엄마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이혼을 찬성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 남은 인생 여자로 살고 싶지 않냐고 묻는 딸은 이혼을 찬성하는 쪽이다.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아는 그렇게 말하는 딸에게 듣다못해 한 마디를 던진다. “아휴 내가 무슨 여자냐. 물혹으로 자궁 떼 낸 지가 언젠데. 그리고 이 나이 들어서 내가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때.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어 그냥.” 그러자 또 딸이 엄마 인생을 들먹이며 대거리한다. “지랄 안하게 생겼냐? 여적 잘 살다 이렇게 집 나오면 엄마 인생 실패한 거 밖에 더 돼?” 다른 딸은 생각이 다르다. “엄마가 왜 실패야? 혼자선 아무 것도 못하는 아버지 인생이 실패지.”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의 남편 석균(신구)은 한 마디로 꼰대다. 아내인 정아 구박하는 일이 마치 습관처럼 되어 있다. 눈 뜨면 밥 차리라 명령하고, 물 떠다 먹는 일조차 제 손으로 하는 법이 없다. 밖에 나갔다 늦게 들어올라 치면 문 밖에서 반성하고 들어오라며 벌을 준다. 온 친척들을 위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제사상을 차리라고 해놓고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며 제사 때는 집 밖으로 내몬다.

 

집안에서 이러니 집밖에서는 오죽할까. 후배인 성재(주현)의 집에 불쑥 찾아와 밥 달라고 하고는 자신은 식탁에 숟가락 놓는 것조차 하지 않는다. 마치 아내 부리듯 성재에게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기 일쑤다. 이러니 젊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할 리 만무다. 완이(고현정)는 그에게 전화 오는 것조차 끔찍해 한다. 집 나간 아내 대신 그 주변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전화해 밥 차려 달라고 떼쓰는 그에게 모두가 인상을 쓴다. 버스를 타고 마치 제 자리인 양 앉아있는 여학생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그에게 예의는 없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그는 철저히 꼰대다.

 

그러니 집 나온 정아의 사정이 백 분 이해된다. 그런데 딸들이 찾아와 아버지에 대해 나쁘다고 말하자 그녀는 오히려 석균을 변호한다. “니들이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냐. 젊어서는 니들 키운다고 아버지 그냥 철공소 공장 다니면서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그 추운 겨울에도 귀가 얼고 코가 얼면서도 그냥 밤 12시까지 야근하고 나이 칠십 먹어서는 지금 그래도 너희들 덕 안 볼라고 일하는데 너희들이 아빠한테 그렇게 말할 게 뭐 있어? 반찬 해주기 싫다고 그럼 하지 말어. 사다 줘. 천벌 받을 년들아.”

 

왜 정아는 딸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석균의 입장을 대변했을까. 주변사람들은 정아의 가출을 복수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녀는 그게 복수가 아니라 그저 혼자 마음 편히 흑맥주 한 잔 먹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가출은 석균에 대한 복수가 아니다. 그녀 스스로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다.

 

절친인 희자(김혜자)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가며 그녀는 석균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한다. “나도 몰라. 밥 해주는 게 딱히 싫은 것도 아니고 성질 별난 것도 모르는 것 아니고. 안쓰럽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근데 지금은 그냥 다 싫어. 나도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어.” 갑자기 전화를 해서 잘 자라고 말하고는 왜 너는 나한테 잘 자란 얘기 안하냐고 지청구를 날리는 석균에 대한 정아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런 정아에게 희자는 살갑다. “좀 앉았다 가 나 기운 있으면 너 업고 갈건데.” 불쑥 정아가 남편 석균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는다. “김석균이랑은 얘기 안돼. 아휴 둘이 같이 가다가 지금처럼 내가 힘들면 좀 쉬어 가자 그러구. 또 다치면 너처럼 조심하라고 그러면 될 텐데 그냥 쥐어 박듯 왜 그랬냐 정신머리는 어디다 뒀냐 하면서 어쩌구저쩌구. 내가 평생 같이 산 남자라 어디 가서 욕하는 것도 치사하고 구질스럽고.”

 

그녀는 저나 나나 앞으로 죽을 날만 남았는데자기가 바랄 게 뭐가 있냐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희자가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다. “남편도 됐고 남자도 됐고 그냥 친구처럼 살다 가면 좋을 텐데. 나랑 너처럼. 친구처럼. 그치?”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정아와 석균의 갈등을 혹자들은 남녀 대결 구도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는 남편도 남자도 아닌 친구라는 관점으로 우리네 사회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갈등들의 해법을 제시한다. 왜 우리는 남녀와 노소로 관계를 설정하고 역할을 나누고 그 구분에 얽매여 해야 할 일들을 강제하는가. 왜 여자와 여자로 만나지 못하고 고부관계로 만나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지 못하고 장애와 비장애로 만나는가.

