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드라마 보며 펑펑, 무엇이 눈물 버튼을 눌렀나

폭싹 속았수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땐 연애편지 쓰듯 했다. 한 자 한 자 배려하고 공들였다. 남은 한 번만 잘해 줘도 세상에 없는 은인이 된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겐 낙서장 대하듯 했다. 말도 마음도 고르지 않고 튀어 나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대학생이 된 금명(아이유)이 엄마 애순(문소리)에게 전화통화하며 유학 문제로 괜스레 화를 내는 대목에는 이 같은 내레이션이 흐른다. 

 

유학 장학생으로 뽑혔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못가게 되자 담당 교수가 사비를 털어서 보내주겠다 한다. 거절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운 금명은 교수에게 마음만도 너무 감사하다며 “일본 갔다 온 거 같다”고 예쁘게 말한다. 금명의 내레이션이 말하듯, 그 표현은 마치 ‘연애편지’처럼 배려하고 공들인 티가 난다. 그것도 진심으로. 

 

하지만 그 교수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 엄마한테 전화해 귤이라도 한 상자 보내달라 하던 금명은, 뭐가 그렇게 고마우냐는 엄마의 궁금증에 저도 모르게 “돈까지 빌려주려 한다”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것이 엄마에게는 가시가 되는 건 줄도 모르고. 그래서 말다툼을 벌이고 “엄마랑 통화하면 짜증만 난다”는 말까지 꺼내놓는다. 낙서장에 아무렇게나 찌끄리듯이. 

 

이 짦은 장면에는 금명과 애순의 전화 말다툼을 회고하는 금명의 목소리가 들어있다. 그 내레이션은 아마도 시간이 흘러 어쩌면 금명 또한 애순처럼 딸을 낳고 엄마가 됐던 시점에 돌아본 소회처럼 들린다. 이것은 엄마나 아빠 혹은 가족 같은 너무나 가까워 늘 하는 일들이 고마운 일이 되지 않고 당연한 일이 되곤 하는 관계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건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인물을 통해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렇게 들려온 말들은 시청자들 각자의 기억을 헤짚는다. ‘연애편지’와 ‘낙서장’이라는 비교가 가슴을 울컥하게 만든다. ‘남’과 ‘은인’이라는 말 역시. 

 

<폭싹 속았수다>는 간만에 눈물 버튼을 눌렀다. 시청자들의 후기를 보면 대부분 드라마보다 펑펑 울었다는 간증이 쏟아진다. 내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첫 회에 물질하고 나온 애순의 엄마 광례(염혜란)의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그 버튼이 눌렸다. 쫄닥 젖은 채 지옥을 갔다 온 사람마냥 절절해보이지만 두 눈만은 생존의 의지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 그 버튼이었다. 그건 6,70년대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던 우리 모두의 엄마들이 가졌던 그 눈빛이 아니던가. 

 

광례가 죽는 순간도 그랬지만, 그 어린 딸 애순(김태연)이 유일하게 엄마를 챙기려 애쓰는 모습도 그랬다. 그렇게 그 애순(아이유)은 또 자라나 광례 같은 엄마(문소리)가 되고, 자신 같은 딸 금명(아이유)을 낳는다. 아이유가 애순의 젊은 시절과 그 딸인 금명을 1인2역으로 소화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삶은 그렇게 마치 분신의 삶처럼 연결되어 있고 이어진다. 엄마가 살아남기 위해 포기했던 학업의 꿈을 딸이 이어받아 대신 이뤄내고, 그 딸의 꿈을 위해 엄마는 오래도록 추억과 상처가 가득한 집까지 팔고서도 기꺼워한다. 

