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였던 <응팔>, 남편 찾기는 결국 독이 됐다

 

도대체 왜 이런 아쉬운 결말을 맺게 된 것일까. tvN <응답하라 1988>18회까지 모두가 최고의 드라마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가족드라마로서 최근 몇 년 동안 <응답하라 1988>만큼의 성취를 보여준 드라마는 없었다. 지상파의 가족드라마들과 비교해보라. 늘 비슷비슷한 패턴에 묶여 어딘지 식상해지거나, 패턴을 벗어나려 자극적인 갈등만을 보여주는 막장이거나. 그것이 작금의 지상파 가족드라마의 현실이 아니던가.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 1988>은 지금까지 안이하게 제작되어 왔던 가족드라마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엮으면 참신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80년대의 추억과 감성, 가족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웃 가족들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공동체적인 정, 부모 자식 간에 세대 갈등보다는 소통을 보여주었던 것이 <응답하라 1988>이라는 가족드라마였다. 어딘지 가족드라마라고 하면 식상해 보이는 느낌들을 이 드라마는 경쾌한 구성과 연출로 세련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응답하라 1988>이 평균시청률 17.6%(닐슨 코리아)라는 케이블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낼 수 있었던 이유였다. 가족드라마답게 중년 시청층에서부터 젊은 세대들까지 저마다의 소구점들을 찾을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응답하라 1988>이었기 때문이다. 성동일과 김성균, 최무성, 류재명으로 대변되는 아버지 세대를 위한 헌사가 있었고, 라미란과 이일화, 김선영으로 대변되는 어머니 세대를 위한 헌사도 있었으며, 당대를 살았던 청춘들을 통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기적 같은 시청률과 화제성이 가능했을 게다.

 

하지만 재미 요소로서 빼놓을 수 없다던 남편 찾기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애초에 신원호 PD<응답하라 1988>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응답하라> 시리즈가 빼놓지 않고 해왔던 남편 찾기콘셉트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재미 요소라고는 해도 이만큼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환(류준열)과 택이(박보검)를 사이에 두고 어느 쪽이 덕선(혜리)의 남편인가에 대한 궁금증은 과열 양상을 보일 정도로 뜨거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드라마 초반부터 정환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어차피라는 표현 속에는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찌감치 덕선의 미래 남편으로 그를 점찍게 했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런데 후반부로 가면서 택이가 점점 전면으로 나오면서 멜로의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혹남택(혹시 남편은 택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어남택(어쩌면 남편은 택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혹시어쩌면이라는 표현 속에는 택이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환이 미래 남편이 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어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한 주를 쉬고 돌아온 19회에서 결국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물론 사람의 관계란 알 수 없는 것이고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의 관계란 그렇게 마음대로 변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작품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과의 공감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응답하라 1988>이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엔딩으로 갈 것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해피엔딩을 꿈꾸면서 그동안 가슴앓이를 줄곧 해온 정환이 그 주인공이 아니고, 늘 보살핌을 받았던 택이가 주인공이라는 건 시청자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가족드라마로서의 <응답하라 1988>은 더할 나위 없는 드라마로서 해피엔딩을 보여줬다. 하지만 멜로드라마로서의 <응답하라 1988>은 아쉬움이 남는 새드엔딩이 되었다. 물론 이것은 택이 입장에서는 해피엔딩일 수 있으나, 줄곧 시청자들의 감정 선은 정환에게 맞춰줘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환이 왜 그렇게 선선히 물러났는가에 대한 이유라도 밝혀주길 바라던 시청자들은 그것조차 사라진 마지막회에서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최고의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88>. 어쩌다 이런 아쉬운 결말에 이른 것일까.



<응사>20대, <응팔> 40대, 세대를 뛰어넘은 김성균

 

도대체 이런 연기가 어떻게 가능할까. tvN <응답하라1988>에서 김성균은 44년생으로 45세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다. 현재 나이로 치면 72세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김성균은 실제로는 80년생으로 만 35세다. 무려 10살이 더 많은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것. 더 놀라운 건 <응답하라1994>에서 그는 75년생 스무 살의 김성균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20대부터 40대까지 세대를 훌쩍 뛰어넘는 연기라니. 도대체 이런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그의 자연스런 연기는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시도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물감 없이 소화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응답하라1988>에서 라미란의 남편이자 정봉(안재홍)과 정환(류준열)의 아버지 역할로서 김성균의 연기는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 그가 40대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노안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우습지 않다. 연기로서 그 역할에 확실히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응답하라1988>에서의 김성균 역할이 기성의 아버지들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권위의식이 별로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한다. 입만 열면 유행어를 하려고 하는 그는 아들의 친구인 덕선(혜리)과도 반갑구만 반가워요-”를 하며 즐거워하는 어른이다. 어딘지 가벼움이 느껴지는 어른이지만 그렇다고 진중함이 없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기일에 한없이 우울해지고 표현 없는 아들의 무뚝뚝함 앞에 쓸쓸함을 느끼는 아버지다.

