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하숙’, 어째서 이 소소함에 우리는 빠져들었을까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했잖아요.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서 완전 배부른 상태에서 노래를 들었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시원한 바람도 솔솔 들어오고 밖에 보이는 창문에는 파란 하늘이 보이고 그 때가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트레스 많이 받잖아요. 한국에 있을 때는 일해야 되고 공부해야 되고 빨리 자리 잡아야 되고... 여기는 그냥 그런 것도 없이 매일 걸으면서 한 끼 먹고 이런 게 되게 행복하잖아요. 걷고 밥 먹는 것만으로도 내가 행복한 사람인데 근데 왜 이렇게 한국에서 풍족하고 좋은데서 살았으면서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았는지 모르겠어요.”

 

tvN 예능 <스페인 하숙>이 만난 어느 젊은 순례자는 자신이 살아왔던 한국에서의 삶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행복이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매일 걷고 한 끼 먹고 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걸 순례길을 걸으며 깨닫게 되었고, 행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공부해야만 했던 한국에서의 삶을 낯설게 느끼고 있었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있는 다른 순례자는 그의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다.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을 찾으면 최소한 불행해지지는 않겠죠.” 그 역시 고민이 있어 이 긴 여행을 떠나온 것이었고, 지금도 그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냥 회사 다니고 있었는데.. 그냥 그냥 살 것 같은 그런 기분..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나온 여행인데 그 정도로는 답이 명확하게 나온 것 같지는 않아.” 하지만 “갖고 있는 걸 놓으면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그 결단만으로도 그는 벌써 해답에 가까워지고 있을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순례자는 도대체 ‘가진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얘기했다. “저는 갖고 있는 게 되게 사실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되게 많았고 그리고 제가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 건 하나도 가진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여기 올 때는 사실은 처음에는 도피였어요. 걸으면서 잊고 싶었어요. 돌아갈 때쯤이면 뭐 하나라도 해결책이 나오겠지. 근데 제가 여기 온 다음에 제가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두 개 정도 일은 잘 풀렸어요. 근데 어제 한 개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나는 여기에 대해서 아무 것도 관여한 일이 없었는데...”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늘 손아귀에 무언가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행복은 그 쥐고 있는 것에 비례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걸 쥐고 놓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자신이 그걸 쥐고 있지 않으면 행복이란 파랑새는 날아가 버릴 것처럼. 하지만 순례자가 말하듯 그건 착각일 뿐이었다. 자신이 없이도 될 일을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쥐고 있다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당신을 쥐고 있는 지도.

 

다시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순례자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데 저는 매일 매일이 스트레스인거에요. 누구 잘되는 사람 보는 것도 힘들고 매일매일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았는데.. 내 두 발로 걷고 숨 쉬고 숙소 도착해서 빨래만 해도 행복하잖아요. 밥 먹고 이러는 게 행복하다는 게...”

 

그렇다. <스페인 하숙>이 열흘 간의 알베르게를 통해 보여주려 한 건 바로 이들의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것처럼 ‘행복의 소소함’이 아니었을까. 때론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지만 때론 단 한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다. 하지만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며 매일 일어나 청소하고 요리를 준비한다. 그저 한 끼 식사이고 하룻밤의 잠자리지만, 그 한 끼 식사와 하룻밤의 잠자리는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잊지 못할 행복이 된다. 그러니 그 한 끼와 하룻밤은 심지어 숭고한 어떤 일이다.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이 하루 종일 준비하고 준비하는 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편안해진 것은 대단한 것도 아닌 그 소소함을 위한 노력들이 진정한 행복의 실체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마지막 날 단 한 명의 손님도 오지 않자 이들은 마치 손님이 오는 것처럼 몰래카메라를 하거나 상황극을 만들며 허허 웃는다. 그리고 함께 둘러 앉아 손님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을 먹는다. 손님이 많이 오거나 적게 오거나 그리 행복의 크기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밥 한 끼의 따뜻함에 누군가의 기분 좋은 농담에 웃는 것이 어쩌면 우리네 삶과 행복의 실체라고 <스페인 하숙>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스페인 하숙>에 빠져들었던 바로 그 소소함과 위대함이 바로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실체라고.(사진:tvN)