 

애순의 옆을 무쇠처럼 지켜온 관식(박보검, 박해준) 또한 그 시대의 아빠들의 자화상이 어른거린다. 어떻게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밖에서는 모질게 일하면서도 집에서는 아프다 소리 한 번 안하고 살아온 아빠들. 딸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천안에서 서울까지 일부러 찾아오고는 지나다 들렀다고 둘러대고, 떠나는 버스 안에서 쑥스럽게 손을 흔들다 딸이 손을 흔들어주자 너무 기뻐 양손을 흔드는 바보 아빠들이 그들이다. 무쇠가 닳도록 일하고도 “아빠 아직 살아있어”라고 자식 앞에서는 허세부리는 그런 아빠들. 

 

<폭싹 속았수다>는 이 윗세대와 그 아래세대들의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그려나가면서도, 중간 중간 시간을 넘나들며 엄마의 이야기와 딸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그 딸이 엄마가 되어 자신의 딸과 엮어내는 이야기가 또 겹쳐진다. 젊어서 무쇠 같던 관식이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되어 절뚝거리며 아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교차된다. 바로 이 시간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교차점에서 우리는 저마다 깨닫게 된다. 왜 그 때는 몰랐었을까. 그 때의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니 알겠는 그 마음들이, 시간을 넘나드는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다. 

 

그 장면들의 교차 속에서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 낙서장 쓰듯 했던 우리 각자의 후회와 미안함이 피어오른다. 순간 순간을 살다보니 놓치고 있던 것들이 인생 전체를 통해 내려다보니 드디어 가슴 저미게 보이는 것들이 생겨난다. 드라마 속 엄마, 아빠의 이야기가 저절로 시청자들의 가슴으로 스며든다. 드라마를 보며 불쑥 불쑥 무심했던 마음들이 새삼 떠오른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진심으로 말하고픈 마음이 <폭싹 속았수다>의 눈물 버튼을 누르고 우리는 여지없이 울 수밖에 없다. (사진:넷플릭스)

‘낮과 밤이 다른 그녀’, 낮의 이정은과 밤의 정은지 이 조합 기대되네

낮과 밤이 다른 그녀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정은지가 이정은이 됐다?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으로 시작한다. 20대에서 50대로의 급노화. 그런데 밤이 되면 다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20대지만 갑자기 낮동안 50대의 몸을 갖게 된 이 인물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모도 못 알아보는 외형의 변화가 불러오는 충격 자체가 시종일관 빵빵 터지는 코미디를 만들어내지만, 20대 이미진(정은지)이 8년째 열심히 공부했지만 공무원 시험에서 연거푸 불합격했다는 사실은 이 코미디 밑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청춘들의 무거운 취업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동명이인을 딸로 착각해 합격인 줄 착각하는 부모님 앞에서 뭐라 말도 못하고, 심지어 취업 사기까지 당한 이미진은 그 절망 끝에서 갑자기 낮이 되면 50대로 변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맞이하게 된다. 

 

희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정작 불행의 연속을 당하는 이미진은 눈물의 연속이지만,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것을 발랄한 연출로 코믹하게 그려낸다. 20대의 이미진과 50대의 임순(이정은)을 오가는 미치고 달싹하는 상황 속에서도, 시니어 일자리 지원사업에 지원한다. 그런데 면접관이 하는 말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지원자들 중에 제일 젊으세요.” 50대로 급노화한 사실에 절망하던 이미진이지만 시니어들만 모인 자리에 임순이라는 이름으로 나서자 가장 젊은 사람이 된 것. 

 

“중앙청 창살 쇠창살...” 같은 어르신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걸 척척 해내고, 엄청난 유연성에 영어, 중국어 능력까지 겸비한 임순은 면접관들을 사로잡는다. 20대 취준생으로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자존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결국 처음으로 합격 통지서를 받고는 너무나 기뻐한다. 20대에는 하지 못했던 취업을 50대에 하게 된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기막힌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아내며 웃음을 준다. 