 

아내인 라미란에게는 철딱서니 없는 남편이지만 의외로 닭살 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는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는 그런 남편이기도 하다. 라미란의 실제 나이가 만 40세다. 그러니 김성균하고는 다섯 살 연상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어딘지 라미란에게 김성균이라는 남편은 누나에게 의지하는 동생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것은 이 독특한 부부 캐릭터와도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응답하라1994>에서 김성균은 무려 열 살이 넘게 어린 스무 살 청년 삼천포의 연기를 시도했다. 거기에도 역시 신원호 PD가 의도한 웃음의 코드가 들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촌놈 캐릭터로서 노안의 김성균은 그 자체로 웃음을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때도 역시 드라마가 진행되며 그의 이런 나이에 대한 이물감은 사라져갔다. 조윤진(도희)과의 러브 라인은 그래서 의외의 설렘을 만들어내며 그에게 포블리라는 닉네임을 선사하기도 했다.

 

<응답하라1994>의 포블리에서 <응답하라1988>은 이제 균블리라는 닉네임을 그에게 선사하고 있다. 10년 정도의 세월은 훌쩍 뛰어넘어, 처음에는 웃음을 주다가 차츰 그 캐릭터가 주는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 그것은 아마도 김성균의 녹록치 않은 연기 공력에서 비롯되는 일일 게다. 20대부터 40대까지 넘나드는 연기가 어디 쉬울 수 있겠는가.

 

20대들에게는 친근함과 웃음을 주고, 40대들에게는 어떤 짠함까지 선사하는 가장의 모습은 김성균이 가진 폭넓은 연기의 결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는 그의 향후 캐스팅이 어떤 나이에 어떤 인물로까지 나아갈 지가 못내 기대된다. 세대 차이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그 모습에서 서로 다른 세대들은 그를 통해 어떤 공유점을 발견하고는 뿌듯해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대가 달라도 충분히 소통 가능한.



<슈가맨>, 파일럿 프로그램의 진화란 이런 것

 

사실 JTBC <슈가맨>이 파일럿으로 방영됐을 때만 해도 실망감이 컸었다. 무엇보다 유재석이 처음 비지상파에서 선보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파일럿에서 <슈가맨>은 저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의 또 다른 버전처럼 여겨졌고, 너무 많은 의욕으로 슈가맨을 찾아가는 VCR<TV는 사랑을 싣고>의 한 대목 같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슈가맨(사진출처:JTBC)'

하지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이런 VCR 도입 부분을 과감히 없앴고 온전히 스튜디오 버라이어티에 집중시킴으로써 웃음과 공감의 폭을 넓혔다. 가장 눈에 띄고 효과적으로 보이는 변화는 방청객과 방청석이다. 방청객을 20대부터 50대까지 나누어 방청객에게 각각 이른바 공감의 등을 세워 놓은 건 노래는 물론이고 이야기의 공감을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되었다.

 

슈가맨이 누구인가를 맞춰가는 초반 도입부도 이렇게 세대별로 구분된 방청석과 불빛이 세워지자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시각적으로 어느 세대가 더 많이 그 노래를 기억하는가가 드러났고, 이런 방청객들과의 공감대를 유재석과 유희열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슈가맨>의 가장 큰 맹점으로 지적됐던 몰라도 너무 모르는 노래가 가진 한계는 그것을 피하지 않고 직시함으로써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유재석이 선선히 많은 분들이 모를 수 있다는 걸 전제한 후 작은 공감을 큰 공감으로 만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한 건 그래서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가 차츰 노래를 들으며 기억이 소환되고 그것을 지금에 맞게 리메이크해 요즘 세대에도 어필하게 하는 과정은 유재석의 이 말을 실행해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역시 방청객이다. 파일럿에서는 이러한 방청객들과의 교감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마니아들만 아는 노래와 가수를 소환해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좋아하는 느낌이 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청객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음악을 통한 소통의 노력을 한 결과 심지어 몰랐던 노래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던 것.