이엘·배두나에게 버림받은 차태현 통해 '최고의 이혼'이 하고픈 이야기

“10년이 지나도 아무 것도 모르네. 나 너와의 사이에 좋은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헤어질 때 생각했어.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 이런 남자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시절 첫사랑 진유영(이엘)이 갑자기 내뱉은 이 말에 조석무(차태현)는 충격에 빠진다. 조석무는 진유영의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목격한 후, 그 찜찜함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진유영을 찾아가 생각해준답시고 그 사실을 얘기하는데, 갑자기 진유영에게서 나온 이야기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KBS 월화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우리가 흔히 이혼이나 헤어짐에서 상상하는 그런 극적인 이유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계기가 되는 엄청난 사건을 떠올린다. 무수한 드라마들이 불륜을 다루고 끔찍한 사건들을 그 헤어짐의 이유로 제시하듯이. 하지만 <최고의 이혼>은 그 사유가 자잘한 일상의 누적과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들, 혹은 하필이면 상대방에게 상처 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된 ‘기막힌 타이밍’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첫 회 만에 이혼을 하게 된 조석무와 강휘루(배두나)의 이혼 전 분위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인다. 하지만 “헤어지자”며 “시원하다”고 말하는 강휘루의 그 지점에서 되돌아보면 아주 자잘한 일상 속에 담겨진 무수한 상처들이 느껴진다. 강휘루의 앞에서 습관처럼 나오는 조석무의 한숨이나, 조금이라도 어질러진 걸 견디지 못해 잔소리를 해대며 치우고 또 치우는 조석무의 행동은 강휘루의 마음 한 구석을 짓누른다. 

물론 조석무는 고객들이 언제 어디서든 부르면 출동해야 하는 보안업체 직원으로 고객들의 자잘한 요구들에 힘겨워한다. 그들에게는 별 것도 아닌 요구처럼 보이지만 조석무는 그걸 위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래서 조석무는 많은 걸 포기하고 살아가는 비관주의자가 됐다. 젊은 날에는 꿈도 있어 기타를 치고 음악을 했지만 지금 그의 소망은 고양이와 함께 아무도 없는 산골 어딘가에서 살고 싶다거나, 커피 한 잔에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즐기고 싶은 정도다. 하지만 그것을 강휘루는 ‘별 것도 아닌 일’로 치부한다. 

그런 일상들이 오래도록 겹치고, 거기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해가 깊어지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동화작가가 꿈인 강휘루는 자신이 쓴 원고를 조석무가 한번쯤 읽어봐 주기를 바라며 식탁 위에 흩어 놓지만, 실수로 물을 흘려 젖은 원고를 조석무는 정리하지 않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나 잡동사니 정도로 여긴다. 결국 폭풍우가 치던 날, 문을 두드리는 게스트하우스 손님 때문에 두려워 조석무에게 빨리 와 달라 보낸 문자의 답변으로, 문밖에 있는 화분을 들여놓으라는 문자를 받게 된 강휘루는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다.

이런 사정은 조석무가 첫 사랑인 진유영과 헤어지게 된 이유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어째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는가의 이유는 진유영의 어린 시절 겪었던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였던 아버지에 그토록 의지했던 이 어린 소녀는 아버지가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게 되면서 자우림의 노래를 좋아하게 됐고, 자신도 음악의 꿈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진유영이 작곡한 곡을 조석무는 그가 한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표절”이니 “쓰레기”니 하는 지독한 표현으로 폄하해버린다. 물론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르고 한 이야기지만, 그 말은 아마도 진유영의 삶 전체를 부정하는 듯한 상처로 남았을 게다. 그리고 심지어 밴드부에서 진유영이 만든 곡에 조석무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싸구려 꽃무늬 변기 커버 같은 음악”이라는 말을 한다. 게다가 하필이면 상어의 습격을 받아 죽은 사람의 뉴스를 보면서 조석무는 진유영에게 “사람은 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러니 조석무를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한 진유영의 마음이 이해될 밖에.