 

20대의 마인드와 능력들을 갖고 있으면서 50대의 몸으로 활동하는 건 이미진에게는 너무나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8년간 취준생으로 살아오며 그 흔한 여행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을까. 게다가 누군가와의 연애 또한 해봤을 리가 만무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 상황을 뒤집어 20대의 마인드에 50대의 몸을 가진 상황이 주는 절망만큼 의외로 얻을 수 있는 희망들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나이 들었어도(외모가) 마인드는 20대라 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아가고, 50대의 몸 나이라고 해도 여전한 20대의 열정을 보여주려 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표현을 실제로 살아간다고나 할까. 아직 등장하진 않았지만 정반대로 50대를 경험하며 다시 밤이 되면 20대로 돌아가는 이미진이 이 경험을 통해 의외로 얻게 되는 일도 적지 않을게다. 아마도 멜로 상황이 만들어질 계지웅(최진혁) 검사와의 로맨스에도 이미진이 가진 이 비밀(?)은 절절한 감정들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이처럼 20대의 이미진과 50대의 임순을 오가게 된 한 인물의 판타지 설정을 통해 서로 다른 세대의 충돌과 화해를 그려낼 작정이다. 발랄한 코미디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어느 순간 달달해지다 먹먹해질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작품이다. 20대와 50대를 오가는 인물인만큼, 2인1역을 해내야 하는 정은지와 이정은의 어깨가 무겁지만, 두 배우의 연기 콜라보는 환상적이다. 

 

진짜 코미디 연기는 진지함 속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는데, 정은지도 이정은도 그저 과장된 웃음을 주기 위한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한 연기를 통한 코미디 연기를 선보인다. 그 웃음 뒤에 남는 페이소스는 바로 이러한 진지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낮의 이정은과 밤의 정은지를 오가는 이 인물이 피워낼 달달하면서도 먹먹한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사진:JTBC)

'윤스테이', 윤여정의 이런 자세가 예능의 품격을 올린다

 

tvN 예능 <윤스테이>에 손님으로 온 네팔 가족은 3대가 함께 했다. 귀여운 딸을 둔 부부가 장인, 장모를 초대해 함께 '윤스테이'에 같이 오게 된 것. 장인어른은 채식을 고수하는 비건이어서 '윤스테이' 사람들은 거기에 맞는 음식들을 준비해 내놨다. 고기 대신 콩고기를 넣어 만든 궁중떡볶이를 저녁식사로 내주었고, 아침에는 만둣국에 들어가는 만두로 야채만두를 따로 준비했다. 

 

손님을 위한 세심함은 그 비건 장인어른을 위해 최우식이 김치 대신 매실장아찌와 마늘쫑 같은 다른 반찬을 준비하는 데서도 드러났다. 김치에 새우젓이 들어가 있어서였다. 윤여정은 서빙을 직접 하면서 그 음식들이 비건을 위한 채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혹여나 갖게 될 불안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네팔 가족이 3대가 함께 하고, 그래서 그들 사이에도 조금씩 세대 차이에 따라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그 음식에서부터 드러난 부분이다. 그래서 식사를 마치고 나와 그 한옥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합류하게 된 윤여정과 네팔 가족의 대화는 흥미로웠다. 그것은 세대와 국적으로 다를 수 있는 문화가 서로 어떻게 소통하고 존중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종교 때문에 비건이냐"고 최우식이 던진 질문에 "신앙심이 깊으셔서 고기를 안 드신다" 설명한 사위는 장인도 자신도 모두 힌두교지만 "아버님을 빼고는 유연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여정은 "요즘 세대는 그렇다"며 공감을 표했다. 서로 다른 나라 종교지만, 어느 나라나 종교라고 해도 세대 차이로 인해 문화가 조금씩 다른 건 마찬가지라는 점을 든 것이다. 거기에는 젊은 세대들의 그런 변화를 긍정하는 마음이 담겼다.

 

"저도 종교를 엄격하게 지키지는 않아도 종교의 가치관은 중시해요. 습관이나 전통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사위의 말에 윤여정은 이제 어르신의 입장을 공감하는 말을 내놨다. "알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이전에 있었던 것들을 붙잡고 싶어져요. 그리고 그것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지죠. 남은 시간 동안."