 

이제 새로운 프로그램의 런칭 이전에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관행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1,2회의 파일럿 프로그램만으로 정규가 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정을 내리다 보니 어떤 아이템은 아쉽게도 버려지기도 한다.

 

사실 좋은 프로그램은 기획 아이템 자체보다 메이킹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제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니면 그 기획이 빛을 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슈가맨>은 이러한 파일럿에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적절하게 해결하면서 진화시킨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제작 결정권자들도 당장 반응이 영 시원찮다고 그저 버릴 것이 아니라, 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또 메이킹을 제대로 해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200% 만들어낼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규로 돌아온 <슈가맨>은 그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한 땀 한 땀 재미의 포인트들을 찾아나가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은 왜 주근깨 가면을 쓰고 나왔나

 

MBC 주말예능 <복면가왕>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이상하게까지 여겨지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 나이든 세대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한 마디로 기괴하게 다가온다. 가수가 얼굴을 가리고 노래를 부른다니. 그것도 기괴한 모습의 가면을 쓰고.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기성세대들이 <복면가왕>에서 느끼는 기괴함은 과거 이 세대들이 봐왔던 많은 가요제와 쇼들을 떠올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 때 방영되었던 국제가요제에서는 마치 우리나라의 대표선수처럼 무대에 올라 여러분을 열창해 관객들을 압도하던 윤복희가 있었고,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가요제강변가요제에서 너무나 촌스러운 스타일이었지만 놀라운 가창력으로 주목받은 심수봉이나 이선희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고 뽐내기 위해 무대에 섰다. 조금 부족해도 그들을 위해 마련된 무대가 있었고 대학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그래도 실력을 선보이면 발탁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러니 이 시절의 가수들을 생각한다면 <복면가왕>의 복면 쓴 가수들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당시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른다는 건 자기 얼굴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복면 쓰게 만들었을까. 흔히 복면의 기능은 실체를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복면가왕>에서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나오는 목적은 정반대다. 실체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고 오히려 진짜 실체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이돌이라는 얼굴에 복면을 씌우자 숨겨진 가창력이라는 실체가 드러난다. 그저 센 힙합 가수인 줄 알았는데 복면을 씌우자 의외의 깊은 감성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제 한 물 간 가수인 줄 알았는데 복면을 쓰고 나와 여전히 감동을 준다.

 

스스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실체를 드러내는 인물을 우리는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도 발견한다. 여기 등장하는 과거 예뻤으나 역변한 김혜진(황정음)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 게다가 옷 스타일도 꽝인데다, 스펙도 보잘 것 없는 인턴 나부랭이. 그런데 그녀가 예쁘다. 감춰져 있는 능력도 있다.

 

만일 김혜진이 예쁜 얼굴로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캐릭터였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런 미모의 캐릭터라면 연애도 잘하고 일에 있어서도 능력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 드라마에서 그녀의 절친인 민하리(고준희)가 그렇다. 예쁜 얼굴에 잘 빠진 몸매 게다가 스타일도 좋고 좋은 집안까지 갖춘 그녀에게서 우리는 숨겨진 다른 능력이나 매력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당연히 능력도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김혜진이라는 인물은 주근깨 가면을 씀으로써 오히려 그녀의 진가를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녀는 예뻤다>가 제목에서부터 드러내고 있듯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사실은 예뻤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장치다. <복면가왕>에 가수들이 복면을 쓰고 무대에 올랐듯이,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도 주근깨 가면을 쓰고 이 드라마의 무대에 올라서 있다. 목적은 같다. 진가를 드러내는 것이다.

 

<복면가왕>의 가면 쓴 가수들을 보면서, <그녀는 예뻤다>의 김혜진이라는 캐릭터를 보면서 지금 우리네 청춘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그 공통분모로서의 가면이라는 장치 때문이다. 이들은 왜 이토록 가면까지 쓰면서 자신의 진가를 발견해주길 바라게 된 것일까. 그 반대편에 거대한 스펙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물론 좋은 스펙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걸 내보임으로써 어떤 이득을 가져가려 하겠지만, 대부분의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복면을 꺼내 쓴다. 제발 스펙을 가리고 실체를 봐달라는 간절한 호소. 그것이 이들 가면 세대들에게서 느껴지는 절절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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