물론 여기에는 일본 원작 특유의 독특한 정서가 깔려 있다. 즉 일본인들의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그 정서가 깔려 이런 관계가 틀어지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석무가 충격을 받는 건, 그가 무심하거나 나쁜 사람이거나 해서가 아니라 다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몰라서다. 알고 보면 조석무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병에 걸린 반려견을 어딘가로 데려가 버린 일 때문에 지금껏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 충격적인 경험은 조석무에게 알 수 없는 분노와 체념, 깔끔한 것에 대한 집착, 부정적인 사고방식 같은 것들을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최고의 이혼>이 하려는 이야기는 무얼까. 그건 아마도 ‘연민’이 아닐까. 본래 비극이 가진 가장 큰 기능은 위에서 인간사를 내려다보며 그들이 저도 모르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이나 슬픔, 관계의 비틀어짐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갖게 되는 ‘연민’의 감정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 했고가 아니라 한 치 눈앞의 비극적 상황들을 모른 채 그 속으로 발을 들이는 인간의 소소함을 들여다보며 느끼는 연민의 감정. 

<최고의 이혼>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비극적인 선택들이 굉장한 사건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잘한 일상들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벌어지는 ‘인간적 한계’로 인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살아가고, 뒤늦게 그 이유들을 발견하며 충격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알아가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 <최고의 이혼>은 그래서 제 아무리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결혼’의 반대말처럼 다가온다.(사진:KBS)

짧지만 큰 울림, ‘세상에서’ 같은 리메이크 더 없을까

“아침에 출근하려고 넥타이 맬 때, 맛없는 된장국 먹을 때, 맛있는 된장국 먹을 때, 술 먹을 때, 술 깰 때, 잠자리 볼 때, 잘 때, 잠 깰 때, 잔소리 듣고 싶을 때, 어머님 망령 부릴 때, 연수 시집갈 때, 정수 그 놈 대학갈 때, 정수 대학 졸업할 때, 설날 부침할 때, 추석 송편 빚을 때, 아플 때, 외로울 때...” 

이제 떠날 것을 직감한 인희(원미경)가 남편 정철(유동근)에게 자신이 언제 보고 싶을 것 같냐고 묻자, 남편은 그렇게 하나하나 떠오르는 장면들을 이야기한다. 사실은 전부 다 아내가 그리울 것이라는 걸 말하는 것이지만, 그 그리움의 순간들은 무슨 대단한 일들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함께 해왔던 일들이 새삼 새록새록 떠오르고, 앞으로는 많은 날들을 혼자 접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리게 다가온다. 

다음 날 잠자리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은 인희를 발견한 정철은 가만히 그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린다. 카메라는 그들이 함께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에서 조금씩 빠져나와 벽에 붙어 있는 바다에서 가족이 함께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들, 집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창 밖 풍경, 나란히 놓여 있는 신발, 널어놓은 빨래들, 함께 앉아 있던 의자, 남편이 읽어주던 책, 바다에서 사진 찍던 그 날의 기억을 훑어나간다. 마치 떠나는 인희가 그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며 행복했던 그 시간들을 그리워하듯.

tvN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담으려 한 것이 바로 이것일 게다. 죽음에 이르러 누군가의 한 삶이라는 것이 이처럼 소박한 것이고, 그래서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시한부의 삶을 소재로 담고 있지만 이 드라마는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그 시선으로 인해 짧은 4부작임에도 큰 울림을 전해 주었다. 

사실 1996년에 만들어진 작품이고 그러니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지금의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 의구심으로 다가왔던 리메이크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픈 몸에도 치매를 앓는 노모를 걱정하는 자기희생적인 주부의 면면들은 윗세대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는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메이크 작품이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가져갈 수 있었던 건 노희경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지금이 더더욱 간절해지는 그런 가치.

무엇보다 이 작품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리메이크작으로 남은 건 4부작이라는 압축미 때문이었다. 본래 1996년도에도 MBC 창사 35주년 특집 드라마로 4부작으로 만들어졌던 작품이지만, 그 압축적인 스토리는 리메이크작에도 한층 힘을 실어주었다. 만일 이 아름답지만 슬플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장편으로 그려졌다고 생각해보라. 이만한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또 하나 거둔 성과는 단막극이 가진 그 짧은 형식만의 가치다. 갈수록 단막극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요즘, 이 작품은 어째서 단막극이어야 더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짧은 인희의 삶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소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더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었듯이.