 

빈부 격차,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남혐 여혐 갈등 등등.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심각한 갈등들의 연원을 들여다보면 그저 모든 관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친구의 관점으로 만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모 자식 관계도, 부부 관계도 나아가 세대 관계나 남녀 관계 역시 고작 몇 십 년 차이와 생김새만 다를 뿐, ‘죽을 날을 앞둔똑같은 사람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친구라는 함께 손잡고 걸어갈 수 있는 진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정아의 말마따나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어떤가. 희자의 말처럼 남편도 남자도 아닌 그저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디어 마이 프렌즈>는 제목부터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계춘할망>, 청춘과 어르신에 대한 위로

 

나이가 젊다고 다 청춘이 아니듯, 나이 많다고 다 어른이 아니다. 아마도 최근 들어 가장 많은 키워드로 나오는 단어가 청춘어르신일 게다. ‘청춘이 원치 않았던 힘겨운 현실 앞에 숨가빠하고 있다면, ‘어르신들은 꼰대가 될 것인가 어른이 될 것인가를 사이에 두고 갈등한다. 그리고 이 둘은 연결되어 있다.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이 청춘들의 현재 혹은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 <계춘할망>은 이 서로 다른 두 세대 간의 따뜻한 소통이 느껴지는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계춘할망>

제목에서 보여지듯 <계춘할망>의 배경은 제주도다. 계춘(윤여정)은 이 할망의 이름이다. 어쩌다 손주 혜지를 홀로 키워온 계춘은 어느 날 아이를 잃어버린다. 평생을 아이를 찾아다니는 계춘은 어느 날 나타난 혜지(김고은)로 인해 이제 겨우 허리 펴고 잘 수 있는 행복감에 빠져드는데 그간 혜지가 살아온 삶이 심상찮다. 도둑질은 다반사고 조건만남을 빙자해 돈을 뜯기도 하는 불량한 아이들의 폭력 속에 무심히 살아온 그녀다. 그런 그녀를 계춘은 모든 걸 품어주는 제주의 바다처럼 안아준다.

 

사실 이야기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인다. 결국 혜지가 계춘의 사랑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하지만 영화 속 디테일들은 이러한 당연한 수순의 이야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을 채워 넣었다. 그림에 재능을 보이는 혜지와 그녀의 아픔을 알면서도 무심한 척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미술선생 충섭(양익준), 청춘의 설렘을 무겁지 않게 영화에 얹어주는 제주소년 한(민호), 그리고 그녀의 삼촌으로 늘 계춘을 걱정하고 돌보는 석호(김희원) 같은 인물들은 영화에 충분한 온기를 더해준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그림자가 아니라 빛을 봐야 한다는 충섭의 말대로 이 주변 인물들은 혜지에게 빛을 던져주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빛은 계춘이다. 손과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과 마치 옥수수수염처럼 빛이 바랜 머리칼은 그녀의 한 평생을 한 장면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게 만든다. 그런 그녀가 저 멀리 혜지가 걸어오는 것만 봐도 그 주름이 확 펴지고 달려오는 모습은 그 자체로 뭉클함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가 혜지에게 말한다. “세상에서 살면서 딱 한 명 네 편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내 새끼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맞을 정도로 계춘이 혜지를 대하는 모습은 바다그 자체다. 자신이 평생 물질을 하며 살 수 있게 해준 든든한 그녀의 편.

 

과연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는 계춘 같은 든든한 편이 있을까. 힘겨운 현실 속에서 그저 생존하기 위해 엇나간 삶을 살아내기도 하는 청춘들이다. 하지만 그 청춘들의 삶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질식하고 있을 뿐. 영화가 제주도까지 달려가 계춘이라는 할망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진정한 어른의 모습이다. 청춘들에게 저마다 든든한 편이 되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

 

계춘 같은 진정한 어른이 있어 혜지는 어둠을 비로소 빠져나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아픔은 자양분이 되어 미술이라는 예술로 승화되고 거기에는 고스란히 혜지의 계춘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과 사랑이 담겨진다.

 

<계춘할망>에서 김고은은 역시 단단한 연기력으로 혜지라는 청춘의 아픔을 때론 퉁명스럽게 때론 따뜻한 눈물로 그려낸다. 윤여정은 늘 도회적인 이미지라는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손끝의 주름 하나로도 어르신의 감정을 담아내는 놀라운 연기변신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또 한 명의 연기자는 김희원이다. 늘 악역으로만 나오던 그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줄지 누가 알았으랴.

 

김고은이라는 청춘과 윤여정이라는 어른이 만나 보여주는 건 청춘과 어른에 대한 위로다. 힘겨워도 세상에 한 사람 정도쯤은 자기편이 있다는 걸 청춘들에게 말해주면서, 동시에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어른의 삶이 얼마나 숭고한가를 들려준다. <계춘할망>은 그래서 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만 봐도 눈물이 나는 영화다. 아파서가 아니라 너무 따뜻해서 나는 그런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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