 

사위는 아버님 세대는 변한다는 게 힘든 것 같다고 이해하는 입장을 밝혔고, 윤여정은 그것이 당연하다며 세대차이가 크고 자신도 그렇다고 공감했다. 그리고 그 어르신에게 사위 칭찬을 해줬다. "운이 좋으시네요. 좋은 사위를 얻으신 건 행운이에요. 좋은 여행 선물도 받으시고.." 그러자 사위 역시 "여러분도 저희에게 굉장히 친절하셨어요"라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저 훅 지나가는 짧은 대화에 불과해 보였지만, 이 광경은 <윤스테이>가 가진 타문화에 대한 자세를 잘 드러내 보여줬다. 그건 한옥에 한식을 경험하게 해주며 외국인들의 반응을 살피는 이 프로그램이 우리 문화에 대한 도취적 입장을 취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서 세대와 국적이 달라도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는 점이다. 

 

<윤스테이> '대표님'을 맡고 있는 윤여정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이런 입장을 그 존재 자체로 상징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칠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하며,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또 외국인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때론 친 할머니처럼 때론 친구처럼 때론 엄마처럼 대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윤스테이>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나 뭐 시켜줘"하고 일을 자청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이런데 나오면 라면이 먹고 싶다며 젊은 친구들이 가끔 보여주는 '면치기'의 신기함을 얘기한다. 찾아온 외국인 손님들에게 '진, 선, 미'로 이름 붙은 숙소의 의미를 설명하고, 착하게 지내야 한다, 아름답게 보내야 한다는 식의 덕담을 넣은 유머를 던지고, 또 문을 닫을 때 앞뒤 문이 같이 움직이자 "사실 여기 우리집 아니에요. 나도 잘 몰라요"라고 말하듯, 가끔씩 서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 손님들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웃음을 주기도 한다. 

 

또 새로 온 이란 부부가 저녁 식사 자리에 앉게 됐을 때도 "저는 이런 자세가 익숙한데 두 분은 이런 자세가 익숙하지 않으시죠?"하며 우리네 좌식문화가 외국인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꺼내놓는다. 그러자 자신들도 좌식문화가 익숙하다 말하는 이란부부와 윤여정은 금세 친밀한 느낌이 만들어진다. 같은 과 같은 연구실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그들에게 "이거 축복인가요?"하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윤여정과 직원들(?)은 외국인들이 저마다 문화가 달라 우리 식의 한옥과 한식에 혹여나 불편함이 없을까를 걱정하고, 외국인들은 너무 맛있어 그릇째 만둣국 국물을 들고 마시는 게 예의가 아닌 건 아닌가 걱정한다. 북영국 출신이라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영국손님은 산책 중 만난 다른 외국인들과 금세 친해져 마치 동네 이장님 같은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윤스테이>가 우리 문화에 대한 도취에 빠지지 않고 시청자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건, 타문화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긴 시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윤여정이 상징처럼 서 있다.(사진:tvN)

'유퀴즈', 세대 갈등? 세대는 달라도 미안함이 묻어나는 마음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엉뚱하지만 공감 가는 '명언(?)'을 남긴 수영이와 승주. 2018년 당시에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이제 중학생이 되어 돌아온 그들은 여전히 Z세대다운 재기발랄한 말들로 큰 웃음을 주었다. "중2병이 뭐냐"는 질문에 "중2병은 중2가 되면 오는 거 아니에요?"라는 답변으로 중2가 되면 오지만 지나면 낫는다는 '우문현답'을 던지는 이들은 자신의 사춘기 걱정에 엄마도 갱년기가 오시는 것 같다며 걱정하기도 하는 생각이 깊은 친구들이었다.