향후에도 이 작품처럼 거장들의 명작을 짧은 리메이크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미니시리즈나 장편이라도 단막극 형식으로 압축적인 리메이크를 통해 재탄생한다면 아마도 그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도가 되지 않을까. 명작을 리마인드하고 단막극의 가치도 살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같은 명작 단막극 리메이크가 더 나올 수 있기를.(사진:tvN)

신원호 PD의 마법, ‘감빵생활’이 주는 판타지라니

도대체 이 따뜻함의 정체는 뭘까. tvN 수목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보다보면 감방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도소는 구치소와는 공기 자체가 다르다는 엄포에도 불구하고 제혁(박해수)이 지내게 된 감방 안 사람들은 의외로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감방에 처음 들어가게 된 제혁이 보게 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로 라면을 끓여먹는 이야기는 이들의 반전 매력을 드러낸다. 마치 탈옥이라도 할 것처럼 쉬쉬하며 무언가를 공모하던 이 감방사람들은 그러나 그것이 뜨끈한 물에 라면을 끓여먹으려는 ‘작전’이었다는 걸 보여주며 이들이 꿈꾸는 것들이 이런 소소한 것이 주는 행복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감방의 방장격인 장기수(최무성)는 겉보기에 무시무시한 포스를 풍기지만 장발장(강승윤)이 아버지라 부를 만큼 방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다. 장발장은 닉네임처럼 빵을 훔치다 감방에 들어온 인물이고, 고박사(정민성)는 기업사기 전과로 들어왔지만 고발 고소 전문이다. 카이스트(박호산)는 도박으로 들어왔지만 뭐든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만물박사. 풍기는 포스와 달리 혀 짧은 소리로 ‘신라면’인지 ‘진라면’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웃음을 주는 캐릭터다. 그리고 이 방에 들어오게 된 몽롱한 정신으로 할 이야기는 다 하는 나름 귀여운 캐릭터 뽕쟁이(이규형)도 있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주는 따뜻함의 원천은 이런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소박한 욕망들이다. 마침 방영하는 <영웅본색>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장기수를 위해 카이스트가 한 채널 밖에 나오지 않는 감방의 TV를 어떻게든 건드려 다른 채널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훈훈함을 준다. 결국은 장발장이 슬쩍 해온 리모콘으로 쉽게 채널을 돌려버리지만. 

모가지 밖에 나오지 않는 닭볶음이나 일주일에 한 번밖에 허락되지 않는 온수 샤워를 위해 끝없이 민원을 넣어 상황을 호전시키는 고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가 나오고 매일 온수 샤워를 할 수 있게 되는 그 상황만으로도 커다란 행복감을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도소에 위기상황이 없는 건 아니다.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의 반장(주석태)은 제혁에게 처음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제 맘대로 되지 않자 그 어두운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제혁을 성추행하려 하지만 그 때 마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교도관 준호(정경호)에 의해 불상사를 피하게 된다. 제혁의 오랜 친구인 준호가 애써 힘을 써 이 교도소로 오게 된 건 오로지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교도소가 제혁에게 주는 위기상황과 또 그를 보호해주려는 인물 사이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감이 이 드라마에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 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그 느낌이 주는 소박함과 훈훈함은, 사회와는 유리되어 있고 살벌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 곳에서도 ‘슬기로운’ 방식으로 인간적인 삶을 희구하는 인물들의 따뜻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감방생활을 보고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시금 보게 되는 것. 

하는 일이 잘 안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만 좌절되는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감방생활에서 라면 하나를 끓여먹기 위해서, 제대로 된 닭요리를 먹기 위해서, TV의 채널을 돌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 또 온수 샤워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그래서 그것이 관철됐을 때 굉장히 행복해하는 모습에서 어떤 위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하고 가는 건 엄두도 못내는 해외의 유명 리조트 같은 곳을 날아가야 판타지를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감방 같은 뭐 하나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공간에서 아주 소소한 것들을 여럿이 힘을 합쳐 해결해내는 그 장면은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크게 다가오니 말이다. 역시 신원호 PD답게 감방이라는 차가운 공간조차 사람 사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왜 신원호의 마법이라 부르는 지 알 것 같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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