 

빵빵 터지면서도 공감 가는 대목은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되는 게 아닐까요?"라고 답변한 수영양은,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는 방법'을 묻는 다른 세대의 질문에 대해 "그냥 세대 차이를 인정하는 게 빠르지 않을까요?"라는 간단하지만 명료한 답변을 내놨다. 물론 그 답변의 의미는 어른이 되면 꼰대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나 세대 간에는 차이가 있으니 인정해야 오히려 소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지만 그 솔직함은 의외로 통쾌한 면마저 있었다.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이렇게 Z세대들을 초대해 포문을 열며 특집으로 다룬 건 '세대'였다. 세대를 이야기하면 먼저 그 많은 세대론들과, 세대갈등 문제가 먼저 등장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그래서 세대를 대변하는 인물들을 초대해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를 들여다보고 그것이 그들의 어떤 문화와 특징들을 갖게 했는가를 확인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Y세대로 출연한 이들은 <날아라 슛돌이>에 어린 나이에 출연했던 진현우와 오지우였다. 이제 대학생이 된 이들은 Y세대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2G폰에서 스마트폰까지 겪어 디지털에 특화된 세대라는 답변과 욜로족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만큼 디지털에 익숙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 세대라는 의미였다. 이들은 당시를 겪은 사건 중 2017년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된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사건을 떠올렸다.

 

X세대를 대표해 출연한 이욱진씨는 등장부터가 그 세대가 가진 자유분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남다른 끼를 보여주는 이 인물은 파티용품 쇼핑몰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젊게 살려고 노력한다는 이욱진씨는 세계여행도 다녀오고 일도 즐기며 그러면서도 가정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풍요의 시대를 겪었던 세대가 갖고 있는 자유분방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당대에는 2002 월드컵 같은 잊지 못할 축제의 기억과 더불어,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안타까운 재난과 IMF의 기억도 겹쳐져 있었다.

 

386세대로 등장한 영화 <1987>의 김태리 실제인물인 이정희 YMCA 사무총장은 당시 젊은 나이에 쓰러진 고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를 주워 주었던 인물이었다.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 세대들을 대변해 이정희씨는 두려움 속에서도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그는 이한열의 죽음이 자신의 삶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며 그의 죽음이 많은 삶을 살렸다고 말했다.

 

이날의 '세대 특집'이 특별했던 건 젊은 세대들의 고민을 다른 세대들에게 묻는 대목에서였다. Y세대가 던진 고민 많은 20대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냐는 질문에 이정희씨는 자신의 20대에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이긴 했지만 그래도 취업 같은 문제들이 별로 없었다며 지금의 세대가 겪을 막막함을 공감했다. 그러면서 그는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출연한 민석기씨는 산업화 세대를 대변하는 분이었다. 1950년에 태어나 전쟁을 겪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심지어 고아원에 들어가 해외입양을 꿈꾸기까지 했던 민석기씨는 열두 살부터 일을 시작해 파독광부로 가서 지냈던 삶의 역정을 풀어놨다. 그의 이야기가 뭉클하게 다가온 건 평생을 쉬지 않고 가족을 위해 일만을 해온 것이 그 별것 아닌 것처럼 하는 말 속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가족에게 부치기 위해 힘든 일을 자청하며 고국에 오고 싶은 것도 참아 다른 일까지 해가며 돈을 벌었던 그였다. 하지만 10년 정도를 돈 한 푼 안 써가며 그렇게 일하고 들어온 그는 형님의 사업 실패로 남은 게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의 고생으로 다른 가족들은 지금 잘 살고 있다는 그의 얼굴에는 안도와 아쉬움 같은 게 묻어났다. 그가 인터뷰 중 독일에서 개사해 불렀다며 부르는 송대관의 '해뜰날'의 가사가 뭉클하게 느껴졌다.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모두 비켜라. 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 쨍하고 해뜰 날 고국 간단다. 쨍하고 해뜰 날 한국 간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마련한 세대 특집을 통해 산업화 세대부터 386세대를 거쳐 X세대, Y세대 그리고 Z세대까지를 한 자리에서 보면서 느끼게 된 건, 도대체 누가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시대에 따른 다른 문화를 가진 세대들이었지만 서로 다른 세대에 대한 남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시선에 의해 세대로 재단되어 때론 갈등이 부각되기도 했던 세대지만, 그 세대들은 전 세대와 뒷 세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었다. 그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특집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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